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양산형 게임' 이나 '표절작 게임' 의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했던 게임 제작자들은 강화와 가챠, 페이-투-윈 따위에서 자유로우면서도 가장 친숙한 것-옛 시절 경험했던 게임들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한국의 3-40대 게임 제작자들이 어렸을 시절, 집 밖 오락실에는 대전격투 게임과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 슈팅 게임이 있었고, 집 안에는 마리오와 소닉, 그리고 (점프 대신 다양한 살상무기를 사용하는) 록맨이 있었다. 한국의 중소자본 액션게임들은 이러한 소중한 추억들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카르마 나이트', '그랑브릭 슈터'.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메탈릭 차일드' 가 그러하다.
스토리 및 디자인
우리 플레이어는 인터넷 세계를 지나가다 우연히 이세계의 로봇 연구 우주선에 접속하게 되고, 거기서 만난 메탈릭-딸래미 '로나'를 도와 우주선을 장악하고서 지구로 떨어트려 지구 멸망을 획책하는 로나의 인간 모친과 메탈릭-형제자매들을 무력진압한다는 일견 투박해 보이는 스토리이다. 특기할 만한 설정은 플레이어가 로나를 수동 조작하고 있다는 설정인데, '체호프의 총' 이론에 따르면 이 설정은 추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인터페이스와 디자인은 화사한 천연색을 듬뿍 사용해 밝고 현란하면서도 조잡하지 않고 시인성이 좋다. 게이지 끝 부분을 빛나도록 처리해 보기 쉽게 만든 세심한 배려 역시 좋다. 풀보이스를 지원하며 목소리 연기도 한일 양쪽 모두 아동 애니메이션스러운 느낌을 아주 잘 살리고 있다. 무기 아이템 습득 시를 포함한 온갖 상황에 다양한 전용 대사가 출력되며, 체력이 얼마 안 남으면 로나의 헐떡이는 숨소리(누으읏! ASMR!)가 들려오는 등 여러모로 시간과 예산, 정성을 많이 들인 흔적이 보인다. 다만, 미니맵 순간이동이 마우스를 지원 안 한다는 점은 좀 아쉽다.
해외 시장에도 신경을 썼는지, '스매싱 더 배틀' 외국어판에서 눈에 자주 밟혔던 어색한 번역투가 많이 사라져 있다. 특히 일본어 폰트는 다른 언어 폰트와 다른데 숫자가 조금 더 커서 알아보기 쉬워 좋았다.
전투 시스템
겉보기에는 평범한 로그라이트 액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플레이 느낌은 좀 더 독특하다.
방마다 적 3-4기로 이루어진 웨이브 1-2 차례(증원 이벤트로 더 늘어날 수 있다)를 상대로 일대 다 전투를 하게 되는데, 적들의 패턴은 단순하나 근접 적과 사격 적이 섞여 있으며, 높디높은 호전성으로 최적의 위치를 빠르게 잡고서 협공을 퍼붓는다. 진형을 짜고 우세한 화력으로 위협하는 적을 근접무기만으로 무식하게 *돌파*한다는 점에서 무쌍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호쾌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전작 '스매싱 더 배틀' 에서도 보여 주었던 특장점이다. 하지만 스킬의 비중은 줄어들었고 대신 '잡아-던지기' 액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잡은 적은 방향을 조절한 다음 던져서 날려 버릴 수 있으며, 날아간 적은 다른 적이나 벽에 부딪히면 추가 피해를 받고 다운 상태에 빠진다. 여러 적을 동시에 제압할 수 있지만, 적을 잡고 공격하는 동안에는 (여타 액션 및 격투게임의 잡기 공격과 달리) 무적 판정이 전혀 없기 때문에, 경솔하게 사용하면 위에 쓴 것과 같은 '우세한 화력'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래서 잡은 적으로 적탄을 막을 수도 있는데, 잡기 지속시간이 짧긴 하나 숙련되면 근접 적을 잡아 원거리 적에게 배달하는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또한, 게이지를 모아 피해가 누적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일종의 잡기 필살기 '테이크다운'도 존재한다. 이것으로 적을 쓰러뜨리면 (경험치에 해당하는) 코어 추출물이 등장한다. 맞으면 게이지가 크게 깎이므로 무피격 플레이를 유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이지 충전 속도가 매우 느려 무피격 클리어를 해도 2-3개 방마다 한 번씩밖에 못 쓰는 반면, 위력은 (데모 기준으로는) 잡졸의 최대체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과잉화력이다. 조절이 필요한 부분.
보통 게임의 마나에 해당하는 자원은 '배터리'인데, 친절하게도 캐릭터 밑에 표시되어 알아보기 쉽다. 이는 회피 동작 및 잡기 시도를 할 때 소량 소모되며, 무기 스킬을 사용하면 대량 소모된다. 배터리는 전투가 끝나면 완충되며, 코어 효과가 아니면 직접공격을 성공시키는 것 외의 방법으로 회복되지 않으므로, 소극적인 플레이가 제약을 받는다. 스킬은 무기마다 하나씩 배정되어 있으며, 순간화력과 범위는 괜찮지만 연비가 나쁜 강공격 정도의 위치이다. 무기를 교체하는 순간 교체된 무기의 스킬이 비용 소모 없이 발동되므로 연비 문제는 컨트롤로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위력은 의도적으로 시원찮게 조절했는지, 로딩창에서도 대놓고 'MC 스킬은 보통 무기 스킬과 달리 강력하다' 고 설명되어 있다.
MC 스킬은 회복 방법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슈팅 게임의 '폭탄'에 해당하는 강력한 위기 탈출 수단이다. 여러 종류가 준비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데모 버전에서는 방 전체의 적을 얼리는 스킬 하나밖에 사용할 수 없다. 이름(메탈릭-차일드-스킬)을 생각해 보면 '록맨'의 특수무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자연히, 특정 스킬은 특정 보스에게 효과적이며 이를 따라 보스 공략 동선을 짠다면 보스전을 쉽게 진행할 수 있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보스전을 대비해 '폭탄'을 아낀다면 잡몹 구간에서는 덕을 못 볼 것이다)
세 무기 중 '검/방패'는 긴 리치 및 특출나게 좋은 잡기 판정, 구르기 대신 가드(저스트가드 판정을 못 맞췄을 때 이득과 손실이 비교적 적다는 점이 초보자에게 참 좋다)로 개성이 뚜렷하지만 '해머'와 '건틀릿'은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공격속도와 공격력, 구르기 공격 정도 세세한 부분이 다르긴 하지만, 매우 짧은 리치를 돌격력으로 커버하며 구르기로 회피하는 무기라는 위치가 정확히 겹치고 있다. 해머는 휠윈드로 주위 적을 타격할 수 있다지만 위에서 설명한 전투 특성상 적이 뭉치는 경우가 별로 없어 재미를 보기 힘들다. 이 역시 조정이 필요할 듯 하다.
코어
이 게임에서 여타 로그-라이트의 '아이템' 역할을 하는 변수는 바로 '코어'인데, 일시적 버프인 '미니 코어'를 받을 때마다 조금씩 쌓이는 코어 추출물(=경험치)을 이용해 런 내내 지속되는 버프인 '슈퍼 코어'(=레벨)를 획득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의외로 미니 코어의 효과가 슈퍼 코어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받을 수 있는 효과는 로그라이트답게도 당연히 랜덤이며 불이익을 주는 버그 코어도 존재한다. 또한 잡몹 로봇에 아군식별표시를 붙여 만든 동료인 '드론'도 미니 코어의 일종으로서 취급되는데, 태생이 잡몹인지라 호전성이 아주 높아 도움이 많이 된다.
게다가 이 미니코어 슬롯 3개를 정상으로 모두 채우면 공격력과 리치가 증가하는 강력한 버프를 받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 코어 지속시간은 전투 중에만 감소하므로, 해로운 버그 코어를 못 견디겠다면 랭크 감소를 감수하고서 도망다니는 방법으로 빼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후술할 충전소로만 지울 수 있는 '바이러스' 버그 코어 역시 있다) 또한 방 클리어시 등장할 수 있는 코어 충전소를 이용해 새 미니 코어를 받거나, 기존 미니 코어를 강화하고 지속시간을 갱신하거나, 버그 코어를 삭제할 수 있다.
레벨에 해당하는 슈퍼 코어는 로그-라이트에서는 아주 흔한, 4개 중 하나에서 랜덤으로 제공되는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이다. 선택지에는 등급이 있지만 등급이 낮은 선택지를 고르면 다음 선택에서 등급 보정을 받으므로, 진행할수록 거의 확실하게 강한 버프들을 줄줄이 두를 수 있게 된다. 강력한 특정 선택지는 버그 코어 제거시 받는 버그 데이터를 요구하므로, 불이익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미니 코어를 먹어 보는 것을 권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정통파 로그라이크의 냄새 같은 것이 살짝 풍기지만, 완전히 랜덤이므로 아이템 식별처럼 경혐을 통해 피해를 관리할 수단이 없다는 점은 로그라이트의 한계일 것이다.
또한, 미니 코어는 시간제한이 있으므로 드랍된 코어나 코어 충전기를 방치했다가 나중에 사용하는 편이 유리할 때가 많은데, 필요할 때 이것들을 찾아가려고 하면 미니맵에서 표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의도된 플레이라면 미니맵에 표시되도록 하고, 의도되지 않은 플레이라면 '엔터 더 건전' 에서 그러하듯 방을 떠나는 즉시 없애 버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맵 기믹
데모 버전 스테이지인 '고온 연구소' 에서는 이름처럼 일부 방에 화염지대 기믹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다가가면 피해를 입고 밀려나며 잡은 적을 던져넣어 일격사시킬 수 있다. 따라서 현 빌드에 존재하는 10명의 보스 스테이지마다 다른 기믹이 하나씩 준비되어 있다고 유추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정식판 1회 플레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스테이지 기믹의 양과 질은 꽤 풍부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데모 버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맵의 오브젝트 및 특수시설은 '로그라이트'라고 불러주기에도 지나치게 투박하다. '아이작의 번제' 식으로 표현하자면 '보물 방',(분실물 보관소) '상점 방'(상점 및 강화/코어 제작소) '보스 방'(네스트) 세 종류만 딸랑 있는 셈이다. 하지만 랜덤 이벤트로 적이 추가 증원되기도 하며, 데모 버전에는 코빼기도 안 비추었던 인간 생존자들의 일러스트나 우주 비행 미니게임 따위가 사전 공개되었던 점을 보면 정식 버전은 이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옥의 티
드랍된 체력 회복 캡슐이나 캐릭터가 맵 밖으로 빠져 나오는 심각한 글리치가 있는데, 정식 발매판에서 이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을 정말 화나게 만들 것이 거의 틀림없다.
개인 감상
바로 위에 쓴 글리치를 비롯한 다소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특출난 웰메이드 액션 게임. 여러 모로 각을 잡고 욕심을 부려, 아재들의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을 오늘날에 맞는 세련된 형태로 녹여내었다. 정가가 3만 7천원("9월 15일까지 예약 할인가 2만 9천 8백원! 지금 구매하세요!")으로 인디 게임 치고는 매우 비싼데, 이러한 *욕심*이 듬뿍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성글 잘 봤어요 구매하는데 도움이 되어서 기분좋네요
와 수준높은리뷰네요
정성글 잘 봤어요 구매하는데 도움이 되어서 기분좋네요
와 수준높은리뷰네요
수준 높은 리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