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나가 일전에 세운 거점은 안타깝게도 철충의 습격으로 파괴되었으나
요안나는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를 많이 가져왔는데
그중에서는 기록이 완벽히 말소된 섬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대기업들의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특히나 삼안의 데이터베이스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의도적으로 정보가 삭제된” 그런 섬...
처음엔 김지석이나 다른 고위 간부들의 피난처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럴 경우 오히려 심층부에 있는 서버들에게는 남아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런 정보가 아예 남아있지 않으면 나중에 유사시에
구출하려는 휘하의 세력이 추적하기 어려워지니까.
레모네이드 델타와 다른 일련의 일들이 끝난 후, 여러 소규모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나에게 문뜩 그 섬에 대한 정보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다른 아이들에게 이 정보에 대해 논하고
마지막에는 아르망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아르망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내게 가능성을 제시했다.
“폐하, 혹여라도 고위 간부이기에 암살하기는 껄끄러워지고
역으로 타인의 눈을 피해 유폐하기 위해 그 섬으로 보냈다면...”
아르망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핵심 간부였기에 암살하거나 납치해 적대하는 이들처럼
푸대접하면 다른 이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기에
퇴사를 가장하여 유폐해 버렸다면..
게다가 평범한 섬이라면 이렇게나 정보를 은폐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버려 두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에이다에게 연락했다.
“에이다. 들려?”
“수신 양호, 사령관님. 오래간만의 연락이시군요.”
“우리가 입수한 정보 중에서 정보가 의도적으로 은폐된 섬이 하나 있어.”
“네.”
“경도 8‘’32, 위도 151‘’ 45 지점을 스캔해 줘.”
“수신했습니다. 그 지점을 지나는 정찰 위성이 있으니 스캔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에이다가 말을 마친 잠시 후, 에이다는 내게 스캔 결과를 말했다.
“해당 지역에 연구소처럼 생긴 건물을 확인하였습니다.
제 명령권에서 벗어난 특수 AGS 개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 신호 또한 잡히지 않습니다.
연구소 내부의 심층 분석은 어렵지만
적어도 건물 밖 경비 병력은 없고, 광활한 작물 지대가 펼쳐져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작물이 펼쳐져 있는 지대라...
어쩌면, 방사능이나 여타 유전자 오염을 빗겨간 그런 작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연구소 건물이라니.. 직감적으로는 저기에 가면
왜 이 섬이 기록에서 삭제됐는지
알아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고마워, 에이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볼게.
오비탈 와쳐 쪽은 별일 없지?”
“현재 우주 궤도에 있는 전략적 자산들은 문제없이 운용 중이며
휘하의 AGS또한 무리 없이 운용 중입니다.”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야. 앞으로도 오르카 쪽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줘.”
며칠 후, 일정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이 섬을 탐사하기 위한
편성 조를 꾸리기 시작했다.
먼저 우로보로스 휘하의 스카이 나이츠 아이들에게
전략 정찰 비행을 부탁했다.
위성에서 잡히지 않는 철충이나 혹은 레모네이드, 아니면 제3 세력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하에 이루어진 일이였다.
아이들이 전략 정찰을 저고도에서 마치고 난 분석 보고서에도 아무런
적의 위협이 발견되지 않았다. 마치 온 섬 전체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섬의 일원들도 휩노스 병으로 사망한 걸까... 아니면...?
나는 정찰 편대의 아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080기관의 아이들에게 적대적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으니
온 섬에 퍼진 작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예상대로 섬의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은
유전자 변형에서 안전했다.
닥터는 눈을 빛내며
“이 정도 수의 순수한 유전자를 가진 다량의 작물을 지금 당장 조리한다면
많은 수의 이들이 굶주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게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소완 언니라면 분명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미식을 맛보게 해줄 거라고
내게 섬을 탐사하자는 말을 건넸다.
과학 분야에서는 그렇게나 철두철미한 닥터가 순수한 샘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눈을 반짝일 정도라면, 연구소에
잠들어 있을지 모르는 기술을 제외하고서라도 작물을 확보할 가치는 있었다.
그러나 080 기관의 아이들이 보고하기를
연구소의 입구가 인간의 명령을 받은 바이오로이드들 조차
열 수 없고 인간이 직접 와야만 열리는 인식 장치가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시설인 건 분명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엄중한 장비를
설치한 거지?
그것도 기록을 말살시킨 섬에서 말이다.
김지석의 시설처럼
기업 중요 요인의 피난처일까?
아니면 정말로 누군가의 유폐를 위한 시설인 걸까?
나는 고민 끝에
섬 탐사조를 편성했다.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연구소에 인간이 반드시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기술이 숨겨져 있다면... 그리고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면
직접 나아가겠다.
“아아, 레후상뱀! 작물들 꿍쳐서 부대찌개 해 먹으려고 했는데
사령관님께서 직접 행차하셔서 그 계획이 수포로 됐지 말입니다!”
“조용히 해, 브라우니! 그걸 꼭 큰 소리로 말해야 겠어?!”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이 해안에 상륙하자마자 옥신각신 다투었다.
내 곁에 있던 리리스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얼굴을 찌푸릴 따름이었다.
철두철미한 리리스의 성격상 저런 일은 좋아하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리리스에게 고개를 돌려 괜찮아. 라고 제스쳐를 취하며
작게 중얼거렸고
금세 리리스의 표정이 풀어졌다.
닥터는 아자즈와 함께 신난 나머지 볼을 붉히며 꺄르륵 거리는 중이었다.
아자즈는 원래 탐사조에 포함되어있지 않았으나,
닥터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 모양이였다.
지금 타 업무에 편성이 되어있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론 아자즈가 보면 좋아할 것들이 연구소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니
함께 편성했다.
우리가 해안가에 있는 언덕을 넘어가자, 080기관의 아이들이 말했던
드넓은 작물들의 초원이 펼쳐졌다.
쌀, 밀, 감자, 사과... 그 수많은 섭취 가능한 작물들이
우리 앞에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이 작물들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의 대지 아래
그 어떠한 유전자의 변형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우리들을 손짓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멸망전쟁 이전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놀라면서 작물에 대해 기대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마음 한켠이 미어졌다.
인간이란 무엇이었을까?
나와 동류가 되는 이들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바이오로이드, AGS 친구들과 만나며
인간에 대해 들었다.
추악한 존재, 우주마저 더럽히려는 존재, 바이오로이드들을
노예로 부리는 이들...
특히나 키르케가 들려준 테마파크들의 실상을 들었을 때는
동족 혐오가 밀려와 내 스스로가 미워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끝까지 인간다움을... 나는 전해지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잃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쪽의 나를 잘 부탁해!”
리앤이 보여준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서 만난 셜록 키무라.
키무라와 같은 이들은, 세계의 국운이 다하는데도
최대한 생명으로써의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세상이 불타더라도 뒤집으려는 이들의 바램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는 살아가겠지만
나는 그들의 유해만을 맞이해왔다.
“큭...!”
나는 잠시 감상에 젖고 말았다.
눈을 떠 지금까지 노력한 5년간, 나는 다른 살아있는
인류를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철의 왕자겠지만
그는 출발지는 인간이었으나, 종국에는 철충이 되었다.
슬픔에 빠진 나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주인님, 괜찮으신가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자, 콘스탄챠가 서 있었다.
콘스탄챠. 그리폰과 더불어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나의 잠을 곁에서 지켜준 아이.
물론 다른 아이들은 내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러나, 나를 처음 깨운
그리폰과 콘스탄챠에게 크나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응? 으, 응.. 괜찮아. 콘스탄챠.”
“주인님께서 눈물을 보이시는 것은 처음이세요. 리리스 언니두 아까부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계셨지만, 말씀을 못 하고 계셨구요.”
고개를 돌려 리리스를 보자, “주인님, 괜찮으신가요?”라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잽싸게 눈물을 닦고
“가자, 이런 곳에서 감상에 젖어있으면 안 되잖아?”
라고 말했다.
리리스는 감상에 젖는 게 아니라 그냥 젖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