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리놀륨 판매원
리놀륨 판매원은 마을에서 마을로 여행했다. 노르퀘핑에서는 얼어붙은 커다락 강둑을 따라 작은 목조 교회와 좁은 거리에서 리놀륨을 팔았다. 리놀륨 판매원은 북방의 목조 건축물과 얼어붙은 고요함을 좋아했다. 저녁 9시가 되자 거리는 텅 비었고, 도시에는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고, 코트자락이 펄럭이고, 저택 지붕에는 두껍게 눈이 내렸다. 리놀륨 판매원의 마음속에도 눈이 내렸다. 주황색 가로등이 늘어서 있었다. 빌린 방에서 담요를 덮은 그의 마음속에는 무슨 심상이 떠올랐을까? 리놀륨 판매원은 이웃 정원의 두 형제를 존경했다. 그들은 톱니바퀴같은 얼굴로 입을 굳게 닫은채 추위에 뺨이 붉어져 있었다. 산맥이 시작되는 아르다에서는, 피요르드가 봉우리 사이의 게곡을 가르고 있었다. 붉은 황토색 집들은 눈쌓인 거인같은 산의 발치에 흩어져 있었다. 밤이면 어둠속에서 창유리가 작은 눈처럼 깜빡이고, 산의 그림자가 검게 그을린 이빨처럼 하늘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들의 미소는 리놀륨 판매원의 미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연습했다. 애벌레처럼 턱을 내리고 윗입술을 내밀었다. 호텔방 거울속의 남자는 교활해 보였다. 천장이 낮은 콘크리트 벽의 지하실로 이렇게 들어가면 어떨까? 그런것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이쪽을 봐, 이쁜이. 나를 봐.
리놀륨 공장이 문을 닫자, 상황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리놀륨 판매원은 다시 일어섰다. 새로운 거래처를 만들고 수입업자를 만났다. 새 리놀륨 공장이 문을 열었다. 그는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던, 더 많이 보기를 원했다. 그는 계속 리놀륨을 팔았지만,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세상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숨겨진 풍경과 아름다운 난로를 제공했다.
만화경을 보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형상을 해체했다. 겨울궤도의 그라드에서는 리놀륨 판매원이 리놀륨을 판매했다. 전자력 열차는 북쪽 고원에서 표효했다. 창밖은 어두웠고 평원 위로는 오로라가 보였다. 식당칸의 화장실에서 산속 터널의 어둠이 기차를 삼켰다. 리놀륨 판매원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그의 손에는 깨진 유리가 가득했다. 매력적인 만다라 꽃은 어디에 갔을까? 그 꽃은 숨어서 유혹하지만, 추악한 모양과 과시로 인해 실망스럽다. 리놀륨 판매원은 인내심을 잃었다. 그의 탐욕스러운 신경은 격노했다. 폴라라솔의 제린카에서 남자가 얼굴에 눈을 문질렀지만, 눈은 그의 뜨거운 신경을 식히지 못했다.
이제 그는 자신을 돌보면서 쉬고 있다. 그는 건축자재판매점,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소, 소매상점에 갈색 리놀륨, 꽃무늬 리놀륨을 판매했다. 그는 북부로부터 바사로 내려왔다. 켁스홀름의 로비사 교외 고급정원에서 리놀륨을 판매하던 중 그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다른 리놀륨 판매원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다만 그들은 진짜 리놀륨 판매원이 아니었다. 매트릭스위의 게이 공원에서, 표 검사원에게 바사의 치안, 학교, 자유주의적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스펜 숲이 부스럭거렸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정원장비 임대업자, 발의사(Foot Doctor)...
---------------------------------------------------------
"요약보고." 테레즈가 실종전담반 동료들이 10주년 기념으로 그에게 선물한 은시계를 획인한다. "5분만이야." 그는 코트자락을 펄럭이며 칸과 제스퍼와 함께 요양원 마당을 가로질렀다.
"알았어, 요약보고." 칸은 친구들에 뒤쳐졌다. "기분이 좋지 않아. 난 쉬어야 해."
제스퍼가 서두른다. "이봐, 넌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의사에게 가야 해."
"동감이야." 테레즈가 동의한다. 건물의 흰색 창틀은 울타리 뒤의 희미한 빛을 받아 빛난다. 제스퍼의 스웨이드 신발 밑에서 나뭇잎이 바스락거린다. 그는 신발 끝에 튄 진흙을 보고 어깨를 으쓱한다. 부패의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는 긴장해서 기다린다.
"지방 당국이 좀 더 융통성이 있을거야." 마체젝 요원이 계속한다. "전엔 협력이 잘 되지 않았어."
칸이 따라잡으려 노력한다. "심문했어?"
"응, 그래."
"어제?"
"아니, 오늘 아침에. 계속 시간을 끌어서 어쩔 수 없었어. 어제는 하루종일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지, 저글링을 하는 기분이었어. 연락 못해서 미안해." 테레즈는 뛰어난 거짓말장이였다. 제스퍼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허드가 뭔가 말했어?"
"그 놈은 그 애들을 본 적이 없어."
제스퍼가 칸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린다. 그는 솔직히 약간 실망한다. 그 모든 준비가 헛수고였다. 이젠 끝이다.
"잠깐, 그게 다가 아냐." 테레즈가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을 들고 미소를 짓는다. "허드는 친절하게도 이름을 하나 주었지. 데렉 트렌트뮐러. 그에게서 들은 얘기야."
칸은 갑자기 멈춰서서 테레즈를 노려본다. "그가 이름을 가르쳐주고 모든 것을 솔직히 애기했다고?"
제스퍼는 칸이 왜 친구의 심문능력을 의심하는지 알 수가 없다: "글쎄, 그라드 스타일로 고분고분하게 만들었겠지, 맞지?" 그는 테레즈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계속 걷는다. "데렉 누구라고? 트렌트뮐러?"
"맞아. 확인해 봤어. 모두 맞아 떨어져. 18년전에 같은 감방에 있었어. 데렉 형기의 마지막 해였어. 가석방됐지. 또 다른 반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나중에 알려줄께. 어쨌든, 그들은 서로 자랑을 해댔고, 어느날 허드는 정말로 흥미진진한 얘기를 했지. 데렉은 빛진 것처럼 느꼈고, 켁스홀름 모임의 한 남자에 대해 떠벌리기 시작했어..."
"그건 헛소리야!" 칸은 감명받지 않는다. 테레즈는 신경쓰지 않고 말한다. "그 모임에서 온 남자는 - 일단 모임이 실존한다고 가정하자구 - 일종의 지도자였어. 정말로 사악하면서 위험한. 그 애들이 실종되고 몇 년 후에, 그 남자는 데렉에게 그와 그의 친구들이 어떻게 그 애들을 납.치.했는지 얘기해 줬어. 참고로 그 남자와 데렉은 서로 연인사이야."
"좋았어."
"데렉은 그에 대해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죽을테니까. 그렇지만, 허드에게 말하고 말았지. 허드와 데렉의 대화는...흥미로웠어. 난 데렉에 대해서도 크론스타트 신문에서 할 수 있는한 최대로 찾아봤어. 소.아.성.애.자야. 여동생의 자녀를 포함해서 주로 가족을 성.추.행했지. 심각하진 않았지만, 결국 여동생은 그를 신고했어. 데렉은 겁쟁이야. 담당목사에게 자신이 얼마나 후회하는지, 얼마나 충동을 억제하고 싶었는지 등을 하소연했지." 테레즈는 회의적으로 손을 흔들고는, 계속했다. "...여러가지 악마적인 충동들을 말이야."
숲의 아랫쪽이 요양원의 뒤뜰이었다. 베란다는 흰색으로 칠해진 나무 베란다였으며, 돌계단이 뒷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시대에 걸맞는 붉은색 벽과 연약한 목조 건축물. 어린시절을 회상케 하는, 전형적인 과거의 바사 양식이었다. 밤송이가 마지막 잎사귀들과 함께 지붕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데렉도 70대야. 왜 가석방되었는지 알겠지?"
칸과 제스퍼는 켁스홀름 소.아.성.애.자 모임의 지도자와 동성연애 관계인 데렉 트렌트뮐러가 왜 조기 가석방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이제 늙었거든."
"뭐, 한 60대쯤 가석방됐어?"
"그쯤일거야."
"완전히 쇠약해져서?"
"몰라. 그가 얼마나 쇠약해졌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어. 어쨌든, 빠르게 악화된 모양이야. 어떤지 보자구."
칸은 친구들을 따라 양로원 계단을 뛰어서 올라간다. 세 사람은 아치형 나무문 앞에 서 있다. 테레즈가 종을 울린다.
"그 그림..." 칸이 바지를 추켜입고 무릎위에 손을 올린다. "허드는 어디에서 그 그림을 얻었을까?"
"그놈들 사이에서 그건 일종의 유물이야.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지. 그걸 원래 가지고 있던 놈을 찾으면, 기쁘게 놈의 장례식을 치뤄주자구.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겠지." 테레즈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벨을 다시 울렸다. "오직 허드만이 드러났어. 켁스홀름의 지도자는..." 칸의 시선에, 테레즈는 정정해서 말한다. "켁스홀름 모임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자가 데렉에게 그 그림을 주었고, 데렉은 허드에게 보여줬어. 내가 보기에 허드는 호기심을 느꼈던 것 같아. 어떨지 보자구."
테레즈는 사악하게 웃었다.
---------------------------------------------------------
바사는 50년대의 행복한 평화속에 잠들어 있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고드름이 처마에서 도로위로 떨어지면서 얼음에 구멍이 생겼다. 낮이 점점 길어지고, 어딘가 멀리 떨어진 중앙 학교 운동장에서 스벤 폰 페르센이 과체중 이민자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매린이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응? 정말로? 테레즈는 운동장 끝 멀찍이에서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제스퍼가 보고서 너무 괴로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리놀륨 판매원은 눈으로 얼룩진 부츠를 신은 채 교외의 보도를 걷고 있었다. 그는 밤새 잠이 들지 못했고, 얼음에 반사된 밝은 빛과 태양이 그의 눈을 아프게 했다. 커피의 카페인때문에 손이 떨리고 머리가 욱신거렸다. 긴장되고 붉은, 맥동하는 신경이 느껴졌다. 리놀륨 판매원의 마음 속에는 밤에 나눈 대화에서 나온 수천개의 이미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가위로 자른 구멍이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는 말이 끄는 트램을 타고 매번 파흐루 정류장에서 내렸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 버드나무 숲을 바라보고, 반대편 전차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리놀륨 판매원은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때때로 잠이 들지만, 이상한 자세로 다리를 벌린 채 그의 상상은 계속된다. 잠을 자면서도 그는 원한다. 리놀륨 판매원은 신경을 단련했다. 트램의 시계가 두 시를 알리고 수업 시간이 끝났다. 리놀륨 판매원의 턱이 떨리며 깨어났다. 트램 객실로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집 차고에는 리놀륨 두루마리가 놓여저 있다. 그는 지금 여기, 바사의 켁스홀름에 살고 있었다. 그는 로비사 교외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리놀륨 판매원은 난간에 매달렸다. 그는 몸부림치고 싶었다. 한 아주머니가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어제 그리고 그저께 같은 전차를 탔던 아주머니였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선택해야만 했다. 파후르 역에 도착하자 리놀륨 판매원은 내렸다. 그는 다리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향수에 젖어 버드나무 숲을 바라봤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버드나무 가지에서 작은 얼음 덩어리가 떨어졌고, 리놀륨 판매원의 숨결이 나뭇가지를 덥혔다. 똑, 똑. 물방울 위에선 태양이 빛났고, 버드나무 숲 너머로 환상이 사라졌다. 연속으로 4명. 가장 작은 아이가 끊임없이 조잘댔다. 리놀륨 판매원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는 그들을 원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리놀륨 판매원은 사라졌고, 세상은 그로부터 해방됐다. 하지만 먼저 그들이 필요했다.
---------------------------------------------------------
심장약 냄새는 메스꺼웠다. 제스퍼는 목을 닦고 초조하게 스웨터 칼라의 넥타이를 조정했다. 그 모든 약품이 어떻게든 그의 피부에 닿은 것 같았다. 왜 누군가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삶을 붙잡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창문 양쪽에는 흰색 레이스 커튼이 묶여 있고 임시 병동으로 변한 데렉 트렌트뮐러의 방 벽에 무언가가 기어 다니고 있다. 꽃무늬 벽지에 나뭇가지 그림자가 그려져 있다. 가끔 모터 캐리지가 쉭쉭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 헤드라이트의 그림자가 생생하게 나타나 희미한 빛 속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탁자위의 전등은 노란색이다. 꽃과 나뭇가지가 서로 겹쳐져 있다. 죽음 ‒ 소년들의 대화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단어. 모든 것이 그저 사라지고 무로 돌아간다.
때가 되자 제스퍼는 12월의 공기 속으로 나섰다. 그의 뒤에는 사각 집의 빛이 남아 있고, 스키 코스는 마을 외곽으로 이어진다. 눈 아래 황량한 들판이 펼쳐져 있고, 제스퍼는 그 위로 가로질러 나무의 그림자에 어두워지는 곳으로 간다. 지그재그 모양의 가문비나무 가지가 그의 흰색 코트를 스친다. 어두운 숲, 어둠이 섞인 녹색 눈. 차가운 공기 속에서 소녀들의 목소리가 징글벨처럼 울려퍼지고,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영원한 얼음 아래, 수백만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깨끗한 곳에서;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그라드의 폐 깊은 곳. 제스퍼는 그 환상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데렉의 방, 아니 병동은 튜브들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책장에는 가족 사진이 빛나는 유리 액자에 담겨 서 있다. 제스퍼는 그 사진을 감히 볼 수 없다. 아이들, 조카들? 여기 관리인들이 언젠가 여기도 청소를 하게 될까? 침대 위에는 돌로레스 데이(Dolores Dei)의 은색 상징이 서 있고, 그 아래에는 무릎에 손을 포개고 어깨에 격자 무늬 침대보를 얹은 데렉 트렌트묄러가 앉아 있다. 그의 목에는 작은 은색 십자가가 빛난다. 링겔이 매달린 프레임이 침대 머리맡에 높게 세워져 있다.
“이봐, 내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어… 내일이면 너희를 알아보지 못할 거야. 나에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지. 나같은 사람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야. 어떤 날 아침엔 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아. 내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것 뿐만 아니라…"
테레즈는 커튼 뒤에 손을 얹고 서서 창틀을 살펴본다. “지금은 꽤 좋아 보이는데요." 그가 돌아섰다. “그림은 누구한테 받았나요? 애니-앨린 룬드 등의 반점말이에요. 누구에요?"
"아, 이런…" 트렌트뮐러의 간경화로 얼룩진 얼굴이 떨리고 피곤해 보인다. "그런건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억나지 않아. 난 내 아들도 기억하지 못해. 그런 것들은…"
"내가 바본줄 아나, 데렉." 테레즈는 노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얹는다. 칸은 마체젝 요원이 데렉의 흐릿한 눈을 노려보는 것을 두려워하며 지켜본다. “집중해 봐. 넌 감방 동료인 비드쿤 허드와 얘기를 했어. 비드쿤 허드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나?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넌 말했어…" 테레즈는 노인의 턱 밑에 손을 넣고 다시 그를 향해 얼굴을 돌린다. “내 말 들려? 나는 네가 감옥에 있는 비드쿤 허드에게 20년 전 샤를롯데얄 해변에서 네 명의 룬드가 소녀를 납.치.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넌 증거로 소녀의 모반 중 하나를 그렸지. 데렉, 그림은 정확했다고!"
트렌트묄러의 축 늘어진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데렉! 이봐! 그림은 정확히 일치했다고!"
“그랬어… 게이 공원에 갔어. 기억이 안 나, 기억하고 싶지 않아…" 데렉은 노인답게 낑낑대지만 테레즈는 점점 더 화가 났다. 그의 윗입술이 담배로 얼룩진 치아 주위로 말려들어가기 시작한다. 데렉은 유령을 본 것처럼 뒤로 물러나지만 테레즈의 손이 비상 버튼을 누르지 못하도록 가리고 있다. “네놈이 기억문제를 핑계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알아 두는게 좋을거야! 요즘은 기계가 있어. 그건 마치 아이스크림 국자 같아, 데렉. 네 뇌에서 필요한 걸 뭐든 퍼내서…"
“테레즈!" 칸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면 모든게 해결돼!"
"테레즈, 그걸 사용하지 마!" 제스퍼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요원이 비상 버튼에 손을 얹은 채 데렉 주위로 맴돌고 있는 것을 혼란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칸은 화가 나서 그의 어깨를 잡아당긴다. “그런 짓을 하면 어떻게 될지 잘 알잖아, 테레즈. 넌 경찰에 남아 있어야 돼. 해고되어서는 안 돼. 나한테도 생각이 있어, 그럴 필요 없어…"
테레즈는 점차 진정한다. "좋아. 제스퍼, 문을 살펴봐." 제스퍼는 텅 빈 복도를 내다본다. 저녁이면 양로원은 버려진 듯 조용하다. 그는 문을 당겨 닫는다. 긴장한 남자는 문고리에 등을 기대고 초조하게 금발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방 안의 공기는 탁했고, 제스퍼는 노인이 침대 위에서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손으로 테레즈에게서 얼굴을 가린다.
연합경찰 요원은 “리놀륨 판매원"이라고 단번에 말한다. 남자의 슬프고 주름진 눈이 커지고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누구?"
“리놀륨 판매원. 네 남자 친구. 그는 그림을 그렸어. 그는 네놈에게 소녀들에 대해 말했어. 그는 누구야? 누구야, 데렉?!"
“그 사람은 그냥… 그냥." 데렉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말랐다. 노인은 번개라도 맞은 듯 태양 아래 무너진다. “그냥 리놀륨 판매원이야. 그것이 바로 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직업이었어." 그의 입에서는 지친 한숨이 흘러나온다. “오 주여, 도와주소서…"
방 안은 조용했고, 한 대의 오토바이가 밖에서 윙윙거리며 지나가고, 나무 그림자가 문 맞은편 제스퍼 위로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칸은 조용히 테레즈를 옆으로 밀어낸다. “아주 좋아요, 데렉. 휠씬 나아졌죠." 그는 커다란 아몬드형 눈으로 담요를 덮고있는 노인을 바라본다. “당신은 우리가 이 소녀들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거에요, 그렇죠?"
“두 곳이야." 테레즈가 칸에게 속삭였다.
“두 곳이에요, 데렉. 이 사람이 갔던 곳을 두 군데 말해주세요. 그가 살았던 곳은 어디이며,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 알죠?"
"켁스홀름, 모두 켁스홀름에 있었어."
"아주 좋아요. 훌륭해요. 하나 더. 데렉, 리놀륨 판매원이 또 어디에 갔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소녀들을 찾도록 도와주세요. 그 사람은 어디로 갔나요?"
“그는 그 애들을 보고 있었어… 해변에서. 호텔에서."
“하브생라르?" 테레즈는 창문 아래에서 초조하게 왔다갔다한다.
“기억이 안 나, 제발…"
“알겠습니다." 테레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하브생라르. 가자!"
---------------------------------------------------------
18년 전. 비드쿤 허드는 검소한 책상의 칸막이 구석에 앉아 있었다. 옜날 방식으로 빗질한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고풍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드쿤은 비교적 젋었다. 이마는 아직 풍성했고, 볼은 이제 막 노르딕 불독 모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는 원고가 잔뜩 쌓여 있었다. 미래철학, 역사주의, 우생학 보편이론.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며 인류에게 남길 유산이었다.
"비드쿤 허드: '비드쿤 허드'"는 하드커버 표지에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두 개의 낡은 침대가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천장의 작은 창문을 통해 햇빛이 스며들었다.
데렉 트렌트뮐러는 오래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잠시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그는 목에 걸린 은십자가를 꺼내 잠시 바라보다가 웃기 시작했다. "이봐! 이 얘긴 마음에 들거야! 나는 그것에 심지어 인간성을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모험과 과학,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선과 악을 넘어서는 모든 것이."
마치 영적인 신혼여행같았다! 데렉이 말하고 비드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잠시 메모를 중지한 후 잉크병을 교체했다. 창문의 빛줄기가 바닥을 가로질러 강철문 위로 퍼져나갔다. 날이 어두워지고, 비드쿤이 탁상전등을 켰다. 그는 종이 한 장을 공중으로 들어올리고 그 위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좋은 때였지, 좋은 때였어.
데렉은 방 중앙에서 몸을 쭉 뻗고 비드쿤에게 더 가까이 몸을 기댔다. “리놀륨 판매원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거야! 그는 그들에게 '기발한 수술'을 했어. 그는 '그들을 하나로 합쳤어'. 가장 작은 애는 죽었지. 다른 애들은 살아 남았어. 알지? 그렇게 말야."
---------------------------------------------------------
리놀륨 판매원. 리놀륨 판매원. 리놀륨 판매원이 화장지로 손을 뻗었다. 하브생라르의 발코니에서 짠 바다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고 갈대 매트 위에는 망원경이 놓여 있었다. 망원경에는 특수 카메라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후에 그는 바깥을 돌아다녔다.
그는 대기실에서 시간표를 읽었지만 소녀들이 탄 마지막 트램은 이미 도시를 향해 출발하고 없었다. 여름 저녁은 따뜻했고 남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는 샌들을 벗었다. 그는 따뜻한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걸었다. 아스팔트는 가볍고 잘 부서졌다. 트램 레일은 시원했다. 그는 저녁의 샤를롯데얄 해변을 좋아했다. 그는 소녀들을 사랑했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 “나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북극 만년설 위로 휘어지는 북극광을 보면서 그는 생각했었다. 온실 덮개 아래 연인들이 보였고, 온실 유리 뒤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리놀륨 판매원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는 해변과 소녀들을, 특히 한 소녀를 사랑했다. 특별히 한 아이를, 그리고 다른 애들도.
맨발 아래 발가락 사이의 모래는 낮이면 따뜻하고 축축했다. 그는 물가를 따라 걸었다. 정원에서는 음악이 들리고 집에서 나오는 불빛은 소나무 사이로 멀리 퍼졌다. 저 멀리, 아무도 볼 수 없는 바위 절벽 아래. 바위는 물때문에 미끄러웠고 맨발 아래서 차가움이 느껴졌다. 신발이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바위 절벽 아래 돌 사이를 걷자 파도가 그의 바지에 튀었다. 부드러운 어둠 아래서 그는 발을 물에 담그고 웃었다. 소나무가 바스락거렸다. 수영을 하려고 바위 사이의 물 속으로 들어가면서 행복을 느꼈다. 바지가 젖자 그는 미끄러져서 무릎을 찧었다. 그래서 뭐! 물은 어둡고 따뜻하며, 별은 하늘에 떠 있었다.
---------------------------------------------------------
“텔레풍켄으로!" 제스퍼는 손가락을 튕긴다. “거기 사람들을 알아. 멀지 않아. 거기에서 원하는 만큼 전화를 걸 수 있어, 테레즈. 솜씨를 발휘해 봐." 그의 손이 올라가고 세 사람은 로비사 교외의 유일한 주요 도로에서 택시를 부르려고 한다.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길 반대편에는 나무벽이 솟아 있어 저녁에는 차량 통행이 드물다. “9시 반이니까 시간내에 도착할 수 있을거야."
칸이 뒤에서 따라온다. “잘 모르겠어… 서두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 얘기 좀 하자."
“할 얘기 없어. 전화를 해야 해. 오늘 밤에 출발할거야." 제스퍼 말고도 테레즈도 열정적이 되어 노란색 표시등이 켜지지 않은 택시에까지 손을 들었다. “왜 기다려야 하지? 기다리다 지친거 아니었어?"
"맞아. 난 상관안해." 제스퍼는 한 발로 뛰어다녔다. 지나가는 모터 캐리지가 그의 옷을 더럽혔다. “난 테레즈가 사용하는 끔찍하고 파멸적인 기계에 대해 관심이 없어. 시간이 없다구. 3일은 누군가, 특히 어린아이가 살아 있을 확률이 매일 절반으로 감소하는 기간이야. 100퍼센트, 50퍼센트, 25퍼센트야, 칸. 너같으면 어떻게 할거야?"
“그건 상관없어! 젠장!" 비는 천천히 늦가을 진눈깨비로 변한다. 바퀴 아래에서 물보라가 튀어 칸을 적셨다. “택시 정류장은 바로 앞에 있잖아! 제스퍼, 너는 그게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해하지 못해! 빌어먹을 메스칼린… 리세르직…"
"여기있네! 스톱!" 제스퍼는 길가에 멈춰선 택시를 따라 달려가며 뒤에 대고 “그럼 너는 좋은 경찰 역할(한국어 역자주 : 좋은 경찰, 나쁜 경찰 역을 나눠서 심문을 하는방식)을 하면 되겠네, 맞지?"라고 소리친다.
"제발, 그만해..." 테레즈는 택시 안에서 창문에 대고 투덜거렸다.
칸은 승객석 옆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봐, 제스퍼… 넌 이것이… 불법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선언문에 서명한 모든 국가에게는… 덧붙여서, 정확하게는 연합 경찰이 있는 국가에게는…"
"관할권이 있지." 테레즈는 칸의 문장을 마무리하고 운전자에게 "텔레풍켄"이라고 말한다.
잠시 차가 조용해진다. 엔진시동이 걸린다. 진눈깨비가 바퀴 아래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다. 제스퍼는 말다툼을 벌였지만, 테레즈는 칸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그래. 나는 허드에게 그 기계를 사용했어. 내가 결정했어. 그는 결코 ‒ 결코 ‒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을거야. 그는 거기 앉아서 비웃었을거야. 그는 집시와 흑인의 교배에 대해 두 시간 동안 나에게 떠벌렸을거고 난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거야."
"하지만 테레즈" 칸의 투덜거리며 말한다. "넌 해고될거야!"
“내가 알아서 할께. 그리고 그거 알아? 더 이상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
다음날, 따뜻한 여름비 속에서 리놀륨 판매원의 눈빛이 멀리서 반짝였다. 그가 삼각대를 조정하자 이미지가 흔들리다가 선명하고 또렸해졌다. 리놀륨 판매원의 귓가에 빗소리가 바스락거렸다. 구름은 햇빛을 받아 밝아졌고, 호텔 발코니에는 비가 내렸다. 해변의 젖은 가장자리는 갈대밭의 절반을 넘어 확장되고 있었다. 비가 해변에 쏟아지면서, 그의 마음속에서는 파라솔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즐거운 드럼 소리가 들렸다. 망원경 렌즈 속에는 작은 붉은 꽃 무늬의 파라솔이 보였다. 리놀륨 판매원은 1킬로미터 떨어진 절벽 위에서 내리는 비를 향해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는 상상을 했다. "비켜라, 뚱뚱아" 그가 말했다. 리놀륨 판매원은 시내에서 여성잡지를 구입했다. 표지에는 세련된 옷을 입은 여성 정치인 앤-마가렛 룬드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안쪽 페이지에는 그녀의 아름다운 아파트에서 네 딸과 함께 커피색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이름과 나이가 일렬로 적혀 있었다.
애니-엘린...
그가 그 소녀들을 처음 보았을 때 떠 올랐던 끔찍한 것들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리놀륨 판매원은 의사였다. 리놀륨 판매 의사. 그는 그를 향해 다가오도록 소녀들을 마주쳐 걸었다. 충분하지 않았다. 그의 신경이 허기로 인해 윙윙거렸다. 그들을 산 채로 먹고 싶었다. 이 곳으로 왔을때 허기는 진정되기 시작했다. 멋진 곳이었다. 그들은 마주보는 두 개의 트램 좌석 사이에서 이야기했다. 그는 그들의 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리놀륨 판매원은 그들의 새하얀 머리카락의 향기를 맡았다. 트램이 언덕을 내력가기 시작하자, 말들이 속보로 달렸다. 해변이 가까와졌고, 네 소녀는 그를 거기로 이끌었다. 아스팔트에서는 먼지가 피어오르고, 갈대가 흔들리고, 푸른 하늘에 태양이 창백하게 빛났다. 그곳은 리놀륨 판매원이 땀을 흘리던 아르다와 외스터말름의 해변과는 달랐다. 그는 역겹고 빈약한 몸들을 피하며 작은 소녀들을 그의 눈으로 ↗았다. 이곳은 염소로 인해 눈이 붉어지고, 물에서 나오기까지 두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제린카의 수영장이 아니었다.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흐트렸다. 바람이 불어 와 그를 식힐 수 있도록, 리놀륨 판매원은 가장 높은 호텔방을 계약했다. 그는 감히 그들 근처 해변으로 내려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그들을 만지기라도 하면 재가 될 것 같았다. 그는 사진을 찍었다. 소녀의 등을 그을인 광자는 소녀의 작은 모반에서 반사되어 네거티브 필름에 새겨졌다. 밤하늘의 별과 같은 하얀 점들. 기억의 셔터 스피드. 그는 아마실 타래로 올가미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자.위.를 했다. 그의 숨결에 시트가 떨렸고, 정.액.과 함께 리놀륨 판매원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사라졌다.
리놀륨 판매원의 기억과 그가 본 모든 것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드럼소리를 냈고, 애니는 작은 손을 내밀어 피아노가 짤랑거리는 듯한 빗방울을 느꼈다. 오늘, 그가 일어났을때, 더이상 리놀륨 판매원을 기억하지 못했다.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을때 리놀륨 판매원이 약간 생각났다. 그 후에는 리놀륨 판매원은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애니는 빗속에서 등에 땋은 머리를 한 채 하얀 얼굴을 흔들었다. 그리고 오직 그만이 망원경을 통해 그들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
수천 킬로미터, 20년 하고도 두달 이상 떨어진 겨울 궤도 반대편에는, 기상연구선 "로디오노프"가 얼음속에 갇혀 있었다. 극지의 밤 12시30분이었다. 승무원들 앞으로는 차가운 일직선의 조명이 북쪽 경로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모피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갑판에 모여 있었고, 그들의 은회색 칼라는 모피 모자까지 치켜올려져 있었다. 승무원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어둠이 조금씩 짙어지는, 지평선이 전혀 보이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창백은 시작되고 있었다. 선원들은 두려워하지만, 아무도 밤에 100미터 이상은 볼 수 없었다. 연구선의 안테나는 과학적 측정값과 함께 절박한 구조신호를 발송하고 있었다. 이 라디오 전파는 곡면 거울처럼 기괴하게 왜곡되어 카틀라 그라드 오블라스트의 중게국에 도착했다. "구역-궤도-구역, 구역-궤도-구역..."
얼음 가장자리가 창백 아래의 하늘로 휘어져 들어가면서 깨어지는 소리가 났고, 음악을 10배 느리게 거꾸로 재생한 것 같은 돌풍이 불었다. 창백은 세상의 모든 기억을 산사태처럼 몰고 와서는, 무모한 속도로 모든 것을 묻어 버렸다. 별이 가득한 광활한 하늘에서는 붓으로 지워지듯 별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졌다.
궤도에서 통신위성 "아이콘"은 창백이 하나의 파동으로 카틀라 북부 체널 전체를 휩쓰는 것을 감지한다. 그 파동은 또한 사마라 남부의 돌사막인 사마르스킬트와 문디의 수프라문두스 절반도 삼켜버렸다. 창백은 휘감고, 돌고, 실체에 대항해서 움직인다. 블랙홀은 그 소용돌이의 핵심을 삼켜버린다. "방위각"은 성층권에서 보정된다. 현재 엔트로피적 재앙이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으로는, 렘민케이넨, 북동쪽 사마라 타이가의 나드-우마이 생태지역, 그라드 예코카타 및 세베르나야 젬리야의 관개 고원 네트워크가 포함된다.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물질계의 외진 구석. 때는 70년대 초반의 9월 29일 이었다. 이틀전에 동창회가 열렸다. 이제 세상의 종말이 왔다.
그리고, 텔레풍켄의 파노라마 식당에서는 테레즈 마체젝이 두 시간 전부터 테이블위에 전화기를 올려 놓고 하브생라르 호텔의 비서에게 52년6월과 7월 사이의 전체 손님 목록을 읽으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요리가 놓여 있었다. 맛좋은 게 집게살이 전화기 위에 반쯤 누워 있었다. 칸은 맛좋은 게를 사랑했다. 제스퍼는 어떻게 게껍질에서 속살을 꺼내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빨아봐." 제스퍼는 설명하면서, 접시를 치우라고 웨이터에게 손짓한다. 오늘밤의 저녁식사는 제스퍼의 몫이다. 그리고 제스퍼는 맛있는 요리를 사랑한다. 그는 쌀과 마카로니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칸이 게살을 빨아먹는다. "글쎄, 맛있긴 한데, 쌀과 마카로니에 만두를 넣으면..."
제스퍼가 얼음물을 마신다. "테레즈, 들어봐. 켁스홀름은 내가 감당할 수 있어. 난 거기에서 소아전문의의 주택을 설계했고, 개발자 한 명을 알아. 내 생각엔 그가 접근할 수 있을거라..."
"인명부" 테레즈가 말했다. 그의 어깨가 고통으로 쑤신다. 그런데 여기 유고그라드 적포도주가 너무 맛있어서 한모금 마시고 싶어진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에 다시 전화기를 올려놓아야 한다. 비서와는 이미 한 번 통화를 했다. 그 다음엔 관리국에 전화를 걸어 "네 어린 소녀의 생명이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요청했고, 효과가 있었다.
칸이 와인잔 옆에 펼친 공책에는 2000명 이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절반이 끝났어요. 이제 2000명 더요." 그의 머리는 지끈거렸고, 눈앞은 기차에 비친 불빛처럼 번쩍거렸다.
"좋아, 그럼," 제스퍼는 자랑스럽게 냅킨을 접어 그의 입을 닦는다. "11시 반이야. 한시간 반이면 끝나. 최악의 경우라도 두시간 반이면 돼. 자, 시작하자구. 난 인명부를 맡을께."
웨이터가 또 다른 전화기를 책상위에 놓는다. 나머지 손님들은 가벼운 호기심으로 세명의 식사를 지켜보고 있다. 홀쭉한 코이코는 두시간동안 꾸준히 이름을 읽고 노트에 적는다. 페르세우스 블랙 이중 칼라 셔츠를 입은 황갈색 과체중 남성이 안경을 고쳐 쓰고 집게발을 부수고는 반대편 식탁의 여성에게 흔든다. 테레즈의 공책은 엉망이 된다. "칸, 넌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 좀 가만히 있으라구!"
"테레즈, 들어봐. 이 노트패드를 가져가자." "안돼. 공책이 있어야 돼." 공책이 어쨌는데?"
"데렉 트렌트뮐러," 테레즈가 익숙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고 칸을 바라본다: "테렉 트렌트뮐러! 이봐, 확실해? 거기 어딘가에 표시가 있어?"
"휴가."
"그 외엔?"
"리놀륨 판매원," 전화 반대편에서 비서가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데렉 트렌트뮐러, 7월17일-24일, 리놀륨 판매원."
제스퍼는 그가 5년전에 디자인한 식탁을 주먹으로 친다.
칸은 집게발을 접시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ZA/UM을 쓸 시간이군."
데렉 트렌트뮐러는 리놀륨 판매원을 꿈꿨다. 리놀륨 판매원이 보는 모든 것들은 살과 어둠의 균일한 덩어리처럼 그의 눈앞에서 회전했다. 때때로 그는 깨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면 육체와 어둠의 소용돌이가 다시 돌아오고 데렉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들은 리놀륨 판매원과 연인이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이었다. 떠오르는 형체 없는 기억 속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 창문이 삐걱거린다. 안경테에서 안경이 덜거덕거린다. 그러다가 쿵 소리가 나고 데렉은 깨어났다.
죽음. 이것은 죽음임에 틀림없다. 꽃무늬 벽지에 어두운 갈색 꽃이 보인다. 바람에 나뭇가지 그림자가 흔들리고 커튼이 펄럭인다. 그렇다, 이것은 데렉이 항상 상상했던 죽음과 똑같다. 열린 창문 앞에 물고기 무늬 코트를 입은 키가 크고 마른 인물이 나타난다. 한 사람이 아니다! 뚱뚱한 죽음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창턱에서 떨어지더니 속삭인다. “좋아, 들어왔어. 조심해."
키가 큰 죽음이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와 알람 버튼을 끊는다. 뚱뚱한 죽음은 탁자의 전등을 켜고 데렉 위로 다가와 그의 머리에 부드럽게 손을 얹는다. 그 크고 짙은 갈색 눈은 친숙해 보인다. “데렉. 애쓰지 마세요. 지금 우리는 당신의 대답이 필요해요. 기억이 나도록 주사를 놓을게요. 아프지 않을 거에요. 꿈같은 거에요."
데렉은 여행 가방이 딸깍거리는 소리를 듣고 키가 큰 죽음이 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입을 누른다.
이상한 냄새가 나더니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친절한 짙은 갈색 눈이 그를 바라본다. “근데 정말로 기억을 못 하면 어쩌지? 그래도 작동해?" "곧 알게 되겠지."
데렉 트렌트뮐러가 테레즈 앞에 열린다. 이제 물가에 서있는 것은 테레즈다. 호랑이는 물속을 헤엄쳐 나아간다. 호랑이는 숨어서 기다린다. 데렉이 끝나는 곳이 어디든간에 호랑이는 주변을 배회하며 냄새를 맡고 리놀륨 판매원을 찾는다. 노르퀘핑, 아르다의 피요르드 마을, 전자력 열차, 제린카의 극지방 정착지에서, 리놀륨 판매원이 가는 어두운 구석 어디든 그의 눈이 인광 빛을 발하며 따라간다. 리놀륨 판매원이 조카를 어르고 있을 때 그는 천장이 낮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지하실에 있었다. 마침내 바사에 도착했을 때 호랑이는 역의 플랫폼 끝쪽, 등불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앉아 발을 핥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공원의 오리나무 숲에서 바스락거리고 리놀륨 판매원은 깜짝 놀란다. 봄날 아침 주머니에 가위로 구멍을 뚫고 로비사 거리를 걷다 보면 호랑이의 마음이 잠시 엿보인다. 학교 운동장이 보이고, 작은 소년들 사이의 싸움이 보인다.
리놀륨 판매원이 샤를롯데얄에 도착했을 때 테레즈는 그곳에서 바람을 가르며 감시하는 맹금류가 된다. 그는 매의 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본다. 어느 날 저녁에 그는 하브생라르 호텔 꼭대기 층에서 리놀륨 판매원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이미 그 시대 사람들의 절반이 죽어없어졌다. 리놀륨 판매원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날이 갈수록 잊혀지고 있었다. 마침내 노인이 된 데렉 트렌트뮐러만이 남았다.
"리놀륨, 리놀륨, 리놀륨…" 그는 "'리놀륨'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나요?"라고 흥얼거린다. 이상하기 짝이없는 상실감.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리놀륨이 아니다. 리놀륨 판매원은 때때로 자신을 기억해내며 그가 사라지지 않은 삶을 상상하며 애도한다. 그는 욕지꺼리를 하며 비드쿤 허드의 회고록을 읽는다. 데렉 트렌트뮐러는 완전히 다른 것을 갈망하며 상상한다.
20년 전 8월 29일 ,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간 신문은 욕실 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교육부 장관의 딸 4명이 실종됐다. 데렉 트렌트뮐러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세상은 어긋났으며, 시간은 뒤엉켰다. 빨간 전구 불빛 아래, 호텔 발코니에서 찍은 사진들이 보였다. 그의 손은 떨렸다. 그들은 확실히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빨랫줄에 걸린 사진은 모두 공포스러운 공백(horror vacui)이었다. 무(無)였다.
현상 트레이에 떠 있는 종이 위에 바위 절벽의 윤곽이 나타났다.
창백한 여름하늘. 그러나 소녀들은 없었다.
칸과 제스퍼는 의식이 거의 없는 테레즈를 택시에 태운다. 그의 신발은 땅에 끌리고 남자는 떨고 있다. 제스퍼의 목소리는 볼록 거울에서 나오는 것 같다. 제스퍼는 여전히 멋진 친구다.
"테레즈, 테레즈! 일어나. 괜찮아?"
"그가 한 게 아니야, 그가 아니야."
"알았어, 너 상태가 안좋아, 병원에 데려다줄까? 테레즈!"
테레즈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제 어떡하지?"
"모르겠어, 말해줘! 병원으로 데려갈까, 아니면 쉬게 해 줄까?"
테레즈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한다. “아니, 그게 아니야. 막혔어. 미안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칸은 테레즈를 택시에 태울 때 머리를 부딫히지 않도록 조심한다. “호랑이야, 잠시만 기다려. 넌 잠을 좀 자야해. 이젠 내 차례야. 난 계획이 있어."
테레즈는 정신을 잃는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
[잡담] [신성하고 끔찍한 공기] 08. 리놀륨 판매원
꿈꾸는괴테
추천 0
조회 108
날짜 2024.03.25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2
조회 426
날짜 2023.11.05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95
날짜 2023.11.03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13
날짜 2023.11.03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193
날짜 2023.11.03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45
날짜 2023.11.03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92
날짜 2023.11.03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16
날짜 2023.11.03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348
날짜 2023.11.03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475
날짜 2023.11.03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144
날짜 2023.11.02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188
날짜 2023.11.01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58
날짜 2023.11.01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98
날짜 2023.11.01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359
날짜 2023.10.31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22
날짜 2023.10.30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237
날짜 2023.10.29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0
조회 704
날짜 2023.10.29
|
|
루리웹-8616644536
추천 1
조회 864
날짜 2023.10.29
|
|
루리웹-8906637497
추천 0
조회 1044
날짜 2023.10.19
|
|
까다로우
추천 0
조회 1023
날짜 2023.09.09
|
|
看書痴
추천 1
조회 877
날짜 2023.07.23
|
|
看書痴
추천 0
조회 680
날짜 2023.01.03
|
|
루리웹-4830532758
추천 0
조회 454
날짜 2022.03.23
|
|
루리웹-8378201701
추천 0
조회 2386
날짜 2022.01.28
|
|
유테디어
추천 0
조회 3638
날짜 2022.01.22
|
|
ssolmir
추천 0
조회 863
날짜 2022.01.02
|
|
존슈미트
추천 3
조회 5831
날짜 2022.01.01
|
|
깔라만씨
추천 1
조회 3503
날짜 2021.11.03
|
|
포곧
추천 4
조회 7942
날짜 2021.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