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야. 나랑 계약해서 마법소녀가 되어줘!'
'싫어.'
'어째서?! 생각도 안 해보고 단칼에 거절이라니 너무해.'
"너무 해 래. 크크큭!"
"그에게 이런 시 덥지 않은 연기를 하는 면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루시펠이 새로운 마법소녀와 계약을 하기 위해 벌어졌던 장면.
그것을 보고 재미있는지 비웃는 자들.
"이봐, 누구 마음대로 이걸 보고 있는 거지? 이걸 송출 한 녀석은 유리엘 인가?"
"루시펠. 돌아왔군요. 여긴 무슨 일이죠?"
"뭘 물어봐 레피엘. 이유는 보나마나 뻔 하잖아."
"그 입 다물어! 한번 만 더 혀를 놀렸다가는..."
"한번 만 더 뭐? 나하고 해보고 싶나?"
루시펠을 비꼬는 말투로 도발을 하자 그 도발에 넘어가 발끈하여 화를 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씩, 하고 웃으며 똑같이 노려본다.
"자. 자. 두분 진정하세요. 여기서 싸우는 건 보기 좋지 않습니다. 기왕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세요. 뒷정리하기 힘드니까."
"걱정 마. 루시펠은 지금 나하고 맞붙을 힘 따윈 없으니까."
"이 자식!!"
결국 참다못해 손이 나간 루시펠.
당연히 그것을 맞 받아치기 위해 상대 쪽에서도 손을 뻗었다.
"제 말이 말 같지 가 않나요? 라구일."
"칫."
하지만 곧 레피엘이라 불린 그녀의 제지에 루시펠은 손을 거두었고, 라구일이라 불린 이는 재미없다는 듯 혀를 차며 그 자리를 떠났다.
"두 분 다 경고입니다. 한번 만 더 저를 귀찮게 했다 간 제 무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어드리죠. 알겠나요?"
"......"
"그럼. 따라오세요. 여기에 돌아온 이유는 대충 알 거 같으니까요."
레피엘의 말에 얌전하게 고분고분 말을 듣는 루시펠.
괜한 쓸데없는 말을 했다 가는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
"들어가세요. 그 라면 언제나 상주하고 계십니다."
어떠한 문 앞까지 안내를 한 레피엘은 루시펠 혼자만이 들어가기를 유도했고 루시펠은
문을 열던 행동을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곧 힘차게 밀고 들어갔다.
"루시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하엘."
방안으로 입장하자 커다란 원형 테이블의 중심 즈음 부분에 미하엘이라는 이가 루시펠을 맞이해주었다.
그는 루시펠에게 자신을 마주하여 앉을 수 있도록 가까이 인접한 의자를 향해 손 짓 했다.
"말씀해보세요. 자세한 사항은 익히 들었으니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이 마법소녀와의 계약을..."
"불가능합니다."
루시펠이 말을 끝내기도 무섭게 단칼에 거절해버린 미하엘.
그 거절의 목소리가 매우 진중하고 무거워서 '왜 그러 냐고.' 반복조차 못 한 채 입을 꾹 다물게 된다.
"잊으셨습니까? 당신은 지금 그녀에게 강제 계약을 맺었습니다. 일반적인 계약하고 다르다 구요."
"......"
"아무리 급하다지만 강제 계약은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습니다. 전에도 얘기 드린 적 있지 않나요?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자기 목을 조이게 된다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조차 열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한다.
"허 나. 그 마음 이해합니다. 인간들도 그렇고 우리들도 그렇고. 감정이 있는 존재라면 누구든지
그러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런 행동을 취할 수 밖 에요."
"......"
"하지만 생각을 다시 한번이라도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겠죠. 제 말이 맞지 않나요? 루시펠?"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저의 섣부른 판단이었습니다."
그에게 듣고 싶던 답은 이게 아니었다.
하지만 겨우 입을 열어 한 말 또한 자신이 원하던 말조차 아니다.
머리로는 몇 번의 대화가 오갔을 탠데 그의 무거운 압박감에 견디지 못해 쉽사리 그러지 못하였다.
"훌륭한 대답입니다. 그럼 다시 돌아가서 당신이 저지른 일을 잘 마무리 짓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미하엘."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방을 나가려는 순간 그가 루시펠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짧지만 몇 마디 말을 건네 주고는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레피엘을 불러 그와 동행하게 했다.
"어지간이도 시달렸군요. 루시펠. 식은땀이 엄청 난걸요."
"...괜찮아. 스스로 돌아가지."
"부디 조심하시길."
평소와 달리 험난한 하루를 겪게 된 세아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지쳤는지 침대에 놓인 베게에 얼굴을 묻고 이리저리 침대 위를 굴렀다.
"대체 왜. 응? 어째서 어!!"
"세아야. 엄마 들어가도 되니?"
문 밖으로 노크 소리와 함께 들린 엄마의 목소리에 놀라 바로 앉아 옷 매무새를 정돈했다.
"네. 들어오셔도 돼 요."
"잠시 쉬고 있었구나. 큰 소리가 들리길래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걱정 했잖니."
"죄송해요. 공부하다가 막힌 부분이 있어서 그만..."
"그래? 그럼 엄마가 잘 아는 과외 선생님 있는데 불러줄까? 명문대 출신이라고 수진이 엄마가 그러더라.
수진이도 그 선생님 부르고 나서 공부가 잘 된 데."
"아, 아니 에요. 과외 선생님 부를 정도로 어렵진 않아요. 모르는 건 제가 아는 언니 한태 물어봐도 충분해요.
그 언니도 공부 잘해서 지금 해외 유학 갔거든요."
"어머. 정말이니? 우리 딸. 언제부터 그렇게 인맥이 좋았어? 엄마가 그럼 이번 수능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물론이죠. 그러니 저 이제 다시 공부할 게요. 오늘도 밤새 해야 할 거 같거든요."
"힘 내렴 우리 딸. 엄마하고 아빠는 딸만 믿는다. 아, 그리고 이 약도 먹어봐."
"이게 뭔 데요?"
"학부모 모임 갔다가 받아온 건데. 이게 글쎄, 집중력 향상에 그렇게 도움을 많이 준다고 하더라.
일단 테스트 한번 해보라고 두 알만 받아 왔 단다.
우리 세아가 한번 먹어보고 효과가 좋으면 엄마가 바로 구매해줄 게.
가격도 얼마 안 해 정가에 판매하는 곳 보다 20프로나 더 싸게 파는 곳이 있다고
모임 회장님이 말씀해 주시더라. 게다가 1인당 2통씩 해서 단체 주문하면 할인을 더 해준 다지 뭐 니.
어머, 마침 회장님 한테 전화 왔네. 엄마 이제 방해 안 할 게 열심히 해~"
마치 폭풍이라도 몰아 친 듯 쉬지도 않고 떠들더니 전화 한통 덕분에 세아는 목숨을 구했다.
방안이 다시 조용해지자 세아는 침대에 몸을 뉘어 한숨을 내쉬고는 엄마가 준 약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가격이 정가보다 싸면 의심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바보 엄마."
수능을 앞둔 학생들 사이에서 이상하리 만치 온갖 약들에 대한 소문이 돌고 돌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가까운 곳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각성 음료가 있다며,
떠들어 대자 그 소문은 금세 퍼져 나가 너도나도 그 음료를 받기 위해 기를 썼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하나 즈음 무료로 나눠 주겠지만 화려한 말솜씨로 가스라이팅을 하여 부모님께 연락을 하거나
혹은 부모에게 받은 카드를 이용해 그 제품을 대량 구매한다.
정기적으로 무료 배송도 해준다 하니 구매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 가.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만 있다면 그깟 푼 돈 즈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내 자식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다닐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게 부모다.
설령 자식이 원치 않더라도 어떻게 든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리사욕을 자식을 대신해 이루고자 하는 욕심.
자식이라도 잘 돼야 그만큼 배 푼 것이 자신들에게 크게 돌아올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 자들이 수 두루 하다.
"이제 생각은 그만하고 공부해야지. 그 일 때문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소모됐어."
다시 금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쥐려는 순간 어디 선가 소리가 들렸다.
"너, 너는!"
"...돌려주러 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창을 넘어 들어온 루시펠이 세아의 스마트폰을 돌려주러 왔다.
"내 스마트폰! 어쩐지 허전 하더라니. 네가 가져갔었구나."
"그럼 난 이만."
"잠깐! 나와 얘기 좀 해."
볼일을 마친 루시펠은 곧장 떠나려 하자 세아가 그를 불러 세워 대화를 할 것을 요구했다.
루시펠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방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 안에서 신발은 벗어."
생각보다 말을 잘 듣는 루시펠. 그 모습을 보고 조금은 대화를 할 생각은 있나 보 구나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전부 다. 네가 나에게 해줘야 할 모든 것을 얘기해줘.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그렇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건 아직도 내가 마법소녀란 뜻이잖아. 그렇지?"
"그래. 넌 아직 마법소녀다. 강제 계약으로 이행된 마법소녀."
"그러니까 그걸 설명해줘. 내가 왜 너와 강제 계약 인가를 통해 마법소녀가 된 건지. 납득이 가게 끔 말이야."
어디서 부 터 얘기를 진행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에 말 했 듯이 세계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어. 물론 이 세상이 아닌 반대된 세계가."
"반대된 세계?"
"지금 세아 네가 살고 있는 세상과 똑같은 모습을 한 세계가 이 반대편에 있어."
"스마트폰 속에?"
"아니. 정확하게 는 이 스마트폰은 그 세계를 갈 수 있게 해주는 연결 장치이고. 그 세계는 눈으로 볼 수 없어."
방과 후 하교 길에 보았던 스마트폰에 설치된 알 수 없는 어플.
그 어플을 통해 세아는 마법소녀로 변신을 할 수 있고,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처음 변신을 했을 때 느꼈을 거야. 무언가에 빨려 들어간 기분을 그게 바로 반대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일."
"그냥 기분 탓, 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그래. 그 반대 세계를 우린 반전 세계(reverse world) 라고 불러."
"그렇다면 내가 마법소녀가 된 사실은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쳐?"
"아니, 현실에서는 나를 제외한 아무도 몰라. 또 다른 마법소녀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자신과 달리 또 다른 마법소녀가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말고도 다른 마법소녀가 존재해?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겠지."
"그거에 대한 질문은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 없어. 그 마법소녀의 담당자는 내가 아니거든.
각각의 마법소녀마다 담당자가 존재하는데 적어도 내가 담당하는 마법소녀는 세아 너, 한 명 뿐이야."
"그 말은 즉. 마법소녀를 담당하는 사람은 한 명의 마법소녀만이 아니라 여러 명을 담당하고 있다는 거네?"
세아의 예상치 못 한 말에 루시펠은 감탄했다.
"보기보다 영리하구나. 네 말이 맞아. 담당자마다 관리하는 마법소녀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도 가능해.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으면 그 또한 관리가 힘드니,
보통은 4명 안팎으로 관리를 해. 나 같은 경우에는 아직 너 하나 밖에 없는 거고."
"그렇다면 다른 마법소녀도 만들어내겠다는 말이지?"
"아니, 그러지 못해. 마법소녀와 강제 계약 상태인 담당자는 그 한 명 외에 다른 마법소녀를 담당할 수 없어."
그 말을 들은 세아는 안심했는지 다시 자리에 앉아 질문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대체 왜 나하고 강제 계약을 이행한 거야? 일반 계약을 했으면 내가 거절했을 까봐?"
"이미 한 번 거절 당했어. 넌 그걸 생각하지 못할 뿐이지. 왜냐하면 내가 너에게 강제 계약을 한 후 재워버렸거든."
"왜? 내가 날뛰기라도 했어?"
"...비슷해. 그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재워 버렸어."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루시펠은 잠깐 회상을 했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잊으려 했다.
"그럼. 따로 얘기라도 미리 해주지 그랬어.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원래 그럴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나타난 종자 때문에 그러지 못 했어.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기에는 시간도 촉박했고.
설마 녀석 쪽에서 찾아올 줄은 몰랐거든."
"그렇구나. 근데 왜 날 두고 떠난 거야? 잘 못 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잖아.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그런 상황을 처음 접했는데 어떤 생각 없는 사람이 앞뒤 안 가리고 그런 거랑 싸움을 하겠어?"
"그건 맞는 말이야. 다른 마법소녀들 처 럼 너 또한 상황 파악을 나중에 하고 우선 전투를 할 거라고 생각한 내 잘못이 커. 늦었지만 사과할 게."
이상하리 만치 갑작스레 루시펠이 사과의 뜻으로 손을 건 내자 세아는 의심 없이 뒤늦게라도 사과를 건 낸 그의 손을 마주 잡아 받아주었다.
"이런다고 용서 된 건 아니야. 강제 계약이니 마법소녀니 왜 하필 나였어?"
"그 땐 시간이 없었어. 마침 주변에 있던 거라고 는 너 밖에 없었으니까."
"나 밖에 없다고? 나 말고도 이 주변 만해도 학생들이 많을텐데. 순 거짓말 아냐?"
"아니. 마법소녀로써 적임자가 세아 너 하나 뿐 이었어."
뭔가 미심 쩍은지 수상하게 생각한 세아는 더 깊게 물어보려 했으나 똑같은 말만 반복할 거 같아서 포기했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계속 마법소녀로 살아가야 하는 거라면 좀..."
"방법은 하나. 나와 함께 반전 세계의 원흉을 처단한다."
"낮에 만났던 그 다크시드란 거하고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는 거네? 그건 좀 그런데."
"왜 지? 그때도 그렇고 망설인 이유가 뭐 야?"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빠져 다시 말을 이어가려는 중. 낮에 와 같은 경보 음이 들렸다.
"하필 이럴 때. 자세한 건 나중에 듣고 일단 이 일부터 처리하자 마법소녀."
"......"
"내키지 않은 거야?"
"...갈게. 대신 이번에는 싸우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약속해."
"물론. 당연하지 마법소녀. 넌 나와 계약한. 단 한 명 뿐인 마법소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