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
대전역 내리니 연계된 기차가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우선 짐을 맡기러 물품보관소에 가니
11시 52분, 오늘까지는 1200원인데
내일이 되면 가산요금이 붙는다고 한다
교각 아래 텅 빈 플랫폼을 보며 8분을 기다린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너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친 몸을 뉘어야 하는데
아침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데
너는 오늘은 안된다고 했다
나는 갈 곳 잃은 새처럼 거리를 헤매거나
초라한 마차에서 혼잣술에 입부리를 적셔야 했다
0시 1분,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고
보관함에 짐을 부렸는데
벌써 떠나야 할 오늘이 되어버렸다는 서글픔
언제였던가 그때도 나는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고
이 별에 고단한 짐을 부렸지
행복했던가 따뜻했던가
어디라도 가서 몸을 뉘어야 하는데
내일 다시 가야 할 새로운 정거장들만이
저 하늘에 하나둘 그리운 별빛으로 떠올라 있다
깃들일 곳 하나 없이
뜬눈으로 새우다 가더라도
나는 오늘밤 이 별에서 자고 가야 한다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시선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