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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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 오브 엑자일 스토리 총정리 1부 - 현재 페이지 ●
- 고대 ~ 1336 IC
■ 패스 오브 엑자일 스토리 총정리 2부
- 1336 IC ~ 1600 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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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두 아이를 출산했다. 하나는 순결이고, 하나는 죄악이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순결의 ‘이노센스(Innocence)’와 죄악의 ‘씬(Sin)’
순결은 착한 아이였고, 죄악은 나쁜 아이였다. 고귀한 성품의 순결과 달리 죄악은 반항심이 강하고 거짓말을 잘했다. 어머니는 빵을 나눠줄 때 순결에겐 착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마음껏 빵을 먹게 했고, 죄악은 나쁜 행동에 대한 벌로 남은 부스러기만 먹게 했다.
하루는 죄악이 물고기를 훔치고 자신의 동생 순결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며 그를 때렸다. 하지만 순결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이 사실을 안 마을 사람들은 죄악을 더 이상 구제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리고 그를 불태웠다.
죄악은 타들어가며 재와 연기가 되어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에게 깃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광기에 휩싸인 채 거인이 되어 서로를 죽이고 싸웠다. 순결은 마을을 구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거인과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하늘은 죄악의 재로 검게 변했다. 이에 순결은 맹세했다. 앞으로 죄악의 재가 닿는 모든 곳을 자신의 불로 정화하겠노라고.
고대에는 필멸자도 사람들의 숭배를 받으면 신성을 얻어 육체를 포기하는 대가로 불멸자로 각성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신이라 불리웠으며, 각성 후에도 인간의 형상을 한 자들도 있었지만 동물이나 다른 형태를 취하는 신들도 있었다. 죄악은 신들의 신성한 힘을 견제하고자 ‘짐승(The Beast)’이라는 거대 생물을 창조했다.
짐승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본능 외엔 아무런 의지도 야망도 없는 단순한 생명체였다. 이들은 씬을 포함하여 모든 신들의 힘을 흡수했다. 권능을 빼앗긴 신들은 모두 긴 잠에 빠졌으며 필멸자가 새로운 신으로 각성하는 것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짐승 또한 <레이클라스트> 내륙의 산 아래에 잠들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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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은 레이클라스트의 첫 번째 문명이었다. 바알 제국은 수도 ‘아잘라 바알’을 중심으로 레이클라스트 전역에 고대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기계형 병기를 만들었으며 그들만의 마법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인공 생명체를 창조해 인신공희를 일삼았다. 이들이 이처럼 뛰어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이게이트 산>에서 추출한 어떤 보석 덕분이었다.
오래전 신들의 권능을 흡수하고 잠들었던 짐승의 육체는 하이게이트 산과 융합하여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러 종류의 보석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바알은 짐승이 잠든 산에서 나오는 보석에 마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낸 첫 번째 문명이었다. 그들은 이 보석을 ‘마지의 눈물(Tears of Maji)’이라고 불렀으며, 이를 이용해 각종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바알의 학자들은 영혼을 모아 위력을 증대시키는 특수한 종류의 보석인 ‘바알 젬’을 발명했다. 사람들은 이 보석을 다루는 기술을 통틀어 ‘마석학’, 그리고 이를 연구하는 자들을 ‘마석학자’라 불렀다.
BIC 900년경, 바알 제국은 <아즈메리> 산맥에 진출하여 그곳에 살고 있던 아즈메리 원주민들과 조우했다. 이때까지 아즈메리는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수렵 채집 사회였으나 바알의 지도 아래 농경 기술을 갖추고 급속도로 발전했다. 다만 바알은 마지의 눈물에 대한 것은 일체 알려주지 않았다. (* BIC : Before Imperialus Conceptus, 영원의 제국 건국 이전 세기)
BIC 400년경, 바알 제국은 앗지리 여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앗지리는 매우 아름답고 허영심이 강했다. 또한 잔혹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자신을 반대하는 신하들을 가차 없이 죽였다.
앗지리 여왕은 영생과 영원한 젊음에 관심이 있었다. 동시대에 ‘제르피’라는 바알 귀족이자 연쇄살인마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이 있었는데, 무려 168세까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체 나이는 20세에 머물러 있었다. 제르피가 피해자의 젊음을 흡수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생각한 앗지리는 제국의 수석 마법사 ‘도리아니’를 시켜 16세와 26세 사이의 수많은 백성들을 붙잡아 실험을 시작했다. 이때 희생된 젊은이들의 수는 그 이름으로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앗지리의 광기어린 실험은 바알 귀족들 사이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들조차 입을 잘못 놀렸다간 즉시 처형당하기 일쑤였다. 실험대상의 수가 모자라기 시작하자, 바알 제국은 모든 범죄를 사형으로 처벌하게 한 다음 백성들을 마구 잡아들였다.
수백 년을 지속해온 바알 제국의 멸망은 하룻밤만에 벌어졌다. 도리아니는 보름달이 찬 어느 밤, 보석을 모아 그의 요람을 가득 채우고 ‘교섭(communion)’이라 불리는 모종의 의식을 시도했다. 그 의식은 ‘악몽’, 또는 ‘짐승’이라 기록되어 있는 어떠한 존재를 깨웠고 그 여파로 도리아니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앗지리는 영혼은 악몽의 차원에 가두어졌고 주민들은 무언가에 휩싸여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변해버렸다.
해가 뜨고 나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바알 생존자들은 아즈메리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재산과 가족, 모든 것을 잃은 생존자들은 꼴이 말이 아니었고 미쳐버린 생존자도 있었다. 아즈메리는 그 난민들을 받아 보살펴 주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어째서 바알 제국이 하룻밤만에 멸망하게 되었는지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때 아즈메리 문명에 흡수된 바알 생존자들은 정확히 3162명이었다.
아즈메리 민족은 한동안 산속에서 조용히 살아갔다. 옛 바알의 영토들은 금지된 땅으로 지정하고 드나들지 않았다. 그렇게 400여 년이 지난 후, 타커스 베루소라는 양치기 소년이 어느 날 계시를 받는다. 아즈메리의 지도자가 되어 금지된 땅으로 내려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라는 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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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루소는 8만 명의 아즈메리를 이끌고 아잘라 바알의 폐허 위에 <사안>이라는 새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그곳을 수도로 <영원한 제국>을 건국하여 자신이 초대 황제가 되었다. IC 원년의 일이었다.
베루소 황제는 제국군을 창설하고 고대 전투병기들이 여전히 들끓던 옛 바알 영토를 수복하여 제국의 영토를 늘렸다. 또한 과거 바알 제국이 피와 청동에 눈이 멀었었다고 말하며 바알의 모든 학문과 기록들을 말살했다. 이에 따라 마도학은 금지되었고, 남아있던 마지의 눈물들은 파괴하기엔 너무 위험했기에 대신 하이게이트의 광산에 다시 매장해버렸다.
베루소는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거대한 미궁을 건설한 다음 이 미궁의 시험에서 살아 나오는 자야말로 황제의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은 ‘승좌(Ascendancy)’라 하는 아즈메리 민족의 전통이었으며, 베루소 자신도 제국을 세우기 전 미궁의 시험을 통과하여 아즈메리의 지도자가 된 것이었다. 시험이 열리자 베루소의 외아들을 비롯한 많은 자들이 미궁에서 죽었고, 유일하게 살아서 시험을 통과한 병사 출신 ‘카스피로’가 제2대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카스피로 황제는 얼마 가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존재(dark being)에 의해 살해당한다. 동시에 제국 전역에 끝나지 않는 밤이 지속되기 시작했다.
IC 35년, 알라노 프레시아 장군이 이끄는 제국군이 이 어두운 존재를 어느 폐허 속 깊은 곳에 몰아넣고 봉인하자 끝없는 밤 역시 그쳤다. 수도로 돌아온 프레시아는 마침 뚜렷한 후계자가 없는 왕위에 추대되어 제3대 황제로 등극했다. 이후 영원의 제국은 약 1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레시아의 후손들인 프레시우스 왕조의 통치를 받으며 평화로운 시대를 맞았다. 제국의 심장부라고도 할 수 있는 사안 남동쪽 지역이 그들의 이름을 따서 프레시아라고 명명된다.
프레시우스 왕조는 근친혼을 통해 가문을 이어갔다. 때문에 IC 1300년대 이자로 프레시우스 황제 대에 이르러서는 유전병적인 문제가 겹쳐 불임이 되고 말았다. 아이를 낳을 수 없던 이자로는 후계자를 찾을 방법을 강구하던 중 옛 아즈메리 승좌 전통을 떠올리고 베루소가 그랬던 것처럼 미궁이라는 시험을 통해 후계자를 색출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아즈메리 시대의 그것보다 더욱 거대하고 복잡한 함정으로 가득 찬 미궁이 건설되었다.
그런데 이를 언짢게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페란두스 가문이었다. 그들은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 가문으로, 베루소 황제 시대에 창업한 페란두스 시장과 무역을 통해 제국의 상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자로 대에는 사안의 경제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상황이었다. 가주인 카디로 페란두스가 제국의 재정관을 맡고 있었을 만큼 왕가와도 밀접했으나 프레시우스 왕조 때문에 막상 황제를 배출하지는 못했다. 이자로가 아이를 갖지 못하므로 다음 황제는 제국에 오랫동안 헌신한 페란두스 가문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던 상황인데, 이자로는 온 백성이 참가 가능한 시험을 통해 황제를 뽑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카디로의 조카인 치투스 페란두스는 특히 야망이 큰 젊은이였다. 미궁 계획에 분노한 치투스는 이자로를 암살하려고 시도하지만 세 번의 시도 모두 무산되고 결국 미궁의 건설을 저지할 수 없었다. 치투스는 그렇다면 자신이 미궁을 통과하여 황제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사안 최고의 검사를 고용해 그에게서 고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동시에 미궁 감독관들을 뇌물로 매수하고 설계도를 입수하는 등 온갖 술수를 통한 물밑 작업도 동반해두었다.
IC 1318년, 마침내 미궁이 완성되고 시험이 개최되었다. 치투스는 계획대로 미리 미궁 안에 숨겨놓은 보급품과 설계도 지식을 통해 미궁의 최종 정복자가 되었다. 다음 해 IC 1319년, 황제로 즉위한 치투스 페란두스는 첫 번째 어명으로 이자로를 미궁에 처넣고 입구를 봉인했다.
치투스의 통치 아래 제국은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던 마도학의 사용과 연구를 재개했다. 연구를 이끈 사람은 치투스의 최측근 중 하나인 말라카이라는 자였다. 그는 아즈메리 선조들이 바알 제국의 지식을 봉인한 것은 실수였다며 그들이 연구하던 보석에 ‘힘의 마석(Virtue gem, 버츄 젬)’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술 발전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마도학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 치투스는 제국의 영향권을 늘리려고 정복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마카누이>, <에조마이트>, <마라케스> 등 주변국에서 잡아온 노예들이 하이게이트 광산에서 보석 채굴에 동원되었다. 과거 베루소가 매장했던 보석들을 도로 꺼내온 것은 물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석 연구에 심취한 말라카이는 마법의 본질은 ‘상상의 것’을 ‘현실의 것’으로 변환시키는 힘이라는 이론을 정립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꿈 기구(Reverie Device)’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꿈 기구는 장치 안에 어떤 좌표가 그려진 그림을 넣으면 그 좌표에 해당하는 세계를 생성하고 그곳에 방문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기계였다. 좌표만 있다면 과거의 세계로 갈 수도 있고 기억이나 꿈 등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으로 갈 수도 있었다.
말라카이는 본인도 알 수 없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좌표를 그려내 꿈 기구에 넣고 가동했다. 그러자 어떤 악몽 같은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한 말라카이는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마석의 원천인 ‘짐승’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으로 하여금 꿈 기구와 좌표를 만들게 한 것이 그 짐승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편으로 말라카이는 바알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인체실험을 통해 힘의 마석을 인간의 몸에 심는 기술을 복원했다. 몸에 마석을 단 자들은 ‘마석병(gemling, 젬마)’이라 불렸으며, 이들이 얻은 마력과 신체능력은 도구를 매개체로 펼치는 마법보다 배로 더 강력했다.
힘의 마석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마석 이식 수술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대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음악가들은 더 빠르고 유려한 연주를 하기 위해 손에 힘의 마석을 박았고, 한 성악가는 목젖에 이식을 받았는데 그의 공연은 마치 목소리가 심장을 잡아끄는 듯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평을 받았다.
제국군에도 마석병 부대가 속속 창설되었다. 마석병들은 먹거나 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으며, 마석병 한 명이 정예 에조마이트 전사 4명을 쓰러트릴 정도로 강력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마석병들은 악몽에 시달리는 등의 부작용을 겪곤 했는데, 그럼에도 대부분 마석의 힘에 취해 마석을 적출하지 않고 참으면서 서서히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갔다.
말라카이의 3명의 조수들 샤브론, 말리가로, 도이드리는 마석의 용법을 기괴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마석을 몸에 박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마석의 정수만을 끄집어내 신체와 융합한다던가, 각종 신체개조도 서슴지 않고 벌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실패하여 괴물을 만들어버리는 결과만을 낳았다. 샤브론은 앗지리처럼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처녀들의 피로 목욕을 하는 등의 극악한 짓도 저질렀다. 다만 조수들과 달리 말라카이는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놀라운 존재를 탄생시키기도 했는데, 바로 마석 여왕 디알라였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많은 마석들을 몸에 이식한 채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았다.
이처럼 다시 시작된 마석의 시대는 치투스 황제의 통치가 시작되고 약 십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힘의 무분별한 남용은 필연적으로 반발을 불러오는 법이었다. IC 1333년, 영원의 제국에 반란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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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국 성기사단의 기사단장은 테베루스의 볼이란 자였다. 그는 보석 마법과 마석병을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법칙을 왜곡하는 죄악으로 여겼다. 볼은 마법을 척결하여 제국의 순결함을 되찾자는 가치를 내세우고 뜻이 맞는 제국 고위 관리들과 함께 치투스에 대한 반란을 도모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를 ‘정화 봉기(Purity Rebellion)’라 칭했다.
볼 기사단장을 필두로 온다르 시장, 조프리 대주교, 카스토프 총독, 아두스 사령관, 민중의 시인 빅타리오 등 많은 인재들이 반란에 참여했다. 이들은 이른바 ‘정화의 군대’를 조직한 후 반란에 방해가 될 주요 인사들을 미리 암살하고 민심을 설득하는 등 수도 사안 점령을 위한 밑작업을 비밀스럽게 실행했다.
또한 이들은 치투스에 의해 억압받고 있던 주변 도시국가들에도 도움을 청했다. <나마카누이>의 왕 카옴과 <마라케스>의 지도자 데쉬렛에게 각각 자유를 약속하는 서신을 보냈으며, <에조미어> 식민지의 영주 리그월드에게는 시인 빅타리오를 보내 설득했다. 이들 세력이 모두 협조하여 연합군이 창설되었고, IC 1333년 이들이 순차적으로 군사를 일으키면서 마침내 봉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제국 서부의 에조미어는 센타리 총독의 통치 하에 있었다. 리그월드 영주는 에조미어의 부족들을 규합하여 글라린 평원에서 센타리의 제국군과 맞붙었는데, 이때 리그월드의 병력이 수많은 깃발들을 휘날리며 싸웠기 때문에 ‘피 묻은 꽃’ 군대라고도 불렸다. 사실 영양 상태와 장비가 열악한 에조마이트군은 질적인 면에서 센타리의 마석병 군단의 상대가 되지 못했으나 물량과 의지로 밀어붙여 센타리를 후퇴하게 만든다.
센타리 총독은 얼마 후 제국 남부 및 바스티리와 수도 사안에서 지원군을 모아 에조미어로 귀환했다. 그러나 리그월드의 군대에게 다시금 패배하고 도망친다. 리그월드는 선조들의 목걸이를 착용하고 그에 반응한 늑대신 그레이트 울프의 도움을 받아 도주하는 센타리를 추적하여 죽인 뒤, 병력을 이끌고 사안을 향해 진군했다. 에조미어에서의 제국군 패배는 센타리가 병력을 빼온 지역들의 방위를 허술케 하는 결과까지 낳았다.
나마카누이의 카옴 왕이 이끄는 원정대는 그들 카루이 민족 역사상 가장 큰 군대였다. 그들은 나마카누이에서 카누를 타고 출발해 레이클라스트의 남동쪽 해안에 상륙했다. 이 지역의 방위군은 마세우스 장군이 지휘하는 마석병 정예부대로 근처 라이온아이 초소에 주둔하고 있었다. 곧 해변에서 전투가 일어났고 예상대로 같은 숫자의 카루이 전사는 마석병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카옴은 갑작스런 후퇴를 지시한다.
유인작전이 아닌지 의심해볼 만한 상황이었으나, 마세우스는 카루이가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규율로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궁병을 이용한 매복작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는 마석병들로 방어선을 벗어나 카루이군을 추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마세우스는 원거리 무기에 대한 규율이 카루이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여성뿐만 아니라 카루이는 이미 작정하고 규율을 어겨 절벽 위에서 매복을 통해 포화를 퍼부었고 때문에 마석병들은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된다.
마라케스의 지도자 데쉬렛은 볼 기사단장으로부터 봉기에 협조하는 것을 대가로 제국군이 빼앗았던 바스티리 평야의 목초지를 되돌려 받겠다고 약속받았다. 그들은 헥터 장군이 지휘하는 바스티리 군단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함정을 준비했다. 마라케스인들은 오랫동안 사막에서 생활했기에 바스티리 사막에 불어대는 모래폭풍의 경로와 시점을 미리 예측할 수가 있었다.
볼은 마라케스 부족들이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제국군 첩보원들에게 흘려서 헥터의 마석병 군단을 모래폭풍이 닥칠 장소로 유인했다. 모래폭풍과 함께 습격한 데쉬렛의 군단은 마치 옥수수밭을 추수하듯 마석병 막사를 쓸어버렸다. 데쉬렛은 헥터의 가죽을 벗겨 안장으로 삼은 뒤 마라케스 군을 이끌고 계속해서 사안을 향해 남진했다.
해가 바뀌어 IC 1334년, 세 방향의 전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반란 연합군은 수도 사안에 집결했다. 아두스 사령관이 지휘하는 하이게이트 제국군, 그리고 하이게이트 광산에서 노역하던 광부들도 정화의 군대에 가세했다. 볼 기사단장의 총지휘 아래 연합군은 말라카이의 조수들을 사로잡아 화형에 처하고 사안을 포위한 다음 공성전에 돌입했다.
치투스 황제는 마석병을 급격히 양산하고 전투에 투입함으로써 방어에 본격적으로 임했다. 이에 연합군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교량 전투라는 대규모 전투에선 어느 쪽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리그월드 영주는 인간의 군대로는 마석병들의 방어를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초인적 능력을 얻는 대가로 그레이트울프 목걸이에 자신의 영혼을 바치는 것을 택했다. 이후 리그월드는 완전히 빙의되어 늑대왕이라는 존재로써 전투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공선전이 지속되고 있던 어느 날, 사안에서는 ‘천 개 리본의 밤’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렸다. 온다르 사안 시장은 이때까지 발각되지 않고 연합군의 내부 조력자로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사안이 쉽게 함락되지 않자 자신이 결착을 짓기로 결심하고 축제에 참석한 치투스 황제를 독 묻힌 단도로 찔렀다. 습격당한 치투스는 마지막 힘으로 도끼를 집어 온다르를 반으로 갈랐다. 그러나 이미 침투된 독은 손을 쓸 수 없었고 결국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사후 그는 마석병 신하들에 의해 황실 정원에 묻히고 그 위에는 자두나무가 심어졌다.
황제가 죽은 후 제국은 페란두스 가문이 지휘권을 수습하여 방어를 이어가려 했다. 허나 외부의 공세가 계속되고 빅타리오가 이끄는 시민 봉기가 사안의 슬럼가, 부두촌, 그리고 물류창고 구역에서 일제히 일어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말라카이와 마석 여왕은 시민군에게 붙잡히고 정화의 군대가 사안에 입성하자 재무관 카디로 페란두스가 사안을 대표하여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정화 봉기는 마침내 막을 내린다. 다음날, 볼 기사단장은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다.
말라카이는 처형당할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레이클라스트의 모든 힘의 마석들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볼 황제를 설득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 방법이란 힘의 마석의 원천인 하이게이트의 ‘짐승’을 죽이는 것. 이후 말라카이와 마석 여왕은 사안 북부의 솔라리스 신전에 틀어박혀 짐승을 죽일 ‘휴거 장치(Rapture Device)’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년이 흐른 뒤 IC 1336년, 휴거 장치가 완성되자 볼 황제는 친히 군단을 거느리고 짐승이 잠들어 있는 하이게이트 산으로 행차했다.
그러나 말라카이는 애초부터 짐승을 죽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 휴거 장치가 짐승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의 목적은 짐승의 몸 안으로 들어가 짐승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휴거 장치를 가동하기 위한 연료는 마석병이었다. 광산 깊은 곳에서 짐승을 찾아낸 말라카이는 계획대로 짐승의 살갗에 구멍을 내고 몸 안으로 들어갔다.
말라카이의 최종 목적은 자신이 꿈 장치에서 보았던 이상과 같은 모습으로 세계를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새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서 먼저 현세의 모든 것을 깨끗이 지워버려야 한다고 판단한 말라카이는 짐승의 힘을 빌려 레이클라스트 전역에 ‘대격변(Cataclysm)’이라는 악몽을 불러일으켰다. 그 여파로 세상은 뒤틀렸으며 자연재해와 질병과 광기가 온 대륙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날, 세상은 기이했다. 사안의 동상들을 비롯한 각종 무생물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대낮부터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고 시민들은 집단 광기에 빠졌다. 공포스런 허상에 질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부가 말라붙고 몸에서 촉수가 자라난 사람도 있었다. 제국의 학자들과 귀족들은 서로를 물어뜯고 죽였다. 레이클라스트의 모든 동물들은 골격이 뒤틀리고 성향이 공격적으로 변했으며 모든 동물이 서로 싸우고 잡아먹으려 드니 자연히 먹이사슬은 붕괴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물은 마치 독극물인 양 작물을 죽이는 이상기후가 지속되었으며 흙과 물에 타락이 깃들면서 모든 생물체는 사후 좀비화했다. 마석병들의 몸에 박힌 보석들은 유난히 환하게 빛나며 그들을 불멸의 괴물로 만들었다.
말라카이는 짐승의 하수인이 되었다. 그의 몸은 짐승과 융합되었으며 생전에 그를 섬기던 3명의 조수들은 각각 짐승의 심장, 위장, 폐를 수호하는 가디언이 되었다. 광산 밖에서 대기하던 볼 황제와 그의 군대는 순식간에 뼈와 살이 분리되고 언데드가 되어 하이게이트 앞의 호수를 배회하게 되었다. 나마카누이의 카옴 왕은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500명의 전사를 이끌고 하이게이트 광산으로 들어갔으나 결국 짐승에 의해 타락하여 광산에 갇힌다. 이를 지켜보던 마라케스의 데쉬렛은 광산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를 봉인했으나 그 역시 언데드화한 볼 황제와 싸우다 죽고 만다.
영원한 제국을 비롯한 레이클라스트의 문명은 그렇게 한순간에 절멸했다. 이후로 레이클라스트는 생태계가 망가지고 언데드만이 득실거리는 지옥의 땅이 되고 말았다. 대격변의 근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여파가 덜해 생존자가 있긴 했으나, 이날 이후 한동안 레이클라스트에서 부족 사회 이상의 규모를 이룬 집단은 발견되지 않았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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