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영선
출판사 - 한빛비즈
쪽수 - 256쪽
가격 - 15,000원 (정가)
주 52시간 근무 시대,
법이 어떻게 바뀌어도
스스로 야근하는 굴레에 대하여
‘장시간 노동’에 사로잡힌 나라
대통령이 말했다. "OECD 평균보다 연간 300시간 더 일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도입했다. ‘워라밸’ 문화 정착에 나선 한국을 보고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렇게 말했다. "52시간? 그것도 길다. 한국도 선진국 아니었나?"
최근 과로사와 과로자/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학자 김영선의 평가는 더 냉혹하다. "장시간 노동에 예속된 상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자각조차 못하고 있다." ‘시간 박탈’ 상황이 점차 악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 김영선은 이를 하나의 사회적 질병으로 간주한다.
‘시간마름병’이라는 질병
김영선은 과로가 유발하는 신체적, 정신적, 관계적, 사회적 질병을 ‘시간마름병’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에는 우울증과 과로사, 관계 단절 등이 포함된다. 과로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는 모두 ‘시간마름병’ 환자다. 시간마름병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사회 모든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한다.
이 상황을 더욱 악화하는 요소는 자본의 신기술이다. SNS로 업무 지시가 내려오고, 시공간에 묶여 있지 않은 노동자(플랫폼 노동)는 언제든 호출된다. 업무의 일상 침투가 이처럼 만연할 때 더 크게 위협을 받는 대상은 비정규직, 여성, 이주민 등의 취약 노동자들이다. 장시간 노동의 성질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순간이다.
제도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근면 신화는 스스로 진단하고 알아서 책임지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저임금 구조, 성과 장치가 여기에 한몫을 한다. "내가 일하겠다는데 왜 국가가 나서서 막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임금이 줄고 외주화가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도 우리는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과로 사회 탈출’에는 공감하지만 ‘저녁 굶는 삶’에 대한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불안과 스트레스는 다시 일을 부른다. 실제로 과로자/살의 빈도는 증가 추세다. 일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과로자/살은 신자유주의적 과로사의 형태다. 근로기준법 준수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으로는 끊을 수 없는 굴레다.
보이지 않는 ‘교육’의 힘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는 힘이 세다. 개인의 의지와 의식 전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대부분 스스로 시간권리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시간의 민주화’ 과정이 필요하다. ‘알바도 유급휴가 가자’는 슬로건을 만들고 ‘경단녀’라는 젠더 차별적 언어에 반기를 드는, 이른바 ‘대항 담론’ 만들기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제도 차원의 개선은 개인이 자유시간을 포기하는 지점에서 힘없이 무너진다. 나의 시간권리를 자연스럽게 여기고, 주어진 시간을 주체적으로 누릴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려면 교육이 필수다. 다른 삶,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지향하는 일종의 문화 교육이다. 교육은 두려움을 걷어낼 용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장시간 노동으로의 회귀를 막는다.
엄격하고 과감한 개혁
궁극적으로 ‘저녁 있는 삶’은 의식과 제도가 맞물렸을 때 구현될 수 있다. 저자는 정부가 장시간 노동에 단호히 메스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제 일자리’나 ‘금요일 조기퇴근제’ 같은 미봉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뭔가 바뀔 거라는 기대가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이전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저자는 세부 상한선이 엄격한 시간 규제, 초과 노동에 대한 페널티 등을 제안한다. 개선 의지에 진정성을 담으려면 포괄임금제, 제외된 특례업종처럼 장시간 노동을 방조하는 관행의 과감한 폐지도 요구된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폭력은 시대에 따라 형태를 바꾼다. 이에 맞서려면 인식과 대안 또한 구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목 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 행복하기 위해 행복 없이 산다
1장 | 시간의 결
쉼 없는 사회
사회 없는 시간
시간의 구조가 삶의 결을 바꾼다
2장 | 시간기근 사회의 질병: 시간마름병
죽음의 행렬
크런치 모드: 개발자들의 돌연사
‘존버’하는 삶
관계 단절의 악순환
소극적 여가, 상품집약적 여가
폭력의 재생산
SNS를 타고 일상으로 침투하는 업무들
3장 | 우리는 왜 시간기근에 허덕이는가?
두세 사람의 몫을 혼자 짊어지는 구조
지금도 미화되는 근면 신화
더 열악해진 임금 구조
시늉만 하는 규제
우리의 불안을 파고드는 성과 장치
상품서비스의 늪
‘플랫폼 노동’이라는 위험 징후
4장 | 시간의 민주화: 시간 예속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여유로워야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상한선을 명확히 하기
새로운 언어의 발명
지금의 임금체계는 온당한가
제도 개혁
소비주의와 거리 두기
성과 장치의 반인권성에 대하여
기술에 사회적으로 개입하기
에필로그 / 다시 그때로 돌아가진 않는다
참고문헌
추 천 사
‘과로사’의 원조 격인 일본에서 과로사방지학회가 열렸다. 중국에서 온 학자가 공개 질의했다. "일본은 선진국인데도 왜 과로사 문제가 아직도 심각한가?" 한국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김영선 박사의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답변"(CVIA)을 제시한다.
- 강수돌 / 고려대 교수, [여유롭게 살 권리] 저자
이 책은 ‘일에 치인’ 우리 모두가 사회경제적으로 공모해 하나의 체제로 형성하고 공고화해온 우리 시대 장시간 노동을 탁월하게 그려낸 서사 보고서다. 체념과 함께 오랫동안 은폐되어 온 ‘시간기근 상처’의 풍경이 이처럼 호소력 있게 드러난 글은 흔치 않다.
- 조계완 / 한겨레신문 기자, [우리 시대 노동의 생애] 저자
김영선 박사는 장시간 노동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가 ‘좀 더 견딜 만한 착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권리를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비주의와 거리 두기, 일에서 성과 장치를 걷어내기 등의 대안에서 이 책은 차별성을 갖는다.
- 김형렬 / 가톨릭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교실 교수
‘일과 생활의 균형’ ‘노동시간 단축’은 계속해서 화두다. 지금 딱 필요한 책이다. 노동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판례, 국내외 연구 서적과 사례가 총망라되어 있다.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야근과 휴일 노동에 지친 가족, 친구, 선후배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정병욱 / 과로사예방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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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퇴근이 실적에 반영된다면 아무 일 안 하고 빈둥대며 회사에서 자도 수당 및 실적에 인정되냐고 묻고 싶네요. 물론 회사는 '데? 안 되는 데슥! 실적 올려서 회사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샤아아-!!'라며 미친 헛소리를 지껄이는데...야근 몇 번으로 실적 내서 대기업 올라갈 거 같으면 누가 중소기업으로 지내겠냐...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쉬며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그런 건 절대 못 봐주지만 회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흐뭇하게 지켜보는 회사. 시발 진짜 여기가 지옥 아니냐?
자기 일 다 하고 정시에 퇴근하면 동료에 대한 배려가 없다. 자기만 안다. 놀려고 한다 등등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일자리' 라는 단어 자체가 고용주가 자신의 사업 확장과 더 많은 이익을 위해 피고용인과의 관계를 동등에 가까운 계약의 뜻이 되지 않고 고용주가 모든 이익을 가질 권한을 가지는데 별수 없이 피고용인에게 자선사업한다고 여기게 하는 일종의 프레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이 먹고 살기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공급해주는 유일하다 싶은게 바로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되니까요. 거기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현직자와 실업자및 백수, 고소득 직종과 저소득 직종등등으로 패를 갈라서 싸우게 하는 프레임을 언론등을 통해 계속 조성하고 을끼리 혹은 그 이하의 사람들이 서로 단합하지 못하게 하고 회사 그 자체가 벌어들이는 이익을 계속 고용주와 그 측근이 불려나가는 파이를 계속 불려나가는데 법적 이유나 회사내규등을 통한 이유라든지 둘러대면서 계속 회사 내에서의 부의 불균형과 권력의 불균형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심화시키는것도 오래 이어져온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이제는 인간 대신에 기계나 인공지능이 대입될 영역이 갈수록 늘어나기 시작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을 바쳐 돈을 벌수 있는 파이는 급속도로 줄어들게 될것이고, 결국 돈으로 스노우볼 굴려 목돈을 얻을수 있는 소수의 사람만 살아남게 되는 구조가 올것이라는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죠. 저출산의 여파와 과거 산업화세대의 대량 은퇴가 본격 가시화되는 2020년도정도를 기점으로 뭔가 이 문제가 해결될것 같으면서도 성장동력이 떨어지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거니와, 한편으로는 기업의 오너와 그에 상응하는 계층들이 소비를 해줄 다수의 사람들이 부족해져서 설령 국내에서의 사업을 청산한다 치더라도 사내보유금같은걸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소수의 명의로 돌린뒤 사유화해서 외국으로 떠난뒤 그것만으로 떵떵거리며 살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예를 든다면, 중국에 의류산업을 잠식당해서 이미 정세마저 불안 그자체인 파키스탄의 부유층들이 이미 그런 계획을 다 짜놓고 있고 실제로 나라를 떠난 부류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가급적 다수의 사람들이 미래에도 삶을 누릴수 있는 플랜을 짤려고 한다면, 돈이 어느정도는 있지만 약간은 미덥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산업화세대의 낭만과 분위기에 취해서 일과 고생을 미화하지 말고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볼것이며, 2030은 당분간은 힘들더라도 취직했다면 나라의 먹거리가 될수 있는 산업에 편승할수 있도록 별도의 노력도 기울이되 여의치 않거든 조기퇴사를 대비해서 자본금이라도 좀 챙겨두고 현직자건 구직자건 실업자건 관계없이 뭉쳐서 정치적 힘을 기르는게 나을거라 봅니다. 정치인이 아무리 아니꼬와도 세대가 뭉쳐서 징징거리면 어찌되었건 들어주는 척은 할것이니까요. 그리고, 위의 기성세대들과 젊은이들이 세상의 부의 불평등과 분배의 문제에 거시적인 안목으로 기업에 위압을 줄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게 정말로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노동의 가치가 더 주저앉기 전에 미래를 대비한 분배의 균등성 상향과 재분배의 호스를 넓혀야 밥줄이 끊어지기 전에 곳간정도는 확보하는게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할 것이니까요. 장기적으로는 주 40이하, 월 세후 200~300, 인사와 고용에 의한 갑질을 완전에 가깝게 막아내는것을 보편적으로 국민이 누릴수 있게 하는게 목표라면 목표라고 설정해서 일단 쟁취하고 그다음에 미시적인 문제에 대해서 서로 조정하는게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을 이하끼리 서로 물고 뜯어본들 앞으로도 얻을건 없을테니 말이죠.
어떤 기업은 "정신퇴근 해도 되지만 실적에 반영한다"고 하던..
야가미 하야테
정시퇴근이 실적에 반영된다면 아무 일 안 하고 빈둥대며 회사에서 자도 수당 및 실적에 인정되냐고 묻고 싶네요. 물론 회사는 '데? 안 되는 데슥! 실적 올려서 회사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샤아아-!!'라며 미친 헛소리를 지껄이는데...야근 몇 번으로 실적 내서 대기업 올라갈 거 같으면 누가 중소기업으로 지내겠냐...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쉬며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그런 건 절대 못 봐주지만 회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흐뭇하게 지켜보는 회사. 시발 진짜 여기가 지옥 아니냐?
개인적으로, '일자리' 라는 단어 자체가 고용주가 자신의 사업 확장과 더 많은 이익을 위해 피고용인과의 관계를 동등에 가까운 계약의 뜻이 되지 않고 고용주가 모든 이익을 가질 권한을 가지는데 별수 없이 피고용인에게 자선사업한다고 여기게 하는 일종의 프레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이 먹고 살기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공급해주는 유일하다 싶은게 바로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되니까요. 거기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현직자와 실업자및 백수, 고소득 직종과 저소득 직종등등으로 패를 갈라서 싸우게 하는 프레임을 언론등을 통해 계속 조성하고 을끼리 혹은 그 이하의 사람들이 서로 단합하지 못하게 하고 회사 그 자체가 벌어들이는 이익을 계속 고용주와 그 측근이 불려나가는 파이를 계속 불려나가는데 법적 이유나 회사내규등을 통한 이유라든지 둘러대면서 계속 회사 내에서의 부의 불균형과 권력의 불균형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심화시키는것도 오래 이어져온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이제는 인간 대신에 기계나 인공지능이 대입될 영역이 갈수록 늘어나기 시작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을 바쳐 돈을 벌수 있는 파이는 급속도로 줄어들게 될것이고, 결국 돈으로 스노우볼 굴려 목돈을 얻을수 있는 소수의 사람만 살아남게 되는 구조가 올것이라는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죠. 저출산의 여파와 과거 산업화세대의 대량 은퇴가 본격 가시화되는 2020년도정도를 기점으로 뭔가 이 문제가 해결될것 같으면서도 성장동력이 떨어지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거니와, 한편으로는 기업의 오너와 그에 상응하는 계층들이 소비를 해줄 다수의 사람들이 부족해져서 설령 국내에서의 사업을 청산한다 치더라도 사내보유금같은걸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소수의 명의로 돌린뒤 사유화해서 외국으로 떠난뒤 그것만으로 떵떵거리며 살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예를 든다면, 중국에 의류산업을 잠식당해서 이미 정세마저 불안 그자체인 파키스탄의 부유층들이 이미 그런 계획을 다 짜놓고 있고 실제로 나라를 떠난 부류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가급적 다수의 사람들이 미래에도 삶을 누릴수 있는 플랜을 짤려고 한다면, 돈이 어느정도는 있지만 약간은 미덥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산업화세대의 낭만과 분위기에 취해서 일과 고생을 미화하지 말고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볼것이며, 2030은 당분간은 힘들더라도 취직했다면 나라의 먹거리가 될수 있는 산업에 편승할수 있도록 별도의 노력도 기울이되 여의치 않거든 조기퇴사를 대비해서 자본금이라도 좀 챙겨두고 현직자건 구직자건 실업자건 관계없이 뭉쳐서 정치적 힘을 기르는게 나을거라 봅니다. 정치인이 아무리 아니꼬와도 세대가 뭉쳐서 징징거리면 어찌되었건 들어주는 척은 할것이니까요. 그리고, 위의 기성세대들과 젊은이들이 세상의 부의 불평등과 분배의 문제에 거시적인 안목으로 기업에 위압을 줄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게 정말로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노동의 가치가 더 주저앉기 전에 미래를 대비한 분배의 균등성 상향과 재분배의 호스를 넓혀야 밥줄이 끊어지기 전에 곳간정도는 확보하는게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할 것이니까요. 장기적으로는 주 40이하, 월 세후 200~300, 인사와 고용에 의한 갑질을 완전에 가깝게 막아내는것을 보편적으로 국민이 누릴수 있게 하는게 목표라면 목표라고 설정해서 일단 쟁취하고 그다음에 미시적인 문제에 대해서 서로 조정하는게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을 이하끼리 서로 물고 뜯어본들 앞으로도 얻을건 없을테니 말이죠.
법이 아닌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바뀌지. 그리고 그 인식을 먼저 법이 제시해야 하고.
자기 일 다 하고 정시에 퇴근하면 동료에 대한 배려가 없다. 자기만 안다. 놀려고 한다 등등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