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피엔 어느 외딴 골목의 허름한 오두막.
“교, 교주님. 저 왔어요….”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그 곳의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가 있다.
“아, 왔구나. 들어와.”
그 부름에 답해 문을 여는 것은 교주였다. 후드로 머리를 가린 누군가는, 누가 볼세라 연신 주위를 살피며 서둘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기…”
“그럼 바로 시작할까? 피차 바쁠테니까.”
교주가 익숙한 손길로 방문자의 손목을 잡아 끈다. 오두막의 안쪽에 있는 침대를 향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은 이 오두막 안에서, 오직 그 침대만이 눈에 띄게 깨끗했다.
“자, 잠깐만요! 그, 오, 오늘은…”
새된 목소리가 교주의 발걸음을 잡아세운다. 평소와는 다른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교주. 방문자는 눈을 내리깐 채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후드를 벗는다. 벗겨진 후드 너머로 레비의 은빛 머리칼이 드러났다.
“무슨 일 있어, 레비? 아니면 뭔가 할말이라도?”
교주가 레비에게 한걸음 다가가며 묻는다.
“저, 저기… 이런건… 이제 안 하면 안되나요?”
“이런거? 이런거라니 뭘 말하는거야?”
“교… 교주님 잠자리 상대요….”
레비는 침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답했다. 그 목소리에 옅은 울음기가 섞여있음을 깨달은 교주는 한쪽 무릎을 꿇고 레비와 눈을 맞추었다.
“레비, 갑자기 왜 그래? 지금까지 몇 번이나 충분히 설명하고 너도 납득하지 않았나? 지난번에도 아무 말 없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러는거야? 돈이 부족해서 그래? 좀 더 챙겨줄까?”
상냥한 말투였지만, 그 기저에는 조급함과 추잡한 욕망이 깔려 있었다. 상대의 기분을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것이 아닌, 조금이라도 빨리 불만을 잠재우고 성욕을 배출할 도구로 삼기 위한 거짓된 상냥함. 그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레비는 자신의 어깨 위에 얹어진 교주의 손을 조금 거칠게 밀어냈다.
“계속, 계속… 말하고 싶었어요.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용기가 안 나서 납득한 척 했던 것 뿐이에요….”
레비가 치맛자락을 꼭 쥔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교주는 여전히 발 끝을 내려다보는 레비의 안색을 가만히 살피다가, 다시 두 발을 딛고 일어섰다.
“쯧, 기껏 시간 내서 왔더니만.”
경멸 어린 차가운 목소리가 레비의 마음을 후벼판다. 레비는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 내리꽂히는 교주의 싸늘한 시선만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럼 가. 안 붙잡을테니까.”
교주는 미련 없이 돌아서며 축객령을 내렸다. 이렇게까지 잘라내듯 쫓겨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레비의 눈가에 눈물이 울컥 차오른다. 하지만 레비는 그간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이야기를 용기내어 겨우 꺼낸 것에 만족하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신경질적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교주가 레비의 뒤통수에 대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레비가 그대로 멈춰섰다.
“마녀왕국 왕실 서기 자리가 하나 남는다던데. 프리클도 제자로 삼을만한 마녀 한 명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었고…. 포셔는 정식으로 계약해서 재료 공급해줄 업자를 찾고 있다고 했던가?”
교주는 천천히, 과시하듯,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자신 앞으로 들어온 청탁을 읊는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자리에 꽂히면 호강하겠네. 이거 참, 교주라는 입장도 있고 아무나 추천해줄 수는 없는데….”
그리고 의도적으로 말을 한 번 멈춘 뒤.
“누굴… 추천해줘야 하나?”
‘누구’라는 단어를 유독 힘주어 말하며 능글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왜 굳이 이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레비에게 달콤한 미끼를 내밀며 그녀를 회유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턴으로서 하루종일 고되게 일해야 하는 신세가 서럽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런 노골적이고 천박한 제안에 굴하고 싶지 않았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순간 피어오른 미혹을 떨쳐내려는 듯, 레비가 결연한 목소리로 문고리를 비트는 그때.
“맞다. 모나티엄에서 마녀왕국에 자동화 기기들을 보급하려고 했었지. 성사되는 순간 마녀왕국의 단순노동직은 전부 사라질 것 같아서 내가 보류하라고 했었는데.”
교주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레비로서는 절대로 쉬이 넘길 수 없는 이야기를.
“왠지… 다시 추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한마리 뱀처럼 레비의 목덜미에 휘감기는 교주의 시선. 어설프게 뿌리치려 하는 순간 너무도 쉽게 살결을 뚫고 혈관을 물어 터뜨릴 그 시선. 뼈마디를 시리게 하는 공포 탓에 레비의 목덜미와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레비는 천천히, 평정을 유지하려 최선을 다하며 문고리를 놓고 돌아섰다.
“교… 교주님…? 방금 뭐라고…?”
“응? 그냥 혼잣말이야. 신경쓸 필요 없어.”
레비가 덜덜 떨며 교주에게 묻는다. 교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신경쓰지 말라 하지만 레비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유일한 수입원이 각종 알바 뿐인 레비에게 있어, 단순노동직의 소멸이란 그녀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교, 교주님. 제가 교주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드릴게요. 제발 그것만은… 그것만은 안돼요. 당장 다음주부터 쓸 돈이…”
“무슨 소리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레비한테 화나서 치졸하게 복수하는 줄 알 거 아니야.”
두 사람의 입장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바닥에 기다시피 하는 저자세로 교주를 설득하려는 레비와 여유롭게 웃으며 레비를 압박하는 교주. 레비는 뻔뻔하게 능청을 떠는 교주의 말을 듣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말았다.
“교, 교주님. 자… 잠자리… 잠자리 상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제가 상대해드릴 수 있는데….”
조금 전 굳게 다잡은 결의를 제 손으로 깨부수고, 레비는 울먹거리며 비굴한 목소리로 교주에게 빌었다.
“응? 뭐라고? [해드릴 수 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하지만 그마저도 교주의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교주는 다리를 꼬고 레비를 거만하게 내려다 보았다.
“...하… 하고… 싶어요…. 교주님의 잠자리 상대… 하고 싶어요….”
이 남자는 어디까지 자신을 굴종시켜야만 만족하는 걸까. 레비는 터져나오려 하는 눈물을 입술을 깨물어 참아가며 교주가 바라는 대답을 입에 담았다.
“앗, 정말? 잘됐다! 마침 정말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환히 웃으며 사람좋은 미소를 짓는 교주.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레비에게 한달음에 다가갔다.
“교, 교주님? 잠- 읍!”
교주가 뒷걸음질치는 레비의 어깨를 단단히 쥐고 단숨에 그 입술을 빼앗는다. 레비는 어떻게든 그의 질척이는 정욕을 피해내보려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머리 두어 개는 차이나는 그 거체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레비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의 끈적거리는 타액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레비. 이 다음에는 뭐 하고 싶은지 말해볼래?”
한참 동안 레비의 입술을 유린한 교주가 숨을 몰아쉬며 레비에게 묻는다. 피부가 붉게 상기되고 동공이 반쯤 풀려있는 것이, 당장이라도 터져나오기 직전인 음심을 겨우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그것까지 제 입으로 말해야해요?”
레비는, 그런 상황에서까지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교주의 비겁함을 마음속으로 깊이 원망하며 침대로 타박타박 걸어가 누웠다.
“교주님이… 원하시는 만큼, 이 몸을 잔뜩 써줬으면 좋겠어요.”
원치 않는 행위를 강요하는 교주가 밉다.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빈곤이 서글프다. 그러면서도 곧 찾아올 쾌감을 내심 기대하고 마는 스스로가 환멸스럽다. 정돈되지 않는 이런저런 감정을 억지로 죽여 삼키며, 레비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교주를 유혹했다.
교주가 레비의 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조금 전과는 달리 상냥한 키스로 레비를 안심시킨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는 레비에게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레비는 교주의 그런 얄팍한 배려가 어쩐지 싫어, 고개를 홱 돌려 그를 피했다.
“어차피 이 쪽을 원하시는 거잖아요…. 빨리 끝내요. 저도 바쁘니까.”
최대한 감정을 눌러 죽인 톤으로 교주를 채근하는 레비. 이런 어설픈 배려를 받을 바에야 차라리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다.
“레비, 왜 그래? 나 서운해.”
교주는 레비의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레비가 자신을 거절하는 상황이었음에도, 교주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서운하긴 뭐가요.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결국 이거 하려고 저 부르는 거잖아요.”
“아니, 그거 때문이 아니라, 레비가 나한테 거짓말하는게 서운하다고. 아까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면서 관두겠다고 한 거 엄청 서운했어.”
짐짓 화난체하던 레비의 말문이 막힌다. 교주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그녀의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좀 전에 나간다 어쩐다 할때보다 목소리 훨씬 달콤해진거 알아? 그리고 아까 키스할 때도 싫은척 몸 배배 꼬면서 은근슬쩍 다리 비비던거 다 봤거든? 레비도 오랜만이라 엄청 흥분했구나, 그치?”
“그, 그런거… 아니거든요…옷♡”
한사코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음에도, 레비는 하복부를 쓰다듬는 교주의 손길에 어쩔 줄 몰라하며 달콤한 숨결을 내뱉는다. 교주는 어설픈 위장이 먹히리라 여긴 레비가 사랑스러웠는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아니긴, 매번 말로는 싫다고 하면서 정작 불붙으면 좋아 죽으려고 하잖아.”
“제, 제가 언제… 읏♡”
“으응? 지난번에 내 위에 걸터앉아서 기절할 때까지 엉덩이 흔들던건 다른 마녀였나?”
교주가 레비의 엉덩이를 우악스럽게 움켜쥔다. 레비는 거짓으로 교주를 속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애타는 신음을 내뱉었다.
“아, 하여간 귀엽기는…. 못참겠다. 일단 빠르게 한 번만 할게?”
“...그, 그러시던가요…♡”
그로부터 한동안, 두 사람은 정신없이 서로에게 얽혀들었다. 낡은 오두막은 방음 처리 역시 어설프기 짝이 없었기에, 레비는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달뜬 여자의 소리를 막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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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오늘도 좋았어. 역시 레비가 최고야.”
야릇한 열기로 가득찬 오두막의 침대 위. 교주는 레비를 품에 안고 애정을 담아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었다.
“매, 매번 그렇게 말만…. 교주님은 기분좋아질 수만 있으면 누구든 상관없잖아요.”
레비는 퉁명스럽게 받아치며 교주를 타박했다. 조금 전까지 짐승처럼 울부짖었던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교주는 그런 레비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난 레비가 최고로 좋아. 그래서 매번 레비만 부르는건데.”
레비가 몸을 움찔 떤다. 교주의 한마디에 애써 꾸며낸 화난 얼굴도 사르르 녹아 배시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 얼빠진 얼굴을 교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한사코 고개를 돌린다.
“레비이이~ 아까 나쁘게 말한 것 때문에 그래? 미안해. 레비한테 미움받아서 다시는 못 볼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퍼서 그랬어. 용서해주라, 응?”
교주가 레비를 껴안으며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 애쓴다. 레비는 교주가 자신에게 매달리며 애걸하는 상황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그럼… 앞으로는 저 말고 다른 사람은 부르기 없기에요?”
레비가 못 이기는 척 교주 쪽으로 돌아누우며 그의 품에 깊이 안겨든다.
“이, 이런 조건 좋은 알바 어디에서 못 구하니까… 뺏기기 싫은 것 뿐이에요! 그것 뿐이니까!”
혹여라도 진심을 들킬까 서둘러 한마디를 덧붙이는 레비. 교주는 새빨갛게 물든 그녀의 귀를 보고 그 진의를 진작 알아챘지만, 일부러 지적하지 않고 말없이 그녀를 한층 더 세게 안았다.
‘교주님의 몸… 따뜻해.’
다 들통나 버렸음을 알아채지 못한 채, 레비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 이기적이고 배려 없는 남자가 내미는 친절 따위 스스로의 쾌락을 위한 미끼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당장 느껴지기에는 달콤하더라도 결국 독일 뿐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벗어나기에는 이미 지독히 빠져 버렸기에, 레비는 이 달콤한 독이 가능한 늦게 파멸을 가져오길 바랄 뿐이었다.
교주의 품속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온기에 취해, 레비는 이내 쌕쌕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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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꾜주 쓰레기잔아!!
뭐야 꾜주 쓰레기잔아!!
어허 순애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