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디푸른 봄날. 서울 근교의 대공원에 일단의 국민학생들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봄과 가을 두 번으로 나눠 실시 되는 야외 소풍. 21세기와 달리 인터넷도 게임방도 존재하지 않는 1981년의 국민학생들에겐 1년에 두 번 있는 소풍이 분명 기대되고 들뜨는 일이었을 것이다. 집에서 부모님이 싸준 맛난 도시락을 먹고 나면 주어지는 자유시간. 아이들은 저마다 친한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거나 간단한 놀이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아이들이 몰려 있는 한쪽엔 어떤 아이가 갖고 온 액정게임기 때문에 반 아이들이 모두 몰려들어 정신이 없다. 아이들이 너무나 몰려들어 통제를 위해 단속에 나선 선생님도 외국에서 건너온 희귀한 게임기에 어느새 넋이 빠져 버린다. 압수라는 명분하에 가져간 액정게임기를 선생님들끼리 몰려 정신없이 플레이하는 광경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시절.
당시 세계는 물론, 한국의 액정 게임기 시장을 지배했던 기업은 닌텐도였다.
젊은 닌텐도의 출발 1889년의 창업 이래 카드 전문 회사로서 견실하게 성장해 온 닌텐도의 2대 사장 (주2)야마우치 세키료우가 1949년 타계한다. 타계하기 얼마 전 야마우치 가문의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젊은 히로시에게 기업을 내주기 위해 유언을 하는 야마우치 세키료우에게 22세의 젊은 대학생 (주3)야마우치 히로시는 자신이 닌텐도의 3대 사장이 되는 조건을 제시한다.
가문의 모두가 경악할 일이었지만 이 철없는 어린 손자를 기업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던 야마우치 세키료우는 그 말에 따라 회사의 다른 친인척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다. 친인척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일본 최고의 카드 제작 회사 대표 자리에 앉은 남자 야마우치 히로시. 그러나, 이제 갓 22살에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중퇴한 젊은 청년이었던 그를 회사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지 않았다. 사원수나 매출 규모 면에서는 중소기업 정도였지만 카드회사로서의 입지는 전국 규모의 브랜드였던 닌텐도. 임직원들의 프라이드가 워낙 강한 탓도 있어 사내에서는 곧바로 반대파가 들고 일어났다. “이런 부잣집 도련님 밑에서 일을 하겠나” 라는 것이 반대파의 (주4)스트라이크 명분. 하지만, 야마우치 본인이 너무나 정열적으로 회사 일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반대파의 간부들도 얼마 안 가 스트라이크를 중지하고 업무 현장에 복귀하게 된다. 가문의 친인척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의 인정도 용납하지 않았던 야마우치였지만 회사의 실무진에 대해서는 꾸준한 설득과 솔선수범으로 스스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는데, 이 청년의 그릇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일로 야마우치는 엄청난 정신적 쇼크를 받는다. “카드제작으로 세계 최고가 겨우 이런 건가” 라고 되뇌는 야마우치의 머릿속에 (주6)규모의 경제가 나오는 새로운 비즈니스에로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62년. 야마우치는 닌텐도를 오사카 증권 거래소 2부에 상장시킨다. 상장하자마자 900엔 전후까지 치솟아, 비교적 견조한 상승 흐름을 타게 된 닌텐도는 이제 주주들에 대해 기업의 성장에 대한 책임도 떠안게 되어, 가업이었던 카드제작회사에서 탈피해 좀 더 규모가 나오는 기업으로의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야마우치 히로시의 기묘한 실험실 1962년의 상장 이후, 야마우치는 본격적인 탈 카드 사업으로의 액션을 취하는데, 이제까지 쌓아 온 카드제작회사로서의 이미지를 탈출하기 위해 이때 손댔던 사업군은 놀랄 만큼 다양하고 비대하다. 일본 경제의 활황기에 힘입어 사회 전반적으로 불어 닥친 향락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러브호텔의 경영 비즈니스에 손대는가 하면(야마우치 사장이 일부러 자사가 운영하는 러브호텔을 이용할 정도로 열의가 높았다고 한다) 교토에서 시작해 오사카, 도쿄 등지로 뻗어나가는 MK택시의 획기적인 성공 사례를 보고는 곧바로 “다이아택시”라는 택시회사를 인수해서 자회사로 만들어 버리는 등, 하여간 카드제작사업이 아니면서 흑자를 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들어간 연구비를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판매를 해야 할 상황. 물론, 판매결과는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야마우치 사장은 식품 사업에의 길도 포기하게 된다. 이런저런 사업 시도가 계속해서 실패로 끝난데다가 1964년에 닌텐도의 수익을 받쳐 주고 있던 트럼프 시장이 포화 상태에 도달하면서 닌텐도의 매출도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한다. 결국 닌텐도의 주가는 900엔에서 급격한 하락 곡선을 그려, 1964년에는 60엔까지 떨어져 버렸다. 야마우치 사장은 이때를 회상하며 자주 “오락의 세계는 천국이 아니면 지옥” 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오락상품이라는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에 오늘 밤 자고 내일 일어나면 시장이 없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연이은 실패 속에 야마우치 사장은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데 “기업으로서 노하우의 중요성” 이라는 점이다. 닌텐도는 창업 당시부터 오락 산업의 하나인 카드 제작에 매달려 왔기 때문에 아무리 카드제작 사업에서 탈피한다고 해도 갑자기, 택시회사, 러브호텔 경영, 식품사업 등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역시 이제까지 걸어온 오락사업의 범주에서 좀 더 규모가 큰 것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라고 생각하는 야마우치의 발상전환은 오락을 전자기술을 응용한 완구사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으로 연결된다.
1965년부터 닌텐도는 이공계 대졸자의 채용을 증가시키기 시작한다. 단지 카드제작회사로서 유명할 뿐인 지방기업 닌텐도에 이공계 대졸자의 지원은 극히 미미했지만, 야마우치 본인의 완구사업에 대한 열정도 한몫하여 점차 완구회사로서의 외형을 갖춰나가기 시작한다.
“이제 설비 점검은 그만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만 전념해주게” 야마우치 사장의 특명을 받은 요코이는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속속 새로운 완구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는다. 이로써 닌텐도의 주력사업은 카드제작에서 완구제작으로 완전히 변모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는 닌텐도의 기술력이 점차 쌓이게 되어, 기술과 아이디어가 접목된 여러 전자완구를 출시하는 시기이다. 1970년에 발매한 “광선총”, “광선총SP” 시리즈는 그 해 완구업계에서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회중전등의 전구, 전지와 셔터장치를 이용해서 총에서 광선을 발사, 태양전지의 (주8)수광센서를 이용해서 표적으로 사용하는 이 완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가전을 응용해서 조합한 것뿐인 간단한 시스템이었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폭발적인 매상에도 불구하고 회계 결산의 뚜껑을 열어 보니 회사의 순이익에는 크게 기여한 것이 없었는데, 당시 닌텐도의 기술력으로는 제품에 여러 한계가 발생하여 불량품이 속출, 잦은 (주9)클레임으로 인해 팔린 만큼 이익을 회수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야마우치가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향해 온 “전자기술을 이용한 완구사업”에의 결실은 1980년대 들어 빛을 발한다. 어느 날 요코이가 신칸센 내에서 평범한 회사원이 전자계산기를 꺼내들고 버튼을 누르며 시간을 때우는 광경을 보며 킬링타임용의 작은 휴대용 게임기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발상을 한 것이 계기였다. 다음날, 요코이는 곧 바로 야마우치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야마우치는 신속하게 전자계산기 업계의 일인자 샤프에 그 이야기를 들고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전자계산기 사이즈의 게임기가 등장하는 단초가 된다. 1980년 봄, 세계 최초의 휴대용 액정게임기로 등장한 게임앤워치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와 단순한 게임성이 시장에 크게 어필하여 유년 층보다는 성인층을 타겟으로 설정한 고가(5,800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년 층까지 대히트. 일본은 물론 세계 전역으로 그 인기가 확산 되었다. 이제까지 닌텐도의 완구가 일본 및 특정 국가에서만 팔려나갔던 것에 반해 휴대용 액정게임기 “게임앤워치”는 세계 전역에서 골고루 판매. 모든 지역에서 대히트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5,000엔이라는 가격은 당시의 물가나 완구 류의 가격과 비교해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자, 야마우치는 “전자기술을 이용한 완구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팔 수 있다”라는 것과 “오락상품은 확실히 재미만 있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유저가 사준다” 라고 하는 확신을 얻은 계기가 되었다. 게임앤워치의 세계적인 히트로 인해 닌텐도는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함과 동시에 안고 있던 부채를 모두 탕감하고도 엄청난 양의 현금을 확보함으로써 고수익 구조의 우량기업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게임앤워치는 세계게임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을 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게임앤워치 몇 종에 대해 알아보자.
“볼”은 그런 면에서 훌륭한 게임이었고 대히트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에는 의외로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기종.
닌텐도는 돈키콩 한 종류만으로 세계에서 800만 대 판매 실적을 달성하였다.
닌텐도에서 발매한 게임앤워치가 크게 히트하자 에포크, 반다이, 토미 같은 완구 제조업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어 시장은 그야말로 액정 게임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게임앤워치에 대항했던 액정게임기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두 번째 게임은 샤아 전용 자쿠가 내려온다. 세 번째 게임은 볼을 타고 운석을 피하면서 비행. 이쯤 되면 슈팅이라기보다 레이싱에 가깝다. 비슷한 게임 시스템을 가지고 세 개의 타이틀로 바리에이션을 준 것이 유저들에게 어필 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게임앤워치가 출시 된 것은 1980년. 그러나 당시는 가전제품 및 완구류의 수입 자유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특히 수출 강국을 모토로 하는 대한민국의 수출입법에 의해 공산품 및 기호품의 수입은 철저히 규제되고 있었다. 게다가, 오락에 관련 된 일본 제품은 일본문화의 유입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지정 된 각종 법률로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어서 특히 수입이 힘들었다. 결국 게임앤워치가 본격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정식 발매되기 시작한 1981년부터 띄엄띄엄 수입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소규모 영세상인의 오퍼 정도로나 가능한 실정이었다.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1980년~1986년 사이에 케이스나 설명서가 없는 상태로 비닐에 포장된 형태의 게임앤워치를 동네 문방구 등에서 파는 경우가 많았다. 주한미군 PX를 통해 들어오거나 그 밖의 소규모 오퍼로 들어오는 이런 제품들의 경우, 고장이 나도 수리를 의뢰할 곳이 없었고(1980년대 중반 이후가 되면 액정게임기를 수리해주는 전파사가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 가격은 최소 4만 원 이상~6만 원을 호가 하는 등 같은 제품이라도 가게마다 가격이 틀린 문제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비교적 규모를 갖춘 기업에서 일본의 미국 현지 법인을 통해 미국 생산품으로 등록 후 수입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한 것이 1982년~ 1989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패미컴 열풍이 시작된 1984년도부터 서서히 액정 게임기의 시대가 저물어 버리지만, 한국의 경우는 정식 수입이 늦은 탓도 있어 1989년 후반까지도 월간지에 액정 게임기의 광고가 실리는 등 꽤 활발한 판매 활동이 일어났다.
어느 쪽이든 정식으로 수입되던 제품군보다 불법적으로 유통된 닌텐도의 게임앤워치가 훨씬 시장에 많이 풀렸음은 확실하다. 닌텐도의 비닐봉지 게임앤워치는 1980년부터 등장해서 1986년경까지 동네 문방구의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1982년경부터 등장한 국내 정식수입사의 액정게임기들은 백화점 등지를 기반으로 동네 문방구까지 진출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장난감, 오락기기에 관한 시장은 동네 문방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인터넷도 별다른 정보 제공 매체도 없던 시기, 아이들은 하굣길에 문방구에서 접하게 되는 정보가 다였고 그 정보를 토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 및 게임기기를 구입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판매된 액정 게임기의 흔적 몇 가지를 소개한다.
당시 대기업 중 유일하게 액정게임기 시장에 참여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1980년대 초반부터 게임 사업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방증이 될지도 모르는 사진으로, 글로벌 로고로 변경하기 전의 쓰리스타 로고가 이채롭다.
반일감정 때문에 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일제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수입품이라도 자체 제작으로 얼버무려 홍보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카데미의 경우는 꽤 일찍부터 자체 A/S를 시행해 왔기 때문에 백화점 등지에서의 호응도 높은 편이었고 실제 하나기업, 영실업, 손오공, 삼성전자 등 다른 기업과 비교해 다양한 라인업을 확보 하고 있다.
지난 7편의 마무리에 언급한 대로 1980년대 말 오프라인상의 커뮤니티 활동이 온라인으로 옮겨가서 개발사로 발전하는 양상을 다룰 예정이었으나 예정을 바꿔 1980년대 전반을 풍미한 액정게임. 그리고, 그것을 창조한 닌텐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1980년대는 인터넷이나 매체가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기 때문에 당시의 시장 흔적이나 기록이 정확하고 깔끔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지금의 인터넷 세대에게는 더욱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주1: 원래는 기업의 오너가 순수한 개인자금을 기업 운용 비용으로 지출하는 것 등을 가리키는 경제 용어지만 여기서는 업종과 소비행태를 가리지 않고 순전히 소비자의 지출 가능한 총 금액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다. 주2: 원래 닌텐도의 창업주 야마우치 후사지로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결국 데릴사위로 맞아들인 가네다 세키료우라는 청년에게 2대 사장 자리를 물려 주게 되고, 가네다 세키료우는 야마우치 세키료우로 개명하게 된다. 1929년에 닌텐도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부동산 업종에도 진출하는 등 닌텐도의 매출 확대에 힘썼다. 주3: 닌텐도의 2대 사장 야마우치 세키료우 역시 아들 없이 딸만 낳았던 탓에 또다시 데릴사위를 맞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 데릴사위와 자신의 딸 사이에서 드디어 아들이 태어나게 된다(야마우치 가문 3대째 최초의 아들) 야마우치 가문의 귀한 도련님으로 받들어진 이 아이의 이름은 야마우치 히로시로 지어졌고 야마우치 히로시가 5세가 되던 해에, 닌텐도의 3대 사장으로 등극할 예정이던 히로시의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어 버리는 통에 곧바로 할아버지 손에 의해 양육되게 되는데, 이 부잣집 도련님이 얼마나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을지는 쉽게 상상이 될 것이다. 히로시는 21세 되던 해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닌텐도의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되고, 한동안 비싼 수업료를 내고 경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주4: 파업 또는, 파업에 준하는 노동운동, 업무거부행위 주5: 당시 보 잘 것 없었던 패전국 일본의 닌텐도 같은 작은 기업이 미국의 디즈니 같은 세계적인 업체와 판권 계약을 맺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우치는 꾸준히 교섭을 진행시켜 결국 성공, 대내외 신인도를 향상시킴과 동시에 세계 최초로 캐릭터를 이용한 트럼프 제작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주6: 생산 및 경영의 규모를 키울수록 매출 및 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원리를 이야기한다 주7: 1941년 출생, 1997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타계하기까지 세계게임시장의 혁명을 주도했던 인물. 대학 시절의 성적은 밑에서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형편없었던 탓에, 졸업 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닌텐도에 입사할 수 밖에 없었다는 회고기록이 남아 있다. 입사 후 줄곧 설비보수 담당으로 일하던 그가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만든 목제 “울트라핸드”를 갖고 노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야마우치의 “상품화시켜!” 라는 한마디를 계기로 닌텐도의 개발을 총지휘하게 된다. 개발 1부의 부장으로 취임하여 간단한 완구인 울트라핸드, 광선총에서부터 게임앤워치, 게임보이에 이르는 휴대용 게임기에 이르기까지 닌텐도의 간판 상품 대부분을 기획, 제작하였다. 1996년에 독립법인 설립으로 세간의 기대를 모았으나 1997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타계. 주8: 受光센서. 빛을 받아 전기 에너지로 바꿔 주는 센서 주9: 매매거래 및 계약에 있어서 위반 사항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 여기서는 주로 소비자의 구매 제품에 대한 반품 요구를 말한다 주10: 합체 시스템을 최초로 채용했던 세로 스크롤 슈팅게임. 1980년에 게임센터에 공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주11: 정식 회사명은 “과학창조연구소”로 여기서 학, 연 두 글자를 조합하여 일어로 읽은 “가켄”을 메이커 명으로 사용해 왔다. 마치 한국의 학생과학과 같았던 존재로 이쪽은 과학 잡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난감, 전자완구 등도 출시해 오고 있다 주12: 기업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경쟁시장이 아니라,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이론 주13: Game Developers Conference의 약자. PC패키지, 콘솔, 모바일, 아케이드, 온라인게임, 로케이션 베이스의 엔터테인먼트 개발에 관련된 전 세계 모든 게임 개발자에 의한, 그리고 게임 개발자를 위한 공식 회의 이벤트 |
[컬럼] [ETC] 한국 게임 시장의 흥망사(8)-액정게임기와 닌텐도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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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16비트게임은 아직멀엇나...내용보고싶은데
글설리
흠..
선리플~~ 후 감상!!ㅋ
헉! 닌텐도ds가 돈킹콩 모델과 디자인이 같쟈나!!!!!!!!!!!!!!!!!!!!!!!!!!!!! 그럼 돈킹콩을 보고 ds디자인을 만들었나/. 오늘 처음 알았네/
저 동키콩 게임기 사려고 그렇게 돈모았지만, 정작 딴거 샀었던 기억이....
마리오 하고싶은데 아답터 고장으로 ㅋ--;
후아...액정게임기가 저렇게 만들어진거구나.
아무생각없이 즐기던 액정게임기들.. 그런 역사들이 있었을줄이야.. 여기 추천없나..
흥망사 다음글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반갑네요 이번편 역시 유익하고 재밌습니다.
기억난다... 고스트모양게임기하고. 어렸을때 팩맨,고스트,동킹콩,다있었는데..ㅋㅋ.. 흥망사 글이 제일 재미있는거 같습니다. 쵝오. 추억이 세록세록하군요..
공감 그이상의 컬럼 (0ㅅ0)b
저거 사달라고 졸랐다가 호대게 맞았던 기억이 +_+
골곤을 여기서 보네 ㅋ
기립박수를 칠만한 컬럼입니다!!!! -ㅅ-b !!! Thumb Up!!!
야 정말 재미있구나 콤퓨터 게임^^ 고스트 하우스랑 스페이스호크 돈킹콩 중학교1학년때 끝내 입수 초등학교때는 저거 사달라고 하다가 죽음을 당하는 줄 알았음 빤스 바람에 밖에서 울면서 떨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이 컬럼 예전 게임라인에서 봤던 것과 상당히 흡사하군요. 혹시 그때 게임라인 에서 본 것도 이분이 쓰신건가.....
..ps3로 제발 '전부다 모아서' 완전이식+리메이크 해줘(퍽!)
정말 빨리 후편을 읽고 싶은 컬럼이네요. 나중에 꼭 책으로 출간되기를!!
빛나는AV//하하. 이미 GBA로 게임&워치 시리즈는 만들어졌지요. 닌텐도 클럽에게만 주는 것이였지만 말이에요
하항~ 덕분에 재미있게 글 잘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우리집엔 고르곤이 있었다.....
아... 고스트 하우스.. 3만 몇천원이엇나.. 초딩3학년때 거금을 주고 구입햇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재미있게 봤네요 ^^
이야...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집에 액정 게임기가 하나 있는데 이 글 보면서 생각이 났네요... 한번 꺼내서 해봐야 겠습니다 +_+
게임워치의 경우.. 백화점에서만 한정적으로 팔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구하기도 힘들었고 또 구했다고 하더라도 학교같은 곳에 가져가면 누군가 집어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었죠. 덕분에 꿈의 게임기라 불리우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위쪽에 있는 스페이스호크와 겔럭시2는 아직도 집안 어딘가에 있는데.. 지금 꺼내서 하더라도 중독성이 있죠. 정말 저때가 가장 열정을 가지고 게임을 하지 않았나 싶은.. 게임은 하루에 1시간이라는 모 카피를 가장 충실하게 지킨 때이기도 하였고... ^^
저렇게 국민소득이 낮았던 때도 게임기가 꽤나 인기있는걸 보면 어쨌든 우리나라는 가능성은 있는 시장이라고 봅니다.
허허허, 그시절 겜기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월매나 부러웠던지 ㅡㅡ;;; 아련한 옛향수에 살짝 웃음짓게 되네요...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사진들만 봐도 감동이네요.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감사합니다.
이돌컴님 리뷰를 즐겨 보는 회원입니다. 이번 게시물의 게임워치 부분에서 올바른 명칭은 donkey kong이죠. don king kong과는 좀... ^^; 뭐 에어리언이나 에일리언이나 에리안이나 그게 그거지만 말입니다 ^^;
요코이군페이님.... 천재
이야...덩키 콩은 저도 가지고 있었는데 ... 코스트하우스...ㆅ 그리운 게임들이 군요
요코이군페이..대단한 인물이네요.
역시나 닌텐도! 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
서부의 술집~
이번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어렸을때 가지고놀던 스크램블과 팩맨, 갤럭시2가 생각나네요 ^^
비록 읽어보진 않았지만 잘 쓰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요코이군페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군요. 현대 게임산업의 기틀을 세웠다고 봐도 무방한 사람.
추억이 새록새록 배어나는 칼럼...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옛날 추억이 되살아나는 좋은 정보네요. 감사합니다.~
잼있게 잘읽었습니다~^^
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퍼펙트베이스볼인가 ㅡㅡ;; 밑에 보니 카타고리 사진이 있던데.. 하나 있긴 했죠.. 부모님을 조르고 조르고 조르고 또 졸라서 샀던... 뭐 그거 사고 1년인가 2년후에 컴퓨터를 사서 부서지긴 했습니다만..
역시 재미있네요...81년이면 국민학교 1학년 -_-;; 개인적으로 옥토퍼스와 동킹콩이 제일 재미있었던...
낙하산 게임앤워치가 기억나네요.~^^
고스트하우스 재밌게했지만 저는 부모님께사달라고 한건 재믹스였는데... 정신차려보니 그게 제손에 들려있더군요... 나중에 세뱃돈모아서 재믹스사야지 라고 생각하고 광고의 소비자가가 10만원... 세뱃돈(1만원)으로 못사는건가 라던가, 인쇄가잘못됐나? 라던가, 이런단위는 어떻게 읽는거지? 라는 현실과 꿈에서의 괴리감을 뼈저리게 느꼈죠
이런 시절도 있었네요. 저는 게임보이 시절부터 오락을 해서리..ㅋ
나도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패미컴이전에 저런 액정게임기도 재밌다고 ㄲㄲ 댔던게 기억나네... 지금보면 못해먹겠지만 ㅋㅋ
하아..이런 것과는 정말 거리가 먼 액정게임들이 기억나는군요... ....(지나가던 승객을 택시안으로 납치하면 득점을 얻고. 산골짜기를 달리면서 어딘가로 계속해서 지나가던 액정 게임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슈팅이 기억나는군요.아아.그리운 시절입니다..라고 해도. 1985~년 정도 쯤 이야기.
광선총 패키지에 나온 얼굴 꼭 김정남 같이 생겼다..ㅋㅋㅋ
하악하악
돈킹콩은 아직도 제 책상서랍속에 보관되어있죠^^
닌텐도가 원레 화투만드는 회사였다는군요~ "임청당"
고인이 되신 요코이 군페이, 미야모토 시게루가 없다면 닌텐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
이름이 스페이스호크였군요 저게.. 어렸을땐 재밌게했었는데^^
동킹콩, 몬스터 하우스, 갤럭시... 정말 재미있게 했던게 생각나네요. 그외에도 이단 스크린으로 된 이름은 모르는데 살충제로 벌레 잡는 게임,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받아내는 게임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야.. 잘봤습니다 ^^ 늘 보는데. 정말 지식이 많으시군요. 이런쪽에.. 어떤분이신지 궁금합니다.. ^^ 그럼 수고하세요!
모르고있던 많은 내용들을 알았습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게임의 초기모습을 저랬군요. 저도 게임왓치 세대라서 해본 게임은 많네요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읽었어요
어릴 적 정말 재미있게 한 액정게임 들이네요~~^^ 읽으면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몬스터 패닉 기억나네요~ 갤러그 같은 녀석도.. 전기 플러그 꽂아서 하던 게임.. 어릴 때 정말 신기했었는데 ^^
와~ 정말 게임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게임학과 교과서에 실릴듯한 수준..저 귀한 고대자료(?)는 어디서 구하셨는지..
예전에 휴대용게임기를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부모님한테 얼마나 졸랐는지...물론 귀싸대기 얻어 맞았지만요...^^;...
위의 게임기중에 대면스테이디움과 게임앤왓치1종이 아직 집에 있습니다 ㅋㅋ
어릴적에 참..ㅎㅎ
요코이 군페이라는분 굉장하군요
한국게임시장의 흥망사인데...왠 닌텐도 할아버지 아들 자손애기가 나오는지?
제가 예전 1999년도 모 게임지 책과, 2000년도 모 게임지 책의 내용과 너무도 흡사하기에 글을 올립니다. 수고하시고 노력하신것이 보입니다만, 표절(이 단어가 매우 센스티브 하지만)이 의심스럽습니다. 만일 확인을 원하신다면 게임 잡지명과 페이지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지적 재산권의 소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루리웹에서 만약 이 잡지들을 참고하고서도 주석을 달지 않았다면 문제되지 않을까 합니다.
액정 게임기.... ㅎ 예전에 좋아라하고 모으던 기억이 새록새록;;;
헉...스페이스 호크..초1때 열심히 가지고 놀았던 오락기를 여기서 볼줄이야!!!
닌텐도 이야기가 너무 많군요. -_-a 흥미가 있긴 하지만 한국게임시장의 흥망사하곤 조금 거리가 멀어지는게 아닌가요.;;
닌텐도를 빼고 국내 게임시장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지금처럼 ~빠..~까로 패를 가르지 않던 시절에는 닌텐도는 게임시장의 거대한 축이었다는데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게임월드 잡지에서 80%는 닌텐도게임 이야기였습니다.
ff-shodown//이야기는 진행중... 역사를 이야기할때 남의 나라이야기가 포함되는 경우가 더 많죠.
흥망사의 '사'는 史(역사 사). 지금은 닌텐도가 한국게임시장을 쥐고 흔드는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마리오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한국 게임시장의 흥망사에 왜 닌텐도가 나오냐'라고 하는건 도대체가 이해가 안감. 무슨생각으로 덧글을 쓰신건지 참..-_-
자네가 이렇게 잘 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아지는군. 개발하던 프로그램들도 성공적으로 잘 되기를 바란다네.. -양동중학동창-
역시 보면서 느끼는거지만.... 예전에 버린 게임X프 같은 90년대 초중반의 잡지들을 버린게 정말 아쉽네요... 돌컴님 잘 읽었습니다..
제 덧글 삭제 됬군여 영자님? 아키원츄/ 그 게임역사라는게 자랑스러운 역사입니까? msx,v패밀리 복사가 만연해있고 재미나소프트든 아프로만소프트든 모두 일제 롬팩카피를 팔고 패밀리는 그시절에 정품주고 샀습니까? 하드웨어는 패밀리 정품이었던가요? 차라리 컬럼문구를 바꾸는게 좋지않을까요?
ff-shodown/史를 이야기하는 곳에서 자랑스럽지 않아 연관된 내용을 뺀다고 하면 일본의 역사교과서 이야기랑 다를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분명 '한국 게임의 흥망사'의 내용엔 일본 회사의 이야기가 빠질수가 없는게 분명한거 아닌가요? 초반부분 거의 대부분의 기술력을 일본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데...또한 게임의 흥망은 컨트롤이나 디스플레이 같은 외적인 것뿐 아닌 게임의 형식이라던지 방법에 대한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것또한 일본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을것은 분명할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게임시장의 발전은 일본에 비해서 늦게 발전했고 그 아이디어나 방식역시 까재님의 말씀대로 얻어온것이 상당수 입니다. 국내 온라인게임이라면 이야기가 다를지 모르나 현재 우리나라 게임시장의 상당부분이 일본의 게임사 특히 닌텐도등이 등장하지 않고는 이야기가 안된다고 봅니다. 물론 자격지심이란것도 있고 자존심도 있어서 그러시는 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당당히 인정하고 과거는 그랬더라도 미래는 더 넓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스페이스 호크 있었는데 후훗 끝까지 갔었다는 ㅡ.ㅡ;
칫칫칫 우리군인이 베트남에서 죽어갈때 이눔들은 태평하게 카드나 만들고 있었단 말인가...
아..건담 나오는 저 게임 기억이 나는군요...전함 3척을 적한테서 지키는 게임이었는데...머 휴대용 액정게임기의 특성상 거의 손놀림 테스트 게임이라고 생각...ㅎㅎ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하나 기억이 나는군요..^^ 추억의 .. 아 그러고 보니 제법 많이 가지고 있었네요.. 정작 집에서 사준건 3~4 개 정도였는데.. 왜 9개 정도나 있었던거냐 대체..;;;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ff-shodown // ㅋ 그럼 우리나라의 그 암울한 역사가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그때 다들 닌텐도 정품을 썼어야 하겠네요-ㅋㅋ 뭘 어떻게 해도 일단 일본 게임업체가 빠질순 없음..ㅎ 컬럼 제목도 '자랑스런 역사'가 아니라 '흥망사'인데..ㅋ
고스트하우스 스페이스호크 고르곤을 다해봣따는 - - 난지방이었는데 다해봣네 - - 울집은 좀 살앗던집 - -?
hinata // 뭐 한국 군인들 베트남에서 죽어가는 건 일본인 사정이 아니니까...
고스트 하우스 , 친구한테 어렵게 빌려서 정말 재미있게 했던 추억의 게임. 기억이 새록새록, 그리고 닌텐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고스트 하우스 , 친구한테 어렵게 빌려서 정말 재미있게 했던 추억의 게임. 기억이 새록새록, 그리고 닌텐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두 고스트하우스.... 친구넘꺼 어렵게 빌려서 정말 재밌게했는데... 그당시 엄청난 고가였죠....ㅎㅎ
골곤, 고스트 하우스.. 하~~ 1988년에 구입해서 친구들과 바꿔가며 했던 기억이..
게임앤 워치 발매 전과 당시의 세계의 전자게임시장과 비교해서 형태 및 기술수준에 대한 비교언급도 있었으면 좋겠군요. 정보에 어둡다보니 이 글만으론 어느 정도 독창적이고 진보한 수준이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크기면에선 획기적이었던 듯 하지만.
이게임기들은 머지...첨보는데.
부자들이었네 이런게임기도 하고...난 딱지치기ㅡ구슬치기했엇는데.
언제나 잘 읽고 있습니다 :)
고스트 하우스는 다 빌려서 하셨나보군요..ㅎㅎ 저도 친구한테 빌려서 밤에 불을 끄고 이불 속에 손전등 하나 들고 들어가서.. 몰래 게임을 하다가 잠들곤 했는데..^^ 다시 한 번 저 게임들 해보고 싶군요~
맨위의 인베이더... 당시에 구입했었지 스틱(?)이 좀 민감해서 좌우이동에 애먹었던 기억이 있네... 그리고 소형기 맨홀 게임은 몇년전 일본에 온천여행갈때 같이갔던 일본 할머니가 차안에서 심심하다면서 꺼내던게 저 맨홀게임...쿡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