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생각은 없지만 루카스 에이먼은 강한 녀석이다.
오우거와 오크들에게 포위된 절대 절명에 상황에서 용맹하게 싸운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더욱이 그는 내가 괴력에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도 이 싸움을 받아드렸다.
그건 그에게도 비장에 카드가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했다.설령 지더라도 이 승부..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다.
루카스는 의연하게 대련장으로 화랑을 데리고 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이곳은 왜 이리 한선한지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누군가 자신를 이 상황에서 빼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화랑의 괴력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의 기술을 가진 그야말로 골치 아픈 상대이기 때문이다.
설마 도전에 응할 줄이야.. 이러다 패배하게 되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분명 아리아 아가씨 귀에도 전해 질 텐데.. 이제와서 물리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아.. 말을 아낄 껄 그랬다..
아리아 아가씨로부터 외면 받는 화랑을 보고 너무 통쾌해 나도 모르게 너무 나갔다..
평소 아버지께서 겸손하라 말하셨는데.. 쯧
저택 뒤쪽에 위치한 대련장에 가보니 그곳에는 꽤 많은 병사들이 모여 훈련 받고 있었다.
루카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대련장에서 울려 퍼지는 기합소리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하며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아닌 것 같다는 등 아쉬움을 들어냈다.
난 혹시 겁먹었냐고 받아쳤고 루카스는 표정을 구기며 대련장 안으로 당당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련장으로 들어온 루카스와 날 알아본 게일 더치맨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야~ 이게 누구신가?이야기 들었네!영주님한테 4000금화씩이나 가져갔다지?대단한 친구야 자넨”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넉살 좋은 녀석이다.
친화력을 가진 사람을 싫어하진 않는다.
“운이 좋았지,그나저나 배니랑 헤어졌다고?”
뜻밖에 이름이 거론되자 게일은 실없이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아~ 소문 참 빠르군.. 인연이 아닌게지 음하하하핫”
능청스러운 녀석..
배니는 분명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활기찬 여성이다.
게일은 정말 아까운 여자를 놓친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루카스와 내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을 이해하는 게일이다.
대체 무슨 용무로 두 사람이 이런 곳까지 왔냐는 질문에 대련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좋은 구경거리가 났다며 병사들에 훈련을 전부 중지 시켰고 덩달아 다른 견습 기사들까지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루카스는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화랑과 달리 루카스에겐 명예와 위신이 걸린 싸움이다.혹 지기라도 하면 가르시아 영주를 볼 면목도 없을뿐더러 아버지 체면에 먹칠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올린 위엄을 잃을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어이 벤 더치맨과 아버지인 아돌프 에이먼까지 대련장에 나타났다.
게일은 루카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까지 둘에 전적은 10대 7로 자신이 3판 뒤지고 있는 상황이다.그러나 화랑의 실력은 베일에 쌓여있는 상태라 할 수 있었다.
마차를 한손으로 날려버리는 엄청난 괴력에 소유자인데다 기사들이 쓰는 기술을 구사하는 용병이다.어쩌면 루카스가 질 수도 있다는 전제아래 더욱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대련장에 모든 사람들이 루카스를 응원하며 용병따위 뭉개버리라고 아우성 치고 있다.
예상은 했지만 적어도 날 응원해주는 사람 한명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난 스마트 폰을 조작해 벨벳에게 치어리더 복장을 입힌 후 밖으로 끄집어냈다.
“우오오오오오-!!”
뜬금없이 등장한 벨벳과 그녀가 걸친 파격적인 복장은 이곳에 모인 병사들에게 상큼한 자극을 주기 충분했다.
어깨가 시원하게 들어낸 파란색 배꼽티에 준수한 몸매,골반까지 올라온 하늘하늘한 스커트.. 늘씬한 다리 거기다 귀여운 외모.. 모든 시선은 나와 루카스에게 멀어지고 벨벳에게 집중되었다.
헤벌쭉 거리는 시선들이 은근 부담스러웠던 벨벳은 자신이 소환된 장소와 상황을 파악하고자 바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 녀석들 왜 저렇게 흥분해 있는 건데!그리고 이 복장으로 싸우라는 거야?”
가르시아 공작가의 사병들은 휘파람을 불며 한껏 흥분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벨벳를 향해 난 뻔뻔한 부탁을 요구했다.
“날 응원해 줘.. ”
“응원?!내가 싸우는 게 아냐?”
벳벨은 적지 않게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화랑을 응원하기 위해 창피함을 무릅쓰기로 결심했다.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순간 벨벳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는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대체 이 답답한 마력의 기운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벨벳은 이해 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호흡을 가다듬고 대련장 중심으로 걸어갔고 루카스도 의연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대련장 바닥은 단단한 모래바닥이었으며 규모 역시 파이터 링에 3배 면적이었다.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 게일이 우리 둘에게 양손 목도를 건네주고 규칙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정식 대련용 목검으로 마법이 걸려 있어 무게가 무겁고 튼튼해서 쉽게 부서지지 않으니 마음껏 싸우도록 해.. 대련중 한쪽이 치명상을 입게 되면 곧바로 중재할거야.. 물론 한쪽이 항복을 해도 마찬가지지.. 그럼 대련자의 대한 예의를 갖추도록 해”
루카스는 거만하게 날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고 나 역시 눈깔에 힘줘가며 그 손을 잡고 악수를 청했다.서로 있는 힘을 다 줘가며 악수를 했으나 악력으로는 내가 한수 위였나보다.. 루카스의 표정이 곧 일그러졌다.
역시 화랑의 힘은 보통내기가 아님을 직시한 루카스는 속전속결로 화랑을 쓰러트리기로 마음 먹고서 양손검을 측면으로 잡고서 자세를 잡았고 화랑 역시 상대를 노려보며 칼끝으로 상대를 겨눠 자세를 잡았다.
게일이 팔을 들어 준비 동작을 보이고는 시작을 외침과 동시에 루카스는 라인 워크를 이용해 단숨에 화랑과 거리를 좁혀 양손검을 크게 휘둘렀다.
열 걸음도 더 되는 거리를 단숨에 좁혀 들어온 기습을 예상이라도 한 듯 화랑은 라인 워크를 이용해 루카스의 일격을 피하고 양손 목검에 손가락을 대고 아래에서 위로 넘겨 붉은 오라로 만들어 냈다.
그걸 본 아돌프 에이먼은 사색이 된 표정을 지으며 루카스에게 달아나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내 공격을 받아낸 루카스의 목검은 그 자리에서 분쇄되어 사라져 버렸다.
마나 소드 위력에 놀란 루카스는 서둘러 텀블링을 한 후 병사 허리에 걸쳐진 강철 검을 빼들고 매섭게 달려들었다.
칭! 채-앵!!
“크윽!이럴수가!!”
오오오오...
단 두 번에 공격으로 강철로 만들어진 무기가 파괴된 것을 본 루카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주춤 거리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벨벳은 ‘화랑 힘내!’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고 대련을 지켜보던 병사와 기사들은 그대로 얼어붙어 끽소리도 못 내고 있었다.
붉은 검기를 사용하는 검사가 용병중에 있다는 소문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익히 전해져 오고 있었다.그의 이름은 아르슬란 그리프로 철이나 강철 재질인 모든 무기는 거의 일격에 파괴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건 허세와 과장된 것이 분명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목격한 벤과 아돌프는 식은땀을 흘렸다.
벤 더치맨이 아들인 게일의 이름을 크게 부르자 정신을 차린 그는 시합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자!자! 여기까지 하자고!”
루카스는 승복 할 수 없다는 얼굴로 화를 냈지만 게일은 흥분한 친구를 달래며 나에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기술은 사기 적이다.처음 목도를 받아칠 때는 아무 느낌도 전해지지 않았다.마치 날카로운 면도날로 종이를 베는 그런 느낌?두 번째 강철 무기를 한 번 쳐낼 땐 묵직함은 전해졌지만 두 번째에선 무를 써는 느낌이 전해졌을 뿐이다.
“비겁한 녀석!마법을 사용하다니!!”
하하 마법이란다.. 하지만 이 기술을 설명할 길이 없다.나도 카피해서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그런 소릴 하면 안되잖아?지난 날 아르슬란 그리프가 산적들을 소탕 할 때 옆에서 지켜 봤잖아?저게 인첸트 소드라고 우기다니...
병사들은 루카스의 주장에 편승하며 마법을 사용했다느니 비겁하다느니 나를 향해 야유를 던졌지만 벤과 아돌프는 화랑이 사용한 것은 분명한 기술임을 직시했으나 침묵을 지켰다.
게일은 저게 마법인지 기술인지 정확한 기준을 못 세우고 있었다.기사들이 사용하는 기술 중에서도 마나 블레이드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화랑이 쓴 것은 마치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마법을 쓰지 말고 정정당당히 싸워라!!”
“옭소!!”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으로 화랑을 몰아붙이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벨벳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꽃을 일으키고는 화랑의 양손검을 들고 마법을 걸었다.
강렬한 화염이 검과 융합되어 인첸트가 되었다.
양손 무기는 용광로에서 막 나온 빛깔에 검신으로 엄청난 열기가 주변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잘 들어 이 무지한 인간들아!무기에 마법을 인첸트하려면 술식과 스펠링이 필요하단 말이야!이게 바로 마법 무기야!”
화르르르륵
태양을 집어 삼킨 것 같은 이글거리는 무기를 휘두른 벨벳은 장식용 갑옷을 일격에 녹여 버렸다.그 장면을 목격한 병사들은 질겁하는 얼굴로 뒷걸음질 쳤고 기사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돌아서기 시작했다.
“벨벳 그만둬!”
화랑의 단호한 외침에 벨벳은 움찔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저 녀석들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니깐..”
“너만 알아주면 그걸로 됐어”
그 마지막 말에 정신을 차린 벨벳은 화랑의 허리를 양손으로 감싸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루카스는 여전히 승복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대련장을 벗어났고 게일은 화랑에게 미안함을 들어내며 배웅을 해주었다.
“마법이 아니라 기술이라니!자네 정말 괴물이구만!솔직히 말해 그 대련은 자네의 승리야”
벨벳은 고개를 끄덕거리곤 두말하면 잔소리라며 게일 의견에 편승하였다.
하지만 아스트랄 소드를 사용하지 않고 붙었다면 결과가 어찌 됐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루카스의 처음 일격을 피하고 받아치는데 급급해 아스트랄 소드를 만들어 반격했다.반칙을 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소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네 정도 되는 남자라면 분명 힘 있는 귀족들이 탐을 낼텐데..차라리 기사가 되어 보는 것이 어때?용병은 하루 벌어 하루 살지만.. 주군을 모시는 기사들은 부와 명예도 따라온다니깐.. 자네 자식들도 그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그 뿐인가?공훈을 세우면 작위와 영지도 하사 받는 영광도 있다네!하지만 용병은 보상금 받고 땡이잖아?그러니 미래를 생각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해”
“조언 고맙게 듣지.. 그럼 우린 가볼께.. 또 보자고”
정원 입구까지 안내 받은 화랑은 게일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그대로 돌아서 거리의 인파속에 묻혀 사라졌다.
시간을 살펴보니 슬슬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오늘은 조금 일찍 산택을 나가볼까 싶었던 그때였다.벨벳은 거리 한복판에 서서 다소 어두운 민낯으로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기분이 아직도 안 풀렸니?”
“아니.. 화랑은 안 느껴져?이 기분 나쁜 마력에 흐름 말이야”
주위를 돌아봤지만 벨벳이 말한 그 이상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벨벳은 봉인된 기억 속에 파묻힌 파편 조각 하나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었다.
“화랑!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굉장히 불길한 위화감 같은 것이 느껴져.. 분명 난 이걸 알고 있어.. 하지만 떠오르지 않아..”
“대체 뭔데 그래?심각한 거야?”
“알 수 없어.. 그러니깐 조사해 보고 올께!허락해 줘!”
벨벳이 세상 밖에 일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반응한 것은 내가 아는 한 처음 있는 일이다.
대체 무엇을 느끼고 이토록 진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난 벨벳에 요청을 받아드렸고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서 나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럼 일정대로 왕도 입구로 가서 그곳 근방을 저장해 놓도록 하자..
그 다음 붉은 오크와 함께 브록실크로 나가야 하지만 오늘 만큼은 몸을 사리며 조심히 산책을 즐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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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왕도에 왔을 땐 느끼지 못한 불길한 기운이다.
그건 다시 말해 이 마력에 파장이 완성 된 것은 최근이라는 소리가 된다.
더욱이 왕도 전체를 덮고 있는 이 마력의 규모는 1~2년 안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은밀하게 계획된 것임이 틀림이 없었다.
거기다 인간은 감지 할 수 없는 매우 치밀한 수식과 술법이 들어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이건 무슨 주술이지?
벨벳은 발아래 마력의 맥이 흐르는 것을 감지하고는 가볍게 발끝으로 지면을 내리찍어 파괴해 지하 수로로 내려갔다.덕분에 지상 위엔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둥..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불쾌한 냄새와 습한 기운.. 당장이라도 지상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 마력에 근원지를 찾아야만 했다.이건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에 묻힌 지식에 일부이며 대단히 위험한 주술임이 틀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로 던전 같은 수로를 계속해서 나아간 벨벳은 투명한 결계에 가로 막혀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자 결계 해독 수식 7레벨를 이용해 가로 막힌 길을 간신히 뚫었다.
이 결계를 만든 자는 상당한 마법 지식을 갖춘 것이 분명해 보였다.이것이 파괴됨과 동시에 술자에겐 이미 자신의 존재를 노출하게 된 것을 파악한 벨벳은 서둘러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상대는 평범한 인간 마도사가 아니다.결계 레벨 7단계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과 비등하거나 그 상위에 지식을 갖춘 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마력의 파장이 뿜어내는 기운은 마치 블러드 트리를 만들어 낼 때와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후다다다다닥 척!
“드디어 나오셨나?인간 마도사”
벨벳 앞에 갈색 후드를 뒤집어 쓴 젊은 마도사가 길을 가로 막았다.
그 뒤엔 짙은 주황색 장발 머리카락을 가진 덩치 큰 검사가 벨벳을 향해 미소를 내지어 보이고 있었다.
저 둘에게선 평범한 인간에게서 느낄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마치 타락한 드래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어두운 잔향에 그것과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