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을 느껴 말했다.
“아아. 이것은 구운 고기라는 것이다. 생고기를 불에 구운 거지.”
하지만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날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나는 허무함과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지으며 꼬챙이에 끼운 고기를 뒤집었다.
약간 짬이 있으니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난 이세계에 왔다. 정신병자 취급받아도 할 말 없고, 나도 차라리 진짜로 정신병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진짜로 이세계에 온 것 같다.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 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빈틈없이 별로 가득 찬 밤하늘에는 커다란 푸른 달이 떠있었다. 그리고 달의 주위에는 달 보다 자그마한 위성 두 개가 돌고 있었다. 내가 살던 세계였으면 달이 저런 모습일 리가 없다. 그런데 저거 달이 맞기는 한가? 푸른색이 대부분이라 푸른 달이라곤 했지만 갈색과 흰색, 녹색이 같이 있는 것을 보면 대륙의 모양이 다를 뿐이지 사진으로 본 지구랑 비슷한데. ……이런.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다. 이런 생산성 떨어지는 고민은 나중에 하자. 여기가 이세계라는 것만 알리면 충분하니.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고기가 다 익은 것 같다. 나는 고기를 끼운 꼬챙이 하나를 잡고 고기를 물어뜯었다. 다 익었다. 야성미가 넘치는 맛이었다. ……누린내가 엄청 심했단 말이다. 소금도 없이 그냥 날고기를 구운 것이라 맛도 많이 심심했다. 과거에 왜 그렇게 향신료에 목숨을 걸었는지 알겠다.
하지만 나의 기준으로는 날고기를 그냥 먹는 것보다는 나았다. 고기가 다 익었으니 내 은인들에게 대접하자. 나는 모닥불 주위에 꽂아두었던 고기 끼운 꼬챙이들을 전부 뽑은 후에 은인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인공적인 조명은 내가 만든 불밖에 없었지만 달(?)과 별이 만들어낸 자연적인 조명은 내가 살던 세계보다 훨씬 밝아서 발을 헛디딜 위험이 없었다.
은인들의 거주지와 내가 불을 피운 곳과는 거리가 좀 있으니 걸어가는 동안 나와 은인들의 첫 만남에 대해 말해보겠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세계로 온 내가 어버버거리면서 주위를 돌아다닐 때. 내가 제일 처음으로 마주친 생명체는(식물이나 곤충을 제외하고 말이다.)내가 태어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짐승이었다. 그 짐승덕분에 나는 내가 이세계에 왔다는 것을 지각했다. 다리가 열 개 달렸으면서 크기는 곰만 하고 부리가 달린 고양잇과 동물(처럼 보이는)이 내가 원래 있던 세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이름 따위는 몰랐기에 이 생명체를 나는 ‘십발(힘주어 발음하자)이’라고 명명했다. ‘십발(다시 강조하지만 힘주어 발음하자.)이’가 내 은인이냐고? 아니. 그러면 이런 악의 넘치는 명명을 했을 리가 없지. 십발이와 나의 관계는 단순했다. 피식자와 예비포식자. 그렇다. 십발이는 나를 보자마자 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다. 어버버거리며 돌아다니던 나는 즉시 으아아 사람 살려라!거리며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럴 때에 마주 친 게 나의 은인들이다. 은인들은 십발이를 사냥하여 나를 구해주었다. 처음에는 은인들이 나까지 사냥감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하며 벌벌 떨었지만 다행히 은인들은 나를 신기해하며 호의적으로 대했다.
어느 정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은인들에게 보은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까 전이었다. 나는 내 몫으로 받은 십발이 고기를 요리하여 대접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보은을 하려고 했다.
고작 고기 굽는 게, 그것도 은인들에게 받은 고기를 구워서 돌려주는 게 무슨 보은이겠냐 싶겠지만 이건 전부 이유가 있다.
은인들의 거주지에 도착했다. 거주지의 입구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불침번이 있었다.
“저 왔어요.”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내 목소리로 나 임을 알렸다.
“저 왔어요.”
혹시 몰라서 다시. 그리고 나는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불침번에게 웃음으로 적의가 없다는 의사를 드러내며 천천히 은인들의 거주지인 동굴로 들어갔다.
불빛 하나 없는 동굴에는, 가죽과 마른 풀 그리고 나뭇가지로 된 잠자리 위에 앉거나 누운, 기껏해야 생식기와 가슴만 가죽으로 가린 은인들이 두려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돌로 만든 날붙이를 잡고 있었지만 그것을 휘두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세계. 그것도 원시단계의 이세계에 온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우주로 인간을 보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어쩌면 근 시일내에 불사의 기술을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의 인간인 내가 원시 단계의 이세계에 왔다!
얼마나 원시적이면 내가 불을 만들어내자 그 전까지는 나를 친근하게 대하던 은인들이 전부 나를 두려워하게 될 정도다. 인류문명의 시작을 불로 보는 시각에서 보자면 이들의 문명은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괜히 은인들의 거주지에서 떨어진 곳에 모닥불을 피운 것이 아니다. 잘하면……아니. 이들의 씨족이 문자를 만들어낼 때까지 존속한다면 먼 미래에 내가 주인공인 신화가 전해질 것이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는 존재에 대한 신화는 내가 있던 세계 어느 문명에서도 존재하지 않던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어휴. 어쨌든. 지금 당장은 공상에 빠져 있어봤자 무의미하다. 원래 하려던 것을 하자.
나는 동굴 가장 안쪽에 있는 은인에게 다가갔다. 그곳에는 다른 은인들보다 나이가 많고 체모가 하얗게 변한 여 은인이 있었다. 내가 은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관찰한 바 이 은인이 이 씨족의 지도자라고 판단했다. 지도자(가설)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지도자에게 내가 구운 고기를 건넸다. 지도자는 처음 보는 그것을 잠시 바라만 보고 있다가 주저하면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도자는 곧장 그것을 입으로 옮기지 않았다.
왜 그럴까? 아직 나를 못 믿어서 그런 건가? ……아! 구운 고기를 처음 봐서 그런 거구나.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나는 구운 고기 하나를 나무 꼬챙이에서 빼서 내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과장되게 그것을 씹은 후 꿀꺽 삼켰다.
“맛있어요. 먹어보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지도자는 나와 구운 고기를 번갈아보더니 결심한 듯 나처럼 구운 고기를 나무 꼬챙이에서 빼서 자신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과장되게 그것을 씹기 시작했다.
은인들과 나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그들의 의사를 아는 방법이 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배가 고픈 것이다. 눈물을 흘리면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이거나 슬픈 것이다. 기쁘면 웃는다. 혹은.
파닥! 파닥!
꼬리를 파닥거린다.
지도자의 풍성한 흰색 꼬리가 파닥 거렸다. 주위의 은인들은 지도자의 반응에 흥미를 보이며 머리 위에 있는 뾰족한 귀를 쫑긋 거렸다.
내가 이세계에 왔다는 증거 하나 더 추가. 은인 들은 기본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꼬리가 있고 귀는 뾰족하고 털이 잔뜩 나 있었다. 덤으로 전부다 하나같이 미형이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질……내가 못생긴 게 아니라 너희가 너무 미형인 거다!
어쨌든.
지도자가 구운 고기를 맛있게 먹자 다른 은인들도 용기를 내 우리에게 가까워졌다. 나는 가까이 온 다른 은인들에게도 내가 구운 고기를 나눠줬다. 몇몇은 익숙하지 않은 먹거리인지라 반응이 시원찮았지만 구운 고기는 대체로 호평이었다. 파닥! 파닥!
내가 입은 은혜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약간이나마 보은을 했다. 그러나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세계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상 나는 앞으로 은인들과 지내야할 것이다. 현대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인 나는 이 부족의 어린아이보다 나약한 존재다. 나 혼자라면 하루도 못 가서 맹수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쓸모없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내가 배운 전공지식은 인프라가 없어 쓸모가 없겠지만 현대의 기초적인 상식들은 이들에게 말 그대로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불을 피우는 방법은 물론이요, 바퀴나 지렛대, 식기, 문자, 숫자, 놀이문화, 농경……농경은 제외하자. 난 농사는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일정한 시기가 되면 수확한다.’ 정도밖에 모르니. 어쨌든 이들의 기술 수준이 전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이니 나의 지식이 이들의 기술수준을 몇 만 년 단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도자를 바라보았다. 지도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으며 꼬리를 파닥였다. 나도 지도자에게 웃음을 돌려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첫 접촉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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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이세계 구운고기 찬양과 관련된 글을 읽고 가볍게 두드려 봤습니다.
그런데 날고기를 먹던 자들이 무조건 구운고기를 더 맛있어 할 거라는 확신도 안 서는군요.
이건 그냥 저 고기가 구우면 엄청나게 맛있어지는 고기라고 치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원시인들이 미형케모미미인건 덕후적 허용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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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것은 불이라는 거다. 가연물에 발화점 이상의 온도를 가하며 산소를 공급하면 만들어지는 현상이지.”
“아아. 이것은 양심이라는 거다.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지(헌법재판소에서 정의하는 양심). 가슴 만지고 싶다.”
“아아. 이것은 활이라는 거다. 화살이라는 것을 멀리 날려 보내는 무기지. 그런데 활 이거 어떻게 해야 제대로 만드는 거지?”
“아아. 이것은 문자라는 거다. 인간의 언어를 적는데 사용하는 시각적인 기호 체계이지(네이버사전 '문자'). 그런데 말이 안 통하네, 시바.”
“아아. 이것은 그림이라는 거다. 선이나 색체를 써서 평면 위에 사물의 형상 등을 나타내는 것이지(네이버 사전 '그림'). 아오 시바. 이 죽일 놈의 똥손!”
언어는 어케 통하나요? 잼있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