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어릴 때는 이 속담에 그다지 마음이 울리지 않았다. 쌓아올린 공든탑이 부끄럽지 않다면 고개를 숙여선 안된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기만이며 노력에 대한 불신이다. 자신있게 고개를 들 수 없다면 어떻게 익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신념의 차원에서 정의를 수행한다고 생각할수록 발언은 선명하고 태도는 완강한 법이다.
오늘 기사를 읽는 중에 이 글귀가 가슴에 콱하고 박혔다. 부끄러워졌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볼때 어리고 미숙하다. 오늘의 나도 미래의 내가 볼때 그럴 것이다. 당장 내가 믿는 것이 절대적 정의는 아니다. 나는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설익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익었다 생각하고 조악한 솜씨를 뽐내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내가 그러했고 남들이 그러했다.
타인의 경험과 짊어진 무게를 모르고 자신에게만 몰두한 사람은 끝까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벼는 수많은 낱알들의 무게를 알기에 고개를 숙인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단호하게 구는 태도를 지양하게 되었다. 하루하루의 경험이 머리에 쌓일때마다 내 입은 닫쳐가고 손가락은 조심스럽게 변했다. 경험은 내가 점차 모자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고개가 무거워 들기가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