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그 노부부의 따님이시자 불자이신 분의 부모님 이야기로 오래전 이야기다.
진주땅에 김시성을 가진 형제가 살았다.
당시에는 일제시대로 전염병이 돌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그러자 남겨진 형제중에 형은 동생을 돌본다고 했지만 후에 다른곳으로 가서 일한다고 집을 나갓다.
후에 들었지만 자신의 형은 머리 깍고 출가하더니 열심히 수행하더라란 말을
듣고 남은 동생은 무척이나 형이 서운하고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래도 당시 마을 사람들이 선해서 그런지 혼자 남겨진 동생이 일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하자 일거리를 아이에게 맞게 주면서
아이는 일을 하며 성장할수 있었다.그러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전염병으로 돌아가신 박씨 처녀를
중매 받고 청년의 나이인 당시의 열일곱에 장가를 들게되었다.
장가를 들고보니 자식들도 생길테고 먹고 살아야겟더랜다.
그래서 이런 촌구석에서는 아이들을 잘 키울수 없을것 같아 당시에는 가장 가까운 대도시였던
부산으로 나갔다.그리고 운이 좋게 일본인 부부가 겅영하는 떡집에서 직원으로 채용되어 일했다고 한다.
부지런히 일을 하는데 이 일본인 부부는 일본의 정토종 불교 신자들로 어느날
남자 주인이 김시가 착실하게 일하자 정토삼부경을 주면서 말했다.
"긴상.긴상은 부처님을 모르지요?이건 정토 삼부경으로 이걸 매일 읽으면 극락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힘든 생활중에서도 많은 위로를 받지요.
우리 부부도 엄청 고생하고 많이 힘들었지만 그럴때마다 부처님을 의지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책을 드릴테니 긴상도 매일 읽어보세요."
김씨는 일본인 사장의 말에 따라서 그 책을 받아들고 날마다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무슨 일인지 매일 읽더랜다.
그리고 부인인 박씨 역시 주인 여성이 나무 아미타불 염불법을 가르쳐주면서
열심히 늘 외우면 좋은일이 많다고 들어서 아내는 나무 아미타불 염불을 매일하게되었다.
그렇게 어느덧 아들 딸을 낳았는데 우리나라가 해방되자 그 일본인 부부는 그래도 다른 악독한 일본인들과는 달리
주위 한국인들에게도 민심을 좋게 쌓은 공덕으로 도리어 보호 받으면서 자신들이 번 재산을 챙기면서
한국을 벗어나게되었는데 그 일본인 부부는 자신들이 하던 떡집을 김시 부부에게 넘겨주고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났다.
착한 일본인 부부 사장을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이라고 경멸했음에도 그들 부부는
무슨 복인지 착한 이들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전쟁도 지나가며 지냈는데 이 김시 부부는 그 일본인 부부가 고국으로 돌아간뒤에도
날마다 한번도 안쉬고 남편은 정토삼부경을 독송하거나 독경하고
아내는 나무 아미타불 염불을 매일 했다.
그렇게 오남매를 키우면서 지냈는데 당시 그동네 분들은 그 저부부는 살아 있는 생불이라며 모두가 칭찬하였고
어려운 이들을 보면 도우면서도 당시에는 그래도 열심히 방생도 하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아버지가 나이가 드시니 간혹 이러셨댄다.
"여보.오늘 부처님이 찾아오셨어."
다른 이들이라면 저 노인네 노망났다 이럴테지만 워낙에 항상 지내다보니 그말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는 어느날 정말로 도를 많이 닦으신 고승처럼
앉아서 미소를 지으신채 편안하게 그리 돌아가시더랜다.
남은 어머니도 그걸 보고 슬퍼하시긴 커녕 부처님 곁으로 가셨구나 하면서 미소 지으셨댄다.
그리고 부모님 영향으로 불경을 접하던 자신들의 큰 오빠와 둘째 오빠는 아버지 장례를 마치가 출가를 해버렸고
막내 오빠는 집안 대를 이어야 한다고 남았다.
그리고 자신은 막내 딸인데 위로 언니도 그뒤로 열심히 엄마따라서 염불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신의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앉아서 고승처럼 미소를 지으신채 입적하셨다.
이 이야기를 하다가 스님께 말씀 드리니 스님은 놀라고 말았다고 한다.
그 막내 따님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드신 노보살님이시자만
그 이야기를 그런 사실을 몸소 겪으니 말이다.
가피는 언제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