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당장 올려놔!!!"
처음이었다.
어큐트가 그렇게까지 목소리를 높여 화를 낸 적은.
나는 그저 트레이너실 선반에 있던 양철 과자 상자를 꺼내려던 참이었는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과자 상자를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자
그제서야 어큐트는 휴우 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미...미안하구나. 트레이너 선생님께 이렇게 버릇없게 말하면 안되는데..."
금방이라도 쪼그라들을 듯한 목소리로 사과를 하는 어큐트를 바라보며
나는 멋쩍게 미소 지으며 머리를 벅벅 긁곤 대답했다.
"뭐 굳이 따지자면 내 잘못이긴 하지.
저 과자는 어큐트 네가 가져다 둔거니까.
미안해. 다음 번에는 먼저 물어본 다음 움직일게."
"...고맙구나. 그럼 그 대신 차라도 한잔 하지 않으련?
마침 과자 없이도 마시기 좋은 차가 하나 있단다."
"물론이지. 어큐트가 내려주는 차는 구정물이라도 마실 수 있다고!"
"어머나, 선생님도 참. 그렇게 띄워주면 부끄러운데..."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도는 어큐트를 보니
나 역시도 그제서야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큐트의 의외의 일면을 본 일은 슬그머니 지나갔고
하루하루가 별 다른 자극이나 굴곡 없이 평탄하게 흐르고 있었다.
똑.
딱.
똑.
딱.
밤이 되면 아무래도 소리에 민감해진다.
이동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새소리와 같은 동물들의 소리도 잦아드니까.
사람이 만들어낸 시계 초침 소리와 노트북을 기계적으로
타이핑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흐아아아암~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누가 들으면 조금 버릇 없다고 생각할 만큼 긴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피며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하던 도중, 내 시선에 그 물건이 들어왔다.
"...저거. 아직도 남아있으려나?"
양철로 된, 동그란 양과자 상자.
꺼내보려고 하자 어큐트가 답지 않게 무척이나 화를 냈었지.
설마 할머니 같은 성격처럼 안에 반짇고리 같은게 들어있어서 그랬던걸까?
정말 그렇다면 어큐트도 반대로 의외의 소녀스러운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는걸지도.
하지만 역시 그때 어큐트의 강한 말투가 걸린다.
게다가 어큐트에게 물어보고 움직인다고 말했으니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소등한 뒤 트레이너실을 나서려던 찰나.
탕 타탕! 하는 양철 제질 특유의 요란한 소리가 트레이너실 안에 울려퍼졌다.
"하필이면 지금 막 나가려던 타이밍에..."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지만 입이라도 궁시렁대며
뭐가 어떻게 된건지 파악하기 위해 불을 키자
영 좋지 않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으악! 과자 상자가 통째로 엎어졌잖아...!"
어큐트가 말했던 그 양철 과자 상자가 말 그대로
완전히 뒤집어져 바닥에 내용물을 흩뿌리고 있었다.
과자는 바스라지면 가루가 많이 날리는데다
달콤하니 벌레도 많이 꼬여서 청소하기 귀찮단 말야.
뭐, 이렇게 된 거 과자 조각이라도 볼까.
아깝네. 저런 상자에 담겨있는 거라면 꽤 맛있는 종류일테지.
"...? 뭐야 이거.
과자 상태가 왜 이래?"
바닥에 널부러진 과자들은 거뭇거뭇했다.
하지만 그건 초콜릿이라던가 색소가 들어가서 검은 것이 아니었다.
"곰팡이...? 얼마나 오래 뒀길래 이런게 다..."
그것들은 전부 불길한 검은색이 뒤덮여 있는 상한 과자들이었다.
이래서 어큐트가 손대지 말라고 했었던 건가...
아무래도 상한 거라면 오늘 안에 치우기는 버겁겠네.
그렇게 일단 가루들만 빗자루로 모아 쓰레기통에 부은 다음
멀쩡한 형태를 유지한 것들만 억지로 양철 과자 상자에 담아
뚜껑을 닫아 테이블 위에 놓아 두었다.
내일 어큐트랑 어떻게든 처리를 해버려야지.
- = 三
다음 날.
어큐트는 트레이너실로 오자마자 테이블 위에 있던 과자 상자를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힘이 빠진 듯 바닥에 철퍼덕 하고 주저앉았다.
"뭐야!? 왜 그래 어큐트! 갑자기 오자마자 무슨 일이야 이게!"
당황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어큐트는 바들바들 떨며 입을 열었다.
"열어...버린거니...?"
"열어보다니 뭘? 아. 그 과자 상자! 미안 미안.
떨어져서 안에 있던 과자들이 다 바닥에 엎어지는 바람에!"
뭐 말한 걸 못지킨 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말야.
어쩔 수 없었다고 그건.
불가항력이니까.
"아아...미안하구나...정말 미안해...
트레이너 선생님...트레이너 선생님...."
어큐트는 이제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표정으로
추욱 늘어진 채로 트레이너 선생님을 중얼거리며 흐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거참.
이상하네.
그 양철 상자에 있던 과자는 정말 맛있었는데 말이지.
이거 원본 괴담이 있는거임?
아니 내가 지어낸거야
뭐야 상한 과자먹고도 왜 멀쩡한데
설마 공양이나 잿밥 저주받은 물건 뭐 그런건가
뭐가 일어난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