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도자는
국내에 몇점 남아 았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는 100년 전,후쯤의 茶전용 화학청 국화문 백자 주자 입니다
개인적으로 추정은 구한말쯤의 화학청 유약으로 제작된 작품 도자기 차 주자로 추정 됩니다
보통 화학청은 구한말쯤에서 일제 강점기때 주로 사용한 유약인데요
사진에 보시듯 굽 아래 규사 가루를 보고 구한말쯤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때는 규사가루가 규석이 아닌 보통 분판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도자기나 사기를 제작했던 시절이였습니다
당시에는 작가분들의 수결도 없었던 때고 ~~~ 또한 위와 같은 작품 도자들 역시 현재 잔존량이
조선시대 관요 도자기 보다도 손톱 만큼도 안되게 잔존 수량이 아주 적습니다
위 주자는 분원이 폐쇄된 전,후에 생산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관요는 아닌듯 하나 고급스럽고 지방요(경상도 문경 또는 그 아래쪽)에서 생산된 주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밑굽에 내화토의 규사가 보이는것이 구한말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 합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화학청 도자들은 강점기시대의 상업적인 업체에서
제작된 세라믹 초기 주자들이 대부분인듯 합니다
아주 특이하게 태토가 일반 백자 태토가 아닌 조선시대 이도다완 태토를 사용했습니다
또 모르죠 백자태토가 아닌 분청 도자일수도 있지 싶습니다
언듯 보기에는 백자 주자로 보일수 있지만 분청자기 주자로도 보이는데
제가 체계적으로 도자 공부를 한것이 아니라 혼동이 됩니다
수집하고 백자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분청자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짜든 국화와 나비의 그림이 예사롭지 않고 ~~~
제가 안동오선생님이나 지순탁선생님의 그림체를 좀 봤는데요 두 선생님의 작품과 비슷해 보이기에
혹여 두분 선생님의 스승분이나 선배 도공분이 아닌가 황당한 생각도 해 봤습니다
구한말 또는 일제감정기 화학청으로 그려진 이런 국화문 주자를 그리고 제작한 도공분이라면
나름 그시대에 매우 유명한 도공분의 작품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ㅎㅎㅎ
또한 사족을 더 달자면 차 관련 자료들은 궁증자료와 불교자료등과 더블어 매우 귀한 대접을 받는 자료로
알고 있습니다
태토로 봤을때 차 전용 주자로 국내 몇점이 남아 있지 않는 매우 귀한 100년 전,후에 주자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정만 해봅니다 ㅎㅎ
중국의 민국시대 초기 자사호 들도 수억씩 거래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수준은 되지 못하더라도 상당한 재화적 가치가 있는
아주 귀한 작품 차 전용 주자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
보통 조선시대 주자들은 물 주전자또는 술 주전자 등등 으로 사용 목적이 있었다면
위 주자는 태토로 봐서는 차 전용 주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귀한 주자 입니다
우짜든 위 주자 말고도 전 소장자의 우취자료와 군인 신분증및 기타 사진 자료등등
귀한 자료를 함께 수집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고로 위 주자의 전 소장자분은 1980년대 초 산림청 고위 공무원을 하셨던 분의 자료로
부족한 제가 운 좋게 한번에 예전에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수집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칙이 있는것 같습니다
늦게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네요 다들 단디 하시고 행복하고 평온한 주말 되세요^^
도자기의 태토가 다른 백자하고는 다른 조선의 이도다완 태토를 사용했습니다
다완 제작하는 태토로 제작한것이 기존 조선시대의 백자 태토와는 전혀 다른듯 합니다
처음에는 백자로 보았는데요 ~ 지금은 분청자기로 보고 있는 주자 입니다
매우 투박한 태토질을 가지고 있고 ~~ 색상도 황이라보 다완의 색상을 가지고 있네요
이런 주자에 차를 우려내 마셔 보고 싶지만 실제로 사용용이 아닌 관상용으로 미사용 주자로 추정 됩니다
여담 입니다만 ~~ 창원 사는 LP음반 수집 고수님이 게시는데 그분이 어느 수집까페에서
위 주자를 구입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 구매원하시는 분은 LP음반 뿐만 아니라 차 생활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으로 모든 분야의 혜안을
가진분으로 알고 있는 분인데요 ㅎㅎ )
그런 고수님께서 과연 얼마에 구입할 생각인가? 궁금해서 얼마에 구입하시려나? 하고 구입가격에 대해
문의 하고 싶었지만
위 기물은 판매할 기물이 아니라 참고 그냥 판매하지 않는기물이라고 말하며 정중히 거절한 기억이 납니다 ㅎㅎ
수집을 하다보면 각 기물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분들이 가장 무섭고 또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지요
가장 중요한것은 명품 기물의 주인이 될수 있는 사람인지? 인품이나 경제력 등등 잘 보아야 하더군요
수집을 하다보면 저를 포함 호작꾼들이 많고 진정한 품위와 인품이 있는 분들은 보기 어려운것 같습니다
곶간에서 인심 난다고 경제적을 뒷 받침이 되고 품격과 인품이 있는 분들이 진정한 명품의 주인이 되는것 같습니다 ( 물론 저는 진정한 주인은 아니구요 / 저는 잠시 맞아두는 정도의 주인 정도 수준 밖에 안됩니다 ㅠㅠ )
지금은 안전하게 저의 개인 창고에 보관중이라 직접 보지 못하고 이렇게 사진으로만 저도 만족하고 있네요
이런 귀한 도자기 차 주자에 제가 소장하고 있는 고수차들을 우려서 마셔 보고 싶은 생각만 드네여
저 역시도 아름다워 사용용 보다는 관상용으로 잘 소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보이차 고수님께서 정신줄 놓으시고 요양원에 들어가시면서 가족들로 부터
아무생각없이 수집적 마인드로만 접근해서 구입한 200편의 각종 고수 보이차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도 내용과 가치에 대해 모르고 저 역시 전혀 내용이나 가치는 모르지만
이건 무조건 구입해야 한다는 촉을 느겨서 당일 바로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총 60통이였는데 혹여 눈탱이 맞을까봐 저는 1/3 물량만 구입 했구요
나머지는 인사동에서 활동하시는 모 수집가분께서 40통 전부 구입했다고 말하시더군요
이후 보이차계에서 들리는 소문이 40통 전량 중국으로 다시 넘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구입 당시에는 생차가 뭔지? 숙차가 뭔지도 모르고 당연히 고수차가 뭔지도 모르고 수집적 마인드로만
접근해서 수집했던 보이차 입니다 ~~~ ( 신의 한수 였지요 ㅋㅋ )
3년 정도 고수차 공부를 해보니 이 무지하고 부족한 사람이 엄청난 보이차를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수집을 하다보면 아주 가끔씩 이런 대박을 터트리는 경우가 있기에 수집하는것 같습니다
아래 보이차는 서영호라 불리우는 고수 보이차로 2006년 생산 이무정산 고수 보이차 입니다
참고로 보이차
서영호에 대해 검색해 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검색 되네여
서영호는 1992년 홍콩 서영실업무역공사를 창립한 이후 화교권을 대상으로 주로 보이차와 차관련된 사업을 하였으며
사업을 위해 2001년 시상반나에 순흥차창과 서영차창을 건창한 대만자본이며
대륙에 진출해서 비교적 고급 라인의 보이차를 생산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한 화교권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회사 입니다
2007년 이후인가? 부터 서영호라는 라벨은 단종 되었고 이후 순흥차창의 라벨로 사용하였습니다
서영호는 이런 과정에서 2007년 이후 진승차창이 노반장을 지배하기 전까지는 인정받는 차창으로
홍콩서영실업무역공사 라는 이름의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
2020년 6월 검색에서 홈 페이기자 보이지 않아 (현재도 검색이 안된다고 합니다 )~~
아마도 홍콩보안법 유혈시위의 영향을 받아( 대만자본 회사) 홈페이지가 사라진 상태라 추정 된다고 합니다
라고 검색되어 서영호에 대한 내용을 인용해 봤습니다
당시 차잎 표면에 홍띠( 홍사대)을 넣어 뭔가 특별한 가치을 자랑하려 했지 습니다 ^^
( 국내에 안 들어온것은 국내 입맛은 강하고 단맛을 편애하는 한편 서영호는 동남아 위주로 약간 심심한 맛을
가지고 있지 않나 추정해 봅니다 / 강하고 단맛이 좋았다면 국내에 수입되었지 싶기도 하고
또 국내에 수입되기에는 가격이 부담 스러워서 구지 맹해차창이나 기타 인지도 있는
차창의 재배차 보이차를 수입했지도 싶습니다 )
개인적 생각은 그만큼 2000년대 초,중반 이전 국내 고수차 보이차가 유행하기전 좀 들어 왔다는
반증일수도 또는 그시대에 비해 보이차 시음하는분들이 많이 사라졌을수도 있네요 ~~
2007년 고수 보이차의 가격이 폭등을 해서 노반장의 고수차는 천배 이상 가격이 올라갔지 싶습니다
또한 요쯤 판매도는 고수차중 수십만원 정도 하는 고수차들은 차창의 인지도가 작거나
고수차 찻잎의 브랜딩 등으로 인해 중,저가품이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다는 반증일수도 있지 싶습니다
상급의 고수 보이차들은 이미 가격이 넘사벽으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간지 오래전 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