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괴괴)이타쿠라 코지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이타쿠라 코지는 대학을 졸업한 뒤 대형 광고 대행사에 입사해 많은 실적을 남겨왔다. 그는 승진 코스를 밟으며 회사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입사 후 약 10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들어온 중매 이야기에서, 처음 코지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 있는 상사가 소개한 자리였고, 상대 여성도 코지를 마음에 들어 했다 하니, 그는 마지못해 맞선을 받아들였다. 일단 상사의 체면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맞선 자리에 나간 코지였지만, 그 이후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결혼까지 얘기가 착착 굴러가게 되었다.
상대인 미호는 외모도 성격도 평범하고, 모든 면에서 그럭저럭 무난한 인상이었다. 처음 코지는 그런 그녀에게 끌리지 않았지만, 상사의 소개라는 점 때문에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질질 끌리듯 결혼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코지 자신은 원래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연애에는 무관심했다. 무엇보다 여성과 만남의 자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타입도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과의 교제를 성가시게 느낄 정도였지만, 나이를 생각했을 때 이 기회를 놓치면 결혼은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상대에게 실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코지의 ‘일 중심’ 라이프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원래 연애 끝에 맺어진 상대도 아니었다. 체면과 상사에 대한 배려 끝에 이뤄진 결혼이었다. 그렇기에 결혼을 계기로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미호에게 코지가 신경을 써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주 2회의 분리수거가 코지의 담당이 된 정도였고, 그 외의 모든 집안일은 미호가 맡았다.
그런 생활이 1년쯤 이어진 어느 날, 미호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코지에게 알렸다.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걸 상상도 해본 적 없었던 코지는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더 컸다고 한다.
미호의 임신을 알고 난 후에도 코지는 여전히 일에 파묻혀 지냈다.
임신 중에도 미호는 헌신적으로 코지를 뒷받침했다. 입덧이 심해 서 있는 것조차 힘든 때에도, 코지의 일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된다며 집안일을 성실히 해냈다. 일 특성상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드문 코지가 돌아올 때까지 잠들지 않고 계속 기다리곤 했다.
그런 미호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며, 코지는 점차 그녀에게 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연애 경험조차 없었던 코지에게는 어떻게 애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서투르게 대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기다리던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사키’라고 이름 붙인 딸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세 살이 되었다.
그 무렵 코지는 큰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미호와 사키의 얼굴을 제대로 볼 날조차 드물 정도로 바빴다.
그런 코지를 미호는 여전히 변함없는 헌신으로 지탱했다.
가정일, 육아,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며 코지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을 지켜냈다.
사키도 바르고 순하게 자랐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음에도 코지를 무척 따랐다.
어느 날이었다.
상사에게 불려간 코지는 미호와 사키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 보러 나갔다가, 두 사람이 탄 자전거를 졸음운전하던 트럭이 들이받은 것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두 사람은 이미 돌아오지 못할 몸이 되어 있었다.
코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현관문을 열었지만 당연히 아무도 없다.
새까만 현관, 어두운 복도, 안쪽으로 이어지는 거실에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평소라면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거실에는 작은 등이 켜져 있었고, 작은 목소리로 “다녀오셨어요”라며 미호가 맞이해주었다.
일찍 귀가했을 때는 사키와 미호가 활기차게 “아빠! 다녀오셨어요!”라며 기뻐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그저 깊고 짙은 어둠만이 펼쳐질 뿐이었다.
실의에 잠긴 채 전등을 켜고 거실 소파에 몸을 가라앉혔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망연자실해 있는 그의 눈에, 정리된 사키의 장난감 상자, 곱게 개켜 놓인 빨래가 들어왔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 이어졌던 평범한 일상이 거기에 있었다.
그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코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의 크기를 깨달았다.
코지는 울부짖었다.
깊은 슬픔과 절망에 짓눌려 버릴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왜 더 마주보며 살지 않았던 걸까.
왜 더 소중히 해주지 못했던 걸까.
정작 그는 알고 있었다.
가족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일을 핑계로 그 책임에서 도망쳤다.
집안일은 모두 미호에게 떠넘겼고, 사키의 육아도 제대로 참여해본 적 없다.
기저귀 하나 갈아준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던 미호.
그런 아버지 같은 짓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자신을 “아빠”라고 기쁘게 불러주던 사키.
그들로부터 도망쳐 온 자신을 코지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코지는 절망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지내게 되었다.
집안을 정리할 마음조차 나지 않아,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그 상태 그대로 손도 대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런 생활이 약 한 달쯤 이어지던 어느 날, 침실 책장에 있는 노트를 발견했다. 그것은 미호의 일기였다.
코지는 생각했다. 아마 여기에는 자신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가득 적혀 있겠지.
일을 핑계로 가정을 소홀히 해온 자신이 받는 벌이라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각오로 노트를 펼쳤다.
그곳에는 코지에 대한 감사가 적혀 있었다.
맞선에서 결혼, 출산, 육아까지의 매일. 힘들지만 코지와 결혼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것, 코지는 매우 서툰 사람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세상 누구보다도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 미호에게 코지가 얼마나 멋진 남편인지, 그리고 코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런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글을 읽고 코지는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미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현실이 강하게 덮쳐왔다.
그리고 코지는 결국 스스로도 뒤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죽어서라도 두 사람에게 가겠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수해로 향했다.
수해로 들어간 코지는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먼저 이곳에 왔던 자살 희망자들의 것인 듯한 수많은 유품들이 흩어져 있었고, 누군가가 한동안 머물렀던 듯한 텐트도 있었다.
평소라면 섬뜩해서 가까이 가기도 힘들었을 장소지만, 죽음을 각오한 코지에게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코지는 숲 속을 한동안 헤매다가도, 막상 죽으려 하니 쉽게 결심이 서지 않았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졌고, 왔던 길을 돌아가려 해도 목적 없이 걸어왔기에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근처의 무인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코지는 가지고 있던 랜턴에 불을 밝혔다.
그 불빛을 바라보며 다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살아 있어도 의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마트폰에 남아 있는 가족사진, 미호와 사키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아픔과 슬픔과 허무함이 코지를 더욱 절망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슬픔에 잠겨 있을 때, 텐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는 점점 코지가 있는 텐트를 향해 가까워졌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다.
한밤중의 수해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소리라면 공포 외의 것이 없을 텐데, 지금의 코지에게는 그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혹시 나를 죽이러 오는 것이라면, 스스로 죽는 수고가 줄어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다가오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텐트 입구가 열리자,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여기 제 텐트에요.”
남자는 담담하게 코지에게 말했다.
코지는 미안하다,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고 사과하며 나가려 했지만, 남자가 그를 붙잡았다.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다 끝내버리러 오신 거죠?
저도 그렇거든요. 괜찮으시면 조금 이야기하지 않으실래요?”
그렇게 두 사람은 자살을 생각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료우타였다.
일에 막히고, 인간관계에 지쳐, 마음을 두었던 여성에게 배신당해 자살을 결심했다는 것.
무엇을 해도 잘되지 않는 인생에 지쳤다고, 료우타는 말했다.
코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료우타는 진지하게 그의 말을 들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료우타는 조용히 말했다.
“코지 씨, 당신은 죽으면 안 되는 사람 같아요.”
하지만 그 말은 코지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그 후 두 사람은 목을 매달기 위한 나무를 찾았다.
굵은 가지가 달린 좋은 나무를 발견해 둘이 힘을 합쳐 밧줄을 걸었다.
상의를 나눈 끝에 코지가 먼저 가기로 했다.
코지는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발 아래 놓인 받침대를 걷어차기만 하면 끝이었다.
마지막으로 료우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료우타 씨, 마지막에 당신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먼저 가겠습니다. 고마웠어요.”
그 말에 료우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코지 씨, 지금 당신 눈앞에… 무엇이 보이나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코지는 시선을 료우타에게서 자신의 발밑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수많은 손이 땅에서 뻗어나와 있었다.
마치 자살하려는 코지를 끌어당기려는 것처럼.
그 광경을 보고 코지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직감했다.
여기서 죽으면 미호와 사키를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 둘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말 것이다.
“죽어도 편해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요, 코지 씨.
당신은 죽으면 안 돼요.
저처럼 죽어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료우타는 그렇게 말하더니, 코지를 있는 힘껏 받침대에서 밀어냈다.
코지는 뒤로 거칠게 넘어지지면서 등을 세게 부딪쳐 크게 기침했다.
얼굴을 들자, 수많은 손들이 코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료우타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지만, 다가오는 그 무수한 손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코지는 그 자리를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힘이 닿는 데까지 달렸다.
방향 따위 알 수 없었다.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그렇게 체력의 한계에 이른 코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살을 결심한 후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지내왔던 탓에, 곧 의식을 잃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그렇게 말을 걸어온 것은 현지에서 활동하는 어느 NPO 단체였다.
수해에서 자살 희망자들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라고 했다.
단체에 의해 보호된 코지는 지금까지의 경위와 수해에서 겪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허무맹랑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한 젊은이 덕분에 죽음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단체의 한 사람이 코지에게 조용히 말했다.
“수해에는 죽을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도 그런 분들을 셀 수 없을 만큼 봐왔죠.
하지만요, 당신처럼 마음을 돌리는 분들도 역시 많아요.
당신은 과거를 후회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했죠.
어쩌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뒤 후회하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을지 모릅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에게… 구원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들은 코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는 혼자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그 덕분에 조금은 구원받은 기분이에요.
설마… 귀신에게까지 제 얘기를 들어주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이타쿠라 씨,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돌아가신 아내분과 따님을 위해서라도… 살아가 봅시다.”
그 말에 코지는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 코지는 그만두었던 광고대행사로 다시 돌아가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상사의 배려로 재입사할 수 있었다.
예전만큼 무리하진 않지만, 그는 다시 한 번 열심히 일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도 두 사람과 함께 살던 그 맨션에서 계속 살고 있다.
두 사람의 물건에는 아직 손도 못 대고 있지만, 그는 정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제 시간은 그날에서 멈춰버렸어요.
하지만 억지로 시계 바늘을 돌리려고 하진 않으려 합니다.
멈춰 있는 것도 인간에게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한 번은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언젠가 두 사람을 다시 만날 때, ‘아빠는 너희 몫까지 열심히 살았어.’
이렇게 가슴 펴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를 말려준 그에게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코지는 스마트폰 속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그렇게 굳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