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만의 삶에 용사는 있었으나 칼리만은 없었다.
칼리만이 용사인 게 아니다.
용사를 부르는 다른 호칭이 칼리만이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칼리만에게 용사로 살 것을 강요했다.
괴물이 나타나면 칼리만, 아니 용사를 부른다. 괴물이 퇴치되면 용사는 또 다른 괴물을 퇴치하러 간다.
이유는 간단했다.
용사니까.
어째서 이걸 당연하다고 여긴 걸까?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처음으로 용사가 아닌 칼리만이라는 인간을 마주보았다.
나이 서른 둘.
남자.
사회성 전무, 상식 전무, 공감능력 박약, 자존감 박약.
그리고 용사.
내가 인간 칼리만에 대해서 아는 건 이게 전부였다.
죽고 싶어졌다.
“……아닌가?”
스스로의 인생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가 대답이 없자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여긴다. 그게 칼리만이었다.
칼리만이 생각 없이 산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칼리만을 그렇게 만든 게 우리였다.
이상하냐고?
당연히 이상하지.
그 누구도 칼리만처럼 살 수 없다. 쉬는 일도 거의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괴물을 퇴치하러 갈 수 없다. 동료인 우리들조차 칼리만처럼 살 수 없다. 우리는 쉬고 싶어지면 쉰다. 칼리만에게 동료는 많으니까. 우리 중 하나 정도는 빠져도 다른 동료들이 대신할 수 있다. 그리고 충분히 쉬면 다시 칼리만에게 합류한다.
그러나 칼리만은 그렇게 살아왔다. 용사로서 16년 동안.
“…….”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칼리만의 의문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평소에는 바보 취급하면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했던 주제에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런 말도 못한다.
끼어들기 전에 허락을 받으라는 말에 처음에는 화를 냈던 주제에 지금은 그 말 덕문에 칼리만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안도하고 있다.
그렇게 경멸하던 인간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게 나다.
가슴이 답답하다.
화내고 싶다. 울고 싶다. 소리치고 싶다. 사과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온갖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표출되지 못한 감정이 몸 안쪽을 두드려댔다. 가슴을 찢어서 그 감정들을 짜내고 싶다. 미칠 것 같다.
나는 유스빈을 바라보았다.
유스빈은 칼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유스빈? 빨리 대답해줘야지. 너라면 저 말에 대답해 줄 수 있잖아.
내 마음의 소리가 전해졌는지 유스빈의 입이 열렸다. 그 속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평소처럼 평온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니 지루해졌다는 건가?”
유스빈의 입에서 나온 것은 칼리만의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응.”
“그러니 은퇴하겠다?”
“응.”
유스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칼리만이 바보짓, 실수를 저지르고 유스빈이 그것을 수습할 때마다 내쉬던 그 한숨이었다.
“고작 그런 걸로 은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뭐……라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스빈도 방금 칼리만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 따위 말을 내뱉는거지?
“유스빈!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감정을 실어 유스빈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유스빈은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유스빈은 시선은 칼리만에게 둔 채로 대답했다.
“시끄럽다. 끼어들기 전에 허락을 받으라고 했을 텐데?”
방금 전에 들었을 때에 그토록 화가 났던 말이 지금은 전혀 다르게 들렸다.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앞을 가로막는 탁자를 옆으로 집어 던지고 그대로 유스빈의 뒤통수에 주먹을 휘둘렀다.
어차피 서로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다. 칼리만과 다르게 평범한 인간인 유스빈에게 진심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단 한 대 만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주먹 끝에서 뭔가가 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쪽의 덩어리에 닿은 느낌이 들었다. 내 경험상 방금 부러진 것은 갈비뼈, 그 속의 덩어리는 내장이다.
난 분명히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을 터. 어째서 배에 맞았을까?
“……하지 마.”
내 머리 위에서 칼리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칼리만이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내려 내 주먹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내 주먹은……칼리만의 배에 닿아있었다. 칼리만의 배는 움푹 들어가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칼리만이 나와 유스빈 사이에 끼어들었던 것이다.
어째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마.”
팔을 뒤로 뺐다. 칼리만의 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옷으로 가려진 겉은 그렇다는 거다. 그 속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칼리만의 얼굴이 보였다. 칼리만의 표정은 고통과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에 내가 폭력을 휘둘렀을 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찾을 때의 표정이다
어째서 끼어든 걸까?
지금까지 너의 희생을 바로 곁에서 본 놈이 그 희생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는데. 너는……
“왜……왜 끼어든 거야?”
“난 괜찮지만 유스빈은 죽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막을 수 있었잖아.”
칼리만이라면 나와 유스빈 사이에 끼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나마 덜 다치는 부위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배로 내 주먹을 받은 걸까?
“네 몸에 손대지 말라고 했잖나.”
칼리만이 한 대답은 아니다. 마지막 말에 대답한 것은 유스빈이었다.
“평소에 몸에 손을 대면 질색을 하더니 벌써 잊은 건가?”
방금 죽을 뻔 한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보닌의 주먹을 잡으면 보닌이 싫어한다. 팔이나 다리로 막아도 안 된다. 나중에 팔다리를 써야할 지도 모르니까. 또 팔이나 다리로 막으면 주먹이 미끄러져서 유스빈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면 넓은 면으로 주먹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등은 안 된다. 보닌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봐야 또 막을 수 있으니까. 배 밖에 없다. 맞지, 칼리만?”
칼리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스빈, 너…….”
냉정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저 지독한 냉정함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인간을 경멸해 마지않는 내가 인간인 유스빈을 인정한 다른 이유. 저 인간 같지 않은 냉정함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저 냉정함이 지금은 너무 소름끼쳤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털썩 원래 있던 의자에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입에서 저절로 소리가 새어나온다.
“아아……”
모르겠다.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너무 낯설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분명히 뭔가를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난 여기 있지만 마치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릿속은 이리저리 엉킨 실 뭉치로 꽉 찬 것 같다.
“다녀왔습니……다만……”
새로운 목소리가 방에 울려퍼졌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자신의 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던 다른 동료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