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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박스Gold Box]에서 오늘날의 고전들까지, 싱글플레어 CRPG들을 살펴보자
SSI의 골드 러쉬, 거대한 황무지(Wasteland), 그리고 울티마의 지하세계
[역주: 이 소제목은 각각 게임들을 의미하지만, 원제 대신 말풀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울티마], [위저드리], [마이트 앤 매직]과 같은 시리즈들이 80년대 중반을 풍미했지만, SSI사(Strategic Simulations Incorported)는 소리소문 없이 최고의 전략 RPG게임들을 출시했다. 스테판 "데스록" 자나키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SSI사는 [판타지Phantasie](1987), [위저즈 크라운 Wizard\'s Crown](1985)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골든 박스 던젼즈 앤 드래곤스 Gold Box D&D]와 같은 게임을 통해서 전술전(tactical combat)를 강조함으로써 장르를 형성에 일조하였다(이는 전쟁게임에서부터 내려오는 SSI사의 전통이다)."
SSI의 [골드 박스] 삼부작이 남긴 눈부시고 풍부한 유산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게임들이 시리즈로서 거대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그 전술전의 구성만으로도 오늘날까지 애틋하게 기억되고 있다. 또한 (1988년에 시작된) 이 시리즈의 게임엔진은 단일 엔진으로는 가장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으로도 유명하여, [더 포가튼 렐름즈The Forgotten Realms], [드래곤랜스Dragonlance], TSR사의 호러풍 [레이븐로프트Ravenloft], 그리고 단명했지만 기이했던 게임 [다크 선Dark Sun] 등 모든 D&D 세계를 포괄하는 수많은 게임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마이크 울프의 지적에 따르면, "([골드 박스]) 게임들은 AD&D의 인기를 잘 활용하여, CRPG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법한 게이머 층까지도 끌어들였다. 내가 아는 CRPG 팬의 대부분은 [풀 오브 래디언스Pool; of Radiace]나 [다크 선: 섀터트 랜즈Dark Sun: Shattered Lands] 혹은 여타의 [골드 박스] 게임들로 RPG에 입문하였다." 바이오웨어의 그렉 제즈첰은 [골드 박스] 시리즈, "특히 [드래곤랜스]가 자신의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한다. SSI사는 [아이 오브 비홀더Eye of the Beholder] 시리즈를 통해 다시 한번 혁신을 시도하여, 유사 3D 그래픽을 전투 엔진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이렇듯 SSI가 강력한 라이센스를 앞세워 승승장구하고 있을 무렵, 오리진 시스템(Origin Systems)사 역시 이에 못지 않았다. 리처드 개리엇의 울티마 시리즈는 5편과 6편을 통해 그 창조성의 정점에 도달해가고 있었고, 단명했지만 [월즈 오브 울티마Worlds of Ultima] 시리즈가 등장하여 다소 기이했지만 썩 만족스러웠던 일련의 실험정신을 보여주었다([마시안 드림즈Martian Dreams](1991)과 세비지 엠파이어[Savage Empire](1990)는 아바타를 쥘 베른느[역주-랭보의 남자애인으로도 유명한 베른느는 과학·모험소설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풍의 장소와 연대로 게이머들을 안내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울티마 언더월드Ultima Underworld]가 등장했고, 이는 그 3D 표현 때문에 종종 [둠Doom]과 [듀크 뉴켐Duke Nukem]과 같은 3D 슈터들의 시조로서 거론되곤 한다.
1988년, EA사(Electoronic Arts)는 인터플레이의 후-묵시록 풍(post-apocalyptic) RPG [웨이스트랜드Wasteland]를 선보였다. TSR의 [감마 월드Gamma World] RPG에게 영향을 받았을 법한 이 게임은 오늘날 [폴아웃Fallout]과 베세스다의 [엘더 스크롤]과 같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진정한 자유도(open-ended)를 갖춘 플레이방식을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제즈첰은 [웨이스트랜드]가 "개방형 플롯을 갖춘 [고전이 될만한 게임]"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90년대 중반의 몰락
9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RPG 장르는 붕괴하였다. 이전보다 적은 수의 게임들이 출시되었고 대중들은 더 이상 RPG를 즐기지 않는 것 같았다. 당시의 게임 언론에서도 논의되었던 바이지만, 이러한 "빈곤"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마이크 울프에 따르면, "한마디로 [퀘이크Quake] 때문이고, [둠DOOM]이라고 해도 좋다." 그는 RPG의 쇠퇴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기술의 발전과 게임플레이의 혁명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기술이 진전됨에 따라서, 게임업계는 보다 액션지향적 게임에 초점을 맞추었고, 시장에서 이것이 먹혀들었다. PC 앞에 처음 앉는 사람들이 50페이지 이상 되는 매뉴얼을 읽지 않고서도 게임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시장에서 3D 슈터의 잠재적인 수요는 휠씬 거대했다. 하지만, 마이크는 게임제작이라는 측면에서, 슈터 장르가 보다 쉽고 저렴하다는 이유 때문에 발매원들이 슈터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본다. "[발매사는] PC RPG 게임 처럼 제작에 많은 시간이 들고 비싸지만, 별 소득도 없는 게임들과 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았다. (비록 일부 개발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CRPG는 아마도 주어진 인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장르일 것이다." 토드 하워드도 이에 동의한다. "여전히 RPG는 가장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값비싼 장르입니다." 또한 제프 포겔에 따르면, "업체들은 RPG 게임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출시된 게임들은 조잡했고 [또한] 팔리지도 않았다. 이러한 사업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극복하기 어려운 묘한 부분이었던 셈이다."
데스록은 "혁신이 부족했던 점과 제대로 된 게임들이 부족했다는 점" 두가지를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하고, 결국 RPG 장르의 일급 제작사들과 그들의 성공담 역시 마침내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고 말한다. "SSI사는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형태의) 엇비슷한 [D&D 골드 박스] 게임들을 12개 가량이나 출시했고, 빠른 속도로 출시되었던 [마이트 앤 매직] 게임도 서로 가 너무나 비슷해 보였다. [울티마]는 당시 혁신을 이룬 유일한 RPG 게임이었지만, 오리진은 당시의 PC 사양에서 게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울티마7]의 발매를 취소해 버렸다."
하지만, 이는 단지 숫자놀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메가트래블러MegaTraveler]와 같은 RPG들이 등장했지만, 그 수준은 대개 형편 없었다. [웨이스트랜드] 정도를 제외하고 당시의 성공한 RPG들이 거의 모두 판타지 소설에 기반하고 있었다. 데스록의 설명에 따르면, "게이머들은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검사와 마법사가 등장하는 RPG들에 물리기 시작했고, 그래픽과 게임플레이 역시 점점 비슷해져가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좋은 게임들조차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여겨져 무시당하게 된다.
스코피아는 당시의 다른 측면으로 "[미스트Myst] 시리즈의 엄청난 성공과 전략 게임, 특히 [커맨드 앤 컨커Command and Conquer]의 인기"를 지적한다. 모두들 \'다음 [미스트]를 원했다. 게임업계 또한 다른 동네와 다르지 않다. 성공은 모방을 낳았고, 아류들이 넘쳐흘렀다."
정리하면, 쇠퇴의 원인들은 다음과 같다. 장르로서 RPG의 매력을 떨어뜨린 수많은 엇비슷한 게임들, 팬들을 떨궈낸 싸구려들의 범람, 발전된 기술에 이끌려 게임시장에 들어온 더욱 많은 초보 게이머들, 그리고 서사적인 RPG 게임들을 게임 판매점과 발매사들의 출시 목록에서 더욱 외곽으로 밀어내는 데 일조한 [미스트](어드벤쳐), [둠](액션), [엑스-윙X-Wing](스페이스 슈터), 그리고 [워크래프트Warcraft](실시간 전략)와 같은 새로운 게임경향의 출현. 하지만, 이전과 같이 좋은 게임이 없었을 뿐, RPG는 여전히 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팬들은 거기에 있었고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다리는 것 뿐이었을까?
몰락 이후: 부흥과 재탄생
90년대 중반은 질낮은 RPG들로 오점을 남겼다. 인터플레이의 [스톤킵Stonekeep](1995), [쉐도우 오브 더 카멧Shadow of the Comet](1993년판 [콜 오브 크수루] 호러 어드벤처) 등등. 1993년에는 [울티마8: 페이전Ultima8: Pagan]과 같은 타이틀이 등장하기까지 했는데, 이 게임은 브리태니아에서 아바타를 없애는 커다란 우를 범하여 시리즈의 매력을 잃게 하였다.
하지만 손꼽을만한 수작이 하나나 둘쯤은 있었다. 베세스다는 [아레나Arena]와 첫 번째 [엘더 스크롤Elder Scroll]을 1993년에 선보였다. [엘더 스크롤]은 자유도가 높은 게임플레이를 특징으로 하는 뛰어난 1인칭 RPG였다. 1996년에는 [엘더스크롤2: 대거폴Elder Scoll2: Daggerfall]이 출시되었는데, 이 게임은 너무나 거대하고 자유도가 높아서 게이머들은 이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데스록에 따르면, "[대거폴]은 현재의 MMORPG가 지닌 경향의 초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게이머들은 미리 정해지지 않는 모험들을 거치면서 다양화된 캐릭터들의 역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게임 디자이너인 토드 하워드에 따르자면, 이 게임은 많은 면에서 돌아버릴 정도로 복잡했고, 이는 방대한 게임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빠지기 쉬운 함정과도 같은 것이다. "사실 나는 [아레나]가 [대거폴] 보다 뛰어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아레나]가 휠씬 짜임새 있다." 하지만, [대거폴]이 성공함으로써, 여전히 롤플레잉 게임을 즐길만큼 지적이고 참을성있는 게이머들이 많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정말 게임을 즐긴 사람이 있기는 했을까?
1997년 블리자드가 [디아블로Diablo]로 세상을 뒤흔들긴 했지만, 인터플레이는 [폴아웃]의 출시를 통해 이러한 요구에 화답했다. 스코피아에 따르면, "[폴아웃]은 최근의 게임들 중 최고수준의 작품이다. 뛰어난 캐릭터 형성 시스템과 사건 진행의 다양한 경로를 갖추고 있다. 신사적으로도, 야비하게도, 중립적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다. 그리고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플레이어의 행동은 결국 [악당을] 쓸어버리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데스록이 덧붙인 바에 따르면, "[폴아웃]은 비선형적 탐험과 고도로 특화된 캐릭터 발전 시스템이라는 요소를 RPG게임으로 재도입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을 다시 주인공의 \'역할\'로 끌어 들였다."
[디아블로]는 액션게임적인 요소, 깔끔한 그래픽, 그리고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레벨 및 아이템 수집과 같은 기존 RPG의 요소들과 결합시켰다. 제프 포겔이 말하듯, "결국 RPG의 기본 공식으로 요약될 수 있는 [디아블로]와 같은 게임도 대중들이 거부하기 힘든 게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1998년에는 노장 [마이트 앤 매직]이 6번째 시리즈를 달고 등장했다. 또한 [발더스 게이트]는 D&D의 영광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실시간 전략 게임의 요소를 롤플레잉 장르에 제대로 접목시켰다. 바이오웨어의 공동설립자인 그렉 제즈첰은 회상한다. "90년대 중반 RPG를 제작하기로 결정하면서 우리들은 대중들이 여전히 PC에서 RPG를 즐길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의 대중들이 주목했던 여타 게임들과 맞먹는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후, 우리 팀은 RPG 게임을 통해 탄탄한 기술력과 스토리가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마이크 울프에 따르면, "CRPG는 [발더스 게이트]가 보여준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흥분을 필요로 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발더스 게이트]가 RPG 장르를 구해낸 셈이다. 이 게임은 90년대 RPG의 몰락에 최초의 종지부를 찍은 진정한 대작 RPG이다."
모험을 떠나기 전에 파티를 꾸려라
데스록의 설명을 들어보자. 장르를 넘나든 [시스템 쇼크2 System Shock 2], [데이어 엑스Deus Ex]와 같은 게임들(4부에서 다룰 예정)과 MMORPG의 폭발적인 증가세(3부에서 다룰 예정)를 제외한다면, "인터플레이와 바이오웨어는 사실상 RPG 장르에 군림했다. [발더스 게이트]의 두 작품 모두는 탁월했고(비록 첫번째가 덜 다듬어진 맛은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어떤 게임보다 D&D의 세계를 잘 변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게임들은 RPG를 방대한 서사시로 바꿔놓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발더스 게이트]에 이어 (인터플레이의 내부 개발사인) 블랙 아일사(Black Isle)는 동명의 D&D 하위 스토리에 기반하여 괴팍하고 음침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를 선보였다. 포겔은 "아쉽게도, 이 게임은 팔리지는 않았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놀라운 스토리와 깊이있는 역할수행을 통해서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또한 블랙 아일사는 [폴아웃]의 탁월한 후속작을 발표했고, 보다 액션지향적인 [아이스윈드 데일] 및 바이오웨어의 찬가인 [발더스 게이트]의 2편을 내놓았다. 포겔에 따르면, [발더스 게이트 2]는 "거대하고, 매혹적이고, 자유도가 높다. 이 작품 역시 바이오웨어가 제작한 1편만큼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한편, [디아블로2]는 현재까지 여느 RPG보다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뉴월드사의 밥줄 [마이트 앤 매직]은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는 다소 어려웠다(특히 7, 8편이 그랬다). 한편, [울티마9: 어센션Ultima IX: Ascension]은 미완성의 형태로 출시되었고, 이를 마지막으로 싱글플레이 방식의 [울티마] 시리즈가 종결되는 씁쓸한 일도 있었다. 급기야, 리처드 개리엇은 자신이 설립한 오리진사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여러 장르가 혼재된 멀티플레이 게임이 범람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
이상 2부 마침
by anarin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