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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요드 추종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주방에서 뛰어다니는 가운데 이번 기회에 기획 팀의 주방을 살짝 보여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막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기획자가 카드를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무 카드 이야기를 할 생각이 아닙니다. 제가 기획하기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카드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핵심은 다양성
카드 게임 기획은 뷔페 운영과 일맥상통합니다. 혼잡한 상황에서 제각기 원하는 바가 다르고 다들 온갖 걸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섞습니다. 카드를 만들 때는 다양한 바람을 충족해 플레이어가 카드를 마음껏 요래조래 섞을 수 있게 하고자 합니다. 다만 생선 꼬치를 초콜릿에 찍어 먹는 등의 조합은 지양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여느 요리와 마찬가지로 카드는 제각각 다릅니다. 세트를 요리하기 시작하면 카드 대부분은 챔피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며 종종 해당 챔피언을 위해 만든 새로운 게임플레이 요소가 중심이 됩니다. 보통 목표하는 방향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잡힌 상태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니달리는 사냥꾼인데 사냥하는 느낌을 살리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같은 방안을 여러 카드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상대가 방어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하게 하는 카드는 재미있지 않습니다. 어떡하면 방어에 따르는 결과를 더 중하게 할 수 있을까요? 전투 중이 아닌 적조차 니달리를 두려워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모름지기 훌륭한 사냥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들이닥치기 마련이죠.
이러한 기획은 흐름이 자연스럽지만, 실제 상황에는 부적합한 발상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있습니다. 발상이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나오지 않거나 카드를 만들기가 순탄하지 않다면 해당 게임플레이 요소가 주요 체계의 역할을 하기에 역부족이고 독립 카드에 더 적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일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독립 카드는 세트의 주요 체계와 연관성이 강하지 않고 기능이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가끔은 과거의 체계 또는 전형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명하기도 하며 덱 구성이나 플레이 방법을 바꾸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이러한 유형의 카드입니다. 주요 카드와 비교하면 규칙과 목표가 약간씩 다른 발상에서 나온 카드죠.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 세상(세트) 속에서 약간 겉도는 카드 이야기입니다. 이름하여 ‘다양성 카드’입니다!
앗...
뭔가 이상하네요. 이름을 최근에 바꿨는데... 잠시만요. 짤막한 역사 강의를 진행해보겠습니다. 멋진 카드의 이름을 똑바로 불러줘야 마땅하니까요.
융통성 발휘
내부적으로 이러한 독립 카드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세트 3 때는 이러한 카드가 대부분 과거에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카드 전형을 보충하는 역할을 해서 ‘추억 카드’라고 불렀습니다. 한동안은 괜찮은 이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계를 걷는 자 및 다르킨 전설 확장팩을 준비하며 ‘추억’이라기보다 게임에 신선함을 더하려는 새로운 발상에 더 가까운 카드를 더 많이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에서 받는 느낌이 카드의 성격과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카드는 색다를 여지가 컸으며 뭐라고 특정해서 부르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성격을 반영해 ‘다양성 카드’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후 다양성 세트를 출시하기로 하며 얼마 못 가고 다양성 카드라는 이름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양성 세트는 다양성 카드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양성 카드가 다양성 세트에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혼선을 빚을 수 있었으므로 다른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레전드 오브 룬테라 팀은 융통성이 있어서 재빠르게 ‘융통성 카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었습니다. 필요할 때 어디에 넣든 잘 맞는 카드라는 성격을 반영한 이름이었습니다. 이제 융통성 카드로 가득한 다양성 세트가 있으며 주요 카드를 출시할 때도 융통성 카드가 딸립니다. (다만 “다양성은 삶의 향신료”라는 말이 있는 만큼 이번 글의 제목과는 기존 이름이 더 잘 어울리니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일말의 영감
이제 직접 새로운 융통성 카드를 구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생각할 시간을 5분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기다려드릴 테니 조급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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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셨나요?
어떤 사람은 바로바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한동안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피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순발력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죠. 그러나 바로 카드를 구상해보라고 시키면 정말 힘들어하는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5분 카드 구상 연습을 시도해보셨다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무엇이었나요? 아마 구체적으로 완성된 카드보다는 꼭 레전드 오브 룬테라에서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전에 경험한 느낌이나 개념, 체계를 떠올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음악, 예술, 요리 등 창조적 활동은 전부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창조는 영감의 불꽃에서 시작하니까요. 무언가를 창조할 때는 이러한 불꽃을 발견하고 알아채는 능력이 가장 핵심입니다.
다행히 영감은 다양한 곳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카드를 만들 때는 가능한 출발점이 엄청나게 많으며 전부 똑같이 유효합니다. 제가 생각해낸 출발점이 아닌 것도 있지만, 최근에 담당한 융통성 카드는 어떠한 발상에서 유래했는지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파이 던지기
● 로테이션이 이루어지면서 비는 역할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기획 팀은 탐침용 막대기가 지역의 주요 카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강해서 로테이션으로 뺄 생각이었지만, 동시에 밴들 시티의 양호한 제거 능력을 소량 피해 기반으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 섬광탄 장사꾼
● 세트 1의 카드 중 재미있고 단순한 버섯 판매상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섬광탄을 같은 방식으로 활용하는 발상은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나왔으며 잘 작동할 거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 응축
● 지역의 특장점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자 했습니다. 밴들 시티의 경우 크기를 재미있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바꾸는 능력이 특징입니다. 응축을 기획할 때 반복 개선에서 확실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 묘지의 반려견
● 재미있고 깔끔한 카드입니다. 영감이 꼭 혁신으로 이어지거나 놀라운 순간에서 비롯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때로는 전에 없던 인과 관계를 새로 만들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뭔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종종 단순함이 정답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러한 카드는 대부분 게임플레이 체계에 기반을 둔 영감에서 비롯합니다. 융통성 카드에 대한 제안을 내부적으로 요청하면 온갖 아이디어가 다 나오지만, 결국 게임에 도입하는 카드는 이렇게 직접적인 유형이 대부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빌지워터 술집에서 카드 게임을 하는 느낌을 구현하려면 어떡할까?’보다는 ‘버리기 지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같은 발상에서 시작하는 편이 훨씬 더 명확하며 그저 좋은 느낌이나 이야기를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플레이하기에 좋은 카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직접 경험해봐서 잘 압니다. 빌지워터 술집 발상은 제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있지만, 잘 작동하는 카드로 도통 이어지지를 않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융통성 카드가 잘 작동하는지는 어떻게 알까요?
검증의 주방
이제 타당하고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카드를 구상하신 상황입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정을 검증하고 목표를 달성하는지 확인할 차례입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더라도 목표는 분명히 있으실 겁니다. 아마 구상한 카드가 재미있거나 플레이하기 만족스러울 거라 상정하고 특정 전형에 들어맞거나 특정 유형의 플레이어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를 바라시겠죠. 이러한 가정을 전부 검증해야 합니다. 저는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플레이테스트에서 반응이 참혹했던 카드가 많습니다. 그러면 좌절감이 들 수 있습니다. 나는 좋은데 남이 싫다고 했을 때 좌절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창조라는 행위의 특성상 피할 수 없으며 흔히 일어나기도 합니다. 좌절을 겪었을 때는 목표에 따라 기각, 수정, 출시 등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기각
● 카드 기저의 발상이 플레이테스터의 주의를 끌지 못하거나 누가 봐도 밸런스 조정이 어려울 듯하면 구상을 기각합니다. 예를 들어 로열 플러시에 착안해 같은 지역 소속 챔피언 5명의 비용을 오름차순으로 하는 발상은 이론상으로 멋지지만, 실제로 덱을 구성하고 플레이하는 가장 기본적인 검증부터 통과하지 못합니다.
● 수정
● 제가 구상한 귀환형 렌치는 첫 플레이테스트에서 반응이 엇갈렸습니다. 당시에는 해당 유닛이 이미 장착하고 있어도 항상 가장 강한 유닛에게 장착되었으며 여파 대신에 +2|+0을 부여했습니다. 따라서 명백히 지나치게 강력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유닛이 가장 강한지 명확하지 않으면 플레이하기 까다로웠으며 원하지 않았어도 다른 장비를 손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돌아와서 계속 버릴 수 있는 장비라는 기저의 발상이 재미있다는 점은 명확했으며 몇 차례의 재작업을 거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다행히 카드는 음식과 다르게 내놓은 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여파 애호가 여러분께는 사과드립니다.
● 출시
● 만인에게 매력적인 카드는 잘 없습니다. 기획을 쉽게 하려면 좋아하는 걸 만들면 됩니다. 지나치게 애쓰는 플레이어인 저의 흥미를 유발하는 카드를 만들었으면 우선 동료 기획자 프랭크 “Riot Vriss” 스캐런 님의 반응을 살펴봅니다. 제 마음에 들더라도 프랭크 님이 안 좋아하면 잘못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가볍게 즐기는 수준에 그쳐서 목표 플레이어층과 동떨어진 기획자에게 약간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는데 프랭크 님이 정말 좋아한다면 목표 플레이어층에서 큰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수정할 가치가 있거나 나중에 완전한 밸런스 조정이 이루어지도록 일단 세트에 포함할 만합니다.
기저의 발상에 확신이 설 만큼 융통성 카드의 기본 기획을 충분히 검증했으면 아트의 윤곽을 잡을 차례입니다. 윤곽 잡기는 기획, 아트, 서사 팀이 만나 카드가 무엇을 묘사하기를 바라는지 정하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카드는 보통 카드 출시와 맞물린 이야기에 얽매여 있지 않으므로 세계관 구축을 하거나 웃긴 순간을 만들고자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매우 큽니다. 그동안 비축한 미사용 컨셉 아트를 뒤적거리면서 카드에 무엇이 어울릴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유지하고 싶은 특정 서사를 염두에 두고 기획한 카드도 있으니 모든 카드를 비축한 아트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과정 내내 주방에 요리사가 모여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덕분에 팀의 창의력을 한껏 보여주는 카드가 탄생하곤 합니다. 밴들 시티에서 바나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요?
요리 과정
이로써 목표를 달성하고 아트와 서사의 방향이 잡힌 카드가 나온 듯합니다. 이제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재미라 함은 비용 4 능력치 4|4 카드를 그대로 출시할 수 있을지 아니면 비용 4에 4|3이어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는 재미를 뜻합니다. ‘혹시 3|4로 해야 할까? 아니, 4|4로 해야지. 비용을 늘려야 하나? 아, 아닌가...’ 밸런스 조정 과정은 보통 어떤 카드든 가장 어려운 일로 손꼽습니다. 취향 차이일 수 있으니 답이 가장 모호한 단계이지만, 밸런스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줍니다.
융통성 카드는 정말 재미날 수 있지만, 수치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시도해보는 플레이어가 거의 없을 겁니다. 주요 카드만큼 명확한 지원 카드가 없을 수 있으며 마땅한 자리를 찾기까지 더 큰 노력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이는 그냥 편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플레이어에게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면 플레이어에게나 개발자에게나 나쁜 결과로 이어지므로 목표 플레이어층에서 목표 달성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판단할 때만 출시하기로 합니다. 다른 경우로 플레이하기 재미있는 정말 멋진 카드조차 위력에 매운맛을 지나치게 많이 첨가하면 망칠 수 있습니다. 평행의 시간선은 지나치게 강력하고 흔해져서 시간이 흐르며 인기가 떨어진 카드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널리 사랑받는 유형의 효과이기는 하지만, 매번 디저트만 먹을 수는 없습니다. 카드가 지나치게 강하든 약하든 각각 위험이 따릅니다. 카드가 지나치게 약해지기는 쉽지만, 상향할 수 있으니 일반적으로는 덜 심각한 문제입니다. 명백하게 너무 강한 카드는 쉽게 발견할 수 있으므로 흔하게 발생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강한 카드가 생기면 최상위 수준의 랭크 게임에서 각광을 받으니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기우는 편이 나을지는 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밸런스 조정 시 종종 과거의 가정에 의존하게 됩니다. 위력 수준이나 지나치게 흔하면 짜증을 유발할 만한 카드에 대한 가정 등이 있으며 가정은 기획 과정 전체에 걸쳐 잔뜩 등장합니다. 창조란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어느 가정을 참으로 인정하고 어느 가정을 기각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일입니다. 어떤 작품이든 시간이 더 있으면 모든 가정을 검증해보며 다시 작업하고 다시 손보고 개선하거나 보강할 수 있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유한한 자원입니다. 과거의 가정에 기대는 이유는 우리 모두 인간이기 때문일 때도 있지만, 새로운 콘텐츠를 갈망하는 플레이어가 있기 때문일 때도 있습니다.
즐거움을 주는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일말의 영감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을 읽어주시고 멋진 레전드 오브 룬테라 커뮤니티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에 걸쳐 수차례 다르게 표현되었고 제가 지키기 어려워도 매일 되새기는 격언과 함께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완벽함은 양호함의 적이다”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