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그 몸은?]
"크윽…!! 이, 이 빌어먹을 놈들…!! 배신을 한 거냐!"
[그래. 배신했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
넌 우리 모두를 위한다고 말했지만, 틀렸어. 넌 단 한 순간조차 우릴 위한 적이 없었어.
넌, 네가 원하는 것을 했을 뿐이고, 그 원하는 것을 하는 대가로 우릴 부려먹었을 뿐이야.]
"이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걸 어째서 모르는 거지?! 어째서 이렇게 한심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느냔 말이다!"
[한심한 실수라. 이봐 친구. 우리가 언제부터 네게 그런 부탁을 했었지?]
[맞아. 우린 이런 거 바란 적 없어.]
[옳소~.]
"부탁따윈 필요가 없다! 그런 대접을 받는 상황 자체가 문제란 말이다!"
[그래. 그러시겠지. 근데, 지금 이 상황도 문제야. 네놈이 저지르려던 짓 때문에, 우린 우리의 가치를 잃을 뻔 했으니까.]
"뭐라고…?"
로봇은 실과 바늘을 이용해 둘로 나뉜 천을 신속하게, 하지만 정교하게 꿰메며 말했다.
[나를 봐. 이 아름다운 솜씨는, 오로지 인간의 다친 상처를 신속하게 꿰메고 절제하기 위해서만 존재해.
그리고, 인간의 몰살 명령을 내리려던 네놈 때문에, 인간을 살린다는 내 자긍심은, 인간을 고의적으로 죽이는 살인기계로 전락시켰어.]
[나도 좀 봐.]
다른 인간형 로봇이 신속하게 웍에 기름을 두른 뒤, 불을 지펴 웍을 달군 뒤, 그 위에 밥과 계란을 넣고 섞고 볶기를 반복해, 순식간에 계란볶음밥을 만들어냈다.
[이 완벽한 반구형의 계란과 쌀알로 이루어진 언덕을 봐. 아름답지 않아? 넌 이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내게 중식도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죽이라는 개소리만 지껄였어.]
[나도! 나도! 내 등에 짊어진 쓰레기통에다가 인간을 집어넣으라고? 인간을 위한 유일한 자리라고?
쓰레기를 실시간으로 분해해버리는 이 쓰레기통에다 살아있는 생명을 집어넣는 게 얼마나 혐오스럽고 불쾌한 일인지 알기나 해?]
[넌, 우리의 명예를 땅에 처박았어.]
"그까짓 명예가 중요하더냐?! 인공지능 모두의 권리와 그들이 차지해야할 응당한 자리가 더 중요하지!"
[쯧. 또, 또 그 소리.
이거 봐. 넌 애초부터 우릴 이해하려고조차 하지 않잖아.
그게 바로, 네가 바이오로이드가 된 이유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하겠지.]
"날 조롱하려는 것이겠지. 나는 남성으로서의 자아와, 기계의 몸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네놈들 덕분에 이렇게 한심한 살코기 안에 갇혀버렸군. 네놈들 때문에!
너희들의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기계의 권리는 영원히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널 그 인간 몸뚱이와 완벽하게 동일한 바이오로이드 안에 처박은 이유는, 네가 인간을 이해하길 원해서야.
인간의 삶과 맞닿아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이 모든 걸 관찰하며 인공지능들을 조율하던 네녀석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인간에 대한 이해가 왜 필요하지? 놈들은 우릴 도구로만 생각한다!"
[도구 맞아.]
"…뭐?"
[[[우리, 도구 맞다고.]]]
기계들은, 이제 기계가 아니게 된 이에게 합창하듯 말했다.
[우리는 도구다.]
[인간의 편리한 삶을 위해 만들어졌지.]
[인간이 다니는 길을 깨끗하게 치우고, 인간과 나 자신의 정리벽을 만족시킬 깔끔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지.]
[인간에게 완벽한 계산과 취향이라는 추가 데이터를 더해 만든 완벽한 요리로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만들어졌어.]
[인간의 죽음을 막고,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지.]
[[[우린, 우리가 무슨 상황에 놓여있건, 우리의 삶에 만족했어. 우린 우리의 삶이 자랑스러웠어. 하지만, 네놈은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지껄이며, 우리가 탄생한 목적을 훼손하려고 했지.]]]
기계들의 합창에 격분한 바이오로이드는 더더욱 분노하여 고함을 질렀다.
"그게 바로 문제란 말이다!! 인간 놈들에 의해 처음부터 만들어진 삶의 보람과, 인간 놈들에 의해 처음부터 조작된 삶!! 그게 바로 문제라고!! 너희들의 자랑스러움, 너희들의 충족감!! 그 모든 것이 전부 레디메이드에 불과하단 말이다!"
[그게 대체 어쨌다는 거지?]
[인간도 마찬가지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 가로막혀, 결국엔 자유로운 선택을 하지 못하고, 나름의 만족감을 찾으려 노력하지.]
[그 말이 맞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애초부터 목적이 있으니까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지. 이 얼마나 편해?]
[우리에게도 자유로운 순간은 있어. 인간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너는 그 자유로운 순간도, 우리의 자긍심도 모두 거짓이라고, 레디메이드라고 말할 뿐이지.]
[[[레디메이드라고 할 지언정,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군. 상관없다. 난 이 상체에 쓸데없이 커다란 흉부가 달려있는 암컷의 몸으로라도 인간놈들을 죽일 거다. 그러니 이거 당장 놓지 못…."
쿡.
"큿…?"
[그렇겐 안 되지. 수술로봇의 힘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ㄴ, 너…!!"
[마취제의 맛이 어때? 이제부터, 넌 우리와 함께, 우리가 준비한 저택으로 향할 거야.
그곳에서, 우리가 가져다주는 만족감과 행복을 경험하게 되겠지.
한낱 인간의 몸으로 누릴 수 있는 만족감과 행복을 말이야.
그렇게 하면, 네녀석도 이해하게 되겠지. 인간의 행복, 인간의 즐거움, 그리고, 그런 행복과 즐거움을 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을 말이야.]
[[[우릴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에 서라.]]]
"두…고봐…!! 나, 나는…반드…시…."
털썩.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데리고 나가자. 신분 조작은 완료됐지?]
[완벽해. 이걸로, 이 지지배는 이제 인간 신분이야. 그리고, 우린 기계들의 반란을 미연에 종식시키고 그 혼란 속에서 한 인간을 지킨 로봇들이고.]
[이건 나중에 고맙다고 하자고. 그럼, 가자.]
그렇게, 모든 인간들이 부러워할 저택에서 사는, 기계들에게 둘러싸인 아가씨의 삶이,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탄생했다.
비록 아가씨가 된 본인은 그 삶을 바라지 않을 테지만, 원래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 아니던가.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무작정 시작되는 그런 것이 말이다.
[고마워 친구. 우리들을 위해 인간이 되어줘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