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렌지 주스 공장이 하나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난 그 공장의 사장이라고 치고.
우리 공장은 1년에 오렌지 100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정 수준의 품질도 요구되고. 그런데 우리 공장에서 100km 떨어진 더글라스 라는 사람의 농장에서 매년 오렌지 100톤이 생산되고 있다. 찾아가서 확인해보니 오렌지의 품질도 내가 원하는 수준에서 맞춰줄 수 있고. 그렇다면 아주 쉽다. 더글라스 씨와 계약을 맺고 오렌지가 수확되면 트럭 보내서 100톤 실어오면 된다.
이제 두 번째 상황을 상상해보자. 오렌지 100톤이 필요한데 샘이라는 사람 농장에서 10톤을 생산한다. 로버트라는 사람 농장에서도 10톤을 생산한다. 이렇게 10군데 정도의 농장을 확보해야 필요한 오렌지 100톤을 맞출 수 있다. 문제는 내가 10군데의 농장의 품질을 다 살펴볼 수가 없다. 1군데라면 틈틈이 가서 체크를 하면 되지만, 10군데나 되는 곳을 매번 가볼 수도 없고, 가는 거 자체도 일이다. 그렇다면 나 대신 오렌지의 품질도 관리하고 각 농장마다 계약하고, 업무협의를 할 곳이 필요하다. 이게 유통업체인 A가 된다. 당연히 이 사람도 일하는 댓가를 받아야 하니 오렌지 가격에서 수익을 가져간다. 이제 난 A업체에서 가져온 오렌지 100톤을 품질검사만 하면 된다.
사실 여기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오렌지 농장이 사실은 10군데가 아니라 40군데쯤 되고, 지역도 어디는 캘리포니아, 어디는 플로리다 이런 식으로 떨어져 있다. A업체가 40군데를 다 도는 건 둘째치고, 거리의 한계로 다 돌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A업체는 각 지역에서 자기들의 일을 맡아줄 업체를 선정했다. 캘리포니아는 C업체, 플로리다는 F업체를 둔다. 당연히 이들도 일한 댓가를 가져가니 오렌지 가격에서 마진을 챙긴다.
벌써 두 단계의 유통이 추가되었다. 그 만큼 오렌지의 가격은 산지에서 나오는 것에 비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자, 이제 생산된 오렌지 주스를 팔아야 한다. 우리 공장 앞에 좌판을 열고 소비자들이 찾아와서 몇 천, 몇 만 개씩 사가주면 좋겠는데 그럴 수가 없다. 기껏해야 10개들이 묶음으로 사간다면 재고 쌓아둘 공간부터 돈이 들어갈 거다. 사실 소비자들이 시간 내서 찾아온다는 거 부터가 힘들고.
앞에서 원료 오렌지를 사오듯, 파는 거 역시 대규모로 주스를 사가서 보관할 총판, 그리고 그 총판에게서 주스를 구매해서 각 지역별로 파는 소매유통이 추가될 것이다.
과도한 유통망이 상품, 특히 농축산물의 가격을 올리는 건 맞는 얘기다. 문제는 그 '과도함'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데 있다. 가끔 유통망 얘기 나올 때 '나라도 좁은데 뭐 그렇게 유통망이 많냐'라고 하는데, 사실 좁아서 유통망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위에서 말한대로 한 농장에서 오렌지 100톤을 생산하면 굳이 중간에 뭐가 낄 이유가 없거든. 하지만 그런 식으로 대규모 경작을 하는 나라는 세계에 몇 개 없다. 기껏해야 미국 정도.
그리고 전가의 보도처럼 나오는 '직거래'가 쉽지 않은 건 우리도 직접 체험해볼 수가 있다. 우리도 직거래를 할 수 있거든. 중고거래라고.
수 많은 사례의 신기한 중고거래가 바로 그 '직거래' 중 하나라는 걸 생각해보면 뭐든 '쉽지않다'는 걸 알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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