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수 전남대 의대 교수
파시즘하면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1984와 동물농장유 지은 조지오웰이다.
그는 소설뿐 아니라 수필로도 유명한데, 코끼리를 쏘다(Shooting an Elephant)는 대표적인 명작이다.
경찰관을 하던 젊은 시절, 오웰은 우리를 탈출하여 난동을 부리는 코끼리를 총으로 사살하기 위해 출발한다.
등뒤로 수많은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오웰이 발견했을 때 코끼리는 이미 온순해져 있었다.
그는 굳이 발포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떠밀리듯 총구를 겨눈다.
그를 떠민 건 2천명의 군중이었다. 반드시 총을 쏴 줄 것이라는 집단의 기대가 그의 등을 떠밀고 있음을 느꼈다.
거대한 군중의 기대. 그는 단호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수필의 말미에 그는 이렇게 소회한다. 코끼리가 난동을 부리던 시점에 사망자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그덕에 자신의 발포가 정당성을 얻었다고. 사실은 단지 바보처럼 보이기 싫어서 방아쇠를 당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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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의사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의사다. 대단히 윤리적이지도 않다. 대부분의 의사들보다 더 낫지도 못하지도 않는 딱 그 정도다.
내가 뛰어난 게 아니고, 인터넷의 몇몇 의사들이 특출나게 비윤리적일 뿐이다.
어느 집단이나 극단적인 사람들은 존재한다. 주로 그런 이들의 목소리가 과대표집 되어 표출되는데,
실제 현실에서 블랙리스트를 옹호하는 의사는 고작해도 한 줌에 불과하다.
당연하다. 우린 민주시민이고 동시에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들 의사 집단 전체에 실망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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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는 존재 자체로 폭력이다. 집단의 이름으로 소수를 핍박하는 행위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이탈자를 밀고하는 세상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허용될리 없다.
납작 엎드려 숨 죽이고 눈치만 보는 이들은 결코 죄인이 아니다. 생각이 다른 동료일 뿐이다.
심지어 단순한 리스트 기능을 넘어 집단 린치도 가해졌다.
어느 병원 누군가가 부역자라고 게시판에 낙인 찍으면, 인적사항에서 시작해서 취미생활, 학창시절 평판은 물론
심지어는 법적, 윤리적 비행까지 모조리 제보받아 사회적 살인을 저질렀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진위를 확인할수도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설령 사실일지라도 이런 행위가 용납될리 없음을 모를리 없건만은.
블랙리스트는 그 중 일부를 아카이브로 저장했다.
이런 일련의 행위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공개해야 할 판이다.
피해자들의 피눈물이 보이지 않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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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된 피의자는 검은 옷을 뒤집어 쓰고 포토라인에 나타났다.
혹자들은 잘못이 없으니 당당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한다. 물론 헛소리다. 나는 그의 판단이 정확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직 범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 신분이다. 불필요하게 언론에 얼굴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
설령 범죄자라해도 인권은 존중받는게 기본이다. 괜한 조리돌림으로 2차 피해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
즉, 그는 피의자지만 인적사항이나 정보가 일반 국민들에게 까발려지지 않을 권리가 있는건데.
사실 그건 블랙리스트에 오른 수많은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대중 앞에 발가벗겨지지 않을 권리.
물론 그 당연한 권리를 짓밟은 사람들에게도 우리 사회는 그 당연한 권리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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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중인 의사는 1명이 아니다. 30명 이상이 수사를 받고 있다고 언론에 나온다.
이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되어야 하고, 잘못이 밝혀진다면 응당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버젓이 업데이트되는 블랙리스트나,
매일같이 벌어지는 게시판의 즉결처분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철저한 수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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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가 밝혀진다면 부디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길 바란다.
사직한 전공의들이나 학생들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지 능히 짐작하는 바,
부디 한 때의 실수로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수사에 협조하고 반성하면 형사처벌의 형량이 줄어든다.
주변에 휩쓸리지말고, 부추기는 소리가 들린다면 부디 귀를 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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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 초창기에는 전공의들이 사직을 택한 것이 영리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사직이 아니다 파업을 했어야 했다.
개별사직이라 투쟁의 동력이 없다. 잘못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정작 행동은 할 수 있는게 없으니 그 사이에서 괴리가 생긴다.
그레서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만을 기다리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분노하길 반복한다. 교수가 씹수가 된 배경이다.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고작해야 할 수 있는 게 내부단속 뿐이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단언하는데 무조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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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투쟁을 나가는 게 좋겠다. 사직처리가 되었으니 단체행동의 부담도 없다.
집회, 결사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하라. 동료들과 연대하며 불안을 씻어라.
세상에 나가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신들의 옳음을 증명하라.
방구석에서 키보드 좀 그만하고.
나처럼 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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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늬만 교수다. 한번도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지금껏 계약직으로 굴렀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수업을 할당받았는데, 학생이 없어서 강의는 해보지 못했다. 나는 강단에 서 본 일이 없다.
고로 오늘 이것이 내 첫 강의이자 마지막 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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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가 있는 병원엔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을거라 하니, 다른 구성원에게 피해주면서까지 이 병원에 붙어있을 생각은 없다.
우리 전공의들은 착해서 그런 모진 짓을 할 거 같지는 않다만,
그렇다고 내가 있는 병원에 돌아오면 전국적으로 우리 전공의들을 가만 둘 거 같지도 않고.
걍 내가 떠날련다.
이 사태가 몇년이 걸려서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거고,
마침내 새로운 봄이 오면 다른 환경에서 새 출발을 해야겠다.
벌려둔 일들이 많아 미안하지만, 뭐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자신은 있다.
용수 is 뭔들.
나중에 이력서 올릴테니 좋은 자리 있으면 소개들 해주세요.
민폐 끼치기 싫으니 후배들과 부딪히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자리면 더 좋겠습니다.
갠적으로 서울, 대형병원 선호합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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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많은 의사 후배님들께서 전남대병원과 특히 응급의학과를 찾아주길 바랍니다. 꾸벅.
응급실에 갈환자가 없어서 늘어지는 하루가 많아지시길 ㅠㅠ
누가 싸지른 똥을 다른 사람이 치워야 하는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