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곽주성에 유성 떨어진 거는 사실 양규랑 관련 없음.
그냥 양규가 활약할 무렵에 유성이 떨어진 것도 의문인 요소임.
일단 곽주에 유성이 떨어진 건
12월 6일 곽주성이 함락되고 딱 10일 뒤에 떨어졌다고 기록만 나옴.
| 세가 권제4 | 1010년 12월 16일(음) | 큰 유성이 떨어지다 |
이후에 양규 열전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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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결국 함락되었다. 거란은 군사 6,000여 명을 잔류시켜 그 성을 수비하게 하였는데, 양규(楊規)가 흥화진(興化鎭)에서 군사 700여 명을 이끌고 통주까지 와서 〈흩어진〉 군사 1,000명을 수습하였다. 밤중에 곽주(郭州)로 들어가 잔류한 거란 병사들을 습격하여 모조리 목을 베었으며, 성 안에 있던 남녀 7,000여 명을 통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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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나와서 시기를 알 수가 없음.
다만 성이 함락되고 10일 뒤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 양규가 곽주성을 탈환하기 전후로 있었으니까 양규 본인이 유성이 떨어지는 걸로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거나
교란을 펼쳤을 수는 있었을 거라고 상상은 가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