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 채우지 못한 역사의 공백

| 제목 |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 출시일 | 2017년 10월 27일 |
| 개발사 | 유비소프트 | 장르 | 오픈월드 액션 |
| 기종 | PS4 / XONE / PC | 등급 | 청소년 이용불가 |
| 언어 | 자막 한국어화 | 작성자 | Eclaire |
사람들은 '실화'를 좋아합니다. 수많은 문화 콘텐츠의 캐치프레이즈로도 자주 활용되는 실화라는 단어는 대중의 호기심을 손쉽게 자극할 수 있는 훌륭한 마케팅 소재이기도 합니다. 평온한 일상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세상에 놀라운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일종의 모험심이 싹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도 정사를 논하고, 실화 기반 콘텐츠가 등장할 때마다 각색된 부분을 굳이 찾아서 열거하길 좋아하는 심리 저변에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둔 이야기는 여러 실화 관련 콘텐츠 중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습니다. 사회적 이슈나 범죄, 금기에 얽힌 경우가 많은 현대 사건들과 달리, 역사적 사건들은 텍스트와 유물, 그림 등의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사실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소위 말하는 '역사 덕후'가 존재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이미 한 번 다룬 적 있는 인물이나 사건일지라도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서술자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경험한 바 있습니다. 결국 역사란,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느 소설보다 유구한 생명력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기록에 남은 역사적 사실에 기록되지 않은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대체역사물입니다. 미려한 그래픽으로 구현된 과거의 시간 속에서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고 시대의 흐름을 뒤바꾼 사건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쌔신 크리드가 여타 게임들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냥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 게임으로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애니머스라는 기계와 설정을 덧대어서 액자식 구성으로 만든 것도 꽤나 흥미로운 시도였습니다. 비밀에 감추어진 시간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그저 호기심 많은 관객일 뿐,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역시도 태생적으로 비디오 게임입니다. 아무리 흥미진진한 사건을 다룬다고 해도 게임으로서의 재미가 부족하면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소위 공장제 게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년 찍어내다시피 하면서 만들어낸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언젠가부터 지나친 게임성 답습과 깊이 없는 스토리텔링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본 리뷰에서 다룰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이하 오리진)은 그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게임성 측면에서도 완전한 환골탈태를 추구함과 동시에 스토리적으로는 암살단의 기원에 대해 다루면서 지난 시리즈가 범한 실수를 만회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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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고대의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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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삼은 것은 꽤나 복합적인 의미를 담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 이집트 시대로 돌아가 서구 문명의 기원을 살피고 암살단의 탄생을 다룬 이야기는 오리진(기원)이라는 부제에 딱 들어맞습니다. 더욱이 고대 이집트 시대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고대 문명에 막연한 환상을 품은 일반 대중들과 음모론자들의 관심사까지 죄다 포용할 수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미스터리를 간직한 시대입니다. 개발사인 유비소프트의 입장에서는 계속 아껴왔던 시대적 배경을 시리즈의 부활을 노려야 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소재로 삼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리진의 그래픽은 이러한 시대적인 메리트를 아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대대로 인류 문명의 발전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따라서 대다수의 작품이 그 시기 문명의 중심이었던 큰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오리진에서는 알렉산드리아나 멤피스 등의 대도시뿐만 아니라 피라미드와 유적지, 오아시스, 사막 등 다채로운 배경이 등장합니다. 기존 시리즈와 다소 시간적 괴리가 있는 시대를 다루는 만큼 미술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유니크한 완성도를 지닌 어쌔신 크리드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작을 즐기면서 고대 이집트 역사에 관심이 생겨 따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오리진에서 구축한 고대 이집트의 모습은 게임의 배경으로만 쓰기엔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상당한 완성도를 지녔습니다. 그리스 혈통의 지배를 받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몰락기를 다루는 시대의 특성상, 이집트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 등 당시 서구 세계를 주름잡고 있던 문명권이 모조리 등장해서 흥미로운 대결 구도와 디자인적인 볼거리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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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불가사의가 무려 두 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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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배경을 기준으로도 피라미드는 고대의 유물. |
파라오의 저주 같은 건 안 나옴. |
이질적인 게임 배경만큼이나 게임성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버튼 액션의 연계로 이루어지는 간결한 전투와 파쿠르, 그리고 오픈 월드 세계관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게임 플레이를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반면 오리진에서는 저 세 가지 요소가 전부 축소되거나 다른 형태로 대체되었습니다. 올드팬의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리진에서 보여준 변화는 사실상 시리즈의 본질을 뒤흔드는 수준이고 이 작품에서 구축한 게임 플레이를 시리즈의 새로운 근원(Origin)으로 삼아 차기작에 적용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은 늘 그렇듯 부정적인 부분과 긍정적인 부분 모두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리진은 어떨까요?
일단 본작의 오픈 월드 구성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유비소프트에서 만든 오픈 월드 게임들은 대부분 상호작용 요소가 미미하고 수집과 탐색, 미션 진행 위주의 플레이 방식을 갖추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성공 이후 이러한 플레이 방식을 여타 게임에도 이식함으로써 서로 비슷한 부분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반면 오리진에서는 여타 작품들에서 변형, 발전시킨 요소를 역수입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짐승을 사냥해서 재료를 얻고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은 파 크라이 시리즈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좋게 보자면 유비소프트 오픈 월드 게임의 집대성이자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지역의 중간 보스에 해당하는 요인들을 암살하고 최종 보스에까지 도달하는 메인 미션의 진행 방식과 세누의 정찰로 대체된 독수리의 눈은 고스트 리콘 와일드 랜드의 플레이 방식과 매우 흡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드론을 통한 무제한적인 정찰이 가능했던 와일드 랜드의 플레이 방식은 레벨 디자인을 의미 없게 만들고 교전의 긴장감을 떨어트린다는 점에서 실패한 디자인으로 봅니다. 따라서 오리진에도 비슷한 기능이 도입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러나 세누의 정찰 능력은 드론에 비하면 다소 떨어지는 편이고, 히트 스캔 무기로 원거리에서 적을 손쉽게 요리할 수 있었던 와일드 랜드와 달리 오리진에서는 특정 능력을 얻지 않으면 활을 이용한 암살이 수월한 편은 아니라서 정찰과 전투 사이의 밸런스가 그럭저럭 잘 맞아 떨어지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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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적인 요소가 전작들에 비해 좀 더 강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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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누의 정찰 능력은 게임 전반에 걸쳐 중요하게 활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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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기본적인 흐름은 유비소프트 고유의 방식이라기보다는 위쳐 3를 많이 참고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기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도 미션 수행 위주의 게임이었지만, 오리진은 거기서 더 나아가 무수히 많은 서브 퀘스트가 추가되고 랜덤성 강한 아이템 파밍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중에도 위쳐 3를 연상케 하는 단서 탐색과 추리를 통해 상황을 유추하는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캐릭터 육성 방식도 레벨과 스킬 트리가 존재하는 RPG 방식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주인공의 능력치와 관계없이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적일수록 상대하기 어려워지는 전투 시스템과 대미지가 수치로 표시되는 시각적 요소는 이 게임이 더 이상 액션 어드벤처 장르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결국 오리진을 기점으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완전한 RPG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셈입니다.
소위 '상자 까기'라 불렸던 무의미한 수집물 모으기가 사라진 빈자리는 유적 탐사나 챌린지, 혹은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적진 섬멸 등의 콘텐츠로 대체되었습니다. 오리진도 기존의 유비소프트 스타일의 게임들처럼 달성률을 높여가는 수치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이긴 하지만, 그 과정이 이전에 비해 조금 더 다양해졌다는 점만큼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앞서 언급한 훌륭한 그래픽과 미술적인 완성도 덕분에 반복적인 미션 진행의 지루함은 전작들에 비해 다소 완화된 반면, 탐험하는 재미와 시각적인 즐거움은 한층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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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클리어 위주의 RPG로 탈바꿈했다. |
흠터레스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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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도 있고 내비게이션도 있고……. 초고대문명은 실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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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변화에 따라 플레이 방식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Xbox One 패드 기준 RT 버튼에 할당되었던 프리러닝 기능은 이제 사라졌고 일반적인 액션 게임과 비슷한 조작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전작에 있었던 군중들 사이에 숨는 액션이 삭제되면서 걷는 동작이 불필요해짐에 따라 조작법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 배경 특성상 고층 건물이 많지 않다 보니 파쿠르의 비중이 줄었고 지붕 위를 순찰하는 경비병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뷰포인트 동기화는 이제 지역을 밝히는 용도가 아닌 빠른 이동 활성화와 퀘스트 위치 알림, 세누의 정찰 능력 강화 등의 용도로 대체되었습니다.
전투 시스템은 기존 시리즈와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입니다. 앞서 언급한 위쳐 3나 다크 소울 시리즈와 비슷한 히트 박스 방식의 전투에 기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 등장했던 연막과 독살 등의 기믹을 녹여낸 형태입니다. 상당수의 적들이 방패를 들고 등장하기에 빈틈을 노려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타이밍에 맞춰 버튼만 잘 맞추면 일당백의 전투가 가능했던 전작들과 달리 궁지에 몰렸을 때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은 편입니다. 암살이 아예 불가능한 적들도 일부 등장하고 몇몇 미션의 경우엔 보스전이 강제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기존 팬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러한 변화가 그리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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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쿠르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
전반적으로 조작감이 쾌적해진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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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시스템은 역동적인 공방의 재미를 잘 살린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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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의 플레이는 육성과 파밍 등 RPG적인 재미에 많은 부분이 치중되었다는 점에서 전작과 크게 차별화됩니다. 100% 동기화를 위한 반복적인 미션 진행이나 달성률 등의 요소로 플레이 동기를 부여했던 기존 시리즈와 달리, 본작에서는 캐릭터 능력치나 아이템 같은 좀 더 실체가 분명한 요소를 통해 목적의식을 부여합니다. 덕분에 전작들에 비하면 좀 더 강한 중독성을 지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깨알 같은 재미 요소가 많이 사라졌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한마디로 오리진은 기존 시리즈가 지니고 있던 정체성을 버린 대신, 기본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지만 다소 평범한 스타일의 게임성으로 노선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작의 주인공들이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학살마이긴 했어도 암살자라는 기본적인 정체성은 줄곧 유지해왔는데, 본작의 주인공인 바예크는 여타 게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사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이를테면 전작들의 경우 독침이나 연막이 암살 또는 잠행의 도구로 주로 활용된 반면, 오리진에서는 일 대 다수의 전투를 좀 더 쉽게 풀어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더 많이 쓰입니다. 이중 암살 등의 능력이 사라진 빈자리는 공중 화살 제어나 슬로우 모션 조준 등 다소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기믹들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감안하더라도 오리진은 꽤나 준수한 완성도를 갖춘 재미난 게임입니다. 게임성이 다소 평범해지긴 했지만 전작들이 비슷한 시스템으로 워낙 많은 작품을 우려낸 전례가 있다 보니 오리진에서의 변화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다소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벤트성 전투로만 등장하는 함대전과 몇몇 챌린지 미션을 제외하면 기존 시리즈에 있었던 형제단 키우기나 요새전 같은 부차적인 콘텐츠는 거의 사라졌고, 퀘스트 클리어와 탐험 위주의 다소 간결한 게임성으로 회귀함으로써 플레이어의 집중을 한 곳에 효과적으로 묶어두고 있습니다. 기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던 '달성률'이 본작의 RPG스러운 육성 및 파밍 요소와 좋은 시너지를 낸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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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어쌔신 크리드'라는, 게임의 제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인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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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을 한다기보다는 엄청 강한 공격을 푹푹 찔러 넣는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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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밍과 육성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생겨서인지, 재미는 나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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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오리진이 기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안고 있던 문제점을 모두 해소하고 완전한 재출발에 성공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타 오픈 월드 게임들의 장점을 다 가져왔음에도 이렇다 할 특별한 매력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리진은 수작에서 명작으로 올라서기엔 다소 부족한 면모를 보입니다. 서브 퀘스트의 경우 반복적인 패턴을 탈피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노력만 한 수준이라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지루해집니다. 전투 파트는 특정 무기와 스킬의 효용성이 지나치게 높고 암살 플레이의 패턴이 너무 전형적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나마 타격감과 조작감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말초적인 손맛으로 전투를 즐기는 것일 뿐, 전투 시스템의 전체적인 만듦새와 밸런스는 위쳐 3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호작용 요소가 부실한 오픈 월드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게임에 흡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한 가지 이상의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반면 오리진은 위쳐 3처럼 선택의 갈등을 다룬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호라이즌 제로 던처럼 공략의 맛이 살아 있는 매력적인 전투를 구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대신 더 좋은 아이템과 스킬 포인트가 목적인, 어찌 보면 부차적인 부분에 머물러야 할 RPG적인 요소들로 플레이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암살단의 기원을 다루는 장대한 이야기를 원했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는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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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는 드론으로 한 번 훑어보고 다 죽이던지 들쳐업고 뛰던지 둘 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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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플레이의 완성도는 그다지 좋은 편은 못 된다. |
결국에는 이것도 물음표 까러 다니는 게임이라는 것. |
본작의 가장 큰 결점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메인 디시여야 할 스토리의 깊이와 뒷심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죽인 자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시작해서 클레오파트라의 즉위를 돕기 위한 여정으로 이어지는 중반까지의 흐름은 그럭저럭 봐줄 만하지만, 낯익은 얼굴이긴 한데 정확히 뭐 하던 사람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인원들을 모아놓고 갑자기 대의를 외치면서 형제단을 결성하는 장면은 갑작스러운 것을 넘어 뜬금없이 느껴집니다. 시리즈의 기원을 알리는 멋진 장면들마저도 매끄럽지 못한 앞뒤 정황 때문에 임팩트가 깎여나가는 느낌입니다.
이는 결국 캐릭터 형성에 충분한 공을 들이지 않아서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다른 게임의 예를 들자면, 위쳐 3에서는 엄청나게 긴 퀘스트 라인을 투자하여 캐릭터의 성격과 입체적인 개성을 플레이어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킵니다. 게임 후반부의 케어모헨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음에도 그 모든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앞서 긴 시간을 게롤트와의 관계 구축에 쏟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오리진에서는 몇몇 중요 인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소모품처럼 이용되고 버려집니다. 본작의 서브 퀘스트는 개수만 많을 뿐 인물과 사건을 너무 피상적으로 다루는데다가 진행 방식이 단편적이라 나중에는 그냥 경험치나 아이템 셔틀 정도로만 치부하게 됩니다. 심지어 게임 내에서 반드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고대 결사단 소속 인물들은 그 실체를 밝혀내고 암살하는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나마 이 게임 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인물들임에도 서브 퀘스트의 분량에 매몰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차라리 서브 퀘스트의 개수를 좀 줄이고 메인 퀘스트의 밀도를 높였다면 어땠을까요? 앞서 상호작용 요소가 부실한 오픈 월드 게임은 한 가지 이상의 특출난 개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어쌔신 크리드에서 그것은 스토리여야 했습니다. 반면 오리진은 암살검과 신뢰의 도약 같은 단편적인 요소들로만 시리즈의 명맥을 잇고 있을 뿐, 정작 중요한 부분은 허술하게 다룸으로써 전작들과의 연결고리를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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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
현대 파트는 존재감이 심히 부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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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악역이 될 수 있었던 고대 결사단의 이야기도 너무 급박하게 진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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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내용이 조금 길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저는 오리진에서 달성한 여러 성과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다른 게임의 요소를 많이 차용하긴 했어도 그것들을 한데 섞어 보기 좋은 결과물로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단어 그대로 '명작'이 되지 못했을 뿐 줄곧 아쉬움만 남겼던 이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 비하면 다시금 '수작'의 반열에까지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랜 매너리즘으로부터 헤어나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의 입장에선 반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 우려가 생겨나는 이유는, 유비소프트의 게임은 한 번 좋은 평가를 받고 나면 차기작에서 그것을 마이너한 형태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리진은 그런 식으로 다뤄질 만한 게임이 절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부차적이어야 할 요소들이 게임의 본질을 침범하는 유비소프트 게임의 고질적인 문제는 본작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작들과 비교하면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공장제 게임의 느낌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시작합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은 고대 이집트라는 흥미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플레이어로 하여금 신비에 찬 고대 문명을 체험하는 환상적인 몰입감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대체역사물로서 기록되지 않은 역사 이면의 상상력의 공백을 효과적으로 채워 넣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본작에서 이룩한 탄탄한 게임 플레이적인 토대를 기반으로 차기작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인지는, 지켜봐야 알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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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이상원 기자 (petlabor@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