칼리만이 상식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것은 많이 봤다.
칼리만의 동료가 되면서 내가 하게 되는 주된 일 중 하나가 칼리만이 벌인 일의 뒷수습이니 말 다한 거라 생각된다.
그러나 난 칼리만을 이해한다.
32살이 될 때까지 단 하루도 온전하게 쉬지 못하고 괴물들과 싸운 자에게 상식이라는 것을 바라는 것이 잘 못 된 것이겠지. 그러나 괴물들과 싸우는 동기가 사람들을 위해서였기에 사람들도 칼리만에게 존경과 호의를 가지고 그를 대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용사라고 불리게 된 거고. 그래서 어지간히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도 수습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피해를 입힌 게 있다면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하면 된다. 그리고 용사라는 직함 하나만으로도 뒷수습이 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보상으로나 용사의 직함으로도 뒷수습이 안 되는 일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서……
“용사 칼리만 리아쥬입니다. 오늘부로 용사에서 은퇴하겠습니다.”
일국의 왕과 고위관리들이 있는 자리. 거의 공식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전에 논의 없이 은퇴를 선언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아, 내 소개가 늦었다
내 이름은 유스빈.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말하겠다.
칼리만의 10년 지기 동료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따위 소리를 내뱉냐!”
우리가 지내고 있는 방의 문을 닫자마자 보닌이 칼리만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외쳤다. 사람들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으니 보닌 치고는 잘 참은 거다. 멱살을 잡은 게 잘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충분히 피할 수 있지만 칼리만은 보닌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보닌은 난폭하기는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성격은 아니다. 그건 칼리만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칼리만이 저 정도에 다칠 리도 없고.
“은퇴하겠습니다? 지루하니까? 개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용사야!?”
“응.”
칼리만은 긍정했다.
“…….”
보닌의 말문이 막혔다. 화자의 발화의도와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의문에 대답을 하는 이 장면은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꽤나 익살스럽지만 난 웃지 않았다. 칼리만이 이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까.
웃는 대신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보닌.”
“왜!”
“자리에 앉아.”
“이 새/끼 손 좀 보고!”
칼리만은 한 팔로는 날아오는 보닌의 주먹을 막아내며 나머지 팔의 손바닥을 펴 앞으로 내밀었다.
“자.”
이건 조금 웃겼다.
난 피식 웃고는 보닌에게 다가갔다.
“보닌. 앉아.”
“아직 멀었어!”
하아.
칼리만도 칼리만이지만 이 녀석도 문제다. 칼리만이 잘못 할 때마다 폭력을 행사한다. 그게 잘 못 됐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칼리만에게 어떤 잘못을 했을 경우 거기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면 보닌은 폭력으로 잘못을 체벌하고 잘못하고 있는 행동을 중단시킨다. 보닌이 우리 일행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이 역할은 확실하게 수행되고 있었다. 덕분에 이전보다 칼리만의 행동이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대화를 해야 할 때이다. 아무리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칼리만이지만 그래도 은퇴하겠다는 말을 막 내뱉을 녀석은 아니다. 일단은 지금 그 이유를 물어보는 게 먼저다. 덮어놓고 하지 말라고 했다가는 칼리만도 반발하게 된다.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보닌의 바로 등 뒤에 섰다.
말로 안 되면 행동으로 막아야지.
뒤로 날아오는 팔꿈치를 피하고 그대로 보닌을 뒤에서 껴안아 들어올렸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끄아! 야! 안 놔? 뭐야! 유스빈!”
성난 고양이를 안으면 이런 느낌이었지. 아니 차라리 고양이가 나은가. 최소한 고양이는 주먹질로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 나는 최대한 강하게 보닌의 가느다란 허리를 껴안고 주먹을 맞지 않기 위해 그 등에 내 얼굴을 묻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죽고 싶어졌다.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인간주제에!”
보닌은 발을 놀려 뒤꿈치로 차기 시작했다. 한 대 한 대마다 뼈가 부러질 위력이 담겨있다. 칼리만이 아닌 인간이 이런 걸 계속 맞다가는 분명히 죽는다.
나는 보닌을 흔들었다.
좌우로, 위아래로. 가끔씩 나도 빙글 돌고. 지금 여기서 멈췄다간 분명히 죽는다.
보닌의 말이라고 예상되는 소음들이 내 귀에 들어왔지만 너무 엉망진창이라 해석이 되지 않는다. 아니 말이 아니라 비명이었을라나?
적당히 보닌이 진정되었을 거라 예상되었을 때 나는 보닌을 놔주었다. 보닌은 잠시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보닌이 곧장 일어나지 못하도록 양 어깨를 손으로 누르며 물었다.
“진정했나?”
“너……새/끼……지금, 뭐한거냐?”
보닌이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보닌이 못 일어나게 팔에 힘을 줬다. 좀 더 흔들었어야 했나보다.
“진정해라 보닌.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칼리만의 말을 들어라. 아무리 칼리만이라도 그런 말을 생각 없이 내뱉지는 않는다.”
“너……”
“내가 방금 한 행동은 사과하지. 거기에 대한 대가는 나중에 치룰 테니까. 지금은 일단 진정해라. 칼리만의 말을 들어.”
보닌의 어깨가 위아래로 크게 들썩였다. 호흡을 가다듬나보다.
속으로 열을 세었을 때, 보닌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손 치워.”
나는 손을 치웠다. 보닌은 일어났다. 보닌은 곧장 칼리만에게 달려드는 대신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나한테 달려들겠어? 그런데 눈빛이 심상치 않은데? 어? 나 오늘 죽는 건가? 아니, 인간이 자기 몸에 손대는 것을 미칠 듯이 싫어하는 보닌이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데? 칼리만 놈 때문에 경을 칠거라고 예상은 했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역시 더 흔들었어야 했는데.
“유스빈.”
“그래.”
“난 네가 인간치고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거 고맙군.”
인간을 경멸하는 보닌에게 이 말은 최상급의 칭찬이겠지.
“그러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줄게. 하지만……”
보닌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다음에 다시 이러면 그때는 박살낸다.”
그 말을 끝으로 보닌은 방 한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다행스럽게도 급한 불은 끈 것 같다. 뒤늦게 등으로 식은 땀이 흘러나왔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용사의 동료가 폭력에 겁먹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니까.
후, 이제 그 용사님만 자리에 앉히면 끝나는 건가? 이건 쉽지. 그냥 앉으라고 말하면 되니까.
나는 칼리만을 바라보았다. 칼리만은 방금 전의 소란이 자신이랑 상관없다는 듯이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배고프다.”
……잠시지만 진심으로 이 자식 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
그럼요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밥은 중요하죠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요!
재미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사회부적응자의 사회적응기같은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