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은 너희들이 해야지 학생과학에 [파이어 호크]의 공략 기사를 내고 얼마 안 가 다우기술이라는 회사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사에서 만들고 있는 삼성 겜보이용 게임 개발에 참여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들의 기고에는 필자명이나 연락처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지만 학생과학에서 마지막으로 기고했던 [파이어 호크]에는 이름과 연락처를 넣었다. 나름대로 내가 한 일에 대해 책임도 지고, 자부심도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우기술의 겜보이 게임 개발팀에서 이것을 보고 연락해 온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한동안 게임 공략이라는 분야에 빠져 있긴 했지만 원래 컴퓨터학원에서 불태우던 게임 개발이라는 꿈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또래의 친구들 중에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 같이 오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클럽 내에서 프로그램 쪽으로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 하나를 불러 삼성동의 무역센터 빌딩까지 갔다. 다우기술은 1986년에 설립된 IT 솔루션 기업으로 지금은 직원 수만 해도 500여 명이 넘는 IT 분야의 중대형 회사로 성장해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본 내부의 모습은 십여 명 남짓 되는 젊은 개발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전형적인 벤처 기업이었다. 가산전자라는 곳에서 외주를 받아 VGA 카드를 만들기도 하는 등 전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삼성에서 외주를 받아 겜보이 게임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는 두 청년이 중학생인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이들은 지금 다우에서 어떤 위치에 올라가 있을까?) 오는 길에 춥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따뜻한 코코아를 건네주었다. 그때가 1989년 11월 말 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학생 두 명이 처음 구경하는 회사 안에서 생판 모르는 직장인들에 둘러싸여서 호기심과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의 광경은 아마 보지 않으면 잘 상상이 가지 않으리라. 코코아를 후루룩 마시고 있는데 팀장으로 불리는 사람이 학생과학을 펼쳐들고 다가와서 말을 꺼냈다. “이 글 네가 쓴 거지? 재미있게 잘 읽어 봤다. 이 글 읽고 말이지,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어떤 부탁을요?” “응, 우린 삼성 겜보이용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프로그래머들이 만들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아무래도 너희가 우리보다 게임에 대해선 잘 아니까 기획을 좀 해줬으면 하는데 어때, 해보겠니?” 게임기획. 당시의 게임 개발 업계는 개발과 기획이 나눠져 있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일본에서조차 게임 기획이란 분야는 아직 프로그래밍에서 연장된 하나의 축에 불과했던 그 시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저희가 무슨 일을 하면 되죠?” “응,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야, 이쪽으로 와볼래?” 개발실 내부로 인도된 자리엔 평소에 너무나 친숙했던 MSX-2 IQ2000이 있었다. 그걸 보니 겜보이용 게임을 만드는데 왜 MSX가 있는지 의아해졌다. “겜보이 게임 만드는데…… MSX로 만들어요?” “응, 일단 MSX에서 맵을 만드는 거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봐라” MSX를 기동시키고 파일을 실행시키자 전혀 생소한 (주1)인터페이스 화면이 나왔다. 팀장이 20여 분간 설명을 해줬지만 더욱더 알 수가 없었다. 겜보이 화면에서 보는 크기와 맞지도 않고…… 복잡하게 쓰여 있는 숫자들은 무엇이며, (주2)타일맵이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리인지…… 당시는 몰랐지만, 그건 겜보이용 횡 스크롤 액션 게임의 맵 툴이었던 것이다. 겜보이에서 디자인할 수 없으니까 MSX에서 키보드를 이용해서 디자인 할 수 있도록 툴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툴은 커녕 게임에 쓰이는 그래픽이 그리는 게 아니라 찍는 개념이라는 것도 제대로 모르던 때였으니 개발 툴을 보고 갸웃갸웃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_- 나와 같이 갔던 프로그래머 지망생 녀석은 설명을 다 듣더니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해한 것 같았다. “이거 디럭스페인트랑 비슷해, 한번 해봐” “어? 그…… 그래?” 떠밀리다시피 해서 녀석이 하라는 대로 타일 몇 개를 찍어 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눈에 보이는 그림이랑 게임에 연상되는 그림이랑 매치가 안되었다. 게임이 만들어지는 단계라는 것에 대해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개념이 충돌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버벅 대는 것을 보고 옆에서 팀장이라는 사람과 다른 개발자 하나가 쓴맛을 다셨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김주임 이거 일단 얘네한테 카피해서 주지” 개발 툴 파일을 3.5인치 디스켓에 받아서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기간은 한달, 한 달 이내에 각자 스테이지 한 개씩 레벨 및 맵을 만들어서 갖고 가는 것이 게임 개발사라는 곳에서 첫 번째로 받은 미션이었다.
개발 툴 집에 돌아오자마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맵툴을 실행시켜 보았다. 다우기술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화면이 모니터에 떠올랐고, 매일 게임만 하던 화면에 개발자가 보는 화면이 떠오르니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다우기술에서 보았을 때야 옆에 개발자들이 몰려 있었던 데다 분위기에 압도된 탓이었다고 생각하며 침착하게 이런저런 기능을 실행시켜 보았다. 정말 디럭스페인트와 비슷하게 툴바가 우측 또는 좌측에 정렬할 수 있게 되어 있고, 그 위의 팔레트에 색깔을 지정해서 타일을 만들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만들어진 타일을 다시 중앙의 맵에 지정하면 실제 게임 화면으로 만들어진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학생 신분에서 구조가 어떻고 원리가 어떻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상황. 같이 갔던 프로그래머 지망생 녀석에게 전화를 수차례 해서 사용법을 물어봤다.
그렇게 툴과 씨름하면서 20여 일이 지나갔다. 헌데, 이것이 웬일.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다우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일단 과정을 보고 싶으니 작업한 것을 저장해서 회사로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한 화면 분량의 타일을 찍어 놓았을 뿐인데, 게다가 조잡하기까지 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지저분하게 디자인된 타일 맵을 쳐다보고 있어도 결론이 안 나왔고, 결국,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삼성동의 다우 본사로 향했다. “오랜만이구나. 그래 툴은 좀 어떻든?” 전에 보았던 개발팀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고 우리는 코코아를 마시며 툴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 했다. 개발팀장은 우리가 작업한 결과물보다는 툴이 사용하기 편했는지, 실제 저장할 때 문제는 없었는지, 색깔은 마음에 들었는지 등을 집요하게 물어보는 듯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순순히 툴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툴 쓰는 방법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는 건가’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야 생각이지만 그 개발팀장은 개발 툴의 중요성에 대해 확실히 인식하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개발자들끼리 만들어 놓긴 했지만 언제 외부 사람이 쓰게 될지도 모르고 인터페이스의 편리성이나 효율 면에서 문제는 없었을지 아르바이트인 우리를 이용해 알아보고 싶었을 것. 일단 두려워하던 결과물에 대한 질책이 없어서 좋아라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그래, 이제 결과물을 볼까?” 두려운 마음에 같이 갔던 프로그래머 지망생 녀석에게 먼저 보여주라고 떠밀었다. 녀석은 의외로 여유 있는 표정으로 자기가 만든 타일 맵을 실행시켰고, 그것은 내가 만든 것 보다 몇 배는 더 완성도가 높은 것이었다. 미술 쪽에도 보는 시각이 있었는지, 타일들이 겹치는 부분에 명암 표현까지 신경 써서 디자인된 맵은 실제 게임 화면에서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보였다. 그 다음엔 내 것을 실행해서 보여 줬다. (보나 마나 욕먹겠구나……) 내가 만든 맵이지만 차마 볼 수 없어서 눈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있는데 개발팀장이 말했다. “잘했네” 잘했다고 하는 그 한마디에 내심 놀라서 개발팀장의 표정을 한 번 더 살펴 보았는데 약간 미소를 머금은 표정이었다. 놀리려거나, 실망스러운 표정은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일단 우리가 만들었던 걸 보여 주마” 개발팀장은 우리를 향해 씩- 웃어 보이더니 옆에 놓여 있던 디스켓을 넣고 실행시켰다. 우리가 만든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교한 맵이 나타났다. 개발팀장은 맵의 구석구석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곳은 이래서 이렇고 저곳은 이런 걸 써야 하고, 하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궁금해했던 것들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왜 이런 걸 진작 가르쳐 주지 않았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개발팀장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계속 생각했는데 말이다. 우리가 개발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 너희한테 너무 어려운 걸 시킨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구나. 이제부터는 타일 찍는 것보다 학교 끝나면 회사에 와서 만들어진 스테이지를 보고 이야기를 해주면 어떻겠니?” 우리의 능력이 떨어져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은 있었지만 뭘 선택하고 고를 계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몇 달간 다우에 나가서 만들어진 맵을 보고 평가를 하거나, 만드는 과정에서 조언하는 일을 하게 된다. 부딪쳐 보지 않으면 모르지 몇 달이 지나 수당을 받는 날이 되었다. “자, 수고들 했다” 개발팀장이 내민 흰색 봉투를 받아든 우리는 아이들처럼 (아니 그 당시로는 아직 아이들인가……^^) 좋아했고 그건 정말 내 인생에 있어서 최초로 게임 개발에 참여해서 받은 돈이기도 했다. 그런데, 놀랄만한 일은 또 있었다. “자 이건 네 선물이다” 개발팀장이 나한테 내민 건 당시 중학교 교과서보다 더 큰 패키지. MSX용 [메탈 기어 2]!! “아니,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네가 갖고 싶다고 했잖아?” 확실히, 몇 주 전인가 일본에 출장 갔다 온 개발자 하나가 들고 있던 것을 부러운 눈으로 계속 쳐다봤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시연하는 것도……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게임인데 그걸 내게 준다니…… 왜 나한테만 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_-; 어쨌든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
내가 [메탈 기어 2]를 신주 모시듯 만지작만지작 하는 걸 개발팀장이 물끄러미 보고 있더니 말했다. “그렇게 좋으냐?” “그럼요. 이거 꿈에도 몇 번 나왔던 건데” “일본 게임인데도?” 개발팀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눈동자에 경멸하는 빛은 없는 것 같았다. 약간 안도가 된다. 무엇이든 일본 것이라면 자세히 알고만 있어도 매국노로 통하던 시절이었기에 어린 나이에도 눈치가 보였으리라. “전 일본 게임이 좋아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일본이 좋다기보다는 일본의 게임이 좋아요, 라고. “그래, 나도 일본 게임을 좋아하지”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개발팀장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일본에 가끔 (주3)출장을 갔다 오지만 갈 때마다 느낀다. 정말 대단한 나라라고 말이야. 특히 일본 게임이란 건 정말 대단하지, 아직 우리가 쫓아가려면……” 쓴웃음을 짓는 그의 표정에서 약간 시니컬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말이야. 일본보다 더 좋은 게임을 만들고 있을 거야. 너 게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지?” “네, 그렇지만, 게임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힘들다고 쳐다보기만 하면 안 되는 거야. 모든 건 부딪쳐 보지 않으면 모르지. 그 툴만해도 이젠 어때? 만드는 과정을 계속 보니까 좀 더 알 것 같지 않아?” “네 뭐……” 확실히 그랬다. 그렇게 무섭고 대단해 보이던 툴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런 기능이 있으면 어떨까, 저런 기능은 없을까, 하고 좀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없는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개발팀장에게 [메탈 기어 2]를 선물로 받고 끝난 다우에서의 짧았던 아르바이트 경험은 지금도 중요한 삶의 교훈으로 남아 있다. 그가 선물로 줬던 [메탈 기어 2]는 없지만 그가 나한테 해주었던 몇 마디는 가슴속에 남아서 내일을 향한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 게임 개발을 하기 위해선 지금이야, 게임 산업이 엄청나게 커져 있기 때문에 수백 개의 업체들이 구인 공고를 올려놓고 있고. 게임 분야의 전문 구인 공고가 올라오는 웹 사이트도 있어,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가 게임 개발사에 취업의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이런 것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실례를 들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한 것이다. 일체의 구인 공고도,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인력을 필요로 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시절,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어린 소년들이 어떻게 해서 개발의 길에 접근하게 되었는지 그 외의 사례를 알아 본다. 각급 학교에 배치된 컴퓨터서클 1980년대 들어 정부가 컴퓨터 교육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한다는 움직임에 따라 일선 학교에 컴퓨터 학습실이 들어서게 되었고, 정식 교과목에 채택은 되지 않았지만, 도서부, 바둑부 같은 특활 부서로 컴퓨터부가 생겨 나게 되었다. 또한 정부에서는 이런 컴퓨터부의 특활 활동을 장려한다는 차원에서 대기업의 후원 하에 컴퓨터 경진 대회 등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는데, 여기에 입상하면 후원 업체에 들어가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게임을 개발해 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었다. 또한, 컴퓨터학원 못지않은 커뮤니티 기능도 갖고 있어서, 단지 주 단위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 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자작 프로그램 전시회를 여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전시회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의 숨은 실력자들까지 모여 서로 노하우 및 연락 정보를 교환하는 등, 활발한 교류가 일어났고 이런 교류를 바탕으로 아마추어 팀이 탄생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컴퓨터 대리점의 역할 교육용 컴퓨터 시장의 활황과 더불어 전국에는 수많은 컴퓨터 전문점이 생겨났다. 지금과 달리 가정용 컴퓨터가 몹시 비쌌던 시대. 컴퓨터학원 및 각급학교의 컴퓨터 서클과 더불어 아이들의 컴퓨터 조작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던 곳이 바로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컴퓨터 대리점이다. 작은 규모의 컴퓨터 대리점에는 모니터에 나오는 게임 화면을 구경하기 위해 아이들이 몰려 있거나 게임 소프트웨어를 복사하기 위해 줄 서 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시내 중심가의 대형 대리점 같은 경우, 아예 시연용 컴퓨터가 매장 내외에 놓여 있고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이들이 장사진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자리는 항상 한정 되어 있었고, 이 몇 안 되는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 가게가 문 열기 몇 시간 전인 새벽 6시부터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9시가 넘어 오픈할 무렵에는 줄 선 아이들이 몇십 명까지 늘어나 있지만 결국 시연대의 컴퓨터를 차지하는 것은 십 여명 남짓. 이 들은 결코 가게가 문 닫을 때까지 자리를 넘겨 주지 않는다. -_- 물론, 게임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개중에는 전문 프로그램 서적을 한아름 싸들고 와서 아침부터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코딩만 하다가 돌아가는 열혈 프로그래머들도 많았다. 비록, 집안 사정으로 컴퓨터를 장만할 수 없었지만 컴퓨터를 향한,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열정이 이들을 컴퓨터 앞으로 불러 모은 것이었다. 이렇게 여러 아이들이 모여서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면 서로 정보를 교환하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 의기투합하여 아마추어 팀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 다음은 앞서 이야기했던 경진 대회에 출전하거나 하는 수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매우 드문 케이스지만 가끔 점주의 눈에 띄어 소개를 통해 더 큰 개발사의 사장에게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용산의 게임전문점 (주4)만트라 같은 곳은 그러한 케이스로 유명했던 곳이다. 개발과 유통을 독자적으로 추진한 남자 컴퓨터학원도 각급 학교의 컴퓨터부나 대형 컴퓨터 전문점과 같은 창구 역할을 했지만, 한국 게임 시장의 흥망사 3편에서 자세히 언급하였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이 외에 상업용 게임 제작에 입문한 독특한 형태로는 1987년에 아프로만을 통해 애플용 롤플레잉 게임 “신검의 전설”을 발매한 게임 개발자 남인환씨가 있다.
당시 남인환씨는 고등학생의 신분임에도 거의 혼자서 개발 전담, 마지막에는 유통 계약까지 독자적으로 접촉하여 아프로만과 토피아 두 회사와 계약 교섭을 진행했고, 결국 아프로만과 계약하여 시장에 상용 제품으로 내놓았다. 비교적 간단한 형태의 롤플레잉 게임이기는 했지만 프로그램, 기획, 그래픽, 사운드를 혼자 전담했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앞서 이야기했던 경진 대회나, 인맥을 통한 소개 등을 거치지 않고 선개발, 후판로 개척이라는 모델로 평가할 만 하다. 이외, 1980년대 후반 PC 통신의 활성화와 함께 오프라인 상의 커뮤니티 활동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온라인 상에서의 교류를 바탕으로 게임 제작팀이 결성되고 개발 회사로 발전해 가는 모델이 나타나게 된다.
주1 : 당시는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줄여서 인터페이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주2 : 2D 게임에서 지형을 구성하는 단위를 작게 쪼갠 맵. 주3 :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일반 국민이 관광을 목적으로 출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서 일본의 생활상이나 첨단 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는 매우 떨어져 있었고 기업의 기술자 자격으로 출국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러한 경우, 일본의 게임 산업 등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했을 것이다. 주4 : 1990년대 초반 주식회사 한도흥산무역에서 용산전자상가에 오픈한 콘솔게임 전문점. 콘솔게임 전문점이라고는 해도 대형 프로젝션 TV 등을 직접 일본에서 공수해와 시연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콘솔 게임 뿐만 아니라 게임뮤직 음반,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 등을 판매하는 등, 일본의 아키바 문화를 그대로 용산에 떼다 박아 놓은 듯한 인상의 전문점으로 일종의 일본문화 메카 역할을 했던 곳. 1994년에는 팰콤의 허가를 받아 [이스-2 스페셜]이라는 괴작(?)을 제작하기도 하는 등. 단순한 전문점을 떠나 개발 업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곳이었다. |
[컬럼] [ETC] 한국 게임 시장의 흥망사(7)-잡지 분석기사에서 게임개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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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자신의 경험을 뼈대로해서 줄거리를 전개해 나가는 솜씨에 찬사를 보냅니다. 친숙한 기분으로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가면서도 내용이 정확하게 와닿습니다. (저에게는 없는...ㅠ.ㅠ)
언제나 볼때마다 감동이 밀려옵니다 ㅜㅜ
새삼 지금의 개발자 지망생들은 그때만한 열정을 갖기는 힘들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제 막 코딩을 하기 시작한 저로서는 정말 감탄스럽군요. 제가 걸음마할 시절의 국내 게임 개발이라...
어른이 됫을때는 일본게임보다 더 좋은게임을 만드는 나라도 있을것임. 그나저나...면탈겨2는 정말 부럽네요.
저 삼성겜보이 제가 초등학교 3학년대 삿던기억나는군요 특히 겜보이에 내장에있는 알렉스 키드에 빠져산 기억이 나네요 ㅎㅎ
늘 정말 감동을 받으며 글을 읽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라올때가 되었는데 생각이 되어서 전글을 오늘 회사에서 읽어봤는데 집에와서 보니 이렇게 글이 올라왔네요.. 89년이면 .. 저도 MSX와의 만남이란 책에 게임분석을 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정말 게임이 재미있었는데 말이죠...(저도 중학생이었으니 아마도 비슷한 년배이신듯..)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그 당시에 좀더 많은 개발업체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셨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점점 칼럼보다는 자전기에 가까운 글에 MSX 편중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이니 만큼 좀더 객관적으로 풀어나가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알렉스키드 정말 재미있게 했었죠 ㅡㅡㅋ
개중에는 전문 프로그램 서적을 한아름 싸들고 와서 아침부터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코딩만 하다가 돌아가는 열혈 프로그래머들도 많았다. 정말 이 부분 감동이군요...
그 중요한 메탈기어2를 잃어버리다니... 안습
삼성 겜보이.... ...새로운 세상이 열렸죠...
전 80년 생인데 제가 게임에 관심을 가진 건 중학교 때였죠. 그 후로도 고교때 ps1 사기 전에는 게임챔프, 게임라인, 게임매거진등 게임잡지만 엄청 읽었네요. 그래서 해본 게임은 없고 그냥 이런 저런 게임이 있구나... 정도만 알았어요. 근데 그보다 훨씬 전의 이야기라서 거의 생소하고 재밌네요.^^
하아...제가 4살 때 삼성껨보이를 샀었는데 말이죠... ...선배시군요, 어헝; 어쨌든,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을 적어주셔서 뭔가 와닿는 것도 있고 말이죠. 저도 어릴 적부터 게임을 좋아해서 일단 그 쪽으로 가보곘다고 뛰어들긴 했는데... 어쨌든 부딪혀보라 이거군요. 부딪혀야겠습니다.
그당시라... 음~ 생각나는건 88년도였나? 오락실에 있던 꽃놀이 라는 게임에 상당히 흥미가 있었죠 오락기에서 돈이 나왔으니 말이죠 그것도 6살에;;
루리웹 접속 해서 글읽다 "이돌컴"이란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와서 로긴하고 글 남깁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게임X프에 기자분으로 활동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케릭터가 돌로된 컴퓨터였죠 아마 그때 다른기작분들이 제가 기억나는걸론 혼다..라는분이랑 우춘리 이렇게 밖에 생각안나네요...대략 13~4년전일이라서 그런지 가물가물~ 어찌됐든 지금도 꾸준히 게임을 사랑하시고 잡지와 같은 오프가 아닌 온라인에서 본것만 해도 너무 기쁩니다 ^^
신검의 전설은 저도 애플-2로 즐기던 게임입니다.^^ 어린시절의 기억이지만 컴퓨터 앞에 붙어서 밤을꼴딱 새며 하던 기억이 납니다^^
삼성 겜보이 투... 저도 저걸 가지고 싶었지만 그때 저는 삼성 겜보이를 가지고 있어서 구입을 못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롬팩과 카드슬롯 두가지 들어가는 직사각형의 납작한 녀석) 나중에 어머니께서 게임을 선물 해주셨는데 그게 구형 겜보이에서는 작동 안 하는 롬이였지요. 겜보이 투에서만 작동하는데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롬팩 초기화된 기억이 나는군요.. (지금 다시 생각하면 안습이..;)
헐.. ㅡ.ㅡ);;
....사회의 슬픔이 드러나기 시작하군요(...)
저 삼성겜보이 아마 국민학교 2학년떄 제가 처음으로 샀던 게임기죠 -_-
저 게임기...어렸을때 가지고 놀았는데.. 팩은 소닉뿐..그래도 얼마나 재밌게 했는지. ㅎㅎ
오..........................................
글 잘 봤습니다. 저 당시의 남인환 박사라면 굉장히 게임 업계를 통틀어 존경받던 인물이었지요. 지금이야 아케인과 프리프가 점점 뒤로 묻혀가면서 남인환 박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신검의 전설 2와 에일리언 슬레이어 등의 게임은 나름대로 그당시 갖출 수 있는 것들은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존경하는 개발자 순위권에서도 얼굴이 보이셨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는지 많이 잊혀진, 그래서 아쉬운 이름을 오랜만에 들어봤네요.
핫. 옛날 생각 나네요. 유아원 다닐때 부모님이 사주셨던.. 움. 저게 한글이였던가?.. 생각이 가물가물. 게임이름이 알렉스 였던가.. 전자총 게임은 람보였는데 몇탄인지는... 티비에 대고 총을 쏘았는데.. 상당히 잼있었는.. 생각해보니 어렸을때부터 게임을 했구나. 90년대 초에 나왓는데 그당시 저 가격이면 얼마려나.. 아. 그리고 소닉은 저거 다음인가에 나온 삼성 메가드라이브 인가 그거용 아닌가요?
신..신검의전설.... 신검의전설2로 인해 울티마류의게임을 알게되었고미국식 RPG의자유도라고나 할까 그런것도 알게되고... 아무튼 저에게 가장 재미있게 한 국산 타이틀 2개중 하나였죠 신검의전설2,어스토...
ㅎㅎ 이제 곳 90년대 군요~ 기대됩니다.
남인환씨 인터뷰...가 제가 가지고 있는 게임 잡지에 있군요. 에일리언 슬레이어 제작자였죠 참. 무슨 게임 하나 만들었던 거 같은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났었습니다. 에일리언 슬레이어...해보질 못해서 게임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군요.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기다렸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있네요~ ! ^ㅂ^ b (난 그때 뭐했지? 하는 생각도 드네요 헤헤)
잘 읽었습니다 부럽네요
'신검의전설2 라이어' 하다가 보석들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해메어서 개발사에 직접 전화해 진행하던 그때가 생각 납니다. 저의 두번째 국산 패키지 게임이었던 점도 그렇지만 내용면에서도 참 잼있었다고 해야하나요? 몰입도가 높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정말 좋은글이네요..ㅎㅎ옛추억속으로...ㅎ
하지만 이제 국산 게임의 흔적들만 남았을뿐....
남인환씨...지금은 이온소프트 부사장으로서 이온소프트는 '프리프 온라인' 서비스중이죠...
에일리언 슬레이어는 재밌게 했던 작품입니다. 스토리나 진행도 괜찮았지요 특히 무기를 얻고 가지고 움직이는게 상당히 게임성이 뛰었났던걸로 기억합니다.
저 삼성겜보이있었는데... 양배추게임 재미있었음
잘 보았씁니다. 정말 게임 개발을 하는게 힘들 다는게 직접 부딪쳐 보면 알 수 있더군요...
재미있습니다. 당시 열혈국민학생 및 열혈중학생이셨군요~~ 님과 같은 분이 계셔서 게임계가 이렇게 발전했나 봅니다.
그라나도의 김학규씨도 저 '만트라' 소속이었습니다
만트라에 김형태씨도 계셨죠. 무언가 신작 게임 만들고 있었는데 (김형태씨 일러스트로 잡지 광고도 나왔었습니다.) 하이콤 부도사태로 만트라 무너지고 나서 소맥으로 이적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시점이 창세기외전 템페스트 제작중이던 시점이었죠...
대단하시네요...
신검의 전설2 라이어.. 정말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몰입감이 일품이었던 국산게임...
젠장 신검의전설.. 제 컴이 삼보트라이젬컴퓨터였는데 안돌아 갔다는! 최초로 제돈내고 산 게임이 호환성이 떨어져서 해보지도 못하고 ㅜㅜ 롬바이오스까지 Apple ][e 로 청계천에서 개조까지 했건만 ㅜㅜ 결국 못했답니다. 제 게임라이프의 천추의 한! 신검의 전설설설설설..
만트라에 신작게임이 랩소디언 어컬텔러였던가 그랬을겁니다. 나오면 해보고 싶었는데..
와..님의 글들은 매번 나올때마다 읽어봐도 정말 재미있네요..^^
흐음 잼있네요 ^^... 그리고 대단하시다니.. 중학생일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만트라.. 정말 당시로서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지요 수퍼패미콤 팩들.. PC엔진 롬카드, 시디롬게임들, 메가드라이브 팩들.. 저도 만트라에서 메탈기어2를 구입했었습니다. 용산에 있었다가 강남고속터미널 꼭대기층으로 이전했던 기억이 있는데, 특이한것은 만트라에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네오지오도 취급하고 있었지요. 그것도 전부 일본 내수용 기계를요.. 갖고싶었지만 당시의 경제능력으로는, 음.. 어쨌던간에 정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게임샵이군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언제나 잘보고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당시 다우기술에서 게임 기획에대한 공모전도 했었죠. 드래곤 퀘스트 3에 대한 분석작업(MAP 구조나 시나리오 역설계) 같은 것도 했었습니다. 당시 친구들 몇몇이 그쪽에서 게임분석에대한 아르바이트를 했었답니다..
그 시절 게임들은 지금 보다 그래픽도 안좋고 사운드 자유도. 여러가지가 딸렸지만 가슴을 태우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어째서 인지 그런게 없네요...
이돌컴님 꼭 한번 뵙고 싶네요 ^^
“하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말이야. 일본보다 더 좋은 게임을 만들고 있을 거야. 너 게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지?” 씁쓸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ㅠ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요세는 어째서 일본시장의 침채됀부분만 배껴오는지 T^T 정말 씁쓸;;;;
이돌컴님 제 가슴에 뭔가 뭉클하네요! 저도 게임프로그래밍이 꿈인 고등학생입니다... 이런 게임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저는 당시 패미콤 시절이였음) 정말 감동입니다!
만트라. 여러 기억이 교차하는 곳이죠. 용산 나진 17동인가 있었던가요? 어렸을 때 자주 다니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콘솔게임 유저들은 대부분 어린 애들이였고 또 다들 돈이 없었죠. (요즘은 그래도 저변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척박하던 시기에 원하는 팩이던 패키지던 얻을 수 있는 곳은 용산의 몇군데로 제한되어 있었고 또 매우 비싸게 구해야만 했던 시기지요. 지금은 보따리도 경쟁체제라 많이 가격이 합리적이지만 그 때는 더더욱 비쌌습니다. 지금 이러한 독보(?)적인 콘솔 오프매장이 없어서 (거의 없죠. 이 당시 만트라의 포스를 가진 오프라인 콘솔 매장은) 더더욱 그 때가 좋았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 같습니다. 지금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판타지스타3 패키지를 보면서 군침을 많이 흘리다가 못참고 결국 업어왔던 기억이 나네요. 가장 군침을 많이 흘렸던 건 뭐니뭐니해도 그 대형(40인치 정도?) RGB 모티터고요. :-)
칼럼 잘 읽었습니다. 저도 MSX2시절부터 게임유저였다가 성장한 지금은 게임업계에 있어서인지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그리고 위에 남인환씨는 그 유명한 김학규 PD의 스승님 아니겠습니까. ^^
만화 '브레이크 에이지' 의 한장면 같은 내용이로군요...연재분에 살을 붙여서, 단행본 내셔도 팔리겠습니다. 시작은 비슷한 시기에 해서, 다른 나라는 저만큼 앞서가는데, 대한민국은 퇴보 혹은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게 대한민국 개발분야의 개떡같은 고질병중 하나죠. 그나마, 게임업계는 다른 개발분야에 비해, 훨씬 나은 상황일지도...?
저도, 올해로 20이라 80년대 게임상황은 잘 모릅니다만.. 컴퓨터 사고 한창 게임 즐기던 때에 게임프로그램까지(며칠정도..) 손 댔던 기억이 나는군요. 샘플 보고 약초도 찍어보고.. 친구랑 둘이서 누가 더 잘 했나 비교도 해보고 했는데..(도저히 사람을 찍을 엄두가 안났지만;;) 요즘 나오는 머그게임이 아니라 머드게임을 받아서 해보기도 하고..요새는 알피지2k같은 게 나와서 그때보다는 손쉽게 게임제작에 다가갈 수 있는 듯..
뭐... 요즘은 저같이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서 이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되지만 옛날에는 정말... 뭐 저도 아직 어려서 80년대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게임 개발이라는 것에 빠지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ㅋ
비슷한 시대와 비슷한 환경이라도 지역이 다르네요..-_-. 당시 지방에 있었던 저와 주변 친구들은 이런 기회도 오지 않았죠. 그나마 서울.. 이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을 것입니다.
으헉!~;; 우리학교 컴퓨터 서클이 떠오르는 이유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디럭스페인트... 닥터할로를 쓰다가 디럭스페인트를 보았을땐...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이거이거 대박인데 ㅎ
최고입니다...ㅜ.ㅜ;;;
아 봤던 거구나.... 다음편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은데요!
리뷰 보다가 정말 재미있어서 1편부터 주욱 봤습니다. 저두 재믹스라던가 MSX를 이리저리 조작하던 기억이 나네요. 전 나이가 젊어서 MSX계열 보다는 IBM PC부터 만지던 사람입니다만, 80년대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정말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컴형님, 좋은 글 더 많이 써주십쇼!! ^^
정말 잘 읽었습니다 ^^
만트라에 관해 제가 알고 있는것 좀 더 적겠습니다. 그당시 아마 용산 나진 18동 3층인가 였을겁니다. 처음엔 패미컴, MSX 등의 게임팩을 들여와 팔다가 나중엔 MSX2+ 등을 들여오죠. 독자적으로 만트라 소식지도 발간했는데 게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몇년 지나 정부에서 교육용 PC를 16비트로 정해 MSX가 사향세일때는 MSX TurboR 등을 들여오다 사운드캔버스88 등의 미디 기기들을 들여오기 시작했고 매장도 그전 매장의 건너편 작은 곳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그 후 몇년 후 이스2 스패셜을 제작하게 된거죠... 이후 매장을 철수하고 게임 유통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이스 이터널 같은 게임들을 유통해왔고 인기작들은 꽤 있었지만 국내 유져들의 불법복제와 게임잡지사들의 번들결쟁에 힘입어 부도 처리됩니다... 지금은 그들이 뭘 하고 잇을지 궁금하네요... 아 옛날이여 ㅜㅜ;
다우기술이라... 매우 오래전에 '플래닛오브드래곤'이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갑자기 떠올리는군요..
다우기술이라... 매우 오래전에 '플래닛오브드래곤'이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갑자기 떠올리는군요..
저는 학생인데 이게 무슨 내용인지 반은 모르겠고 반은 알아들었던거 같습니다.. 우리도 전자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어 비디어 게임시장으로 많이 넓혀 야겠죠 이러다가는 수입에만 의존하게 되는 추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