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죽화 이야기는 북한에서 전해지는 민간설화다
강감찬 장군이 구주성의 백성들, 군인들과 함께 거란침략자들을 섬멸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 때 한 ‘소년’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강감찬 장군에게 자기를 꼭 군대에 받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강감찬 장군은 그의 몸이 너무 약하고 나이가 어려 보이므로
“너의 뜻은 장하나 뒤에 나이가 차거든 그때 다시 오도록 하여라”고 말하였다.
소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힘 있는 어조로
“나라를 위하는데 어찌 나이를 헤아리며 몸이 크고 작음을 가리겠나이까”하니 강감찬 장군은 깊이 생각하다가 그를 군대에 받아주었다.
“장하도다, 나라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이 갸륵하도다”라고 하면서 강감찬 장군은 흰말 한 필과 자기가 다루던 창 한자루를 주었다.
그 ‘소년’이 바로 설죽화였다. 설죽화는 군사들의 앞장에서 용맹하게 싸웠다.
적을 쳐부시는 수많은 싸움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그가 적의 가슴에 멸적의 창을 박는 순간 뒤로부터 날아오는 적의 화살에 맞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구주싸움이 우리의 승리로 끝났을 때 설죽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의 애국정신에 감동되어 시체 앞에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강감찬 장군은 피묻은 갑옷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한 장의 글발을 보고 비로소 그가 소년이 아니라 꽃다운 처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설죽화의 아버지는 거란의 2차 침공에서 양규 장군과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