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오락 기판 수집을 취미로 하면 왜 이것만으로도 바쁜가?

[playero]

안녕하세요. playero 플레이어로 입니다.

오락 기판 수집을 취미로 하면 왜 이것만으로도 바쁜가?

오늘은 이 이야기를 잠깐 해볼게요.

이탈리아에 있는 Seller 로부터 구입한 기판이 어제 하나 도착했습니다.

왜 오락 기판을 해외에서 구입하느냐?

그것은 우리나라에 오락 기판이 생각처럼 다양하게 많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들어 오락 게임의 패러다임이,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PC방으로 넘어가면서 오락실들이 침체되기 시작하자

조금씩 조금씩 많은 오락실들이 폐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오락실의 폐업과 함께 수많은 옛날 오락 기판들이 국내의 세운 대림상가 / 청계상가 등의 기판 가게로 들어왔고

이 기판들은 전 세계로 팔려나갔습니다. 

현재도 현업에 계신 오락 기판 전문점 사장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로 동남아시아나 중국 등으로 엄청나게 많이 팔려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중반의 경우 동남아시아 등은 국내에 비해 인터넷 등의 인프라가 좋기 힘들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오락실 게임 또한 국내에서 무척 저렴하게(헐값에)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 윈윈하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스트리트파이터2대쉬 를 주로 플레이하는 정인게임장의 스파2 애호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중국에 스트리트파이터2대쉬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우리나라처럼 90년대 초중반이 아니라, 90년대 후반~2000년대 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나 일본 등에서 어느정도 히트하고 난 뒤에 몸값이 싸지고 찾지 않으면

동남아나 중국 등의 국가에서 저렴한 가격에 수입해가서 그 나라들에 유통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이나, 이베이, 해외의 오락 기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용자들 중에 보면

중국인들도 꽤 많고 (일본인은 의외로 별로 없습니다), 파키스탄 과 같은 동남아 사용자들이 은근 보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락 기판 콜렉터들이 찾아 헤매는 귀한 기판들이...

아직 이들 동남아 등지에 많이 숨어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릴때 좋아했던 게임들을 기판으로 구해서 플레이하겠다 는 의지를 가졌다면...

국내에서만 눈을 돌려서 답을 찾긴 힘들고...

이베이나, 해외 사용자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일본옥션이나 심지어 일본의 오락 기판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샵들에 까지도 눈들을 돌리게 됩니다.

이야기가 조금 샜네요.

이렇게 거래를 하다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셀러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들은 그 나라에서 오락 기판 관련 업을 하는 사용자거나

혹은 나보다 빨리 오락 기판 수집을 시작한 콜렉터거나...

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거래를 한두번 트게 되면 신용이라는게 쌓이겠죠?

지속적으로 기판을 입수할 수 있는 해외의 셀러... 채널이 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언어의 장벽이 있지만

요새는 네이버의 파파고 같은 번역서비스도 굉장히 훌륭하고,

어짜피 대화의 주제가 넓은게 아니라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의사소통은 됩니다.

이 취미의 시작은 이러한 언어의 장벽을 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이러한 사용자들과 관계를 넓히는 데에도 일정 시간이 소요되구요.

한편으론 이베이 와 같은 해외의 물품 매매 서비스에서

내가 필요한 매물을 검색하는 데에도 시간을 쏟게 되구요.

일본옥션 등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도 경험하게 되죠.

굉장히 주기적으로 이들 매물 사이트에 올라오는 경매 매물 / 판매 매물 들을 모니터링하며서

괜찮은 매물들을 낚는 전문가(?) 분들도 계십니다.

이렇게 오락 기판을 구입하여 국내로 들여오게 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위의 기판이 이탈리아 로부터 구입한 기판인데

Metro 라는 회사에서 나온 스카이 얼럿(Sky Alert) 이라는 제목의 게임입니다.

그런데 기판을 받아서 제가 가지고 있는 오락 기통 (아케이드 캐비넷)에 연결해서 전원을 넣어보니

작동이 되지 않더라구요.

네. 오락 기판이 오랜 배송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애초에 고장난 기판을 보내는 셀러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셀러를 신뢰 못하는 경우도)

다만 이번에 제가 구입한 셀러는 제가 신용하는 셀러이기에

배송 과정에 문제가 생겼거나, 간단한 정비로도 해결이 될 수 있을 문제라 판단했기에 직접 할 수 있는데까지는 정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보통 오락 기판이 부팅이되지 않는 것 (업자들 사이에서는 화면이 안까진다 라고 표현합니다)의 이유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게임을 구동하는 데에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메모리(EPROM)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화면 자체가 나오지 않고(안까지고) 멈춰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 경우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메모리가 죽었거나(dead),

접촉 불량 으로 기판에 제대로 신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이 바로 EPROM 이라는 메모리인데,

지금은 microSD나 SSD, 하드디스크 등의 저장장치를 쓰고, 그 전에는 zip드라이브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 등을 썼죠?

그런데 그보다 더 이전에는 저런 형태의 메모리들을 썼었습니다.

양쪽으로 다리가 달린 타입 DIP(dual in-line package) 이라고 부르고... 옆에 달려있는 금속 핀이 신호를 전해주는데...

그 옆에 까만 때가 꼬질꼬질 꼈죠?

저런 때가 접촉을 막으면서... 데이터를 제대로 기판에 전해주지 못해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단 제가 해볼 수 있는 것은

저 때를 박박 벗겨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락 기판의 상태를 보니

저 EPROM이 고정되는 소켓 에도 때가 꼬질꼬질 끼어 있어서 접촉 불량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소켓에서 모든 EPROM을 제거하고...

PB-1 세척액을 이용해서 깨끗하게 물빨래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기판에서 이피롬을 뽑아서...

한쪽에 잘 보관해준 후에... (이피롬 다리들은 접촉불량이 안나게끔 청소해주고)

오락 기판은... PB-1 세척액을 뿌리고

솔과 붓으로 깨끗하게 세척...

특히... 이피롬의 다리가 들어가게 될 소켓 안쪽도 솔을 이용해서 벅벅 닦아내주었습니다.

물세척 사진을 안찍었는데,

그냥 설겆이 하는 것처럼 물 콸콸 틀어서 기판에 물 적셔주고 pb-1 세척액 뿌려서 거품내서 닦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잘 세척을 해준 후에 하루 정도만 말리면 작동하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들 관리합니다).

이렇게 정비를 마친 후에

기판을 가동해보았더니 다행히 제가 예측했던 원인이 맞았는지...

게임이 구동되며 화면이 잘 나옵니다.

그런데 아직 문제가 있습니다.

소리가 안납니다.

화면만 나온다고 오락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오락 게임에 있어서 소리는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소리를 담당하는 이피롬의 접촉불량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소리를 출력해주는 기판의 부품이 고장난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

아예 기판 자체에 많은 부품들이 죽어서 작동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판은 잘 보다보니

기판의 사운드 관련 부품 (보통 사운드 앰프는 열이 많이 나서 방열판 붙어있는 부품이 사운드관련 부품입니다)

근처에 있는 커다란 컨덴서가 제대로 고정이 안되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니까 다리가 하나 끊어져 있네요.

오래된 기판이다보니, 노후화되기도 했고

배송되는 과정에서 충격 등으로 컨덴서 다리가 끊어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컨덴서는 현재도 대체품이 생산되기 때문에

맞는 용량의 컨덴서를 찾아서 교체해주었습니다 (16v 1000mf)

그랬더니 빠방한 소리와 함께

정상작동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장이 났던 오락 기판이 정상작동하는 것을 볼때 느끼는 쾌감은

정말 이루 말하지 못합니다. :)

오락 기판을 취미로 한다는 것은

넓게보면 이렇게 기판을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정비하고 보관하고 즐기는 과정을 두루 포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오락 기판으로 게임을 즐기는 분들과의 교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에 하나구요.

정비가 다 마쳐진 상태의 기판 같지만

사실 아직 제가 볼때는 조금 부족합니다.

왼쪽에 구리빛으로 보이는 금속부분이 오락 기통과 연결되는 JAMMA Edge Connector (잠마 에지 커넥터) 라고 부르는데요.

저 부분의 피막이 다 벗겨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납을 입혀서 싹 한번 정비를 해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서,

아직은 오락 기판 전문 상가에서 영업을 하고 계신 전문 수리점의 사장님을 찾아가서 부탁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보시기에 재미있어 보이시나요?

오락 기판을 취미로 하는 것만으로도

왜 바쁜지... 조금은 설명이 되었나요?

그럼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layero

[dkdltm]

물로 씻는다고요?

[파가니존다S]

ㅎㅎ 저도 버파 2.3탄 기판 다 물로 씼었는데
완전건조 가정하에
아무문제 없습니다.

[6300]

저도 먼지가 쌓일대로 쌓은 그래픽카드 가지고 물로 대충씻은뒤에
몆주정도 말려서 물기없이 완전건조 시키고나서 지금도 잘쓰고 있습니다.
물기 하나없이 완전건조만 하면 문제없습니다

[오리지날LEE]

예전에 물날리로 가전제품 as하는걸 봤는데
흙탕물에빠진 브라운관티비를 깨끗한물로 세척후 햇볕에 말리고 조립히니 멀쩡하게 켜진걸 봤네요.

[playero]

수리점들에서도 다 물빨래 합니다. :)

[루리웹-5470640337]

저도처음알았습니다.

[C++ 좋다]

예전에 태풍으로 가게가 통채로 수몰되서 안에 있는 컴퓨터도 몽땅 젖었는데
수돗물로 잘 씻어서 말린뒤에 멀쩡하게 잘 사용했어요.

물에 젖은 상태에서 전원을 공급하지만 않으면 물에 넣는 것 자체로는 장기간 담궈두지 않는 이상 큰 데미지는 없어요

[izuminoa]

옛날에
세운상가 아저씨들이
청계천 개울가에 앉아서
기판 씻는다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님

[흑맥주_매니아]

신기하네요. 처음 알았어요.

[소라넷]

몰랏슴? 군대에서 총 물세척 한번도 안해봄???

[루리웹-3400401910]

어릴때 게임보이 못하게 하려고 엄마가 물에 완전 담궈놨는데,, 꺼내서 켜보니 액정도 제대로 안나오고
고장났다 생각하고 한참 쳐박아 뒀는데,, 며칠 후 물기 완전히 마른 상태에서 그냥 한번 켜보니
액정도 제대로 나오고 아무 이상없이 실행되서 신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자제품은 물기만 마르면 되는거 같습니다,

[르한]

능력자시네요ㅕ

[playero]

재미있어서 즐겁게 즐기고 있습니다. 감사해용.

[가]

부식 조심해야 할듯 하네요

[playero]

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오락 기판 보관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글을 써보겠습니다.

[VㅇL cㅇm]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기판수집이 쉬운게 아니군요

[playero]

저처럼 안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유난한 것일 수도 있긴 해요 ^^

[브리티쉬]

wow!

[샤스르리에어]

전 빨래 아직도잘 못하겠어요 ㅠㅠ

[playero]

샤스르리에어 님은 더 특별한 능력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저포함!

[샤스르리에어]

아니에요 ㅋㅋ;;;

[Q_Rabbit]

playero님 루리웹으로 오셨군요! 반가워요~
유튭 라이브로 겜하실때 자주 봤는데 요즘은 뜸하시더라구요..ㅎ
화이팅입니다!

[playero]

Q_Rabbit 님 안녕하셨어요. ^^;;
유튜브는 이래저래 요새 방치하고 있네요. 흐~

정해진 에너지는 한정되어있는데, 다양하게 쏟지를 못하겠네요. :)

유튜브 보다 기판 자체에 요새는 계속 집중하고 있어서...
콜렉팅이 어느정도 마무리되구 정비들도 어느정도 되고... 유튜브에 집중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되면...

그때부터 좀 다시 해보려구요.
요새는 애들 케어하는 거랑, 지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네요 ^^

[akii]

와... 보기만 해도 정성이 대단하시네요. 기판 물로 씻는다는 구절에서는 정말 흠칫 놀랐습니다.
컬렉팅이란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닌데, 거기에 더해 정성까지 쏟아야 하니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취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뭐, 천성이 게으르고 귀찮아하는 편이라 알수록 도저히 못 할 취미란 것을 깨닫게 되니 더더욱 존경스럽네요.

[요츠바아빠]

아.... 저도 아케이드 기판 좋아하는데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네요. 시간과 총알의 여유가 생기면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파푸로스퍄큐]

좋네요
진짜 레트로게임 수집의 끝판왕즘 되는거 같은데요.

저도 한번 수집 하고는 싶지만 일단 기판보다 오락기통을 살수가 없어서 구매할수가 없네요 ㅠㅠ
사도 놓을데가 없어서 ㅠㅠ

[빈뚱빈뚱]

개쩌네 ㄷㄷ

[루리웹-5440888568]

모으지는 않아도 오락실에서 가장 재밌게 한 인생 오락기 1개 사는건 누구라도 할만한거 같음. 저도 테크니카 기계 사서 다 분해해서 소형으로 가지고 있는데 가끔씩 게임기 킬때마다 학생때 시내에 있는 오락실가서 겜하던 기억 새록새록 솟아남

[ragrita]

아....옛날 테이블형태의 과일빠징코 기계 한대 구입하고 싶은데....어서 알아봐야할지 감이 안오네요...

[루리웹-9602963184]

옛날 생각 나네요.. 기판 인식 안되면 jamma를 지우개로 벅벅 때 지우고 인식하던 적이 있었는데.

[서울물곰]

멋있는 취미생활하시네요! 화이팅!

[쿠키뭉크]

와... 대단하십니다. 추천 드려요.

[Aphonopelma]

노출된 크기가 커서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을 일이 많기 때문 아닐까요. 다리나 납땜부가 잘 떨어지긴 하죠.

[로베로토]

이분 자넷님이랑 친할거 같아

[nextcube]

저도 레트로 컴퓨터 모을때 분해해서 청소하고 기판 뒷면 다 납땜하고 하다 귀찮아서 접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옛 생각 나네요

[KIMKAPHWAN]

이 게시물 보니까 화면 깨지던 제 기판이 생각나네요. 메탈슬러그 MVS롬팩인데 원래는 안그랬었던것 같은데 어느순간부터 브금이 지직거리고 그래픽 일부분이 글리치가 생겼는데 본문처럼 정비해주면 살아날것 같네요 ㅎㅎ 잘보고갑니다

[루티아미]

물론 전기 문제도 있지만, 물기를 제대로 건조시키지 않으면 녹이 슬죠

[밤사냥꾼]

저의 아버지는 세운상가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어렸을때 칩을 칫솔과 신나에 묻혀 닦는 걸 많이 했죠 그때 아버지 와 친구분들에게 하나씩 기판 모았으면 좋았을텐데 아버지가 직접 장사를 하시니 그냥 세운상가에 가서 오락만 해서 별 생각을 안했다는...

[Blu-ray]

일본 옥션 한번 시작하면 끝없이 계속 하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