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실시간 액션에 담긴 턴제의 감성
매년 E3마다 유독 큰 관심을 받는 게임이 하나씩 있다. 전시에 다녀왔다고 하면 “야, 그거 해봤어?”라고 누군가 물어볼 법한 그런 작품. 올해는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가 딱 그렇다. 일본 게임의 전설적인 원작을 장장 20여 년 만에, 그것도 키타세 요시노리와 노무라 테츠야를 위시한 초호화 제작진이 리메이크한다니 기대가 안될 수가 있나. 게다가 개발 현황을 하도 쉬쉬하는 통에 궁금증과 불안감이 커질 데로 커지기도 했고.
솔직히 기자는 이거 PS5 론칭 타이틀 아니냐는 우스개가 점차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전에 받아볼 수 있긴 할 모양이다. 스퀘어에닉스는 금번 E3 2019를 기하여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최신 트레일러와 출시 일정을 공개하고 미디어 시연의 기회도 제공했다. 다만 데모 분량이 딱 컨퍼런스에 나온 정도뿐이라 앞선 발표를 유심히 봤다면 후술할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잠시나마 직접 플레이하긴 했으니 그 감상을 전하고자 한다.
스퀘어에닉스 E3 2019 컨퍼런스, 9분부터 20분까지.
시연은 작중 극초반부에 해당하는, 클라우드와 바레트의 마황로 폭파 작전에서 시작됐다. 최신 그래픽 기술의 수혜를 입은 클라우드는 한층 더 꽃미남이 되었고 바레트도 ‘어드벤트 칠드런’ 때 디자인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전체적인 그래픽은 더 이상 시각적 충격을 주진 못하지만 이만하면 AAA급 타이틀로 어디 빠지진 않는 정도. 동세와 타격감도 썩 괜찮고, 이런 부분은 개발 막바지까지 계속해서 다듬으므로 내년 3월까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두 사람은 이미 공장 깊숙이 침투한 상태라 짧은 구간을 지나며 졸병과 몇 차례 싸우다 보면 금세 보스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전투는 공격(□)을 펼치다 총탄을 방어(R1)하고, 장판은 굴러서 회피(O)하는 식이다. 이때 시간이 흐르거나 적을 타격하면 ATB 게이지가 상승하는데, 이걸로 택틱스 모드(X)에서 각종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택틱스 모드에 돌입하는 순간 게임 플레이가 정지에 가깝게 느려지므로 차분히 다음 작전을 수립할 여유가 생긴다.
ATB 시스템을 통해 턴제 RPG의 감각을 계승하고 있다.
택틱스 모드에서는 스킬, 매직, 아이템 사용이 가능하고 현재 조작 중이지 않은 캐릭터도 마찬가지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스킬은 ATB 게이지를 자원으로 사용하며 브레이버 같은 평범한 기술은 1칸, 트리플 슬래쉬처럼 강력한 기술은 2칸 이상이 필요하다. 마법은 별도로 MP를 쓰기 때문에 ATB 게이지가 없더라도 난사가 가능하다. 여러모로 ‘파이널 판타지 13’부터 정립된 신규 ATB(Active Time Battle) 시스템을 보다 실시간 전투에 걸맞게 개량한 모습이다.
그러니까 대강 보여지는 화면은 클라우드가 칼질을 하다 → 시간을 멈추고 → 자신 혹은 동료에게 특정 행동을 지시하고 → 다시 시간이 흐르는 식이다. ATB에 익숙한 기자조차 약간은 흐름이 끊긴다고 느꼈을 정도이니 평범한 액션 RPG를 상상하던 사람이라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이것은 ‘파이널 판타지 15’나 ‘킹덤 하츠 3’와는 또다른, 노무라 테츠야가 ‘버서스 13’때부터 구상해온 ATB 시스템의 발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점이 좋게 말하면 시리즈의 유산을 잘 계승하고 있고, 나쁘게 말하면 최신 트렌드를 못 따라간다는 인상을 준다.
'더 위쳐'나 '갓 오브 워' 같은 게임을 기대했다면, 확실히 아니다.
이외에도 마테리얼을 박아 마법을 쓰고, 얻어 맞은 만큼 리미트 게이지를 모아 강력한 필살기로 되갚아주는 리미트 브레이크도 원작 팬에게는 익숙할 요소다. 파티 내 명확한 역할 구분에서도 예스러운 감각이 묻어나는데, 클라우드로 모든 적을 처치할 수가 없고 고지대에 위치한 포탑은 반드시 바레트로 쏴서 터트려야 한다. 후술할 스콜피온 센티넬과 전투에서도 집게발에 속박된 클라우드를 바레트가 구해주는 기믹이 나오며, 보스 패턴에 따라 서로 공략할 수 있는 부위가 달라지는 등 파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 보스전을 조금 더 살펴보자. 거대한 전갈 로봇인 스콜피온 센티넬은 잔여 체력에 따라 총 네 가지 페이즈로 공격 방식이 변화한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총이나 좀 쏘지만 2페이즈가 되면 전신을 푸른 방어막으로 감싸 대미지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이때는 녀석의 (하필이면)항문 부근에 위치한 코어를 박살내면 된다. 3페이즈에 돌입하면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강력한 레이저를 발사하는데 천장에서 떨어진 잔해 뒤로 숨으면 맞지 않는다.
ATB, 마테리얼, 리미트 브레이크… 정말 있을 건 다 있다.
스콜피온 센티넬이 거의 폭발하기 직전에 시작되는 4페이즈는 엄청난 미사일 장판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최대한 빠른 공략이 요구된다. 클라우드의 강력한 연속기와 기계에게 추가 효과가 있는 전격 마법으로 속전속결을 노리자. 적들은 체력 게이지 하단에 경직 게이지가 하나 더 있는데, 몇 대 치면 죽는 졸병에겐 별 의미가 없지만 보스전에서는 필히 신경 써서 봐야 한다. 스킬에 흠씬 얻어맞고 경직 게이지가 가득 찬 스콜피온 센티넬은 충격 받은(Staggered) 상태가 되어 한동안 귀여운 샌드백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콜피온 센티넬을 쓰러트리고 나면 곧장 데모가 종료된다. 여기까지 30분도 안 걸리는 짧은 분량이었지만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가 어떤 게임이 될지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뭐랄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게임이 드디어 환상에서 현실로 내려온 느낌이다. 어차피 당장 내년 3월 발매인데 이제와 기반을 뜯어고칠 리도 없을 테니, 이 작품이 어떤 게임인지 충분히 알려서 탑승할 사람은 탑승하고 하차할 사람은 하차하도록 도와주자.
'FF'를 오랫동안 즐겨왔다면 이 논란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어릴 적 일본발 턴제 RPG에 파묻혀 자라난 세대는 이따금씩 장르를 구분하는데 혼란을 겪곤 한다. 가령 그 해 최고의 게임으로 손꼽히며 수많은 상을 휩쓴 ‘더 위쳐 3’나 ‘폴아웃 4’를 보면서도, 액션이나 FPS가 아닌 RPG라는데 위화감을 느낀다. 물론 이들 게임이 RPG가 아니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우리가 과거에 RPG라고 보고 듣던 것과 너무 달라서 그렇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에는 기자와 같은 올드 게이머의 정신이 녹아 있다. ATB 시스템을 보노라면 “RPG라면 당연히 이래야지!”라는 아저씨 개발자들의 고집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까지 시장에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당장은 어서 게임이 출시되기만을 바라본다.
일단 얼른 좀 나와라. 나오고 얘기하자.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