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베개
누군가 탄식합니다 귀에는 세상 것들이 가득하여 구르는
홍방울새 소리 못 듣겠네* 고백합니다만, 저 역시 그런 귀
를 갖고 있지요 부끄러움이 차고 넘칠 때 찾아가는 기묘한
가게를 소개합니다 책을 펼쳐 수소문해야 열리는 귀 파주
는 가게, 똑똑 노크하고 들어서니 가만히 반겨주는 그녀가
있네요 말없이 내어주는 무릎을 베고 누워봅니다 세상 것
들이 가득한 귀를 맡겨보아요 귀, 당신이 아니면 함부로 맡
길 수도 없는 마음과 닮지 않았습니까 급소를 내놓는 일이
평화로 바뀌는 건 순간이군요 무릎의 시간 사이, 차가운 귀
이개에 깜짝 놀라던 추운 날들을 잠시 잊어도 좋습니다 나
무의 살을 깎아 만든 귀이개에서 나이테의 속삭임이 착각처
럼 들려오네요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겨놓았던 기억도 그녀
의 손길 아래서는 속수무책, 기억 뭉치들 또르르…… 귀이
개에 달린 새하얀 솜털들이 부끄러운 잔해를 솔솔 털어줍니
다 금세라도 들릴 듯, 아니 들릴 듯 홍방울새 소리 그러나
그녀의 마무리는 언제나 호― 하고 숨결을 불어넣는 일, 이
무릎 아래라면 고요한 죽음도 처음 깨어난 듯한 잠도 가능
할 것만 같아요 오래전 먼지였을 태아마저도 가는 숨소리를
내게 만드는 솜씨, 무릎에 귀를 묻다 고백합니다만, 이럴 떄
우리는 탄식해도 좋겠습니다 자지러지는 저 홍방울새 소리
나는 더 못 듣겠네**
*, ** 이성복의 시「귀에는 세상 것들이」에서.
이은규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문학동네시인선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