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환자가 그러고도 물건 파는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신정 패키지를 사달라고 지휘관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서약 반지도 못 파는 년이 신정 패키지는, 또 팔아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신정 패키지를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카리나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느그형(이제는 0-2런 돌릴 자원도 없어서 놀고 있다.)에게 보급을 줄 수도 있다. 군수대성공 보고서를 손에 쥔 김 소린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군수 리더 비빗자를 기름주머니가 다 된 광목 수건으로 닦으며, 다시 군수를 보내려 할 때였다.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를 들자,
“그리폰!”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전화를 걸은 번호가 그 난민 복지관 관계자인 줄 김 소린은 한 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다짜고짜로,
“전춘협 본부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얼마 전에 그리폰에서 퇴역한 지휘관으로 자신의 부관이었던 춘전이를 찾기 위함이리라. 오늘 가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마침 양복쟁이를 호위해준 비빗자 제대를 보고 전화 걸었음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급하게 사무실까지 뛰어 올라가 전화를 건듯 숨을 헐떡이는 게 전화에 다 들리고,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목적지를 얘기했을까.
“전춘협 본부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 소린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雨中)에 어미도 없이 그 먼 곳을 비빗자거리고 보내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카리나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앞집 헬리안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재고만 남은 상점에 유일의 생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띠며,
“오늘은 군수 보내지 말아요. 그 제대로 제발 3지역 금장작이라도 마저 해줘요. 내가 이렇게 보석이 고픈데….”
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때에 김 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금장작할 안구사가 나올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선자리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카리나의 얼굴이 김 소린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2편 끝.
결말을 어떻게 내실지 모르겠지만 원작대로면 카리나 사망 플래그 떴네요
그대로 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