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공학자들이 나노기술에서 성공적인 발전을 끌어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대목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데 실패했다.
시간이 지나고 석유는 고갈되었지만,
완벽한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 방법이 발견됨에 따라 생각만큼의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다.
허여멀건한 싸구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그 와중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쉬지 않는다. 눈이 아파 눈을 꿈뻑거리면서도 손으로 뭘 입력하는지 도통 정리가 되질 않는다. 그냥 시키는 대로 입력하고 보기 좋게 정리할 뿐이다. 타자를 치는 도중에 뻑 하는 묵직한 고통과 함께 시야가 흐려진다. 눈병이라도 생긴 건가? 갑작스레 당기는 목덜미를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윽…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산소부족으로 인한 만성 편두통이 날 한 시라도 가만 두질 않아.
힘이 빠지는 하반신에 집중하여 겨우 균형을 잡았다.
“괜찮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네.”
얼굴에 철판을 여기저기 박아 넣은 상관이 얼굴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는 사칙 때문에 회사에 끝까지 남아 야근을 하는 나를 지켜보기 위해 같이 남아있다. 나는 이 닳아빠진 회사에 몇 없는 순수한 인간이다. 그래서 이렇게 회사에 남아 남은 일들을 처리해야 뒤처지지 않고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있다.
“뭐 언제는 좋았습니까.”
쿨럭거리며 튀어나오는 기침을 손으로 막자 손바닥에 끈적하고 벌건 피가 묻어 나왔다. 손바닥을 대충 휴지로 닦고 책상의 구석에 휴지를 구겨 숨겼다. 그때 사무실의 자동문이 열리며 옆 부서의 과장이 들어왔다.
그는 아마도 회사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사원일 것이다.
“부장님 또 이 시간까지 남아있습니까?”
“아- 이 대리가 남아있으니까…”
다 들으라고 얘기하는 건지 두 관리자의 대화는 내 성질을 건드렸다. 나와 오래전부터 친구인 박 과장은 내 눈치를 보며 부장의 뒤로 가 섰다. 박 과장은 사무실의 분위기에 머쓱한지 부장의 뒤에서 딴청을 피우다 창문 밖의 풍경을 둘러봤다.
불이꺼져 어둡고 칙칙한 건물들 사이로 빼곡히 세워진 전산망 전봇대들, 그 사이에 퇴근하려 바삐 움직이는 회사원들, 몇몇은 자신들의 차와 바이크를 타기도 하고 대로에 서서 무인 택시를 호출하기도 했다. 건너편의 건물은 이미 불이 꺼져 모든 층이 어두워진지 오래였다.
“이만하고 집에 가서 하는 건 어때?”
박 과장은 옆에서 살살 긁어대는 부장을 일으켜 세워 끌고 나가며 말했다. 난 집에 컴퓨터가 없다. 애초에 인터넷이 잘 터지는 구역도 아니고 휴대폰도 업무만 아니었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쿨럭 쿨럭
“크흑…”
흰 와이셔츠에 검붉은 피가 튀었다. 고통과 동시에 화가 왈칵 치밀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토할 거 같아. 나는 상 구석에 모여있는 약통에 손을 뻗어 가장 강한 종류를 낚아채 주머니에 넣었다. 일어서서 뒤로 창문 밖을 내려다봤다. 어두운 밤이라 그런지 가로등 아래의 비춰지는 부분이 제대로 보인다. 분명 흰색 등인데도 퍼렇게 주변이 떠보이는 건 망할 놈의 대기오염 덕이다.
오늘은 공기가 좋지 않을 거라 TV가 시끄러웠으니, 이렇게 피를 토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 나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마스크를 꺼내 코에 맞춰 갖다댔다. 마스크의 내부가 철컥거리며 얼굴에 맞춰 얼굴에 고정된다.
곧 콧등 우측 부분에 하얀색 LED가 점등된다.
-습 후…
정말 최소한의 관리만 이뤄지고 있는 이 C구역 외곽에서는 건물 내부에서도 이렇게 마스크를 써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구역에는 인간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런 공기질에, 나쁜 치안, 경쟁력 높은 로봇, 반인들의 신체능력에 맞물려 인간은 도태되었다.
인간은 일자리를 잃지 않았지만 인간다움을 잃어버렸다.
--
그는 길고 지저분한 복도를 지나 휘청거리며 화장실에 도착했다. 푸른색의 쩅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콜록거리면서 하얀색 등을 켜 푸른 조명을 희석시켰다. 먼지에 물때로 지저분한 거울을 보고 마스크를 벗었다.
마스크는 철컥거리며 주먹 반 정도 되는 크기로 줄어들었다.
“후우…….”
약통을 꺼내어 세면대 옆에 세워두고 가져온 물통을 돌려 열었다. 은빛의 보온병 모양을 한 병에 녹물을 꾸역꾸역 받아 넣고 뚜껑을 닫아 돌렸다. 병은 붉은빛을 내며 비프음을 냈다. 아주 약한 진동과 점등을 내는 보온병을 세면대 위의 선반에 올려두고 그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퀭한 눈과 홀쭉한 볼, 푸석푸석한 피부, 짙은 다크서클, 입가에 눌려있는 기계 마스크의 자국들이 지저분한 거울에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 서류 전형에서 바로 합격했다며 신나했던 날이 며칠 전 같은데. 얼굴은 피로해 보이기만 한다.
-띠잉!
녹물을 담은 병이 흰빛을 내며 신호를 보낸다.
-지이잉 하며 뚜껑이 자동으로 열린다. 병을 들어 뚜껑에 물을 따르니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담기며 찰랑인다. 여전히 역한 냄새가 나지만 이렇게 해야 그나마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
그는 고통이 겨운지 그는 서둘러 독한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입안에 부어 약을 넘겼다.
--
사무실로 돌아가 작업을 하고 있으니 곧 담배 냄새를 풍기는 부장이 돌아온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코에 갖다 대었다.
“이 대리?...”
-습 후-
눈앞의 시야가 와르르 무너졌다. 분명 눈을 뜨고 명확히 보고 있는데 머리가 처리를 하지 못하는 거 같다.
나는 고장 난 기계처럼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이 대리!!”
옆에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박과장이 달려온다 이미 경험해본 일처럼 뛰어오며 걸어둔 전화에 주소와 이름을 대고 신고를 했다.
“예 코마 철강 6층이요 네.”
---
식탁 너머 어머니가 나를 보며 웃는다. 보지 않아도 느껴져 나는 참고서를 읽다 고개를 힐끗 들었다.
“밥 먹으면서도 공부니? 먹다 체하겠다.”
열심히인 아들이 보기 좋으신지 지그시 웃으시는 어머니의 표정이 기분 좋게 따스한 느낌이다. 책을 덮으면서도 웃음에 묻어나는 눈가의 주름들이 신경 쓰여, 돌아오는 길에 화장품이라도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소파 하나 놓지 못할 좁은 거실에, 여유 없는 반찬 뿐인 식사지만 상황이 점차 좋아질 거라 애써 무시했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잡종으로 만들 수 없다며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연구에 매진하셨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곧 회사에서 쫓겨나고 밤길에 술에 취해 걷다 실종되셨다.이런 척박한 도시에 자리 잡고 가정을 박살 낸 아버지가 미웠지만, 절대로 몸에 쇳덩이는 박을 수 없다며 끝내 순수한 인간으로 지내는 모습은 내심 멋지다고 느껴졌다.
대기오염은 언제나 최악의 최악을 달리며 음식은 영양과 성분에 초점이 맞춰져 이미 맛이라는 걸 잃은 지 오래, 독소에 반응할 인간이 없는 이 외곽 지역엔 술도, 마약도 없다. 그래서 인지 나도 아버지를 닮아 몸을 기계로 대체된 반인들을 혐오하며 자랐다.
“어떤 제품을 찾으세요?”
턱선에 기계장치가 달린 종업원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늙지 않는 반인들 이 거리를 빽빽이 매운 세상에서 화장품이 웬 말이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시술을 받아도 피부와 각막 같은 것들은 대체되질 않아서 화장품 산업은 당분간 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말 없이 앞에서 집어 든 제품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주름개선…?”
직원은 제품을 기기 앞에 휘저어 포스기에 찍고는, 흔히 팔리지 않는 제품을 고른 내게 오지랖 부릴 건수를 고민하는 듯 보였다.
“아… 수술 받은 지 얼마 안 되셨구나!”
종업원의 말에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다며 끝까지 시술을 거부하고 버티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반사적으로 종업원에게 욕을 내뱉을뻔 했지만, 꾹 참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뇨. 우리 집에 반인은 없습니다. 아무도 시술 같은 건 받지 않았어요.”
종업원은 눈이 동그래졌다. 반인이라는 멸칭에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그의 얘기가 신기해서 였다. 도시에 퀭한 얼굴의 인간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 얘기를 그저 소문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공기 정화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이곳에서 인간으로 남아있길 원하는 건 멍청한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신기한 얘기처럼 소문이 퍼지는 것이다. 그녀는 주변에 친구들이 신기하다고 떠드는 그를 실제로 보니 뭐라도 말을 걸고 싶었다.
“어- 그 제품은 혹시 본인이…?”
가방에 물건을 담다 종업원의 질문에 멈칫한 그는 티 나게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머니가 쓰실 겁니다.”
자신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종업원을 뒤로하고 가게를 빠져나온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여니 바닥에 차가 엎질러져 있고 찻잔이 뒹굴고 있다.
어머니는 식탁 아래에 쓰러져 숨을 거칠게 몰아 쉬고 계셨다. 나는 마스크를 벗고 어머니에게 달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