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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돌아온 세호의 눈에 기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일까, 그는 양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한다.
빛바랜 파카를 입은 소녀가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아파트 건물 입구를 구석구석 뒤지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세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녀와는 일단은 구면이기도 하니까...
“야.”
세호가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소녀는 상반신을 일으켜 투명한 눈동자로 세호를 바라본다.
“나 알겠어? 어제도 이 옷 입었는데.”
세호가 자신의 의상을 어필하자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뭐 해?”
“동전.”
소녀가 파카 주머니에서 흙때가 잔뜩 묻은 100원 짜리 동전을 당당히 꺼내 보이자 세호의 머리 속에서 어제 그녀와 처음 만난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어제 떡볶이 사 먹을 돈도 주워서 모은 것일까?
꼬르륵. 세호의 의문에 대답하듯 그녀의 배 속이 요동친다.
세호가 그녀에게 안쓰러움을 느낄 때, 주위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자신의 또래 정도 되는 학생 무리가 저만치서 자신과 소녀를 보며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세호는 건물 입구를 가리키며 소녀에게 말했다.
“일단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
세호가 소녀의 손을 붙잡자 그녀는 아주 조금이지만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자신의 손을 잡은 소년에게 적의나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느낀 것인지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세호가 집에 들어오자 지독한 악취가 그의 코를 찔렀다.
“어우, 썩은내.......”
그는 헛구역질을 하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 아니나 다를까, 집안에서 풍겨오는 냄새의 정체는 소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다!
“야, 너 샤워부터 해.”
세호는 다급한 어조로 소녀에게 욕실을 가리켰고 소녀는 세호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그 자리에서 항상 입고 다니던 파카를 벗었다. 때투성이 파카가 스르륵하고 바닥에 떨어졌을 땐 소녀의 반라의 몸이 드러났고, 오직 빛바랜 검은색 하이레그 수영복을 연상시키는 속옷만이 그녀의 가녀린 몸의 중요 부위만을 가리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세호.
“빠, 빨리 씻으러 가! 옷은 이따가 꺼내줄게.”
소녀는 자신의 맨몸을 보이는 것에 아무런 수치도 느끼지 못했는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속옷도 그 자리에서 마저 벗은 뒤 욕실로 들어갔고 세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심장 멎을 뻔했네, 진짜.......”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은발과 붙잡으면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체형, 그리고 호박처럼 빛나는 눈동자. 다시 떠올려도 아름다운 외모였다.
‘뭔 생각하는 거냐...’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가로젓고 그녀가 입었던 파카와 속옷을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의 옷걸이에 걸어놓고 탈취제를 뿌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세탁기에 넣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다시 나갈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옷장에서 자신의 티셔츠를 꺼내 욕실 문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곧장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계란과 대파를 꺼냈다.
이래 보여도 요리에는 이골이 난 몸. 세호는 식칼로 능숙하게 파를 썬 뒤 계란을 깨 커다란 대접에 담아 노른자를 풀고 거기다가 남은 밥과 약간의 소금을 넣고 주걱으로 골고루 버무린 뒤 가스레인지에 달궈진 볶음팬에 식용유 두르고 방금 썬 파를 볶음용 팬에 넣었다. 지글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파 조각들이 식용유와 함께 춤을 추며 파 특유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하자, 세호는 팬에다가 달걀에 잘 버무린 밥을 투하해 볶기 시작했다.
「네가 만난 그 이형력자는 사실 며칠 전에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을 공격한 혐의로 수배 중인 이형력자야.」
한창 볶음밥에 풍미를 더하기 위해 간장을 살짝 뿌리던 세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민지의 말. 세호의 시선은 욕실 문으로 향한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호는 지금 살인 미수죄로 쫓기는 범죄자를 집에 들인 셈이며 세호 역시 위험하다는 뜻이다.
덜컥. 은발 소녀가 샤워를 마쳤는지 욕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시선을 볶음팬으로 돌리며 말하는 세호.
“다 씻었으면 수건으로 닦고 거기 있는 티셔츠 입어.”
잠시 후,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소녀가 다가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때투성이에 악취를 내뿜던 그녀의 피부가 아주 말끔하게 씻겨나간 덕에 그녀의 신비한 인상이 더욱 눈에 띄는 것 같았다.
“자, 먹어.”
볶음밥이 완성되자 세호는 고슬고슬하게 볶아진 볶음밥을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식탁에 내려놓는다. 수저를 받은 소녀는 킁킁거리며 황금빛으로 볶음밥의 냄새를 맡자 잘 볶아진 계란의 향기와 파 특유의 향기가 어우러져 그녀의 코를 찌른다. 며칠 동안 굶었다면 어느 누구라도 참을 수 없을 것이리라. 그녀는 어느새 허겁지겁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여태껏 풍기던 신비한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배고팠다는 거지.
볶음밥을 깨끗하게 먹어 치운 뒤 세호가 준 물을 벌컥벌컥 마신 소녀는 배 속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는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쉰다.
“후아.......”
“너 엄청 잘 먹는다.”
감탄을 숨기지 못하는 세호. 여러모로 미심쩍은 구석은 많지만 이렇게 보니 영락없는 세호나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는 인간의 모습 같았다.
세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어째서 홀로 떠돌아다니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소녀가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물어서는 안 될 것을 물어본 걸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지만 이 어색한 분위기로 보아 세호가 실언을 한 것 같았다.
“아... 그...... 미안.”
“모른다.”
조용하게 입을 여는 소녀. 세호는 다시 그녀를 바라본다.
“정신이 들었을 땐, 나 혼자였다.”
“그런가...”
기억상실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그녀 자체에 대해서 묻는 것엔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다른 세이비어들이 널 쫓고 있었다던데.”
얘기를 꺼내면서 세호가 건넨 것은 스마트폰. 거기엔 어제 현모가 보여준, 은발의 이형력자 소녀가 사람들을 공격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띄우고 있었다. 위험한 수이기도 했다. 만일 소녀가 범인이라면... 세호도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괴물과 싸웠다.”
마침내 그녀의 무거운 입이 열린다.
“괴물? 몬스터 말이야?”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기사에 시선을 옮기는 세호. 당시 피해자들은 짐승의 발톱 같은 것에 의한 상처와 입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제 그녀가 몬스터와 싸우면서 꺼낸 것은 검. 발톱에 의한 상처와 검에 의한 상처의 형태는 전혀 다른 법. 즉, 그녀가 며칠 전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한테 네가 싸웠다고 말하지 그랬어?”
“소용없다.”
소녀는 세호의 질문에 딱 잘라 말한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들어주지 않는다.”
소녀의 어조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세호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동질감. 이형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타인과 교류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던 자신의 모습이, 지금의 그녀의 모습에 겹쳐져 보이는 건 세호의 쓸데없는 동정심인 걸까?
그나마 그때의 세호에게는 엄마와 누나가 곁에서 편을 들어주었지만 지금 소녀는 어떠한가? 누구 하나 편들어주는 사람 없이 고독할 뿐.
“나, 다시 간다.”
침울한 표정을 짓고 휴대폰만을 보는 세호에게 들리는 소녀의 목소리.
“지금? 괜찮겠어?”
세호가 걱정스레 묻자 그녀는 여전히 무감정한 태도로 대답했다.
“피해 주고 싶지 않다.”
세호는 말없이 소녀를 바라본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그녀를 계속 집에 붙잡아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베란다에 옷들 걸어놨으니까 내 방 안에서 갈아입고 나와. 크흠, 또 내 앞에서 벗지 말고.”
소녀는 헛기침을 하면서 베란다를 세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베란다의 옷을 챙겨 세호의 방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빛바랜 파카 차림의 그녀가 다시 거실로 나온다.
“저기, 잠깐만.”
소녀가 현관을 나서려는 것을 지켜보던 세호는 그녀를 불러세우고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내뱉는다.
“나는 박세호. 너는... 누구야?”
알게 모르게 동그랗게 변하는 소녀의 눈빛. 어째서일까? 그녀의 기억에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볼 때마다 낯설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는.
“나래.”
나래, 은발 머리에 이국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정겨운 이름이구만. 세호는 코웃음을 치며 지갑에서 만원 지폐 1장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준다.
“지금 이것밖에 없거든. 당분간 동전 주우러 다니지 마. 가게에서 물건 사는 건 알고 있지?”
이 새끼 오지랖 쩐다. 분명 성훈이나 현모가 세호 곁에 있었다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차마 부정할 수는 없는지라 세호는 남몰래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고맙다.”
세호가 건넨 돈을 얼떨떨하면서도 받는 소녀의 목소리가 살짝 부드러워진 건 기분 탓일까? 그녀는 세호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은발 머리 소녀, 나래에겐 사실 죄가 없는 게 아닐까?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세호는 상념에 빠진다.
지금 그에겐 소녀의 무고함을 밝힐 물증도, 심증도 없다. 당시 사고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피해자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세호와 피해자들에겐 면식도 없으니 직접 병원으로 가는 의미도 없는 상황. 그렇다면 세호가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 싫은데.......”
무거운 한숨만이 그의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온다.
이 다음에 학교에서 한번더 몬스터와 싸우고 세호가 세이비어가 되기로 마음먹는 에피소드까지 구상했는데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할 지 잘 감이 안 잡히네요,
팀에 영입되는 과정을 쓰기엔 뭔가 지루할 것 같고 팀에 들어간 지 좀 지난 상황으로 쓰면 너무 휙휙 지나간 것도 같아서...
세상에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좋아지시다니 피드백을 흡수하시는게 엄청나시네요 이제 남은건 많이쓰시고 무엇보다 본인이 쓰신글을 본인이 계속해서 읽어보시는겁니다. 자신이 쓰신글을 계속 반복적으로 읽으세요 아마 읽으실때마다 다르실거고 아 이부분은 이런 표현이 더 좋겠다. 하는부분이 있으실겁니다. 정말 이제는 잘쓰시게 되었네요
회원님의 조언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