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메인 스토리 강력한 누설이 있습니다.
멀고 먼 옛날.
아직 기도드릴 신이 없었던, 인간이 곧 신이었던 때.
하나의 별은 하나의 세계로 구성되며, 이에 겹치듯이 '생명'이 동요하는 영역이 있다.
에테르계라고 불리는 그 영역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명을 가졌다.
그들의 시대에서도 그랬다 ──
보이지 않는 영역, 죽은 자가 돌아가는 장소이기에 '명계'로도 불렸다.
명계는 신이었던 사람들에게 매우 친밀한 존재였다.
물이 땅에서 바다로 흐르고, 바다에서 구름이 생기고, 이게 물이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듯이
생명의 순환을 담당하는 곳으로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곳이 그들의 지배하였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고개를 젓겠지.
그들조차 고도의 지혜를 쓰지 않으면 명계를 볼 수도 없고 거기서 힘의 일부를 끌어내는 것도,
모든 흐름을 제어하는 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 중에서는 매우 드물게 명계에게 사랑받는 자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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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수도 아마우로트에는 잔잔한 밤이 찾아오려고 했다.
거리에는 은은한 빛이 비춰지고, 로브를 쓴 시민들이 느긋하게 큰 거리를 오가고 있다.
이야기로 밤을 새우기에는 어둡고, 잠들기에는 밝은 이 거리의 밤을 모두 마음껏 보내고 있겠지.
그런 와중, 거리의 한구석에 설치된 공원에서, 한 남자가 잔디밭에서 뒹굴고 있다.
다른 시민처럼 검은 로브를 입었지만,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것은 유일무이한 형태의 붉은 가면이다.
막 뒹굴었는지, 거의 벗겨진 후드에서 하얀 마리카락이 보였다.
언뜻 보면 별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은 일반인들이 보고 있는 것과는 약간 달랐다.
만물이 가지고 있는 에테르가 색색들이 반짝인다.
이는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가득 차, 별 구석구석까지 살아있다.
어디선가 역할을 마친 생명이 바람을 타고 떠돈다.
이게 갑자기 저쪽 ── 명계로 잠겼다.
의식을 집중한다면 아주 깊고, 아주 먼, 순환하는 생명을 볼 수 있다.
만물이 가지고 있는 에테르를 볼 수 있는 자는 적지 않았지만, 이 사람 정도로 선명하게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자라면 드물겠지.
이 힘으로 생명의 핵인 혼도 각자 다른 색을 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명계의 주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소행이었다.
남자는 잠시 허공을 계속 보고 있다가, 이윽고 누군가가 잔디밭을 밟으며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눈치는 챘지만 ── 귀찮은 일을 무시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하지만 발소리의 주인은 그의 머리까지 다가와서는 선 채로 내려보면서 주저 없이 말을 걸었다.
[오오, 14인 위원회에 취임하게 되어 축하해, 하데스. 아, 이제 에메트셀크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말을 들은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말한 남자는 가면에 덮이지 않은 입 주변에 미소를 띠며, 아래에 있는 붉은 가면을 계속 쳐다봤다.
── 그대로 몇 초. 질렸는지 누워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서는 노출되었던 하얀 머리카락을 칠흑의 후드 속으로 정리하고야 나서 매우 불쾌한 듯한 목소리로 찾아온 손님에게 대응했다.
[...축하고 뭐고, 필요했으니까 받아들인 것뿐이야. 것보다 네가 위원회 권유를 거절했으니 이렇게 된 거라고, 휴트로다에우스.]
[음, 그렇게 되는 게 적재적소가 되는 거야. 보이는 걸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너와는 다르게 나는 보고 재밌어할 뿐이니까.]
[그딴 동기로 창조물관리소 소장의 자리를 맡고 있어도 될지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한번 인민변론관에서 적임 여부를 논의해봐야겠어.]
말과 함께 가면의 안쪽에서 어렴풋이 노려봤지만, 창조물관리소 소장인 휴트로다에우스는 신경 쓰지도 않고 명랑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의 차림새는 검은 로브에 하얀 가면으로 별다른 특징은 없다.
하지만 희귀하게도 그 또한 명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에메트셀크와 동류였다. 어떻게 보면 보는 것만이라면 그가 더 능숙할지도 모른다.
그 두 눈은 항상 본질과 진실을 꿰뚫어보고 있다. 그렇기에 다양한 '이데아'를 다루는 창조물관리소의 일은 정말로 그에게 맞는다고
모두가 인정했지만... 그렇더라도 이렇게 느슨해서야 되는가라고 가끔씩 생각하게 된다.
에메트셀크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휴트로다에우스에게 '...뭐냐'라고 용건을 물었다.
그러니 물어보길 기다렸듯이 한층 더 미소가 번지니 에메트셀크는 괜히 건드렸다고 약간... 아니 크게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취임, 그 사람에겐 보고했어?]
[...뭐? 왜 굳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나. 당연히 누가 보고했을 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14인 위원회 관련 인사라고?
모두가 벌써 알고 있겠지.]
[그렇지만 말이야, 새로운 에메트셀크. 또 행방을 모르게 됐다면 내가 한 번 볼까?]
[필요없다. 됐으니까 너는 얼른 오늘 일이나 마쳐라.]
에메트셀크가 위압적으로 말하니 휴트로다에우스는 처음으로 미소를 죽이고, 어떻게 일을 끝내지 않은 게 들통났지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무언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또 괜한 문제가 될 게 뻔하지만... 죽 대답을 기다리는 친구에게 질렸는지 에메트셀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늘은 라하브레아원 쪽 놈이 왔었지. 그렇다면 거물의 조사의뢰지. 이 시간에 네 일이 마칠 가능성은 낮아.
그래도 굳이 날 찾으러 왔다는 건 또 상담 부탁같이 귀찮은 일을 가져온 거겠지.]
휴트로다에우스는 들은 말을 음미하듯이 잠시 침묵하고 ── 이윽고 어깨를 떨며 웃었다.
[이야, 그건 취임이 정해졌는데 이런 데서 누워있는 친구가 신경 쓰이니까 축하의 말을 해주러 온 것뿐인데... 후후...
그렇네, 네가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네 자신이 납득될 이유가 필요하지. 응, 정말로... 후후후...]
에메트셀크는 기분 나쁜 듯한, 언짢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용건이 없다면 여기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휴트로다에우스가 당황하며 말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곤란한 일이 없는 건 아냐. 괜찮다면 도와주지 않겠어, 위대한 에메트셀크.]
[불사조의 이데아, 라고?]
창조물관리소의 특별층.
평소에는 출입금지층의 복도를 에메트셀크와 휴트로다에우스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휴트로다에우스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받은 질문에 '응'하며 끄덕였다.
[엄밀하게는 생물은 아니고, 새의 모습을 한 마법이라고 하는 쪽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지.
뛰어난 치유의 힘을 가져 이를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행사하지. 라하브레아원 혼신의 신작이라서 "어떻게 봐도" 아름다운 창조야.]
[뭐... 그렇겠지.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말한 대로, 그 불사조는 생물로서 창조되지 않았어. 어디까지나 형태가 있는 마법으로서 고안된 거지만... 아무튼 보는 게 좋아.]
휴트로다에우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막다른 곳의 거대한 문에 손을 얹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고 ──
틈새에서 새어 나온 귀청을 찢는 듯한 새의 울음소리에 에메트셀크는 가면 아래의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기묘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홀을 나는 불꽃색의 아름다운 새가 눈앞에 펼쳐졌다.
에메트셀크의 몸이 굳어진 이유는 그 날개가 화려하기 때문이 아니다.
새의 안에... 단순한 마법일 터인 그 존재 안에 있을 수 없는 반짝임이 보였기 때문이다.
[혼이, 깃들어 있다...?]
── 사람은, 창조마법으로 삼라만상을 자아낼 수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만들 수 없는 것이 '혼'이었다.
이를 생물이 물질계의 섭리에 따른, 즉 생물로서 모순이 없는 형태로 만들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마치 별이 하사한 것처럼, 사람이라도 단독으로 창조할 수 없다고 생각된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생물로서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아무리 겉모습이 그럴듯해도 혼을 얻을 수 없다.
어떤 종류의 현상, 마법 생물이란 존재가 되는 것이다.
휴트로다에우스가 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약간의 사고가 있었어. 불사조의 이데아를 조사하던 와중에 떠돌던 혼이 섞여버린 거야.
지금 상태라면 미련에 속박되어 방황하던 혼이었던 거겠지.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날뛰고 있지...]
에메트셀크 또한 계속 울고 있는 불사조를 보고 있다.
새는 홀의 단단한 벽에 부딪히며 무참히 깃털을 흩트리고 있다. 하지만 곧바로 치유가 시작되어
약해지지 않고 계속 부딪히며 넘치는 마력을 불꽃으로 바꾸며 흩뿌리고 있다.
[...불쌍하군. 죽음의 공포를 맛본 건가. 저렇다면 이미 사는 데 집착할 뿐이겠지.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에 초조해하고, 걱정하고, 당황하고, 상처 입고... 상처 입는다.]
[어라, 그걸 알겠어? 나에겐 아무래도 연이 없는 감각이네.]
[알까보냐, 단순한 억측이다. ...그래서 어쩔 거지. 라하브레아원의 걸작이라도 이 상태로는 놔둘 수 없지.]
그러니 휴트로다에우스가 에메트셀크를 돌아봤다. 그 입가에는 미소를 지은 것처럼 보여,
에메트셀크는 다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명계로 보내려고 해도 말이야, 불사조잖아. 여간한 충격으로는 사라지지 않고 괜히 고통만 줘버려.
그러니까 내일, 매우 실력이 좋은 마도사가 와준다면... 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해준다면야. 응, 그게 제일이네.]
[......]
에메트셀크는 입을 다물고는 어깨를 떨궜다.
원망스러운 기색으로 옆의 친구를 노려봐도, 그의 입가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다.
이미 반론하는 것도 귀찮아, 이 일을 빚으로 두자고 마음속으로 정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자 ── 갑자기 에메트셀크의 윤곽이 흔들렸다.
석양에 늘어난 그림자처럼 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오, 언제나 봐도 압권이야.]
그렇게 말한 휴트로다에우스의 눈에는 친구에게 들어오는 명계의 힘의 흐름이 보였다.
그야말로 명계에 사랑받는 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린다.
마도사는 많지만, 이렇게까지 강력한 힘을 다루는 자는 14인 위원회에도 있을까 말까한 정도다.
[역시, 네가 에메트셀크가 되는 게 정답이야. 다시 한 번, 취임 축하해.]
에메트셀크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한숨 같기도, 미소 같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불사조와 대치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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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폐하.]
가시 돋친 목소리에 감긴 눈을 천천히 떴다.
멍한 시야에서, 무의식적으로 에테르의 흐름에 눈이 가버린다.
── 거기에는 과거와 같은 눈부신 반짝임은 없다.
물로 옅어진 듯한 담담한 반짝임이, 왠지 불안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거슬리는 걸 봤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 상황... 아무래도 의자에 앉은 채로 선잠을 자버린 것 같다.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슬슬 알현할 시간입니다.]
그제서야 그쪽에 시선을 향하니, 긴 금발을 묶은 장신의 청년이 곤란한 표정으로 서있다.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어 아무래도 나이 들어 보였지만,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자신의 ──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솔르 조스 갈바스의 손자, 바리스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앞선 폭동 진압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이 떠올랐다.
솔직히 개별로, 게다가 사실까지 쳐들어와서 보고를 받을 정도의 큰 사건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바리스가 찾아온 것은
그 나름 무공을 세웠다는 기개가 있었는지, 아니면 배후의 지지자들이 부추겼는지... 등을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튼 하찮은, 되먹지 못한 것들의 어리석은 일이다.
솔르는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방을 뒤로하며 걸었다.
바리스의 옆을 지나간 직후, 그가 문득 말을 걸었다.
[...저의 뭐가, 그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까.]
멈춰서 약간 돌아보니 손자가 드물게도 나이에 맞는... 분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할아버지의 일련의 대응에 적잖게 생각이 들었던 것이겠지.
솔르는 잠시 생각하고, 퍼뜩 깨달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 덩치겠네.]
[...네?]
바리스가 무심코 소리를 높이며, 일어서서는 눈을 깜빡였지만 솔은 그 이상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는 멈춰 서지 않고 방을 뒤로했다.
알현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며 무의식적으로 자조하는 웃음을 지었다.
갈레안 족은 혈통에 따라 상당한 체격차가 있지만, 솔르의 육체는 엄청나게 몸체가 크지도 않다. 아내였던 여성도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도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은 갈레안 족 중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건한 육체였다. 주변에서는 이를 매우 찬양했지만,
솔르만은 내심 꺼림칙하게 생각한 것이다.
결국은 되먹지 못한 것들.
진정한 동포들과는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
짧은 생에 집착하고, 이를 위해 과오를 범하길 반복하는 불쌍한 단편...
그런 걸 알고 있으면서도 태어난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을 때는, 자신이 과연 무엇을 '소망'해버렸던가 ──
결국 그 소망을 받았을 장남은 하찮은 질병으로 명계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그 피와 체격을 이은 자가 지금도 자신의 미혹을 규탄하고 있다.
그렇다, 정말로 ── 싫증이 난다.
남자는 문 앞에 서서, 찰나 눈을 감는다.
귀찮은 일을 모두 내팽개치듯이.
스토리를 잘 알지못하는 입장인데 하나의 세계 (물질계+명계) 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있고 ㅣ 명계-에테르가 있으며 ㅣ 에테르에 사랑 받는 인간들이 있는것 같네요 제 상상으로는 처음 세계를 창조한 (어떤 존재)가 있구 세계의 순환을 위해 하이델린-물질계 / 조디악?-명계 (두 관리자)를 만들고 하이델린과 조디악이 각각 빛의전사와 에테르에 사랑받는 사람들을 (하청 관리자)로 지정해서 세계의 탄생과 죽음 (순환)시키는게 아닌가 하는 상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