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라곤 밝히지 않겠는데, 내가 즐겨보던 방송 크루가 있었음.
우연히 추천받은 뒤 심심풀이삼아 보다가 본격적으로 빨아볼까 싶어져서 팬질을 시작했지.
자랑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내가 팬질을 맘먹고 하면 꽤 잘하거든.
내 특기인 영상쪽을 활용해서 방송 밈과 적절히 섞어서 팬 영상을 많이 만들었어.
반응들도 좋았어. 내가 캐치한 방송 밈이 빵 터져서 팬들이 활용하기도 하고,
방송 시작할 때 내가 만든 오프닝 영상으로 시작하기도 했고,
내가 도네이션이라도 하면 저 인간 또 뭔가 만들어왔구나 하면서 다들 기대하면서 보다가 다같이 ㅋㅋㅋㅋ를 연타하면서 즐겼지.
그렇게 꽤 오래 그 크루의 팬질을 해왔어.
그러다가... 크루원 중 하나가 돌연 방송을 그만둔거야.
듣자하니 개인 신변에 큰 문제가 터져서 방송을 못하게 되었대.
심지어 내가 가장 빨던 크루원이었던지라 갑자기 방송을 졸업해 버리니까 좀 당혹스럽더라고.
뭐 그래도 남은 크루들에게도 정이 많이 들었던지라 팬질은 계속했는데...
어느날 '그 사건'이 터지고 말았어.
'그 사건'은 참 따뜻하고 아름답게 다가왔어.
우연히, 방송을 그만둔 그 크루원이랑 오프라인에서 만날 기회가 생겼거든.
그쪽은 날 전혀 몰랐기에 내 아이디 까고 팬이었다고 인사하고, 그쪽도 아이디 듣고는 날 알아보더라고.
그렇게 대화하다가 결국 식사자리까지 가지게 되었지.
팬과 방송인으로서 우린 꽤 즐겁게 대화했어.
직접 1:1로 만나서 대화한 건 처음이었는데도 내적 친밀감 때문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더라고.
그러다가 그 크루원이 '다음에 만나면 서로 말 놓고 친구하자'고 제안까지 하더라?
내 인생에서 몇 안되는, 굉장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을 날이었지.
...그런데, 그 따뜻한 기억이 있고 나서 얼마 뒤에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알아버렸어.
방송을 그만둔 그 크루원이, 크루 내부에서 추잡한 행동을 하다가 짤렸다는 것을.
워낙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온 크루원이라 크루 차원에서 비밀로 했던 거더라고.
그런데 내가 그 크루원이랑 친하게 지낼 기미가 보이니까 크루장을 하던 사람이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진실을 말해줬던 거야.
'그 자식, 가까이 하지 말라고.'
그때 내가 받았던 충격은... 좀 심하게 크더라고.
그만큼 좋아하고 응원했는데... 방송을 그만두더라도 하는 일 잘 될거라 기도했는데...
언젠가 다시 날개를 달고 방송에 복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는데...
다음에 다시 만나서 친구하자고 했을 때 정말 기뻤는데...
그 사건 뒤로는 그 크루도 보기 힘들어졌어. 워낙 사랑받았던 멤버라서 졸업했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언급했거든.
크루쪽에서도 분위기 곱창내기 싫으니까 그 사람들 말도 다 받아주고 말야.
진실을 알아버린 나는 그걸 견딜수가 없었지.
요즘 버튜버 빨간약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날 내가 먹은 빨간약은 질이 다른 수준이었던 거야.
그런 양질의 빨간약을 처먹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 밖에 없더라.
매트릭스 탈출.
그 사건 이후, 난 그 어떤 방송인에게도 팬질을 못하고 있어.
뭔가 깊이 빠져서 상대를 좋아하려는 동력이 사라져 버렸달까... 나이가 늙은 것도 한 몫 하는 거 같지만.
새벽에 유게도 싱숭생숭하고 해서 감성터져서 써보는 끔찍한 기억 이야기였어.
솔직히 누구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닌데, 읽어준 사람 있으면 고마워.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미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