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신기하다고 무당은 언제나 생각했다. 천지신명이란 신을 믿는것들이 혼령들을 눈앞에서 보고도 불신하는것을 그녀는 너무 많이 봐왔다. 그녀는 어리다. 이제 겨우 20을 넘긴 어린 나이이지만 그 나이는 이번 생의 숫자일 뿐이다. 무당들은 자신들의 전생을 기억한다. 전부 다 기억할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몇번의 인생을 산것인지 정도는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징글징글한 윤회에 질려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이도 많지만 그럴수록 업만 더 커져 지독히도 괴로운 운명을 지닌채 환생할 뿐이었다. 그들은 무당의 업을 달고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한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최초의 삶을 살때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죄의 대가로 그녀는 지독히도 힘든 삶을 살아야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이번삶은 특히나 힘들게 느껴졌다. 이전 삶 전부 그녀는 사내로서 살아왔다. 사실 그녀가 특이한 경우다. 왠만해서 성별이 바뀌어서 환생하는건 흔한 일이었다. 아마 길가다 지나가는 아무 인간 붙잡아서 굿판 벌이고 점치면 참 다양한 삶을 볼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이전 삶 모두 사내로서 태어났다. 아마 그녀의 업은 남성이라는 성별과 관계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처음 계집으로 태어났을때 그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생리현상과 계집으로서의 행동거지가 힘들긴해도 자신의 업의 단서를 찾은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번 생의 무당으로서 삶을 받아들이고 다시 세상을 떠돌때 계집으로서 당해야했던 수많은 강간과 폭력을 피해야 할때마다 그 생각은 완전히 버려졌다.
"후우. 내게 뭔가 할말이 있나?"
담배를 피는 자신앞에 쭈뼛쭈뼛 다가온 계집아이에게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자신에게 호의가 있거나 호기심이 생겨 흥미를 가지고 온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 계집아이는 잔득 겁을 집어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아주 나쁜년이란다. 귀찮은걸 싫어하지. 계속 얼쩡거리면 삼신할매를 불러서 널 잡아먹으라고 시킬거란다."
자신이 그렇게 명령해도 그 노친내가 그럴리 없다는걸 그녀는 알고 말한것이다. 아까전 자신을 아기달래듯 괴성을 질렀던 그 귀신말이다. 그래보여도 어린아이라면 죽고 못사는 혼령이다. 명색이 신으로 추앙받는 혼령이다. 이 혼령과 계약을 가장처음으로 계약을 맺어서 그동안 그녀의 삶이 피곤하고 귀찮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자비를 종용하는 그 노인내는 항상 자신의 삶을 귀찮게 만들었다. 지금 이순간도 농담으로 던진말에 화가 난것인지 그녀의 머릿속에 설교를 내지르고 있었다.
"내가.......내가 봤어요. 그 괴물!"
계집아이의 괴물을 목격했다는 말에 삼신할매의 설교가 중단된것을 느꼈다. 삼신할매가 자신의 삶을 피곤하게 할 지언정 누구보다 자신을 아끼는 존재였다. 그 노인내는 누구보다 자신과 계약을 끝내기를 원하는 혼령이기도 했다. 혼령인 주제에, 신인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게 무당의 업을 짊어지고 계속 윤회하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존재가 그녀였다. 그녀가 자신에게 자비를 종용하는 이유도 단지 성품때문만은 아니었다. 죄를 지을수록 자신의 업이 커지는걸 알기 때문이리라.
"오밤중에 그 끔찍한것을 보고 살아남았다고?"
계집아이의 제보는 도저히 신빙성이 없었다. 그슨대가 어떤 요괴인가? 너무 교활해서 신선들조차 속여 먹은적이 있다고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워낙에 철두철미해서 흔적을 잘 남기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이번만 하더라도 시체가 조금이라도 더 조각났으면 어떤 요괴인지 가늠조차 못했을것이다. 하물며 이런 어린 계집아이를 그 교활한 놈이 놓쳤다는건 어불성설이었다.
"아무래도 널 솥단지에 넣고 끓여야 내눈앞에서 꺼지려는 모양이구나."
그녀는 손을 휘저으며 계집아이에게 물러가라고 경고했다. 어차피 그녀는 그슨대가 자신에게 나타날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피는 담배가 있으니 말이다. 그 교활한 요괴는 사람의 관심과 두려움을 먹고 성장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웃기는 녀석이기도 했다. 그놈들은 주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하여 도움을 구걸하는 방식으로 먹잇감을 유혹한다. 먹잇감이 그 유혹에 넘어가 도움의 손길을 내비칠때 본모습을 보이며 천천히 그들이 두려움으로 발악떠는걸 지켜보며 양분을 얻고 끝에는 잔인하게 먹어치운다. 그녀가 피우고있는 담배는 그런 그슨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담배잎의 연기는 요괴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요괴들은 담배연기에 환장했다. 신체의 장기를 병들게하고 중독성으로 인간들을 무력하게 하는 괴들에게 있어 자연에서 나는 최고의 향신료였다. 자신의 그슨대를 퇴치하기위한 바람과 담배연기만 있으면 충분히 그슨대가 꼬일것이 분명했다.
"그 끔찍한것은 아주 잔인했어요! 박봉이 아저씨는 비명지를 틈도없이 썰려 나갔죠!"
"거짓말 하지 말거라. 그 교활한놈은 사냥감이 최대한 공포를 느끼도록 감상하다 천천히 잡아먹지. 절대로 순식간에 죽이지 않는단다."
"하지만 그랬는걸요! 그것은 저를 보자마자 다급히 어린애 모습으로 변했어요! 저한태 욕지거리를 내뱉었어요! 이 육시랄것! 잡아먹지도 못하고 먹힐 모지란것! 이라고요."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집아이는 자신의 목격담을 주장하며 요괴를 잡기위해선 자신이 필요하다고 억지를 부렸다.
"니가 없어도 그 요괴는 나를 잡아먹으려 올것이야. 오히려 넌 내가 퇴마를 못하게 발목이나 잡겠지."
"하지만 저를 보고도 살려줬잔아요! 그 요괴가 저에게 어떤 주술을 걸었으면 어떻게요?"
이제 햇빛은 거의 사라졌다. 그녀치고는 정말 오래 참은것이다. 억지로라도 계집아이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판단한 그녀는 품안에서 방울을 꺼내 흔들었다. 은은히 빛나는 작은 구체가 몸안에서 나왔다. 이 혼령은 계집아이의 얼굴을 몇번 이리저리 날라다니더니 그녀의 눈은 멍해지더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일이 끝날때까지 그 꼬맹이 돌려보내."
혼령은 알았다는듯 위아래로 흔들거리고는 그녀와 함께 골목길로 들어가 사라졌다. 담배는 충분히 많이 폈다고 판단하고 그녀는 안에 들어잇는 타버린 담배재를 털어냈다. 보따리에 아직 뜨끈한 곰방대를 넣고 슬슬 그슨대를 맞이하기위해 허리춤에 칼을 뺴집어 들었다. 품안의 방울또한 쥐었다. 방울을 한번 휘둘렀다. 자신과 계약한 혼령들이 도꺠비불처럼 몸안에서 튀어 나왔다. 방울을 한번 더 휘둘렀다. 특유의 불쾌한 소리와 함께 혼령들이 재빨리 일사분란하게 주변을 탐색했다. 가까이 있어! 혼령들이 그녀에게 위험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적막한 어둠속에서 침묵을 깨고 소리쳤다.
"모습을 드러내라, 추잡한것아!"
까득까득
이빨을 가는듯한 소리였다. 버드나무 뒤에서 들려오던 소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그곳에는 어린소년이 지그시 미소 짓고 있었다. 아아. 이 그슨대는 정말 오래 산 놈이구나. 누구라도 보호본능을 일으킬 귀여운 외모였다. 오랜세월동안 이 귀여운 외모의 인형의 울음소리에 속아서 죽은 사람들이 몇일까? 그런생각을 하며 그녀는 그것에게 칼을 겨누었다.
"귀엽긴하지만 난 그쪽 취향은 아니거든?"
"카아악!"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커먼 무언가가 이빨을 들이밀었다. 신속하게 발을 놀려 뒤로 움직였다. 재빨리 손에 든 방울을 울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뒤집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호오......... 왕건이네, 왕건. 맛있어 보여."
소년의 모습을 한 그슨대가 하는 말이었다. 빙의된 무당은 마치 목각인형처럼 관절이 부러질듯 이리저리 삐걱인채 칼을 든 손을 위로 향했다. 사람들이 봤다면 기겁할 장면이었으리라. 그녀또한 그슨대 못지않게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왕건? 내가? 키키키! 먹잇감에게 그런소리를 듣다니 참 오래 살고 볼일이군! 아! 난 죽었지!"
삼신할매보다 더욱더 낮은음의 목소리였다. 저주받은 망나니귀신은 지금부터 눈앞의 소년의 모습을 한 그슨대의 모가지를 자를 생각에 흥분해 있었다. 삐걱이는 움직임은 마치 강시들이 먹잇감을 물어뜯으려는듯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칼이 미약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칼 자체가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녕,; 원기가 손을통해 칼을 감싸쥐고 있었다. 사람이 아닌것을 베기위한 준비였다.
"키헤헤헤! 모가지를 베어주마!"
순식간에 하늘로 향해있던 칼이 그슨대의 머리로 내려쳐졌다. 제대로 맞았다. 감촉을 느낀 무당과 망나니귀신은 곧바로 재빨리 난도질을 시작했다. 머리가 반토막난 그슨대는 변신을 풀고 그림자인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흉축한 이빨을 가진 여러개의 아가리를 벌리며 무당을 위혐했다. 크고작은 아가리들이 그녀를 물어뜯기위해 공격했다. 무당은 그 기괴한 움직임으로 한끗차이로 피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공격해오는 그림자를 베어 넘겼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슨대의 몸집은 더욱 커져갔다.
"크흐흐흐. 계속해봐. 아무런 소용없으니."
그슨대의 비웃음섞인 소리와함께 조금씩 그녀의 움직임은 간파당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스치지만 맞기 시작했고 생체기가 나기 시작했다. 허나 무당과 망나니귀신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망나니 귀신은 피를보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것봐봐, 설아! 피가흐른다고!"
피를보고 흥분한 망나니귀신이 무당의 이름을 부르며 광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그녀의 피가 사방팔방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빙의로 초인적인 힘을 내는 무당도 슬슬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반면에 그슨대는 공격을 받을수록 더욱 몸집이 커져갔다. 마치 그녀의 원기를 흡수하는듯이 그 몸집을 불려나가 더욱더 많은 아가리를 만들어앴다.
"최고의 먹잇감이군! 니 영혼도 내가 먹어치워주마! 그 저주받은 윤회의 삶도 이제 끝내주지!"
그슨대는 승리를 예감하며 그녀를 완전히 먹어치우기위해 모든 아가리를 벌려 그녀에게 향했다. 빙의해있던 망나니귀신은 그순간을 보고 조롱섞인 웃음을 지르며 무당과의 빙의를 풀어버렸다. 코앞까지 다가온 아가리가 그녀를 도륙하고 잡아먹기 바로 몇초전에 그녀는 재빨리 방울을 흔들었다. 짤랑거리는 우림과 함께 그슨대는 그 마지막 일격을 멈췄다. 주변에 흩어져 놓았던 혼령들이 무당과 그슨대주변을 중심으로 원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주변은 충분히 피로 흩뿌려져있었고 그 피들은 그저 무당이 못피해서 흘린것이 아니었다. 흩어진 피들이 조금씩 흘렀다. 이미 땅의 양분으로 흡수 되었어야할 피들은 흡수되지 않은채 맹령한 속도로 서로 이어져 한줄기기 거대한 동아줄이 되어 그슨대를 속박했다. 그렇지만 그슨대는 속박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승기가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너의 힘이 다 빠지면 이것도 무용지물이야."
그녀의 힘이 곧 다 빠지면 이 피의 동아줄도 자신을 어쩌지 못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그런 그슨대를 비웃었다.
"하찮은 그림자 덩어리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정말 지금까지 퇴치가 안되고 살아있는게 용할 정도야."
"뭐?"
무당의 비웃음에 불길함을 감지한 그슨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리는것이 느껴졌다. 그런 그슨대가 가소로운지 무당은 친절히 앞으로 일어날 사태를 설명해줬다.
"인간이 어떻게 처음으로 신의 존재와 조우했을까? 어떻게 원기를 다루고 도술을 익혔을까? 어떻게 나같은 무당들은 눈에 보이지않는 혼령들과 계약을 맺었을까? 모두 피를 통해서야."
무당은 칼을 허리춤의 칼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손에쥐고있던 방울만을 쥔채 설명을 이어나갔다.
"피는 모든생물의 원기를 담고잇지. 원기 그 자체이지.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할 행동은?"
그슨대는 자신의 몸을 감싼 피의 동아줄을 다시한번 살펴보았다. 움직임을 막기위한 속박이 아닌 자신의 대부분을 감싼 커다란 속박이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약점을 진즉에 알고 잇었던거라고 생각하자마자 그것은 비명을 질렀다.
"네년, 설마! 안돼!"
그슨대의 절규와 함께 그녀는 방울을 흔들었다. 한번이 아닌 여러번 발을 동동 굴러가며 춤을 추듯 그녀는 방울을 흔들었다. 속박하던 피가 서서히 그 성질이 바뀌어갔다. 폭탄의 도화선에 불이 붙듯 핏줄기를 따라 불의 동아줄로 바뀌어갔다.
"캬하하악! 이 시발년!"
그슨대의 그 커다란 몸집이 거짓말같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림자덩어리들이 양초 녹듯이 흘러내리더니 사라져갔다. 그녀의 방울소리가 멈췄을때 그녀의 눈앞에는 사람들을 속이며 먹이치우는 교활한 요괴 대신에 커다란 굼뱅이같은 거무튀튀한 덩어리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크으......살려줘......."
아까전까지의 기세는 사라지고 그저 죽기 두려워하는 짐승이 있을뿐이었다. 피를 많이 흘린탓에 무당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슨대가 도망치기전에 마무리를 지어야했다. 아직 불로 변하지않고 남은 피로 그슨대를 도망치지 못하게 속박했다. 그러고는 보따리에서 날이 시퍼헉게 선 작두를 꺼냈다. 그슨대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싫어! 죽기 싫어! 다시 그림자속으로 들어가고 싶지않아!"
무당은 작두에 자신의 얼마 안남은 원기를 흘러 보냈다. 방금전까지 평범했던 작두의 날에 글씨가 빛나기 시작했다. 고대 요정들의 언어로 쓰여있는 문자들은 부정한것을 멸한다는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무당은 작두의 손잡이를 잡고 올렸다. 곧 죽을 그슨대의 눈에는 마치 짐승이 아가리를 벌리는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곧 반토막 나 흔적없이 사라질것에 공포를 느끼며 그슨대는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안돼, 안돼, 안돼! 시발!"
"다음생에는 살아있는것으로 태어나거라."
콰직!
작두가 정확히 그슨대를 둘로 쪼갰다. 그 검은것은 마치 챗가루가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는것 마냥 사라져갔다. 무당은 그슨대가 완전히 사라지는것을 확인하고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버드나무에 기대 앉았다. 퇴마의뢰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