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자
네가 싫어, 너 같은 인간이 정말 싫어
그런 눈빛이라면 한 개만 받아도 뒤로 밀릴 텐데 하루종일
이라면…… 모두가 그런 눈으로 나를 훑는구나, 끝까지 가
겠다니까 조언은 더욱 쏟아졌지 그런다고 뭐가 바뀔까? 홍
시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기분, 축축하고 쓰라려, 감인 줄 알
았는데 얼린 돌멩이였지
그래그래, 이런 게 최고의 안티에이징, 돌을 골라내면서
혼자 밥 먹고 혼자 양치하고, 탕비실로 들어가려니까 자기
도 믹스커피가 당길 때가 있다고, 네가 따라 들어왔지 그때
부터 쌔―했어
정말 계속할 거야?
팔짱을 끼고 선배 네가 말했지 누가 준 배역인데 그렇게
열심이니? 아, 선배 너 뒤에 과장, 과장 뒤에 사실은 부장,
부장 뒤에는……
변기 청소용 솔이거나 대걸레나
잠깐 한숨을 내쉬려니까 네가 밀고 들어왔지, 미안하다는
말도 이제 안 할게, 선배는 괄호 열고 내추럴하면서도 죄책
감이 담긴 목소리로 괄호 닫고, 한마디를 꺼냈어
모두가 네 눈치만 보고 있어 제발 그만하자
새로 온 부장 놈은 노래방 중독자, 원래 있던 과장 놈은
등산 중독자…… 겨울에, 산에 데리고 가서는 막걸리에 컵
라면 먹여줘서 고맙다고, 햇빛 쏟아지는 스테인드글라스 밑
에서 울며 간증해야 하니? 과장 놈아, 나는 시들어가요 물
대신 막걸리를 먹고 내내 트림을 하도록 나는 저주받았어요
노래방보다는 등산 중독자가 그래도 훨씬 휴머니스트잖
아
그래, 선배 네 말을 믿고 과장 놈한테 상담했다가 여기
까지 왔지, 황소 부장 새끼 입도 손도 원래 더러운 놈이어
서…… 당장 징계 위원회 블라블라 근육맨처럼 가슴을 두
드렸는데 과장 놈, 왜 나만 피해 다닐까? 이젠 조직도 모르
고 상하도 모르는 이기적인 애, 그게 나래
묘하게 언밸런스하네요? 나는 탁자 위에 텀블러를 내려놨
어 선배 너, 우리 팀 유일한 인간, 내가 몇 살같이 보여? 실
실거리지 않은 유일한 인간, 이제는 흙탕물에 젖은 눈사람
이 되었구나 조금만 움직이면 목이 잘려 떨어질까
저 동네 반찬가게도 못 가요, 아줌마가 반찬 한 개를 얹
어주는데, 이건 또 누가 시킨 건가(세상에, 농약 친 잔디
를 갈아마신 것처럼 울렁거려), 회사에서 여기까지 다녀갔
나……
몇 마디 쏟아내려니까 두둥, 선배 눈이 스르륵 닫혔지
아, 요즘 애들
정말 힘들다
넥타이를 풀더니
종이컵에 가래침을 뱉고, 선배는 나가버렸어.
오늘 같이 있어
박상수, 문학동네시인선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