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추한 최후에 관하여]가 본편 20화+보충편 17.5화+에필로그로 드디어 끝났습니다.
17.5화가 6화까지 이어졌고, 에필로그도 본편 하나만큼의 분량이었던 것 생각하면 총 27화짜리 팬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 진지한 라스트오리진 팬픽을 쓸 때 델타는 다른 레모네이드 이야기 나올 때 곁다리로 한 번 나오는게 전부였는데, 한번 델타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써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쓰기 시작하니까 생각 이상으로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델타를 어떻게 개심시켜야 하지? 델타의 과거행적에 어떤 이유를 붙여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될까? 리스트컷은 델타를 용서할 수 있나? 사령관은 델타에게 자비를 베풀까? 아니면 죽어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해 잔혹하게 대할까?
이런 질문들이 수도없이 떠올랐거든요.
마찬가지로 악녀인 오메가를 주인공으로 삼은 팬픽도 몇 번 써봤지만, 오메가는 명확하게 묘사되지 않은 행적도 있고 나름대로 대의라고 할 만한 것이 있어서 어떻게든 포장하면 그럭저럭 세탁을 할 수 있었는데...
델타는 인게임 스토리에서 이런이런 짓을 했습니다-라고 딱 못박혀 있으니 그 부분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한 피해자인 리스트컷의 존재도 있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짐승같은 델타를 쥐어패서 한없이 괴롭게 만들다가 사형시키는 전개를 구상했습니다.
제목이 [질투의 추한 최후에 관하여] 였던 것도, 기존 전개에서는 델타가 처음부터 끝까지 추하게만 굴어서였어요.
원래 구상했던 내용에서도 델타가 임신하는 것까지는 똑같은데, 그 이후는
델타가 계속 뉘우치지 않고 탈출시도 및 리스트컷의 속을 긁음 > 리스트컷의 분노와 복수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더욱 격렬히 타오름 > 델타가 자신의 아이에게만은 모성을 느낌 >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욱 가열차게 탈출하려 함 > 사령관과 리스트컷에게 저지 > 델타 출산 이후, 리스트컷이 아이를 죽이겠다고 통보 > 델타가 미쳐서 발광 > 델타 처형 후 아이는 리스트컷이 거둠
이렇게 전개될 예정이었습니다. 델타가 과거 리스트컷의 소중한 이들을 죽여 리스트컷에게 상실감을 느끼게 했듯, 리스트컷도 델타에게 똑같이 소중한 이를 잃는다는 절망과 공포를 심어준 다음 죽인다는 결말이었어요.
하지만 쓰다 보니까 왠지 델타를 죽이면 리스트컷이 무너질 것 같더라구요. 원작에서야 오르카와 힘을 합쳐 순식간에 델타를 폭☆파 시켰지만 이 팬픽은 리스트컷이 사령관에게 사주해 델타를 쥐어패는걸로 시작했으니까요. 원래 전개에서는 리스트컷의 복수가 점점 잔혹해지고, 마침내 델타에게 죽음을 선사함으로써 델타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것 같았어요.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 생각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델타가 사실은 생에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과 공감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다-라는 전개로 갔습니다. 인게임 스토리에서 델타가 보여준 사랑은 오직 문리버 회장을 향한 것 뿐인데, 사실 그것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이라기 보다는 집착과 광기로 이루어진 뒤틀린 감정에 가까웠잖아요?
델타가 사령관의 자애와 온정을 받아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자신이 휘두른 폭력과 저지른 죄를 체험해보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아이 덕에 모성을 깨달아 한 사람의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한 번 죽었다 다시 태어난 수준으로 달라지는 묘사를 넣어서요.
결과적으로 리스트컷은 델타를 조금이나마 용서하고 그녀 역시 한층 성장하죠. 뉘우기 전과 후의 델타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의 델타에게 딸과 재회하는 행복을 맛보게 허락할 정도로요.
사령관은 그런 리스트컷이 복수심에 불타 재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돕는 역할로 그려봤습니다. 그녀의 정당한 복수를 돕는 한편,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상처입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죠. 리스트컷이라면 아이를 가진 델타를 죽여버리지 않으리라 생각해 시간을 벌고, 델타가 짐승으로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깨우쳐 진심으로 뉘우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상처입혀가며 헌신합니다. 사령관의 노력 덕에 델타는 인간이 되고, 리스트컷도 복수심과 과거를 극복하고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델타의 딸 이름인 그레이스는 자비, 은혜를 뜻합니다.
리스트컷이 델타에 대한 증오를 그 딸에게까지 투영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델타가 워낙 극악무도한 악인이다보니 그 아이인 그레이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갑론을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인 리스트컷이 그레이스를 아끼고 감싸주었기 때문에 큰 소요로는 번지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묘사하기에는 에필로그가 애매해져서 뺐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델타가 처음 보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진료받은 것은 사령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들이라는 암시였는데, 이건 한줄이라도 설명을 넣을 걸 그랬네요. 설명 없이는 알아채기 어려운 내용인 것 같아서요.
델타가 잠든 사이에 시간이 오래 흘렀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이었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거라면 드리프트한 흔적을 깔끔하게 없애지 못했다는 것일까요...
처음부터 이 전개로 갔으면 1화부터 묘사를 조금 더 신경써서 넣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 외에도 문리버 회장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묘사하는것을 빠뜨린 거랑, 폭탄목걸이가 사실 모양만 흉내내고 폭약 없는 가짜였는데 그 설명을 넣으려다가 깜빡한 것도 있네요. 정신없이 쓰다보니까 놓친게 좀 있습니다.
개심한 후 아이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탈출했다가 잡히는 델타, 자매들의 고통을 되새기기 위해 스스로 똑같은 고통을 가하는 리스트컷 등의 전개도 원래는 쓰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난잡해지는 것 같아서 뺐어요.
제가 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나아진 완성도로 찾아뵙겠습니다.
날씨 추운데 건강조심하세요.
잘 먹었습니다
사령관의 행동에 당위성을 생각해보려해도 멸망전 ㅈ간이 떠올라 초반부부터 제대로 보기 힘들었네요. 델타와 리스트컷보다 저 세계관의 사령관과 바이오로이드들은 괜찮은걸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투만 알고있던 델타가 진정한 사랑으로 감화될 수 있느냐란 부분도 작품 사령관의 행보때문에 이게 사랑인가싶었으니.
그쵸... 하지만 초반부에는 상황이 급박해서 사령관도 조금 무리한 수단을 사용해야 했다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델타의 고문이 이어지는 중후반부에 자신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주는 사령관의 행동은 자비와 사랑을 바탕으로 행해진다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자신의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여 델타가 깨우치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위험하다 느꼈습니다. 나도 고통을 느끼는 대신 남을 아프게해서라도 고치자는 것은, 선의로 포장된 타락의 합리화 과정으로 잘 쓰이니까요. 말씀처럼 그런 의도로 쓰신 것이 아니란걸 알지만요.
잘 먹었습니다
델타가 동면에서 다시 깨어난 후에 자기 딸과 재회하는 부분에서 분명 딸도 리스트컷으로부터 델타의 악행을 들었을텐데 조금 두루뭉술하게 딸과 델타의 관계가 좋은 점만 빼고는 괜찮은 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추가해보자면 동면되기 전 델타가 딸에게 자애로운 어머니로서의 편지라도 남겨두고 나중에 리스트컷이 딸에게 편지를 보여주는 묘사가 있었으면 딸과 델타의 재회가 조금 더 매끄럽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애초에 동면기간은 한달도 안됬고 새사람으로 태어난 델타가 다시 갓난아기인 딸과 함께 조용히 평화롭게 살아가는 엔딩도 괜찮을 듯 싶었습니다. 장편 시리즈 고생많으셨습니다.
넵 ㅋㅋㅋ 에필로그까지 가니까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서 묘사를 좀 이것저것 생략했어요 혹시 나중에 다시 쓸 기회가 생기면 그런부분 염두에 두고 더 잘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