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은 고민하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실수 좀 한다지만 이번 건은 너무 컸다.
우유부단한 성격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홧김에 마신 술이 함정이었을까?
언제 줄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알코올이라니. 어찌됐든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질렀다.
지휘관은 M590에게 줄 반지를 그만 Mk48에게 넘겨 버렸다.
아무리 불이 꺼져 있었다지만 그녀의 구릿빛 피부마저 착각하다니. 나의 애정도 사실 별 것 아니었을까.
지휘관은 자책감에 M590을 볼 면목이 없었지만 문제는 한가지 더 있었다.
Mk48이 그 날부터 이상하다.
"흐~응? 계속 나를 보고 있는 거야? 그럼, 뭐라도 해주지 않으면 분위기가 식어버리겠는걸? 우후후."
예전에는 가지고 놀다 재미없으면 버렸던 주제에 지금은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다른 인형들의 불만이 무시 못할 수준이 돼버렸다.
"지금은 부관인 저랑 회의중이잖습니까. 때와 장소는 구분해주세요!"
"네가 쓸모없을 것 같아서 일부러 나와준거야. 감사하라고."
평소보다 거친 M590의 말투에 가슴이 아프다. 그녀는 이럴 거면 왜 부관으로 세웠냐고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무래도 슬슬 둘이서 진지하게 얘기해야겠다.
그날 오후. 지휘관은 굳은 결심을 하며 Mk48과 면담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지휘관? 또 어깨 주물러줄까? 괜찮아. 저번엔 그저 사고였다고 말했잖아, 우후후."
"그게 아니라 Mk48. 너 요즘 행실이 너무..."
"어머, 이 쓰레기 좀 봐. 내가 없으면 대신 청소해줄 인형도 없겠네."
언제나처럼 변함없는 일방적인 대화. 말하는 사람은 쫓고 듣는 사람은 도망간다. 이러니 매번 휘둘리는 게 아닌가.
지휘관은 어떻게든 조용히 끝내려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Mk48의 장난에 그는 그만 폭발해버렸다.
"이제 제발 그만해, Mk48!"
갑작스럽게 울려퍼진 고함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라 어깨를 떤다. 그러나 지휘관은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인형들은 다 숙소로 보냈기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는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단숨에 폭발시켰다.
"매번 남을 깔보기만 하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다른 인형은 대체 왜 괴롭히는거야?
애초에 너한테 준 반지도 사실 M590에게 줄 것인데 착각했던거야! 제발 그만 정신 좀 차리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야겠어?"
홧김에 터진 감정이 결국 할 말 못할 말 다 토해내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나? 어차피 터질 일이었거늘.
지휘관은 숨을 헐떡이며 Mk48의 반응을 살폈다.
분노가 치솟았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표정은 예상과 다르게 너무도 슬퍼보였다.
새빨갛게 변한 뺨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그것은 오래도록 감춰놨던 한 방울 진심이라 더욱 아름다웠다. 그리고 얼마 안가 진심은 땅으로 떨어졌다.
지휘관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차, 이게 무슨 망나니 짓인가. 애시당초 반지를 준 것도 착각하게 만든 것도 자신이 아닌가.
하지만 지나간 버스를 잡을 수 없듯, 뱉은 말은 돌릴 수 없는 법이다. Mk48에게 내지른 고함은 마치 화살처럼 심장을 꿰뚫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 그렇네. 어쩐지 반지를 준 것 치고 별로 기뻐 보이지도 않았어. 하긴 서약을 했는데 아직도 부관이 아닌 인형이 어디 있겠어."
조심스럽게 손가락의 반지가 주인에게서 빠져 나온다.
얼마나 소중히 다뤘는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지휘관의 손에 돌아왔다.
"먼저 가볼게, 지휘관. M590에게는 따뜻하게 대해줘."
눈물을 훔치고 Mk48이 돌아섰을 때 지휘관은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알았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있게 그녀의 팔꿈치를 끌어당겼다.
"지휘관?"
"미안해, 48. 내가 잘못했어. 내가 그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어."
얼마 만에 그녀를 안아보는 것일까. Mk48의 잘록한 허리가 힘없이 그의 품에 안겨졌다.
본래라면 사람 따위 호두마냥 쪼개버릴 수 있건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인형은 더할 나위 없이 약해졌다.
"버리지 않을 꺼야, 지휘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는 Mk48에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M590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느 샌가 좋아하는 인형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
지휘관은 그렇게 자신에게 속삭이며 다시 반지를 그녀의 손에 끼웠다.
그때였다.
그는 지휘실 구석 사물함에 묶여있는 M590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든 안간힘으로 문을 열어서 애타게 그를 바라보는 M590.
그 옆에는 그때 마셨던 술병 여러 개가 천에 감싸여 숨겨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술을 권했던 것도, 다른 인형은 다 물리쳤는데도 혼자 남아있던 것도 그녀였다.
허리를 감싼 Mk48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가녀린 팔뚝은 무쇠처럼 단단하게 지휘관의 몸을 감쌌다.
볼에서 떨어지던 눈물도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애초에 인형이 눈물을 흘릴리 없지 않은가.
"어머나, 급하게 준비하느라고 이런 실수를 해버렸네. 맛있는 건 원래 천천히 익혀야 제맛인데 말이야."
그날처럼 깜깜해진 방안에서 지휘관은 오랜만에 Mk48의 진심을 보았다. 좀 전의 울음은 온데간데 없이 그녀는 그 어떤 때보다 해맑게 웃고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힐끗거리는 혓바닥이 마치 뱀과 같다. 그리고 뱀은 잡은 먹이를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삼킬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형과 단 둘이 되어서는 안된다.
설령 잘못된 애정이라도 인형은 그 달콤함에 몸을 던질테니까.
Mk48은 그대로..는 여기까지.
엥? M950이랑 멀쩡히 얘기하고 있었는데 왜 또 갑자기 묶여있는 건가요?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면담시간 때에 mk48이 몰래 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