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야 말로......'
창틀 사이로 아침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주방의 열석도 열이 올라 발갛게 빛났다.
열석 위엔 팔팔 끓는 넙적한 냄비가 올려져 있었다. 냄비를 꿰뚫어버릴 듯 노려보고
있는 포시의 눈은 열석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육감적인 몸에 비해 가녀린 그녀의 팔이 녹색가루가 담긴 유리병을 든채 파르르 떨렸다.
꿀꺽,
그녀는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그러고선 천천히 그리고 신중히 의문의 녹색가루를 한숟갈 떴다.
손이 자꾸만 떨리는 통에 숟가락 위에 얹혀진 가루들의 일부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크게 숨을 들이키더니, 전골이 끓고 있는 냄비 위로 의문의 녹색가루를 둥글게 흩뿌렸다.
펑!
"꺄악!"
단발마의 비명이 주방에서 솟아 오를때,
"터졌군."
벽 너머 거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탁 의자 위에 검은머리를 질끈 동여맨 검은 눈매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눈을 감고 팔짱을 낀채 고개를 끄덕였다.
"위, 나 가볼래!"
몽실몽실한 하얀색 머리칼이 들썩였다. 백발의 곱슬머리 꼬마가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꼬마에게 위라고 불린 남자는 꼬마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덕분에 꼬마의 발이 공중에서 동동 굴렀다.
뒷덜미야 잡히건 말건 꼬마의 눈은 호기심에 반짝거렸다.
"안돼, 요란. 지금가면 음식을 빙자한 대인용 폭발물의 피해자만 될 뿐이야. 죽이기보다 팔다리를 잘라
전투불능에 빠뜨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악랄한 놈이지. 폭발의 규모로 보건데 확실해."
"하하. 하긴 포션 제조수업 시간에 실수로 입에 테스트 샘플이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게 더 맛, 괜찮긴 하더더라고요."
위의 맞은편, 말끔한 셔츠차림으로 식탁의자에 앉은 소년이 살갑게 웃으며 위의 말에 수긍했다.
“고마 찌개아이가? 뭐 폭발한다는 시점에서 벌씨로 음식자격은 탈락이긴하다마능.......”
속옷차림으로 식탁에 다리한쪽을 터덜하게 올린 헨티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가 식탁 위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고 있었다.
딱!
"아얏!"
불량스러운 헨티의 다리 위로 장검 손잡이가 떨어졌다.
그녀 옆에 앉은 검은색 생머리의 또다른 여성이 자신의 장검 손잡이로 내리친 것이었다. 둘의 나이는 엇비슷해 보였다.
"헨티, 복나가요. 그리고 남자분들은 이제 그만 흘끗 거리시죠."
"에이, 또 이란다, 스즈. 내는 고마 이기 편한데.”
“그래도 안되요.”
“하따, 고마 누가보믄 뭐 다리 닳아서 없어지삐리는줄 알긋다.”
스릉.
스즈가 검집에서 장검을 뽑아 올릿 듯한 제스쳐를 취하자,
"으음." "흠."
셔츠의 소년 킴과 소년의 옆, 검은 피부의 건장한 청년은 헛기침을 하며 급히 시선을 땅으로 쳐박았고,
헨티는 '닳지. 암, 마이 쳐다보믄 닳기도 한다카더라.....'하며 불가항력적인 수긍의 말과 함께 다리를 식탁에서 내렸으며,
요란은 입을 동그랗게 말며 '호오..'하는 느낌으로 식탁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요란의 시선이 멈춘 그곳에는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 잡은채 스즈의 불호령에도 눈하나 꿈쩍않는 위가 있었다.
스즈는 그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위씨는 제 말이 안들렸나보죠?"
위는 담담히 스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폭발음으로 인한 내 귀의 생체기능 손상에 대한 의구심이라면 과한 걱정이라고 얘기해주고 싶군.
문제없이 잘들려. 물론 잘들린다는 기준을 어느 수준에 둘 지에 대한 서로간의 합의점은 필요하다고....."
"호오, 그래요? 그런데 왜 아직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거죠?"
위의 말을 끊으며 되묻는 스즈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따라 장검도 덜덜 떨고있다.
날카로운 장검의 검신이 이미 절반 정도 검집을 빠져 나오고 있는 순간이었다.
위와 스즈를 제외한 식탁 주위의 모두가 새파랗게 질렸다. 대답 여부에 따라 그녀는 눈 앞의 남자를 정말로 벨 생각인 듯 했다.
"음, 그렇군. 사과하지."
후.. 모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이곳, 에쏘리타의 ‘청각 기능 온전함에 대한’ 의사 표현 방식이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니. 꿈에도 몰랐군. 이렇게 돌리면 되는 건가."
뭔가 단단히 착각한 위가 고개를 왼쪽, 즉 스즈를 향해 돌렸고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공교롭게도
검을 뽑기 위해 반즘 일어나 있던 스즈의 가슴 쪽 이었다. 잠옷 사이 그녀의 뽀얀가슴 골이 언뜻 내비치고 있었다.
"이..이....."
스릉
"변태가!"
일갈과 함께 스즈의 장검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검집을 빠져 나왔다. 검은 매끄러운 호를 그리며 위를 향해 치달았다.
위와 검 사이 거리 1척.(약 30cm). 모두가 눈을 감아버린 그 순간,
까강
쇳소리와 함께,
"모두 아침드세요!!"
위의 정의에 따르면 음식으로 위장한 대인용 소형 폭탄이 식탁에 올랐다.
반 즘 잘리다만 채로 자신의 장검에 매달려있는 냄비뚜껑을 스즈는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음, 역시 잘들리는군. 이건 사견이지만 스즈, 금속제 냄비를 후려치는 것보다 더 작은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
위의 짧은 조언을 뒤로하고 식탁 위 모두의 그릇 위로 아침식사가 듬뿍 담겨졌다.
"자자, 다들 그 즘하고 이거나 한번 먹어보라고. 오늘은 분명 맛있을 거야, 아마...."
말을 끝 맺는 포시의 '아마'에는 다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아따, 요봐리."
"생각보다."
"...괘, 괜찮아 보, 보입니다."
"상당한 수준의 위장술이군. 누가 봐도 음식이라 착각하겠어. 테러용 소형폭탄의 교과서와도 같은 형태라고 평하고 싶군."
앉은 순서대로 헨티와 킴, 검은 피부의 남자, 위가 각자의 그릇에 담긴 전골요리에 대한 감상평을 피력했다.
모두의(위를 제외한) 감상과 같이 의외로 오늘 아침은 제대로 된, 아니 맛있어 보이는 전골 요리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냄비 중앙에 자리잡은 고기의 육질은 질기지도 무르지도 않게 적당히 익혀진 상태였으며
얼큰해 보이는 붉은 국물 위로 각종야채와 두부, 조개류의 해산물이 다양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냄비 가장자리를 빙 두르며 장식되어 있는 숙성된 햄과 버섯은 탱글한 식감을 뽐내며 아침햇살 아래 반지르르 빛났다.
그리고 코끝을 자극하는 알싸하면서도 칼칼한 냄새.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꼬마, 요란의 숟가락이었다.
"잘먹겠습니다!!!!"
한치의 주저 없이 국물표면을 가르며 전골의 중앙부를 노리는 요란의 숟가락.
"꺄아아악!!"
전골은......
전골은 비명을 질렀다.
그렇다. 전골이 비명을 질렀다.
전골이......
"뭐, 뭐에요, 이거!"
제복 소년은 놀라 일어났고,
"쯔쯧, 아깝군. 실전용으로는 무리겠어요, 포시."
의미를 알 수 없는 위의 반응과,
“에, 생각해보이께네 오늘부터 다이어트할라는게 올 초 목표였던거 같기도 하다.
그래가 오늘 아침은 안묵으도 될 거 같은데....... 포시, 그래도 되제? 하하하”
급작스런 헨티의 다이어트 선언이 뒤를 이었다.
"혹시 아까 주방에서 폭발 터질때 즘, 포시가 소리친거 아니었어? '꺄악' 하고 말야."
잠자코 서있던 스즈가 포시에게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포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아니, 난 비명같은거 낸적 없는데."
푹
"꺄악!"
"아하하하"
푸욱
꺄아아아아!!"
"아하하하하하"
수도 '리우 에쏘리타'의 '사디니' 지구 '반발티에 제 6로 13번길', 다세대 숙박업소 ‘마녀의 침대’의 아침은
그렇게 전골양(?)의 비명과 요란의 웃음소리로 시작하고 있었다.
- Episode3. 청아한 그 목소리는 누구? End -
♧ 후문
"헤에..."
요란은 입을 벌리고 눈 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병사는 능히 혼자 셋을 상대할 만큼 강해지는 법."
요란의 등 뒤에서 위는 말했다. 그 역시 요란과 같은 광경을 보고 있었다.
검은 피부의 거대한 몸집을 가진 사내, 호세가 전투적으로 전골양을 흡입하는 모습을......
"우오, 마,맛 있 쓰,씁니다."
감탄사와 함께 호세의 입에서 하얀 김과 극찬이 동시에 튀어 나왔다.
"위,저거 맛이 쓴가봐. 맛 없나봐."
흔들리는 눈빛으로 요란이 위를 올려다 보았다.
"죽음을 각오한 병사에게 맛은 불필요한 감각일 뿐일테지."
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습니다’라고요. ‘맛이 있습니다!' 어떻게 저게 맛있을 수 있는 거지?’
요란과 위의 뒤편 스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울컥함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세 명의 외국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들 사이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하는 마음은 티끌만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