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의미로 남자의 수집형 RPG, 북두의 권 레전드 리바이브
언제부턴가 모바일 게임하면 ‘수집형 RPG = 미소녀’로 통하는 분위기다. 하기야 수집형 RPG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문자 그대로 수집이고, 뭇 유저의 수집욕을 자극하기에 미소녀만큼 적절한 소재도 드무니까 말이다. 바꿔 말하면 미소녀에 딱히 관심이 없을 경우 수집형 RPG를 고를 때 선택지가 크게 제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에(萌え) 보다 모에(燃え)가 더 좋은 열혈 남아들을 위한 수집형 RPG는 없는가! 그래서 준비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미소녀는 커녕 그냥 여성 자체가 거의 없는 숨막히는 근밀도를 자랑한다.
가이아모바일이 세가의 정식 라이선스를 받아 지난 29일 국내 론칭한 ‘북두의 권 레전드 리바이브(LEGENDS ReVIVE)’. 제목에서 보듯 80년대 점프 코믹스서 연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액션물 ‘북두의 권(北斗の拳)’을 원작으로 한 수집형 RPG다. 만화의 수위와 연재 시기를 고려하면 당시 독자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마흔은 넘겼을 텐데 잘도 아직 신작 게임이 나온다. 그만큼 여전히 대체불가능한 컬트 명작이고, 연재 종료 후 유입된 신세대 팬덤도 많아서 가능한 일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평균 연령대가 낮다는 건 아니지만.
이처럼 만화 IP 기반의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원작 재현이다. 특히 ‘북두의 권’처럼 개성이 확고한 컬트 명작은 어설피 활용했다 되려 거센 역풍만 맞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레전드 리바이브’는 원작가 하라 테츠오 화백이 직접 검수하여 초장부터 ‘북두의 권’스러움이 흘러 넘친다. 어깨 떡 벌어진 켄시로와 라오우가 거칠고 투박한 펜 선으로 그려진 시작 화면은, 어쩌다 만화 원작 게임이라길래 내려 받은 이들이 “…저 그냥 나갈게요”하고 삭제하기 딱 좋다. 그만큼 원작 팬이라면 겉모습부터 믿음이 갈 만하다.
아, 오해는 하지 말자. ‘레전드 리바이브’는 다분히 평균적인 만화 원작 수집형 RPG다. 여타 경쟁작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특징이나 새로운 시도 같은 건 딱히 없다. 다만 전체적인 느낌과 외형에서 ‘북두의 권’ 특유의 감성을 잘 재현했기에 원작 팬에게 추천하는 것이다. 물론 평균치만 되어도 괜찮은 게임이니까 걱정할 필욘 없다. 어디까지나 캐릭터 게임으로서 가치가 가장 크다는 거지, 하나의 수집형 RPG로 보더라도 나름의 완성도는 갖췄다. 솔직히 ‘북두의 권’을 전혀 모르는데 이걸 할 사람도 없겠지만 말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권사 6인을 한 팀으로 진행한다. 이 가운데 셋은 전열, 나머지는 후열이다. 권사들은 힘, 기, 체 타입으로 나뉘는데 체가 방어력과 HP가 높으므로 전열에 배치하고 힘은 공격력이 뛰어난 대신 목이 약해 후열로 빠지는 게 유리하다. 기는 공방의 균형을 이뤄 전열과 후열 어디에 두어도 상관없다. 또한 권사마다 등급이 달라서 N → R → SR → UR로 갈수록 성능이 뛰어나다. 모든 권사는 패시브, 액티브 스킬과 일종의 필살기인 오의를 지녔는데 ‘북두백렬권’처럼 원작 팬이라면 반가울 기술이 많다.
등급을 보니 자연스레 뽑기(가챠, 랜덤박스)가 떠오르는 이들이 적잖으리라. 그렇다. ‘레전드 리바이브’도 권사는 뽑기로 얻는다. 다만 운이 없으면 N만 주구장창 나오는 여타 수집형 RPG와 달리, 여기선 N이 린이나 바트 같은 튜토리얼 캐릭터에 해당한다. 그 외에 어지간한 인기 캐릭터는 전부 SR에 몰아 뒀고 뽑기 확률도 이쪽이 압도적이라 무슨 잡병A, 깡패B로 파티를 꾸릴 우려는 전혀 없다. 기본으로 주는 켄시로부터 SR이다(근데 히데부하트도 SR이다). 권왕 라오우와 성제 사우더 등이 포진한 UR이 진짜 안 나오는 편.
전투는 우선 아군이 공격한 후 적에게 차례가 돌아가는 담백한 방식이다. 상대 전열의 누굴 먼저 공격할지 선택할 수 있어 최소한의 전략성이 존재한다. 또한 공격 시 리듬 게임처럼 북두칠성의 빛이 움직이는 박자에 맞춰 화면을 터치하면 더 큰 대미지를 준다. 아무래도 달리 조작할 거리도 별로 없고 반복 전투가 많아 자동 기능을 애용하게 되는 게임인데, 그러면 이 콤보 터치 판정이 보통이나 나쁨으로만 뜬다. 즉 수동의 이점을 남겨두어 필요에 따라 유저가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중요한 전투는 수동으로 처리하자.
연출 면에서도 3D로 제작된 캐릭터들을 통해 북두신권과 남두성권 등 만화 속 여러 무술을 제대로 재현했다. 딱히 무술은 아니지만 원작에서 캐릭터의 행보를 그대로 스킬로 만든 경우도 있는데, 가령 쟈기의 ‘내 이름을 말해봐라!’를 쓰면 허리춤에서 소드 오프 샷건을 꺼내 갈겨버린다. 무엇보다 압권은 마지막 남은 적을 오의로 처치했을 때 켄시로에게 비공을 찔린 것처럼 몸이 부풀어오르다 폭발한다는 것. 스스로 암살권을 봉인하고 북두신권으로 의술을 행하는 토키도 똑같은 연출이라 조금 미묘하긴 하지만.
원작 스토리를 상당히 충실히 따라가는 메인 퀘스트도 칭찬할 만하다. 물론 만화 IP니까 원작을 따르는 게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 굵직한 내용만 재현할 뿐이고 아예 오리지널 스토리로 빠지는 경우도 꽤 있으니까. ‘레전드 리바이브’는 스탠딩 CG와 대화문으로 원작을 재현하지 않는 대신 화면에 만화 페이지를 그대로 띄우고 해설자가 현 상황을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편법이지만 그만큼 내용 파악이 쉽고 원작을 추억하기 좋다. 이와 별개로 중요한 장면이나 결투는 3D 시네마틱 영상으로도 보여준다.
이외에도 ‘전투 개시!’나 ‘레벨 업!’ 같은 게임 내 모든 안내 음성이 약탈자의 짜릿한(…) 목소리라든지, 레벨업 자원이 생수라든지 하는 크고 작은 원작 재현이 가득하다. 그래서 레벨업 자원을 모으는 콘텐츠는 켄시로가 바트네 마을서 우물을 뚫어주던 일화를 각색하여 만들었다. 돈을 버는 콘텐츠도 모여 있는 약탈자 무리를 계속 두들겨 패는 것. 이외에 탑을 오르며 계속 전투를 벌이는 남두의 시련이나, 다른 유저와 비동기 PvP를 즐기는 연기투좌 등 수집형 RPG에서 있을 만한 건 다 있다. 그것도 ‘북두의 권’ 방식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북두의 권 레전드 리바이브’는 수집형 RPG로서 평균 수준이다. 잘 정돈되지 않은 UI와 미묘한 안정성까지 따지면 조금 구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수집형 RPG를 곧잘 즐기는 모바일 게임 유저고, 원작 ‘북두의 권’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즐길만한 괜찮은 작품이기도 하다. 원작가 하라 테츠오 화백이 직접 검수한 덕분인지 첫 화면부터 엔드 콘텐츠까지 ‘북두의 권’스러움으로 꽉꽉 채워졌다. 미소녀만 수집하라는 법 있나. 땀내나는 근육질의 세기말 아저씨들을 모두 모아보자.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