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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갈 영지의 젊은 영주 에브리 피에브가 남자의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 남자는 자고 있었다. 젊은 영주는 남자의 나태함에 반사적으로 호통을 치려고 했으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호통을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남자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에브리는 한 영지의 영주였지만 어렸다. 그리고 여자였다. 처녀 영주에게 엄격함은 의무이자 생존전략이었고, 잔혹함은 필수이자 통치수단이었다. 엄격함과 잔혹함 둘 중 하나라도 결격되어있었다면 에브리는 영주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브리의 엄격함과 잔혹함도 예외가 있었다. 한 명은 에브리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다른 하나는 에브리의 친구이자 전속시종인 처녀. 나머지 하나는 윙갈 영지와 장기 계약을 맺은 호위 겸 장군인 용병이었다.
남자는 절반짜리 예외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는 장소라면 남자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남자와 단 둘뿐인 자리라면 남자도 예외가 되었다. 남자는 에브리에게……아니, 윙갈 영지에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잠이 든 남자는 에브리가 바로 옆에 서있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에브리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해도 남자는 깨어나지 않았다. 에브리가 흔들면 깨어날 것이다. 깨어나서는 옆에 서 있는 영주를 보고 화들짝 놀랄 것이다. 에브리는 그런 남자에게 불호령을 내릴 것이고 그러면 남자는 쩔쩔맬 것이다.
하지만 에브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에브리는 조용히 남자의 집무실을 나섰다. 에브리는 가문의 상징인 버들나무가 수놓아진 망토를 가져다가 남자를 덮어줄 생각이었다. 나중에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자신이 덮고 있는 버들나무 망토를 보고 공포에 떨며 언제 에브리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참지 못하고 에브리를 찾아와 벌을 내려달라고 간청하러 올 것이다.
에브리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로 태어난다면 알면서도 홀릴 수밖에 없는, 하지만 지금까지 어떠한 남자도 보지 못한 그런 웃음이었다.
윙갈 영지의 영주 에브리 피에브의 친구이자 전속시종인 파하셰르 그란지가 남자의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 남자는 자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을 본 파하셰르는 한숨을 내쉬곤 남자에게 다가가서 남자를 깨우려고 하였으나 직전에 그만두었다. 남자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하셰르는 남자가 영주의 가신이 되기 전의 윙갈 영지가 어땠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처녀 영주가 영지의 새로운 주인이 되자 그 이전의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가신들의 절반은 은퇴를 하거나 새로운 주인을 찾기 위해 영주의 곁을 떠났다. 그나마 남아있던 절반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선대 영주에 대한 의리 때문이거나, 새로운 영주에 대한 동정심 혹은 돈이 엮인 계약 때문이었다. 충심으로 남아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었다. 파하셰르조차도 영주에 대한 충심이 아닌 친구에 대한 우정 때문에 에브리 곁에 있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만성적인 인재부족에 시달리던 윙갈 영지는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고 영지에 문제가 생겨 위태로워지자 그나마 남아있던 신하들도 영지를 떠나 문제가 더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남자가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도저히 손댈 수 없을 문제들은 하나둘 수습되었고, 나날이 줄어들던 영지의 재정은 간신히 흑자로 돌아섰다.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했던 인재들도 나타나 영지의 부족한 부분을 메꿨다.
이 모든 게 한 남자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힘을 쓴 덕분이었다.
그 남자가 지금 파하셰르의 앞에서 피로를 못 이겨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잠들기 직전까지 보고 있었을 서류가 남자의 머리맡에 흩어져 있었다.
파하셰르는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다가가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과로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수척한 얼굴이었다. 남자의 몸에는 사나흘 정도의 휴식으로는 전부 가시지 않을 정도로 피로가 쌓여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부로 쉴 수도 없을 것이다. 산적해있는 문제도 문제지만 남자 스스로 쉬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지금 파하셰르의 앞에서 자고 있는 남자는 그런 남자였다.
파하셰르는 조용히 남자의 집무실을 나섰다. 파하셰르는 자신이 아끼는 눈담비 망토를 가져다가 남자를 덮어줄 생각이었다. 나중에 누군가가 남자의 집무실에 들어서더라도 남자가 덮고 있는 눈담비 망토를 보면 남자를 깨우지 못할 것이다. 파하셰르가 남자를 깨우지 말라는 의도로 눈담비 망토를 덮어준 것임을 짐작하고는 그냥 떠날 것이다.
파하셰르는 자애로움이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친구이자 영주인 에브리의 어리광을 들어줄 때에만 짓는, 그래서 지금까지 어떠한 남자도 보지 못한 그런 웃음이었다.
윙갈 영지와 장기 계약을 맺은 용병 아즈문드 크레이시가 남자의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 남자는 자고 있었다. 아즈문드는 충동적으로 남자의 몸을 유혹하듯이 쓰다듬으며 남자를 깨우려고 했지만 이성이 그 만행을 말렸다. 그랬다간 남자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의 안위를 돌볼 줄 몰랐다. 이 겁을 상실한 남자는 맨 처음 만났을 때에도 목에 창날이 겨누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유용함을 어필하며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봉신들의 횡령의 증거를 찾기 위해 영지 곳곳을 들쑤셔 봉신들이 보낸 병사와 암살자들에게 목숨이 달아날 뻔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영지에 있는 은자를 등용하기 위해 괴물들의 서식지를 지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즈문드는 남자를 볼 때면 물가에 내놓은 아기를 보는 것처럼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즈문드가 몸조심하라고 경고를 해주어도 남자는 감사의 인사만 할 뿐 아즈문드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지를 찾아다니는 짓을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아즈문드는 남자의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었다. 술친구가 필요하다면서 거의 매일 남자를 찾아갔고, 남자가 위험한 곳을 향할 때마다 아즈문드는 남자의 목적지 근처에 용무가 생기곤 했다. 아즈문드가 별별 핑계를 대며 남자를 훈련시킨 것도 그 일환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아즈문드가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남자가 야근을 하고 과로를 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아즈문드는 조용히 남자의 집무실을 나섰다. 아즈문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망토 중에 그나마 깨끗한 망토를 가져다가 남자를 덮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즈문드는 사냥을 갈 것이다. 몸보신에 좋은 동물이나 괴물을 잡아다가 요리한 후에 그녀가 숨겨놓았던 귀한 약술과 함께 남자와 술자리를 가질 것이다.
아즈문드는 뿌듯함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었다. 이기주의자에 가까울 정도로 개인주의자인 그녀가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서 짓는, 그래서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었던 그런 웃음이었다.
윙갈 영지의 영주 에브리 피에브의 여동생 나나쉬 피에브가 남자의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 남자는 자고 있었다. 나나쉬는 평소 하던 것처럼 남자에게 몸을 날려서 남자를 깨우려고 했다가 그만두었다. 과거에 비슷한 짓을 했다가 혼이 났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나나쉬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나나쉬의 엄마는 나나쉬를 낳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나쉬는 아빠를 무서워했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게 만든 딸에게 애정을 줄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나쉬는 언니를 좋아했다. 하지만 언니는 아빠가 땅에 묻힌 후로 나나쉬가 싫어하는 일들(공부 같은 거 말이다.)을 강요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나쉬는 언니를 피해 다녔다. 언니의 친구인 파셰는 거의 항상 언니 곁에 있었고, 애즈는 노골적으로 나나쉬를 귀찮아했다. 그리고 언니의 부하들은 재미가 없었다. 그들에게 장난을 치면 언니에게 혼이 났다.
하지만 남자는 아니었다. 언니처럼 나나쉬가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 않았고, 파셰처럼 항상 언니의 곁에 있지도 않았다. 애즈처럼 나나쉬를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나나쉬가 찾아오면 나나쉬를 반겨주었고 나나쉬의 장난을 전부 받아주었다. 남자는 언제나 바빠서 나나쉬와 놀아주는 시간은 많지는 않았지만 나나쉬는 남자의 곁에만 있어도 즐거웠다.
나나쉬는 언니만큼이나 자라면 남자와 결혼을 할 것이다. 그때는 언니가 말려도 나나쉬도 언니만큼이나 자랐기에 언니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나나쉬는 조용히 남자의 집무실을 나섰다. 나나쉬는 자신의 담요를 가져다가 남자를 덮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무릎에 엎드려서 나나쉬도 남자와 함께 낮잠을 잘 것이다. 나중에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면 남자는 나나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나나쉬와 놀아 줄 것이다.
나나쉬는 기대로 충만한 웃음을 지었다. 남자가 영주의 가신이 되기 전에는 거의 짓지 않았던, 하지만 남자가 영주의 가신이 된 후로 자주 볼 수 있게 된 그런 웃음이었다.
윙갈 영지의 영주 에브리 피에브는 가문의 문양이 수놓아진 망토를 가지러 가던 중에 영주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를 들고 영주를 찾던 문관을 만나서 그것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윙갈 영지의 영주 에브리 피에브의 친구이자 전속시종인 파하셰르 그란지는 눈담비 망토를 가지고 남자의 집무실로 돌아오던 중에 신입하녀가 어설프게 청소를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지도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윙갈 영지와 장기 계약을 맺은 용병 아즈문드 크레이시는 자신의 망토들 중에서 그나마 깨끗한 것을 찾았지만 평소 빨래를 게을리 한 덕분에 냄새나고 더러운 망토밖에 없자 다른 사람의 망토를 몰래 훔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윙갈 영지의 영주 에브리 피에브의 여동생 나나쉬 피에브는 아직 어렸고 마지막에 남자의 집무실을 떠났기에 중간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집무실로 돌아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우연들이 겹쳤기에 네 사람은 남자의 집무실에서 각자의 짐을 든 채로 마주치고 말았다.
남자의 집무실에서 마주친 네 사람은 각자가 들고 있는 짐을 보고 다른 사람들 모두 자신과 동일한 일을 하기 위해서 남자의 집무실을 방문하려는 것임을 알아챘다. 네 사람은 서로를 살피기만 할 뿐 어떠한 행동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에브리는 자신의 행동이 남자를 편애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해서였고, 파하셰르는 구태여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고, 아즈문드는 자신이 들고 있는 망토가 장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나쉬는 다른 세 사람의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그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었다.
네 명의 여자가 망토나 담요를 들고 대치하는 상황은 전후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의 눈에 충분히 이상해 보일 것이다.
“제 집무실 앞에서 뭣들 하시는 겁니까?”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선 남자는 문을 열자 보인 기묘한 대치상황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하지만 이 의문은 더 큰 의문에 덮여 사라지고 말았다.
남자는 세 명의 여자에게 갑자기 망토로 얻어맞은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나쉬는 언니들이 하는 행동이 재밌어보였으니까 따라서 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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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같은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는 걸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방식 연습용으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