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뭐야....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글라스는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짱구를 굴렸으나 역시나 공수레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단어처럼 아무것도 없는 머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닌데, 그거 아닌데, 공수레공수거 그런 뜻 아닌데.”
“그...글라스 씨?”
기분이 나빠진 글라스가 트위치 도네 톤으로 나레이션에 태클을 걸자 아인즈-모몬가-가 난감한 듯이 글라스에게 말을 물어왔다.
해골, 그것도 대마왕[大魔王]네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의 무서운 해골이 자신을 품에 안은 글라스를 노려보자 글라스는 깜짝 놀라며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내려왔다.
“우왓.”
“저......저기! 죄...죄송합니다!!”
“아니 그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런데 진짜 아인즈.....아니 모몬가 맞지.”
“예! 저 모몬가 맞아요 글라스 씨! 기억 하시는군요!”
“엑.”
순간 경직되었던 글라스의 머리에 한줄기 빛과 함께 ‘파~칭!’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전개는 오버로드의 팬이었던 글라스가 당연히 알고 있는 전개이다. ‘좋아라’에서 많이 봤던 패턴. 익숙한 분위기, 익숙한 가슴 속의 두근거림!
몇 번이고 꿈꾸었던 그것은
바로 이세계[異世界]전이!
그것도 ‘아인즈 울 고운[Ainz Ooal Gown]’의 멤버 전원과 함께!!
지금 눈앞의 아인즈-모몬가-가 자신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분명 자신이 서버가 종료되기 전 사용한 ‘나자릭 지하대분묘 취직권.’의 영향이 분명할 것이다. 가장 먼저 아인즈에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기입했으니까.
끼요오오오오옷~!!! 너무 신난다!!!! 어, 근데…….
‘그것보다 이상하네.....이렇게 흥분된 상태인데 나 방금 왜 그렇게…….’
“글라스 씨!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깜짝 놀랐잖아요!”
“아, 미안해.”
역시나!! 이렇게 무뚝뚝하게 말하다니!
오버로드 팬픽의 약속된 전개로써 글라스는 ‘인조인간[人造人間]’이라는 자신의 종족 특성에 따라 외부로 표출되는 감정이 극히 제한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무심하게 말하면 어떻게 해!!! 진심으로 미안한 표현을 해야 하는데-!!!!’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던 바람도 이런 말투로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그저 ‘시즈 귀여워요 시즈’라며 초기 종족을 ‘오토마톤[Automaton]’으로 시작했던 자신을 저주할 수밖에.
글라스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그런 글라스의 속마음을 모르는 채 아인즈가 계속 반가운 기색으로 말을 걸었다.
“아무튼 이렇게 와주셔서 다행이에요. 방금 전까지 ‘헤롱헤롱’님까지 있으셨는데.”
“응. 좀 더 일찍 올걸 그랬어.”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된 일일까요? 로그아웃도 GM콜도 먹히질 않아요. 서버 종료 직전에 무슨 문제라도 발생한 걸까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모몬가 님. 무슨 일 이시옵니까?”
당황하고 있는 두 사람의 옆에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인외[人外]의 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모몬가에게 다가갔다. 해골이라 표정이 없는 모몬가였으나, 원작으로 인해 현재 모몬가의 마음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글라스는 웃음을 참-을 필요도 없었으나-았다.
“......GM콜이 먹히질 않아서 말이다.”
알베도를 보며 긴장했던 모몬가가 생각을 정리 한 후 답변을 하자 알베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슬픈 표정으로 모몬가에게 답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무지몽매[無知蒙昧]한 몸인지라 모몬가 님께서 물으신 GM콜이라는 것에 대답해 드릴 수 없나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저에게 이 추태를 불식할 기회를 내려주소서.”
‘역시나 모몬가에 대한 충성심이 어마어마하구나 알베도. 저런 점만 보면 수호자 총관리자로써의 품격이 확실하게 느껴지는데…….’
글라스는 마음속으로 알베도가 모몬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감탄했다.
그러나 물론, 글라스는 알베도의 속내를 알고 있다.
히도인-! 지독한 히도인-!!!
아인즈만 연관되면 여러모로 저 완벽한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히도인력[力]을 지닌 알베도를 글라스는 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정말로 저 이상으로만 나가지 않아주면 좋을 텐데 말이지…….그럼 아인즈라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그 순간 글라스와 알베도의 눈이 마주쳤다. 글라스는 긴장했으나, 알베도는 이내 편안한 얼굴로 글라스에게 질문했다.
“글라스 님, 글라스 님이 맞으십니까?”
“응 맞아. 안녕.”
그리고 종족 특성이 발동되며 글라스가 무심한 말투로 알베도에게 대답했다.
글라스의 캐릭터는 알베도보다도 키가 더 큰 신장을 자랑했기에, 방금의 짧은 대답과 이런 요소들을 합치면 글라스가 알베도를 내려다보며 귀찮다는 듯 인사한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 또 저질러버렸다!!!!이거 어떻게 않되는 거여?!’
분명 알베도가 화를 내리라 생각한 글라스였으나, 이내 침착을 찾았다. 종족 특성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 알베도에게 기록한 ‘지고의 41인 중 한명’이라는 정보를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분명 그렇게 기록한 이상 분명 자신에게 험한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글라스는 가질 수 있었다.
괜찮다며 자신을 다독이는 글라스의 내면과 달리 글라스의 외면에서 바라보는 눈은 무표정인 채 그대로여서 언뜻 보기에는 알베도와 눈싸움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짧은 정적. 그리고 알베도가 입을 여는-
그 순간 모몬가에게서 전언[Message]이 날아왔다.
‘글라스 씨! 아시겠나요?! 저희와 의사소통이 되고 있어요! 입까지 움직이고 있다고요!’
‘응 보여, 일단 아인....모몬가. 진정하고 먼저 해야 할 일이 뭔지 생각해봐.’
“글라스 님?”
“미안 알베도. 모몬가가 할 일이 있다는데.”
전언을 듣고있다는 제스쳐를 취한 글라스가 방금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을 내심 모몬가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말하는 동안 글라스의 충고를 받아들인 모몬가는 원작과 똑같이 생각을 정리하여 세바스에게 플레이아데스의 한명을 데리고 가서 바깥의 정찰을 하라며 명령한 뒤, 남은 플레이아데스를 9계층으로 보내 8계층에서의 침입자를 막도록 명령했다. -시즈가 귀여웠다- 잠시 후 모몬가는 다시 글라스에게 전언을 날렸다.
‘일단은 저희가 있는 곳이 위그드라실 안인지 확인해보죠! 전뇌법으로 금지된 행동을 취한다면 강제 로그아웃이 될 지도 몰라요!’
‘어떻게 할 셈인데.’
‘저.....그, 그것이 NPC에게 조금 나쁜 짓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나왔다....! 가장 응큼한 이벤트 나왔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원작대로 시켜볼까? 아니면 더 찐~하게.....흐흐흐…….
글라스가 생각을 하던 중 글라스가 무언가를 시키기도 전에 모몬가가 알베도를 불렀다.
“알베도, 이리로 오라.”
“예~ 모몬가 님~!”
기쁜 듯 알베도는 다소곳한 몸짓으로 모몬가의 앞에 섰다.
“.......알베도.”
모몬가가 자신이 말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꿀꺽.
글라스는 그 광경을 긴장되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종족 특성상 둘을 지켜보는 눈초리는 그저 무표정이었으나, 내면의 자신은 자신이 소설과 만화, 애니메이션에서만 보던 장면을 직접 보게 되는 것에 정말로 큰 감동…….
“배를 만지게 해다오.”
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배!? 왜!!?!?!? 어째서 배?!?!?!
역시나 원작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글라스는 이번에 깨닫고 말았다.
‘그렇지, 모몬가는 부끄럼쟁이니까, 확실하게 확인 하는 건 배 일수도 있겠지, 응 그래. 아, 혹시 내가 있어서 그런 건가?’
아무튼 간에
글라스는 기대가 깨진 충격으로 트위치 도네 톤으로 헛소리를 내뱉었다.
“아닌데, 그거 아닌데. 거기 아닌데.”
“글라스 님?”
“글라스 씨?”
의아해 하는 두 사람에게 글라스는 이 순간 만큼은 외면과 내면이 일체되어 허물없이 담백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뱉었다.
“여기선 배 아니고. 가슴인데.”
“그...글라스 씨! 무슨 소리를 하시는...!!!!”
글라스의 말을 듣고 모몬가는 매우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려했으나-
“......!!!!!”
글라스가 고장난 기계처럼 무감정한 톤으로 한 말을 알베도는 결코 놓치지 않았고, 이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알베도가 모몬가의 손을 덥석 붙잡고 욕망이 번들거리는 눈을 모몬가에게 겨누었다.
“후후후후....글라스 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자자자자, 잠깐! 알베도! 멈ㅊ....”
“우효. 그래 그거야 그거. 내가 그걸 원했다고. 야호.”
알베도의 거침없는 어필에 글라스의 깨진 유리 같은 마음이 다시금 살아나며 무미건조한 말투와 표정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모모모모모모, 모몬가 님. 글라스 님이 저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부디...!하악!”
“우왓, 힘이.....!”
이내 물컹. 하는 소리와 함께 모몬가의 손이 알베도의 가슴에 닿았다.
누구도 시간 정지 마법을 걸지 않은 채 옥좌의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이얏호오오오오오오. 사이코다제에에에에에에.”
내뱉는 것은 차분한 일정한 톤의 목소리였으나 마음속에선 누구보다도 큰 환호성을 지르는 글라스와
“하으으으으으으음~~~~!”
만져졌다는 기쁨에 미쳐 날뛰는 알베도와
“그.....그만, 그만해라 알베도오오-!!!!”
동료가 만든 NPC에게 손을 댄 것에 절규하는 모몬가의 소리가 옥좌에 크게 울려 퍼졌다.
원작보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모몬가는 간신히 알베도를 떼어낼 수 있었다. 언데드 특유의 정신강제안정이 발동된 모몬가는 모든 계층의 수호자를 6계층의 암피테아트룸으로 모이도록 지시했다. 알베도는 떠나기 전 아쉽다는 표정과 동시에 글라스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척 하며 올렸고, 글라스도 마찬가지로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마주 올렸다.
알베도가 사라지고 모몬가가 글라스에게 불평을 말했다.
“글라스 씨!!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타블라 님....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몬가가 연신 허공으로 고개를 숙이자 글라스는 그런 모몬가를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그렇지.”
“이상한 행동은 글라스 씨가 했거든요?!”
“기분은 좋았잖아.”
“앗 그, 그건…….”
글라스는 불평을 말하는 모몬가를 상대로 당당하게 ‘좋았으면서’를 시전 했고, 만년 총각인 스즈키 사토루로써 살았던 모몬가는 그대로 침묵하고 말았다.
“아무튼 이걸로 정리된 것 같네.”
“예. 다음은 전투력의 점검이에요.”
“그럼 가볼까.....아차, 나 오랜만이라 ‘링 오브 아인즈 울 고운’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적당하게 말을 지어낸 글라스는 속으로 ‘캇토빙다제 오레-!’를 외치며 자신의 순발력을 칭찬했다.
“그런가요. 그럼....제, 제 손을 잡으세요.”
글라스를 생각하여 손을 내민 모몬가의 손을 글라스가 잡았다.
“고마워. 음, 아직 알베도의 감촉이....”
“저,전이!!”
두 사람은 6계층의 암피테아트룸으로 전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