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으로 유명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 "목이 마르다" → "다 이루었다"는 기독교계에서 엄청난 오해를 몰고 왔는데
"아니 왜 신이 자기 자신한테 목숨구걸을 함? 심지어 버린다고? 걍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 아닌거 아니냐?" 같은 식의 주장 들이 그럼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었냐 아니었냐는 둘째치고, 이건 당대 기독교인들한테도 엄청난 핫 토픽이라 삼위일체파와 반 삼위일체파가 존나게 치고박고 싸울때도 이게 가끔 반삼위일체파의 근거로써 인용되기도 했음
(결국 패배한 반삼위일체파는 동방으로 도망쳐서 중국까지 감)
근데 사실 예수 그리스도 본인(기독교 주장), 또는 신약의 작가(비기독교 주장)는 전혀 그런 의도로 사용한 말이 아닌데
그 이유는 이거...
다윗이 쓴 시편 22장을 시작하는 말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을 그대로 인용해온 것이기 때문.
저 시 내용은 "하느님의 영광 / 왜 이렇게 마구 하느님한테 기도해도 하느님이 대답해주지 않느냐..." 등등 내용을 다루는 내용이라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말이기는 한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or 신약의 작가는 이거를
시편에 나온 히브리어 원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대로 읆었던 것
근데 문제는 당시 히브리/유대인들의 모국어는 이미 거의 죽어버린 히브리어가 아니라 아람어였고, 그리스어나 다른 언어를 하는 놈은 있어도 제대로 된 히브리어를 아는 놈은 드물었기 때문에 (심지어 예수 모국어도 아람어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격한 유대인들도 "뭐야 뭔소리야" "갑자기 말잘하다 뭔 소리래 저거" "엘...엘리 뭐? 엘리야란 사람 찾는건가?" 같은 반응이었음
결국 시간이 지나서 성경을 달달 외운 인물들이 저게 다윗의 시편을 인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야 했지만 여전히 꾸준히 2천년간 뉴비 기독교인들을 괴롭히며 뉴비절단기로 활동했다고 한다
심지어 현대와서 개신교 교회같은데 가면(가톨릭/정교회는 정규교육 다 받은 신부들이니까 논외)
저거 시편 인용인거 전혀 모르고 이상한 주장 펼치는 사람들도 종종 있음
옛날 성경 만화중에 예수가 저 말하니까 쟤 뭐라냐? 몰라 라마(동물)를 찾는데?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고증이었던거야?
실제 본편에서도 "저자가 엘리야를 찾고있군"하고 딴소리 하는거 나옴 ㅋㅋ
예수가 말하는 내용들이 다 구약이나 신약어딘가에 꼽사리낀걸 은근슬쩍 언급하는 경우가 존나 많아서 당대인들은 환장할거 같았을거야 삼위일체처럼 전혀 직관적이지 않은게 주류가 될수 있었던 데에 한 몫을 했던것도 "애초에 말이든 행동이든 행적 자체가 뭐하나 직관적인게 거의 없는 사람인데 까짓거 3개 위격쯤 꼬와져 있어도 그럴만하다" 같은 의견도 있었음 ㅋㅋ
다른 교회 글 검색하다 이거 발견해서 댓글 닮. 작성자가 뭔가 두리뭉실하게 쓰긴 했는데 일단 저 시편을 외우고 있는 건 당시 상황에서 아주 특별한 건 아니었음. 당시 이스라엘의 성경 좀 읽어봤다는 사람은 어차피 성경을 달달 외우고 있는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시편 22장 내용은 '옛날에 이스라엘이 힘들었음. 하지만 하느님이 구하셨음. 지금 내 상황 개판임. 그러니까 (옛날처럼) 나도 구해 줄 거지?"하는 내용이라서 십자가 위에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구원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기도...라는 게 보편적인 설명임. 왜 날 안 구해줌? 하는 한탄의 기도가 아니라 옛날에 그랬듯이 나를 구하실 거임! 한다는 말...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는 시편 첫 문장 내뱉으면 그 뒤의 문장 다 아는 사람들이 식자층을 구성하고 있어서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복음서에 저렇게만 써 있어도 "아, 예수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했구나!"라는 사실을 다 알 수 있었는데, 이게 구약성경 지식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 복음전파가 되면서 이 십자가 이야기를 오독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는 게 본문 내용
옛날 성경 만화중에 예수가 저 말하니까 쟤 뭐라냐? 몰라 라마(동물)를 찾는데?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고증이었던거야?
위 님
실제 본편에서도 "저자가 엘리야를 찾고있군"하고 딴소리 하는거 나옴 ㅋㅋ
원문 시가 그래서 뭔 의미인거야. 저게 다른 해석이 되면 뭔가 상징이 있나? 바뀐 원문도 뭔소리인지 모르겠다.
종파마다 다른데 기본적으로는 원문 시가 다윗이 계속 하느님한테 기도하는데 하느님이 응답이 없자 왜 응답하지 않느냐고 말하며 계속 갈구하는거 조금 전에 예수가 한 "원하는게 있으면 두드려라(기도해라)"라고 했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그와 동시에 하느님이 모든 것이 다 가능하며 그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 라는 의미가 들어간 시임 왜 아무리 구원해달라고 빌어도 구원이 오지 않느냐 = 예수의 죽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에 대한 화답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진짜 해당 시에서 계속 언급하는 소외감의 고통 = 예수 혼자 다 짊어졌다는 뜻을 암시 등등
설명 덕에 뭔 소리인지 감을 잡기는 했는데 뭔가 복잡하게 꼬아놔서 개어렵네....어휴...
예수가 말하는 내용들이 다 구약이나 신약어딘가에 꼽사리낀걸 은근슬쩍 언급하는 경우가 존나 많아서 당대인들은 환장할거 같았을거야 삼위일체처럼 전혀 직관적이지 않은게 주류가 될수 있었던 데에 한 몫을 했던것도 "애초에 말이든 행동이든 행적 자체가 뭐하나 직관적인게 거의 없는 사람인데 까짓거 3개 위격쯤 꼬와져 있어도 그럴만하다" 같은 의견도 있었음 ㅋㅋ
그 시편을 달달 외워서 찾았다는게 겁나 신기하네
예수는 최소 2개 국어 능력자였군
그래서 저런 말 한 의도가 머져
카스케
다른 교회 글 검색하다 이거 발견해서 댓글 닮. 작성자가 뭔가 두리뭉실하게 쓰긴 했는데 일단 저 시편을 외우고 있는 건 당시 상황에서 아주 특별한 건 아니었음. 당시 이스라엘의 성경 좀 읽어봤다는 사람은 어차피 성경을 달달 외우고 있는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시편 22장 내용은 '옛날에 이스라엘이 힘들었음. 하지만 하느님이 구하셨음. 지금 내 상황 개판임. 그러니까 (옛날처럼) 나도 구해 줄 거지?"하는 내용이라서 십자가 위에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구원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기도...라는 게 보편적인 설명임. 왜 날 안 구해줌? 하는 한탄의 기도가 아니라 옛날에 그랬듯이 나를 구하실 거임! 한다는 말...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는 시편 첫 문장 내뱉으면 그 뒤의 문장 다 아는 사람들이 식자층을 구성하고 있어서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복음서에 저렇게만 써 있어도 "아, 예수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했구나!"라는 사실을 다 알 수 있었는데, 이게 구약성경 지식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 복음전파가 되면서 이 십자가 이야기를 오독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는 게 본문 내용
고마워요 성경웨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