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열혈경파함에 반하다, ‘리버시티 걸즈’ 체험기
학교 일진부터 동네 양아치는 물론 조직폭력배까지 거침없이 패고 다니던 두 사나이가 역으로 위기에 몰렸다. 이제는 붙잡힌 공주…가 아니라 왕자님을 구하고자 여걸들이 나서야 할 때. 오는 9월 5일 한국어화 정식 발매를 앞둔 횡스크롤 액션 게임 ‘열혈경파 쿠니오군 외전 리버시티 걸즈(이하 리버시티 걸즈)’는 쿠니오와 리키가 아닌 미사코와 쿄코가 주인공이라는 매우 이색적인 컨셉을 들고 나왔다. 과연 흥미롭게 돌아가는 상황만큼 게임도 재미있게 뽑혔을 지, 약 15분 분량의 초반 콘텐츠가 담긴 데모를 플레이해봤다.
'리버시티 걸즈' 데모, 쿄코 플레이. 미사코 플레이 영상도 있다.
이제는 쿠니오와 리키가 구해질 차례
여느 때처럼 지루한 학교 수업을 견뎌내던 미사코와 쿄코에게 의문의 문자 한 통이 날아든다. 바로 그녀들의 남자친구(라고 믿는) 쿠니오와 리키가 납치되었다는 놀라운 소식. 어차피 수업도 듣기 싫던 차에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둘은 우선 학교를 탈출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파행을 알아차린 교장이 교내 방송을 통해 누구든 좋으니 탈주 학생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한 것. 알아주는 스케반(여자 깡패)인 미사코와 쿄코는 어쩔 수 없이 학우들을 때려 눕히며 교문으로 나아간다. 최종적으로 첫 스테이지 보스 미스즈를 꺾으며 데모는 끝이 난다.
게임은 1인 혹은 2인이 함께 플레이할 수 있으며 보통, 어려움 난이도를 지원한다. 요즘 나오는 뉴트로(New+Retro) 게임은 마니아층의 입맛을 우선하여 지나치게 어려운 경향이 있는데 ‘리버시티 걸즈’ 보통 난이도는 초심자도 가볍게 즐길만한 수준이다. 옛날처럼 게임하다 말고 옆자리 친구에게 마하킥을 갈기지 않아도 되도록 아군 공격 옵션을 끌 수도 있다. 사전에 공개된 바로는 쿠니오와 리키도 플레이어블 캐릭터인데 데모에서는 미사코와 쿄코만 선택 가능했다. 일단 스토리로 보아도 쿠니오와 리키 선택은 클리어 특전이 아닐까 싶다.
밥 먹고 싸움 아니면 돗지볼만 하는 애들이 어쩌다 얻어 맞았는지 모를 일이다.
사랑을 위한 자체 휴강인가, 자체 휴강을 위한 사랑인가…!
쿠니오와 리키를 구하는 내용이지만, 그 둘도 일단 플레이어블이라고 한다.
웨이포워드가 그려낸 21세기 열혈경파
먼저 게임의 외적 요소는 실질적인 개발을 담당한 웨이포워드의 향취가 진하게 느껴진다. ‘샨테’ 시리즈로 대표되는 웨이포워드의 향취란 ‘재패니메이션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그것과는 또 다른 아메리칸 스타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모르고 보면 얼핏 일본 게임 같기도 하고 실제로 아크시스템웍스가 검수를 보긴 했지만 전반적인 캐릭터 디자인과 UI, 연출 등에서 ‘샨테’가 무척 겹쳐 보이는 이유다. 물론 이것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고, 원작 팬덤은 물론 서구권 게이머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웨이포워드의 장점이 빛이 발하는 부분이다.
쿠니오와 리키 모두 붐마이크 같던 헤어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단장하고 아버지 정장처럼 펑퍼짐하던 하쿠란도 쫙 줄였다. 그래도 남자 둘은 원형은 남아있는 편인데 주역 캐릭터인 미사코와 쿄코는 머리색부터 의상, 성격까지 대대적인 개조를 거쳤다. 이외에도 야마다처럼 그냥 일진A 디자인이던 악역들이 저마다 개성을 부여 받았으며 미스즈도 나름 예뻐졌다. …그래도 안 예쁘지만. 반대로 하세베와 마미가 약간 이상해졌는데, 원작에서는 이들이야말로 히로인 취급을 받던 캐릭터임에도 마치 악역처럼 묘사됐다. 스토리상 뭔가 비밀이 있을지도.
둘 다 다소 전형적인 캐릭터였다 보니 재해석할 여지가 많긴 했을 것이다.
주인공 일행뿐 아니라 악역의 개성도 살아났다. 그와중에 예뻐진 미스즈.
이 둘은 좀 이상하다. 사실 전부 미사코와 쿄코의 망상이었다는 엔딩은 아니겠지?
기자는 개인적으로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열혈경파’ 시리즈의 80년대풍을 좋아하지만 이런 시도도 나쁘지 않다. 원작의 맥이 거진 끊겨가는 것도 사실인지라 어떤 식으로는 새로운 시도는 환영이다. 배경 설정으로나 캐릭터 디자인으로나 굉장히 파격적인 변화임에도 원작 팬덤의 반발이 크지 않은 것은 다들 비슷한 심정이란 방증이고. 그리고 ‘리버시티 걸즈’는 천천히 뜯어보면 의외로 시리즈의 핵심 요소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속편이기도 하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도트 튀는 그래픽도 당연히 원작을 의식한 것이다.
원작 맛 그대로의 액션, 향상된 편의성
확 바뀐 겉모습과 달리 실제 게임을 해보면 웨이포워드가 ‘열혈경파’ 시리즈를 정말 열심히 분석했구나 싶다. PS4 듀얼쇼크 기준 □(노멀 어택)과 △(헤비 어택), X(점프) 세 버튼만으로 손쉽게 호쾌한 액션을 펼칠 수 있고, 복도에 비치된 쓰레기통을 들고 휘두르거나 야구공을 집어 상대의 낭심에 던져버리는 것도 그대로다. 기자는 내심 여학생 둘이 주인공이면 액션이 너무 얌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너도나도 성별 안 가리고 죽어라 패고 죽어라 맞는다. ‘샨테’ 시리즈에서도 호평 받은 뛰어난 타격감이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열혈경파' 시리즈 특유의 과장되고 호쾌한 액션을 제대로 살렸다.
여주인공은 어떨까 싶었지만, 사람 패는데 남녀는 별 관계가 없더라.
적을 설득(물리)하여 도움을 받는 스트라이커 시스템도 유용하다.
단순히 원작을 계승만 한 것이 아니라 발전시킨 요소도 눈에 띈다. 일단 캐릭터 비율이 커지다 보니 한층 부드럽고 시원스런 액션이 펼쳐진다. 캐릭터 레벨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공격 방식이 해금되는데 노멀 어택과 헤비 어택, 점프 등 이동기, 적의 상태(서있느냐 누워있느냐)의 조합만으로도 매우 다채로운 액션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공격, 회피 일변도였던 원작과 달리 가드가 추가되었으며 칼 같은 타이밍을 노린 저스트 가드(흘리기)도 존재한다. 한참 두들겨 팬 상대를 포섭해 뒀다가 대전격투의 스트라이커처럼 써먹는 신규 시스템도 훌륭하다.
이외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맵 구조와 안 가본 곳, 내가 지금 있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은근히 길 찾기가 험난한 시리즈이기에 더욱 반가운 기능이다. 그리고 여기서 각 캐릭터의 조작 방법을 익히거나 레벨 및 능력치를 보고, 장비를 장착하는 것도 가능하다. 앞서 설득(물리)으로 포섭한 스트라이커 캐릭터도 이곳에서 배경 설정과 성능을 확인한다. 여러모로 시각적으로도 깔끔하고 기능 면에서도 편의성이 강화된 부분. 그나저나 ‘열혈경파’ 시리즈에서 스마트폰이라니 아재 게이머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따름이다.
'열혈경파'에서 스마트폰을 쓴다니까 갑자기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부가 효과를 지닌 액세서리. 미사코랑 쿄코의 기본 소지품이 다르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거나 어떻게 때리는지 잊었다면 스마트폰을 켜자.
그냥 횡스크롤 액션 게임으로서 좋다
만약 누군가 기자에게 ‘리버시티 걸즈’가 ‘열혈경파’ 시리즈처럼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글쎄,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다. 요즘 시대에도 게이머들이 ‘리버 시티 랜섬 언더그라운드’ 같은 작품을 찾아 즐기는 이유는 그게 다른 게임보다 현격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말하자면 대체 불가능한 추억의 맛이다. 귀엽고 세련된 디자인과 쨍쨍한 신디사이저 팝 뮤직은 기자가 알던 ‘열혈경파’ 시리즈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리버시티 걸즈’는 그 자체로 재미있다. 횡스크롤 액션 게임으로서 완성도가 평균 이상이다. 결국 그게 중요한 거니까.
짧은 데모만으로 호언하긴 조심스럽지만 ‘리버시티 걸즈’는 이 장르에서 정말 간만에 잘 빠진 신예를 만났다는 인상을 준다. 타격감 좋은 액션, 쾌적한 레벨 디자인과 편의성, 적절한 난이도 안배, 매력적인 픽셀 아트, (잘 못 알아보겠지만)반가운 캐릭터까지. 이정도면 리버시티로 돌아갈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도대체 어떤 괴물이 쿠니오와 리키를 동시에 납치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에이치투 인터렉티브가 국내 유통하는 ‘열혈경파 쿠니오군 외전 리버시티 걸즈’는 오는 9월 5일 한국어화 정식 발매된다. 지원 기기는 PS4와 닌텐도 스위치다.
'열혈경파' 후광만 믿고 대충 만든 게 아닌, 그 자체로 잘 빠진 게임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