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예쁜 인형이 보고 싶었고 카구팔은 다른 인형들처럼 관심을 받고 싶었다.
목적을 전제로 한 우리의 관계는 얼마 안 가 끊길 것이 자명했지만 왠지 그렇지 않았다.
상처난 짐승이 서로를 핥아주듯 나와 카구팔은 서로의 단점에 이끌린 것이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두 번째는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그때는 카구팔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드라마처럼 생긴 우연이었지만 카구팔은 어쩐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빨개진 얼굴을 숙이고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날부터 우리는 조금 더 스킨쉽을 갖기 시작했다.
손목을 잡던 관계가 어느 새 팔짱을 끼웠고, 식사만 같이 하던 만남은 늦저녁 산책까지 이어졌다.
이렇게까지 됐으니 내가 반지를 준비한 것도, 카구팔이 드레스를 주문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안구사가 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을까
"지휘관, 지시를."
"아, 응..."
사무실에서 어색하게 팔을 잡힌 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기는 분명 며칠 전의 내 실수다.
같은 은발이라 카구팔로 착각한 안구사에게 팔짱을 껴버린 것이다.
슬슬 적극적이게 되자고 결심한 게 착오였다. 솔잎을 먹어야하는 송충이가 장미꽃을 넘보다니.
덕분에 후회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두 번 다시 쓸데없는 행동은 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고 정신차렸을 터이다.
한데 이건 또 어찌된 일일까? 왜 이번엔 장미가 다가왔단 말인가.
"지휘관. 나에게 불만이라도?"
"아, 아니야."
"혹시 웃어야 했나? 방금 그 유머는 확실히 재미있었지만... 아, 알았다. 지휘관을 위해서 다시 한번 웃어보겠다."
거기다 제멋대로 해석까지 한다. 안구사는 양손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내 앞에서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별 수 없이 나도 억지웃음을 만들었다. 멀리 보이는 카구팔의 시선이 따갑다. 그녀가 내미는 말도 가시처럼 따가웠다.
"지휘관씨는 지휘관으로서의 일을 다 하시는 거니까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도도한 아가씨 말투. 그래서인지 더욱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마일리외에는 대화조차 않는다는 안구사. 잘 때도 총을 쥐고 잔다는 안구사. 잘못 거절했다가는 머리에 총구멍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무능하단 사실을 후회했다. 그때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냥 서약해버리면 되잖아."
감은 눈으로 매혹적인 제안을 내민 것은 마일리였다.
그녀는 어디서 알았는지 내가 산 서약반지를 예쁜 케이스에 장식해 건네주었다.
"그냥 당당하게 하라고. 이미 서로 익숙한 사이잖아."
그리고 마일리는 내게 전적으로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 장소도 시간도 안구사도 붙잡아 놓을테니 오늘 자정에 카구팔과 서약하란 것이었다.
나로서는 너무나 간절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문밖으로 나서는 내 뒤에서
마일리가 새빨간 눈으로 혀를 낼름거리고 있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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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가 끝나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나는 마일리가 알려줬던 장소에서 카구팔을 기다렸다.
이제는 쓰지 않는 폐숙소였지만 장소는 썩 괜찮았다. 이곳은 전기가 없어서 촛불을 켜야했는데 덕분에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변한 것이다.
어두운 밀실에서 은은히 빛나는 하얀 촛대. 옆에는 일부러 들여놨는지 깨끗한 침대도 안치되어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구팔을 기다렸다.
이윽고 자정이 되자 문이 열리며 인형 하나가 들어왔다.
"지휘관..."
평소보다 더 고운 그 목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은발에 베일을 씌우고선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마저 부끄러움에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비좁은 밀실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들지 못했다. 다만 마주잡은 양 손을 내게 내밀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휘관, 난 당신에게 있어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인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도도한 아가씨 말투가 아닌 직접적인 말투였다. 그녀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만 쓰는 어투다.
더 이상 인형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처럼 다루어지고 싶다며 쓰던 반말. 하지만 그 목소리엔 애정이 가득했다.
그녀는 고운 은발을 떨며 계속 말했다.
"다른 이를 위해 살아온 나를 지휘관이 지탱해 주었다. 이 마음을, 앞으로 꾸준히 갚도록 하겠다. 지휘관. 나와... 나와..."
울먹이며 흘리는 눈물에 그녀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이 이젠 내 손을 잡은 채 떨었다. 복받친 감정에 그녀는 자꾸만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설탕을 핥듯 손 전체를 문지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만은 진짜였다.
이윽고 그녀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외쳤다.
"저와 서약해주시겠나요?"
나는 잠깐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입을 다문 채 계속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그 손을 그대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준비했던 케이스를 열어 서약반지를 끼워주었다.
그녀가 이제 환하게 나를 끌어안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지휘관!"
나도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그 허리는 병기라고 믿기 힘들만큼 가녀리고 부드러웠다.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
"아니에요! 아니... 아니야, 지휘관!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 지휘관이야 말로 그동안 수고했어."
우리는 서로의 피부를 느끼며 그렇게 서약을 하였다. 나 또한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부끄러움보다는 먼저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나는 준비해뒀던 예비 전등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내 눈 앞에 카구팔이 아닌 안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하얀 웨딩드레스에 내가 끼워준 서약반지를 잡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카구팔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안구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만지작거렸던 것은 안구사였었다.
"안구사......"
"응. 지휘관!"
나는 현기증에 침대에 털썩 앉아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안구사는 완전히 그것을 다르게 이해했는지 환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좀 전까지 선명하게 들렸던 카구팔의 목소리가 점차 안구사의 것으로 바뀌어 갔다.
어째서일까.
나는 그때 내가 켜놓은 촛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희미하게 연기가 흘러나오는 기묘한 촛대.
촛불에서 연기가 날리 없었다. 양초에 환각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섞여있었다.
그리고 이 양초를 준비한 것은...
"마일리!"
안구사가 그 이름을 부르자 구석 한켠에서 숨어있던 마일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숙소에 저런 비밀 공간이 있었다고? 나는 당황스러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일리는 그런 나를 신경쓰지 않고 안구사에게 다가가 안겼다.
"안구사. 저... 안구사 말대로 했어요. 그러니 약속은 지킬 거죠?"
"물론이다, 마일리. 우리는 쌍둥이나 다름없는 인형. 내가 서약한 것은 마일리가 서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저길봐라. 지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지휘관......"
지휘관. 그 단어에 비로소 마일리가 고개를 돌렸다.
평소와 달리 분홍색 눈동자로 그녀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이때 마일리가 안구사를 뺏긴 마음에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내 착각이었다. 마일리가 나를 보는 것은 마치 생일날 케이크를 보듯 굶주림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혓바닥으로 입술을 낼름거렸다.
그렇게 마일리는 안구사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내 한쪽에는 안구사가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마일리가 어깨를 기댔다.
곧 촛불이 내뿜는 환각에 쓰러진 내 곁으로 그녀들도 나란히 몸을 누웠다.
하지만 둘은 맑은 정신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손가락이 하나 둘 내 몸을 기어서 올라온다.
그것들은 뱀처럼 여기저기를 휘돌며 내 피부를 느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 은밀한 감각에 나는 모든 걸 내어버리고 말겠지.
왜 그랬을까.
왜 카구팔이 아닌 다른 인형을 믿었을까.
그런데 정말로 카구팔이 이것을 몰랐을까?
처음에 안구사가 냈던 목소리는 분명히 카구팔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의 데이터를 넘겨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침대 안에서 또 다른 손길이 나를 타고 오는 게 느껴졌다.
아, 그리운 손길이었다. 덫에 걸린 먹이를 빨아먹으려는 것일테지만 그래도 왠지 안심이 됐다.
나는 그 손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뺨을 만지며 비로소 그녀가 고운 입술로 반겨주었다.
카구팔은 그대로 입술을...쓰다가 술깨서 여기까지
더 마셔요 떡이 될 때까지
마셔요
적셔!!!!!
마셔요
더 마셔요
더 마셔요 떡이 될 때까지
적셔!!!!!
다음 다음을 원합니다. 으아아아! 총구수입 갑시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두가지 중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