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은 한섭에 안나온 토끼 2장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각 Vol은 각각 주제를 가지고 있지요.
Vol1. 책임
Vol2. 실존주의
Vol3. 허무주의, 용서
Vol4. 니체
정도일텐데, 블루아카는 이 각각의 주제를 하나로 묶어보려고 하고 있는것 처럼 보입니다.
1. 책임.
블루아카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제입니다. 책임은 어른이 되면서 가장 짊어 지기 싫은 것이죠.
가히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라고 할 만 하죠.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 성인 조차도 판본에 따라 마지막 말이 아버지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이겠습니까.
헌데, Vol4, 2장에선 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미야코는 즐겁니?'
'책임에 대해 오해하면 안돼.'
'책임은 고행을 짊어지는것도, 싫은 일을 맡게 되는것도, 잘못된 행동에 대한 벌도 아니야.'
'책임이란건, 자신의 행동에 후회가 없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즐거운 것이라야 해.'
해당 vol에서 카야는 초인초인하고 노래를 부르고 댕기지만, 전에 적었던 바 처럼,
몇가지 이유에서 카야는 초인이, 최소한 니체의 초인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중 하나가, 본인은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초인에 대한건 전에 실컷 적었으니 걍 스킵하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정확히 그것을 선생이 말했죠. 즐거워야한다고.
보기전엔 정말 의외의 말이었습니다.
책임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책임이란걸 니체의 초인론에 묶어서 해석을 시도해본것으로 생각합니다.
2. 허무주의
구약의 허무주의는 사실 전도서의 '헛되고 헛되다.' 라는 말 한마디로 대표됩니다.
정확한 문맥의 뜻은 '하느님을 따르는 것 이외에는 헛되다' 라는게 정확합니다.
이걸 현대에 맞게 해석해보면,
'인생 참 짧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외에는 모든게 오래가지 못한다. 짧은 인생,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리?'
에 좀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다만, 니체는 정면으로 이를 부정합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죽였다. 이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니?'
즉, '신은 죽었다.' 에선 영원하고 절대적 진리란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함?'은 그럼 대체 우리 왜사는거냐? 진짜 헛되네. 하는 허무주의로 대치되겠지요.
니체는 이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3. 실존주의
니체의 실존주의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든, 실존주의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뭔가를 위해 태어난게 아니다. 너는 너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라.' 라는 것이죠.
니체는 거기다 한마디 더 붙입니다.
'즐거워야 한다.'
선생이 초인임을 보여주는 장치가 되겠지요.
실존주의는 얼마전에 실컷 말했으니 이것도 스킵.
4. 포스트 모더니즘
모더니즘은
'우리가 익숙하게 했던거, 전부 다 틀린거 같어. 우리의 감상을 버리고 이성과 계산을 따져보자고.'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이고 뭐고, 뭐 하나 믿을만한게 없네! 좀 더 근본적인것부터 다시 생각해야한다.'
가 요점이 될것 같습니다. 니체가 이에 속하고, 실존주의가 이에 속합니다.
약간 의아한건, 블루아카는 모더니즘의 세계관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프랜시스가 포스트 모더니즘계 예술이니 모더니즘과 적대하는건 그럴 수 있지만,
사실 니체철학이나 실존주의 전부 포스트 모더니즘의 계열인데, 이를 통해서 재해석을 시도해보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실존주의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언젠가 헤일로가 혹시 모티브가 있는 사물/인간에 한해서나오는게 아니냐 하는 글을 적은 적 있는데,
아마도 실존주의가 관여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거든요.
사실 모더니즘인지, 포스트 모더니즘인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겠지만, 모더니즘화가 프랜시스가 상당히 노골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의 장르를 들고왔거든요.
어쩌면 프랜시스는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 했을 뿐, 들리기에 포스트 모더니즘 처럼 들린 것일 수도 있지요.
현실은 의도도 없고, 이해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장르적인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오히려 만들어진 이야기인 블루아카가 더 알기 쉬운 이야기일테니까요.
아니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일부는, '언어도 못믿겠고, 커뮤니케이션도 못믿겠고, 과학도 못믿겠다. 결론을 냈다고? 결론이 내진건 어떻게 믿어?'
에서 출발하여, 반 지성주의가 되거나, 결론을 내는 일을 경계하는 만큼, 이들을 이야기한것 일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5. 색채
색채는 모티브에 빗대어보면 '죄'죠... 그 성인이 인류의 죄악을 대신 짊어졌으니까요.
근데, 왜 색채가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있을까요?
니체철학에선 전에도 적었지만, 걍 한마디로 하자면... 죄책감을 존나 쓰잘대기가 없는거... 정도 취급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죄는?
피마새 인용 똑같이 두번째로 해보겠습니다.
"규범보다 무의미한 것은 없다. 엄밀히 말해서 규칙은, 규범은, 윤리는 한계짓는 능력 밖에 없다.
반짝거리기나 흐르기, 끓기를 금지하는 도덕이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규칙과 규범과 윤리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밖으로 나아가는 대신 안으로 한계 짓는다.
죄를 저질러라! 증오해라! 죽여라! 규범을 무시하고 죄를 저지를 때, 타인이 안간힘을 다해 지키는 것을 거리낌없이 빼앗아 마실 때
생은 장절한 날개를 펼치고 미답의 하늘로 날아간다! 그 하늘에서 너희들은 반짝거리고, 흐르고, 끓을 수 있다!"
즉, 모티브가 '죄'이면서도 뭐든지 할수 있는 능력... 이 색채로 해석되는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겁니다.
6. 죄책감
다만, 작 중내에서 정말로 죄책감이란걸 못 느끼는 카야는?
저는 다음 주제로 죄책감이 주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최소 두명의 극단적인 예가 있거든요.
책임과 죄책감으로 유메를 잊지 못하는 호시노와, '아무리 그래도 넌 좀...' 싶은 카야가 있거든요.
여기서 또 다른 작품을 끌어오자면...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주제는 죄책감이었습니다.
작중에선 죄책감이 모든걸 바로 잡고, 속죄를 하는데 성공하게 했거든요. 뭐... 깔끔하게 되진 않았지만.
저는 다음 주제로 죄책감이 주제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