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ygon] 플스25주년 기념 대담
플레이스테이션이 비디오 게임을 영원히 바꿔놓은 방법
(※ 약간의 오역이 있을 수 있음)
■ 게스트
하시모토 카즈유키 (전 파판7 팀)
야마다 마사노리 (철권 팀)
우츠미 슈지 (전 SCE 어메리카, 제품 취급 부서 부사장)
이와이 마코토 (전 한국 소니SCE 대표)
※쿠다라기 켄 (PS 사업을 이룩해낸 PS의 아버지)
■ 플레이스테이션의 시작
-우츠미 슈지 (전 SCE 어메리카, 제품 취급 부사장)
당시 처음에는 닌텐도와 나눈 이야기가 조금 여러가지로 트러블이 있다고 하여 기획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당시에 이미 Forteza 라는 CD롬 베이스의 슈팅게임을 만들고 있었는데 거의 완성 단계였습니다.
실제로 출시하겠다는 계약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닌텐도 야마우치 사장의 결단으로 "이것은 하지 않겠다'라는 식의
어느 의미로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후 그러면 소니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여러가지 옵션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중에 사운드칩 같은 협력이 엮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다른 대안으로는 세가 같은 곳이 있기는 했습니다.
아무튼 닌텐도와 함께 했었다 하더라도 능숙하게 잘 되지는 않았을 거 같기도 합니다.
회사의 문화가 달랐으니까요.
-하시모토 카즈유키 (전 파판7 팀)
당시 스퀘어 사내에서는 닌텐도는 좀 어려우니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논의를 했습니다.
논의한 결과 사내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는 세가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세가세턴의 메뉴얼은 보게 됐는데 바인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플스 측과는 사이도 돈독한데다, 메뉴얼도 전부 제본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보력에 있어서 그 제어 방법이란게 달랐습니다.
외부인이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런 바인더로는 개발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플스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플스에 붙게 됐죠.
-야마다 마사노리 (철권)
당시 남코에서는 북미에 새로운 거점을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던 터라 거기에 지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그것이 무산되버리는 바람에, 저로서는 3DO 기기에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3DO를 테스트 해보게 됐는데, 생각과는 달리 조금 부족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상사이셨던 분이 더 굉장한 것이 있다면서 한번 테스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해보겠다고 테스트를 해보게 된 것이 첫 플스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이와이 마코토 (전 한국 소니SCE 대표)
당시 소니의 SCEA(아시아)와 SCEA(미국)는 지분 관계가 없었습니다.
'소니 픽처스'의 자회사인 '소니 미디어 웍스'의 이름을 바꾼것이 SCEA 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미국쪽 사장은 보고를 올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모든 것을 두고 쿠다라키 켄(플스의 아버지)과 다쿠곤 했습니다.
그러니깐 왜 일개 프로그래머머이자 엔지니어 따위가(쿠다라기 켄)
이래라 저래라 하는냐며 불평이였습니다.
그래서 소니 회장인 오가씨가 중재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SCEA 사장은 계속 불만을 얘기했었고, 이를 가만히 참고만 있을리 없었던 쿠다라기씨는
멤버 전원을 짤라버릴 수도 있다며 허풍을 치기도 했습니다
■ 플레이스테이션 개발 승인
-우츠미 슈지 (전 SCE 어메리카, 제품 취급 부사장)
당시 일본은 닌텐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북미는 세가와 닌텐도가 양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쿠다라기 씨가 고심해보기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3D 게임을 내놓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레벨을 내놓자는 것이었습니다.
소니뮤직 출신 멤버들은 새로운 하드웨어를 통하여
게임의 문화를 바꾸자는 의욕을 갖고 있었고,그 생각해낸 계획으로 여러가지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닌텐도는 서드파티가 만들 수 있는 게임의 수가 정해져 있었기에 협력사의 수가 한정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소니는 매체가 CD롬인데다, 그 리드타임(제조소요시간)도 빨랐기에
여러 회사 및 많은 게임 종류를 모아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기획을 가지게 됐고
그렇게만 한다면 닌텐도와 대등해질 수 있거나 어쩌면 닌텐도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계획안을 세워 당시 오가 회장 앞에서 프래젠테이션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오가 회장은 그 유명한 일화인 'Do it'이란 말로 승인을 내렸습니다.
해버려! 라는 말이었습니다.
오가 회장은 소니와 소니뮤직의 벤처로서 회사를 만들라고 그랬습니다.
각 회사 산하에 있어봐야 기동력도 없고 문화도 다르다는 지시까지 하셨는데, 매우 놀라웠습니다.
■ 플레이스테이션의 개발 난항
-우츠미 슈지 (전 SCE 어메리카, 제품 취급 부사장)
PS의 하드웨어 내부 스펙이 정해졌을때, 소니의 반도체 그룹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깐 그게 작동될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쿠다라기 씨는 반도체 그룹과 다투기도 했습니다.
아마 여러모로 고심이 있었을 겁니다.
거기다 소니 내부에서는 그 금액으로 가능하겠냐면서 회의적이기도 했습니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전 파판7 팀)
처음 그 프로토타입을 모습을 봤을때, 커다란 상자에 들어있었습니다.
그 속에 태크 데모가 들어가 있었는데 텍스처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 매우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대체 얼마에 팔것인지 의문이었습니다.
1만달러? 2만달러?
당시 실리콘 그래픽스의 Personal Alice 25TG라는 것이 있었는데,
느끼기로 플스의 퍼포먼스가 더 좋았습니다.
그런데 Personal Alice는 10만달러나 나갔습니다.
그런데 소니 측은 '우리는 800 달러'라고 그러더군요.
그 후 최종적으로 400달러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번들로 299달러에 팔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엇?? 세상이란건 참 변하기 마련이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야마다 마사노리 (철권)
당시 철권1 아케이드판 개발은 1년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후 3달이 걸려서 PS 이식을 해냈습니다.
그런데 또 반년 후에 철권2 아케이드 버전을 내놨습니다
그리고 또 반년후에 PS이식을 해냈죠
그 당시에는 저를 비롯하여 모두 멤버들이 다 주말에도 집에 돌아가질 못했습니다.
(참석자: 지금에 와서 보면 블랙 기업이네요)
(참석자: 하지만 여러 회사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웃음)
그래서 집에 돌아가고 싶을때는 '죄송합니다. 기획을 따 오겠습니다'라며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그러면 상사는 '너 이녀석들 잠자러 돌아가는건 아니겠지?'라며 나무랬습니다.(웃음)
그러면 저는 꿀먹은 벙어리 처럼 아무런 말도 하질 못했습니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전 파판7 팀)
파판7의 실질적인 개발은 10개월이 걸렸습니다(데모 출시전 까지)
전년도 12월까진 개발 툴을 만들고 있었고,
그 다음에 1월 부터 프로덕션이 돌아가기 시작하여 10월 부터 모니터링을 시작했습니다.
(참석자: 토발 No.1 같은 이상한 게임에 데모가 들어가 있었죠(웃음)
그걸 만든건 철권 팀입니다(웃음)
■ 3D게임 보급에 대한 기여
-하시모토 카즈유키 (전 파판7 팀)
당시 게임들 대부분은 2D 제작 방법으로 캐릭터를 표현해가며 진화했습니다.
그런데 3D 폴리곤이라는 3차원 기술이 들어오게 됐죠.
폴리곤 기술이 과도기였기 때문에, 당시 클라우드의 손만 보더라도 사각형 모양의 정육면체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그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궁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고생한 것은 애니메이션 데이터였죠.
모션데이터는 상당히 큰 데이터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간소화할 수 있을지가 과제였습니다.
다행히도 당시에는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깐 플레이스테이션이 기회가 되어 3차원 기술이 게임 업계에 채용되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CD 매체 보급
-야마다 마사노리 (철권)
해본적이 없는 것을 해본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CD로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CD라는 것은 원래 음악에 쓰이던 거잖습니까?
그런데 CD에 게임 플랫폼으로 쓸만한 기술이 있다는 것을
저조차도 전혀 몰랐던 상태로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CD 롬을 양산하는 공장으로 데려가겠다고 그러더군요.
그야말로 음악 업계에서 사용하는 CD 샘플 공장에서서 양산하도록 해달라 한다 그랬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라인을 막을 것이다 라고 그랬습니다.
MASK ROM(카트리지)는 그 라인이 굉장히 길었습니다.
물건을 만들어 낼때까지 수개월이 걸렸으니까요.
하지만 그에 반해서 CD 롬은 몇일, 엄밀히 말하면 몇주만에 대량 생산이 가능했습니다.
저로서도 굉장히 큰 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 쿠다라기 켄의 일화
-야마다 마사노리 (철권)
당시 20~30명이 모여서 소니의(SCE) 엔지니어들에게 질문을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이것 저것 많은 질문 준비하여 질의를 했습니다.
그중에 캐쉬 미스가 몇 사이클 정도되면 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아닌 쿠다라기 씨가 답변을 해주더군요.
무려 질문의 절반 정도를 쿠다라기 씨가 답변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모두 놀라며 "이 아저씨 대체 뭐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철권을 개발하고 있을때였는데, 쿠라다리기 씨가 한번 보러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전에 게임이 멈춰버린 문제가 발생한 상태였고,
오후나 돼서나 겨우 움직이게 됐었습니다.
그것을 본 쿠다라기 씨가 사람을 불러주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오게된 사람이 소니의 마사카즈 스즈오키 씨였는데, 하필 신혼중이였습니다.
그는 전화로 '미안해 오늘 못 돌아갈 거 같아'라며 통화를 하더군요.(웃음)
그런 얘기 까지 들어가며 아침까지 노력을 했었는데,
4~5 가지 정도 손봤으니 어느정도 잘 될것이라 하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아침까지 노력해준 덕분에 겨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하드웨어 문제가 아니라 버그 같은 것을 수정한 패치였습니다.
-하시모토 카즈유키 (전 파판7 팀)
FF7을 만든 후에 쿠다라기 씨를 만날 가질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기억하기로 쿠다라기 씨가 늘 말씀하셨던 것은 '더욱 큰 비전을 가져라'
'목표를 더욱 높게 가져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러가지로 기술적인 것에 구애되니깐,
구다라기 씨는 '그런 것만 말하니깐 안되는 거야'라며 자주 저를 혼내곤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모두 다 이런걸 하고 있다고, 그런 작은 것에 집착하는 말은 하지 마"라고 그랬습니다.
-이와이 마코토 (전 한국 소니SCE 대표)
역시 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믿는 것은 해나가는 느낌이기에
거기에 있어서 아무래도 논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쿠다라기 씨는 원래부터 확~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모두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머리회전이 빠른 분이었습니다.
예전에 안건이 하나 있어서 한국에서 돌아와 미팅에 참석을 했었는데
쿠다라기 씨가 언급하는 것을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다른분이 거들어 주시긴 했지만, 그래도 좀처럼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첨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라며 대답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무려 3주나 그랬습니다. (웃음)
정말 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3주간 정도 하고나니깐 '아 이런거구나'라고 이해를 하게 되어 결재를 받을 수 있었죠.
그렇게 일본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했습니다.
제 머리가 나빴던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쿠다라기 씨가 앞으로에 대해 2~3개씩 질문을 하는 통에
그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정도까지의 레벨을 원하는구나'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역시 굉장하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우츠미 슈지 (전 SCE 어메리카, 제품 취급 부사장)
쿠다라기 씨의 대단한 점에 대해서 한가지 말해보자면,
당시 오가 회장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자료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리 와바, 이런 식으로 플스1, 2, 3는 이렇게 되는거야"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니깐 하드웨어 스펙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참가자: 엣? 그 얘기를 플스1 때부터 했다구요?)
아뇨, 플스1 이전에 그 얘기를 했습니다.
1, 2, 3 라고 써놓고 선을 쭉 긋더니 "이 1, 2, 3는 모두 호환(compatible) 되는거야"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OS 같은 것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곤 "나의 경쟁 상대는 마이크로소프트다"라고 그러더군요.
당시에 그는 단순한 회사 내의 엔지니어 였잖습니까.
그런데 딱! 하고 그런 얘기를 하니깐 모두 다
"이 사람 좀 별나네, 그런데 좀 굉장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뒤에 마소가 치고 들어왔죠
그래서 나중에 '굉장한걸' 라고 느꼈습니다.
뭐 좋은 점만 많이 얘기했지만 나쁜 점도 있긴했습니다. 작업이라던가 (웃음)
▼후략
-PS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에 기여했으며, 어른들도 플스를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PS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여 게임들이 많이 팔리게 하였고 콘텐츠가 늘어나게 기여하여
여러 재밌는 게임들이 늘어나게 해주었다
3D 게임의 저변을 확대시켜 3D 게임 제작을 일반화 시키도록 공헌했다.
당시에는 게임 엔진도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모든 개발사들이 독자적인 노력을 하여 독자적인 표현을 하였다.
그것이 소비자에게 있어서도 재밌던 점이었을 것이다.
-3D 게임의 저변확대를 이루어 해외 개발사들이 부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PS를 통해 컴퓨터 업계의 영향을 받아들이게 하여, 칩 메이커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그 이전에는 이 정도로 돈이 되리라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초등 학교 때 같은 반 아이 집에 놀러가 플스에서 '쿨 보더스(스노우보드)' 봤을 때 충격이긴 했음. 당시 오락실 게임의 그래픽을 집에서 할 수 있었으니 그리고 당시 오락실에서 인기 있던 킹오브 96이 있다고 하길래 '오 이걸 집에서?' 했고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캐릭터 로딩. 2d 게임는 취약이었지만 3d게임은 당시 콘솔 중 수준급이긴 했져. 버스트 어 무브 2는 해상도 감안하면 지금 봐도 그래픽이 구리단 생각이 안 드니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
오랜만에 정독할만한 글이였습니다 재미있네요
그걸 만든건 철권팀이었습니다 ㅋㅋㅋㅋ
저도세가팬이지만 파판7이새턴으로나왔었어도 결국은기기성능차로 플스쪽으로 대세는기울었을것같네요 단지시간이 문제겠지만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
초등 학교 때 같은 반 아이 집에 놀러가 플스에서 '쿨 보더스(스노우보드)' 봤을 때 충격이긴 했음. 당시 오락실 게임의 그래픽을 집에서 할 수 있었으니 그리고 당시 오락실에서 인기 있던 킹오브 96이 있다고 하길래 '오 이걸 집에서?' 했고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캐릭터 로딩. 2d 게임는 취약이었지만 3d게임은 당시 콘솔 중 수준급이긴 했져. 버스트 어 무브 2는 해상도 감안하면 지금 봐도 그래픽이 구리단 생각이 안 드니
그때생각나네요 저는사실새턴을가지고싶었지만 제가구입할시기엔 플스가대세라 플스를구입했는데 철권이돌아가는거보고 충격이였었네요 그리고R4 로 두번째충격 그리고 베이그란트스토리와 프론트미션3 진짜재밌게했었는데
진짜 좋은글이군요. 소니라는 좋은 경쟁자 때문에 지금의 닌텐도도 어느정도 정신차리고 온 듯.... 안그랬으면 독과점 때문에 닌텐도가 게임시장을 휘둘러서 조금 다른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겠네요.
그걸 만든건 철권팀이었습니다 ㅋㅋㅋㅋ
토발 생각해보면 3인칭 알피지? 요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해괴.. 아니 재밌으려나 ? 싶네요철권 3인가4에서도 비슷한 모드가 들어가 있었던걸로.. ㅎ
근데 토발이 남코꺼였었나요? ㅋㅋ
토발만든 개발진이 철권개발진을 스퀘어가 스카웃했던걸로 기억하네요
드림팩토리라고.. 스퀘어가 돈이 최고로 많았을때 만든 회사 산하의 개발팀이 있었습니다. 드림팩토리를 만들때 일본에 존재하는 게임회사의 실력있는 탑클래스급 개발자란 개발자는 죄다 돈으로 끌어모아서 그 당시 업계에 매우 큰 사건중 하나이기도 했을정도.. 이 사건때문에 핵심개발자가 빠져나간 회사는 인기있던 게임의 후속편이 개발 취소되었거나 전혀 이상한 모습으로 나오게 된 경우가 다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도키메키 메모리얼 (간신히 땜빵은 성공했는데 후임자가 2편을 끝으로 후속편 포기) 브레스 오브 파이어3 (원래 만들고 있던거 통으로 날아가고 다시 만듬) 근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서인지.. 몸값 비싸다는 유명개발자는 다 모아놓고 정작 만든 게임은 많지도 않고 히트친 게임도 그닥인채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참고로 토발은 2편의 경우 전격플레이스테이션에서 플레이스테이션 최고의 격투게임이라고 평가는 받았습니다.
오 그런 비화가... 찾아보니 주로 격투게임 같은걸 만들었네요 모아놓은 인원치고는 특이한듯
오랜만에 정독할만한 글이였습니다 재미있네요
초창기 닌텐도 짓거리 생각하면 악덕도 저런 악덕기업이 있을까 싶을정도였으니...
닌텐도의 갑질은 정말 상상이상이었죠
현재 1위에 거치형 콘솔 1위 가장 많이하고 가장 많이 판매한게 소니-플스
파판7이 새턴으로 나왔으면 역사가 달라졌을텐데 세가팬으로 너무 아쉬운....
플라넵튠
저도세가팬이지만 파판7이새턴으로나왔었어도 결국은기기성능차로 플스쪽으로 대세는기울었을것같네요 단지시간이 문제겠지만
새턴이 2D는 위지만 3D 기능은 좀 많이 딸리지 않았었나요? 우리가 아는 파판7 그대로 못 나왔을듯...
드퀘7 이라도 새턴으로 나왔다면... 세가에서 드퀘7 이렇게 만들면 안되겠냐고 샘플까지 만들어서 설득했는데 거절당했다더군요
드퀘7은 에닉스에서 개발금 지원해달라니까 세가에서 거절해서 플스로 냈다고 하던데...?
당시 대세가 3D인지라 새턴의 그 성능 으로는 파판7이 나올수가 없죠 또 그 당시 이미 스퀘어는 2d보다는 3d로 제작할 각을 잡기도 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퀘어 측에서 그 당시 가장 많이 팔린 기기로 제작을 한다고 했었으니 이미 새턴은 파판이 나오기 전부터 플스에게 밀리고 있던 시점이였죠.
그런가요? 옛날에 드퀘7도 PS에 내기로 했다는 소식나온 게임책에 저 내용이 있었던걸로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스퀘어가 드퀘7도 PS로 내자고 계속 꼬드겼다는 내용도 있었고
근데 파판 7 보면 캐릭만 3d지 배경이 2d던데...-0-ㅋㅋ
그시절 모든 RPG게임의 숙제였고, 결국 플스의 한계로 해내지 못하게 되었죠
전투는 풀3d고 새턴으로는 그런 전투신 만들기 힘들듯
플2겜 귀무자도 배경은 투디인데 플1에서 그런건 힘들었겠죠 ㅋㅋ
가장 대중적인 게임기 브랜드
세가가 새턴 매뉴얼을 바인더 말고 제본을 했더라면...
이런거보면 사람이 하는일이다보니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도 굉장히 중요한듯하네요
새턴매뉴얼이 왜요?ㅋ새턴팔때 들어있는 매뉴얼이 바인더였어요?
새턴게임 개발키트 매뉴얼을 바인더로 철해서 제시하니까 스퀘어 제작진측에서 '아 이건 중요한 정보인데 바인더는 좀...'같은 생각을 했다고 하니까요.
역시... 세가는 허술하군요.. 버파2데이터유실, 새턴패드설계도유실에 이은....ㅋㅋ
버파6 플스5 독점이면 무조건 승리다
버파 따위가 요즘 시대에 뭐라고....
플스5에선 더많은퍼스트파티를영입해서 더 플스5에 많은독점작이나와서 플스5에 힘을실어줬음좋겠다 그리고엑스박스도 좀 제대로경쟁상대가되서 좋은게임많이나와줬음좋겠다
철권은 참 생각해보면 특이한 게임이었던 것 같네요. 플스 산 이유도 철권을 집에서 해보고 싶다였는데 CD임에도 로딩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정말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라까기가 그래도 대단한 인물이라고는 알고있었는데 마소와의 경쟁을 예견했었다니 대단하네요.. 역시 이런 게임개발관련 일화는 언제읽어도 재밌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굳이 소니가 아니라도 재미난 일화들이 많았는데.. 각색된 부분도 있고 추억보정 느낌도 있었지만.. 정말 한때는 저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환상처럼 느껴지고 영화처럼 상상하곤 했었는데ㅎ 당시 정보력이 형편없어 잡지에 의존하곤 했지만.. 참 그립네요. 비하인드나 유래.. ㅎ
쿠다라기는 정말 대단한 사람은 맞긴 하네 이양반 없었으면 플스 성공 아니 출시 자체가 힘들 수 있었을듯
전통적으로 소프트웨어가 약한 소니가 게임기를 넘어 신종 데스크탑을 꿈꿨던 쿠다라기의 야망을 충족시키기엔 무리였죠. 딱 게임기로서만 만족했다면 지금까지도 은퇴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비하인드는 언제나 흥미진진
파판7만 예정대로 닌텐도64로 나왔으면 춘추전국시대 가는거였는데.. 새턴 상승세 타는 분위기에서 그냥 나락으로 ㅠ
철권 태그 원 플스5로 그래픽 업해서 런칭작 가즈아~~~~
플삼은 진짜 소니의 오만함의 결정체 였죠 플스1,2의 압도적인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결과를 가져 왔는데 그래도 저력을 발휘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또 다시 왕좌의 자리에 오른것만 봐도 소니도 대단하긴 한듯 하네요.
플4 때는 반대로 엑박원 쪽에서 오만함의 결정체를 보여줬었으니까요... 초반 이미지부터 완전 플4의 승리.
비디오 게임산업에 3D도입을 엄청나게 앞당긴게 PS의 등장이였죠... 아케이드 업소에서 볼수있는 세가의 버추어파이터나 버추어레이싱밖에 없었을때니
플스1의 파판7도 있지만, 난 SFC시절 동킹콩 그래픽에서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는데
전.. 동키콩하고 희안하게 요시 아일랜드에서 그래픽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전체적인 그래픽 색감과 디자인.. 약간 3d 스러운 보스 디자인 및 기믹들.. ㅋㅋㅋㅋ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하고 프론트 미션도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한 게임이었구. 슈패미는 정말 명기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