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딱히 조선이 그렇게 꽉막힌 나라는 아니었다는것 같음. 진주박물관에 요새 화포류 영상들이 자주 올라오는데, 양반이 아닌 기술자들 대우 생각보다 해준것 같다고 하더라. 그게 아니었으면 조선이 화력덕후 못했다고. 일제 식민지 이후 무조건 까내리기 식민사관 영향이 있는걸로 보임.
딱히 조선이 그렇게 꽉막힌 나라는 아니었다는것 같음. 진주박물관에 요새 화포류 영상들이 자주 올라오는데, 양반이 아닌 기술자들 대우 생각보다 해준것 같다고 하더라. 그게 아니었으면 조선이 화력덕후 못했다고. 일제 식민지 이후 무조건 까내리기 식민사관 영향이 있는걸로 보임.
그건 아닐 수 있는게 기술자 대우는 해줬지만 노비출신이 올라간건 장영실이 유일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꽤 드문 케이스라 신분출세로 기록도 따로 남고 신분 걸고 넘어진 신하도 있었고
실제 해당 사건의 경우도 다른 사대부 출신 신하들보다 장영실의 처벌이 수위가 높았음.
조선이 열려있었다지만 어디까지나 당대 기준이고 편견이나 차별이 아예 없던건 아닌듯.
근데 2단계 내려도 몇십 대 장형인데 곤장이 실제로는 진짜 혹독한 형벌이고, 당시 장영실 나이 감안하면 맞고 병 걸리고 귀양지에서 죽었을 가능성도 있음.
근데 왜 생몰년도가 애매하냐? 하는데 보통 관직에서 물러난 사람은 정철같은 특이 케이스 아니면 거의 실록에 실릴 일도 없고, 보통은 자손들이 효도 일환으로 조상들의 일대기를 써주는데, 그게 안 되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신비롭게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되니까...
세종이든 뭐든 어가가 부서진 사고면 조선의 통념상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일단 세종이 처벌 수위를 낮추긴 했다지만 두단계 낮춰도 장형 수십 대에 저 고령이면
풀려난 뒤에도 골병들어서 얼마 못갔을 확률이 높음.
다른 연관된 신하들도 나중에 복직한거 보면 장영실도 살아있으면 복직했을건데 복직못했다는건 귀양 기간 내에 죽었다는거거든.
장영실 파직 후 행적이 묘연한 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님.
파직 후의 민간인의 행적은 또 사고 치지 않는 이상 실록에 실릴일이 없고, 그렇다면 개인 문집이나 행장을 남겼어야 하는데 장영실은 공돌이라 그런 것도 없을테고, 그게 아니면 자손이 번성해서 자손들이 행적을 정리해줘야 하는데, 장영실 자손이 끊겼으면 그것도 없고.
그래서 없는 거지 뭐. 그런 식으로 행적이 묘연한 사람은 전근대에는 많음.
저 가마 사건을 보면 처리과정이 진짜 미스테리임. 다른 임금이면 모르겠는데 그게 세종이다 보니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일임
딱히 조선이 그렇게 꽉막힌 나라는 아니었다는것 같음. 진주박물관에 요새 화포류 영상들이 자주 올라오는데, 양반이 아닌 기술자들 대우 생각보다 해준것 같다고 하더라. 그게 아니었으면 조선이 화력덕후 못했다고. 일제 식민지 이후 무조건 까내리기 식민사관 영향이 있는걸로 보임.
노비출신이라서 하급자들도 잘 안따랐다는 얘기를 본듯
대학원생
군노비네 ㄷ
무기같은거 만든건 아니니까 궁노비라고 해야되나
홍진호도 아닌데 왜 두개써지는거지
군노비네 ㄷ
루리웹-7979797979
무기같은거 만든건 아니니까 궁노비라고 해야되나
암금 군 아녀?
그런 의미였나
장영실도 그 정치싸움 중간에 껴서 피보지 않았나...?ㅠ영실도 그 정치싸움 중간에 껴서 피보지 않았나...?ㅠ
머야... 왜 같은 글이 두개씩이나 써지지...?ㄷㄷㄷ
뇌신세기
홍진호도 아닌데 왜 두개써지는거지
거울상 걸려있었나봄
대학원생
노비출신이라서 하급자들도 잘 안따랐다는 얘기를 본듯
루리티모
딱히 조선이 그렇게 꽉막힌 나라는 아니었다는것 같음. 진주박물관에 요새 화포류 영상들이 자주 올라오는데, 양반이 아닌 기술자들 대우 생각보다 해준것 같다고 하더라. 그게 아니었으면 조선이 화력덕후 못했다고. 일제 식민지 이후 무조건 까내리기 식민사관 영향이 있는걸로 보임.
그건 아닐 수 있는게 기술자 대우는 해줬지만 노비출신이 올라간건 장영실이 유일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꽤 드문 케이스라 신분출세로 기록도 따로 남고 신분 걸고 넘어진 신하도 있었고 실제 해당 사건의 경우도 다른 사대부 출신 신하들보다 장영실의 처벌이 수위가 높았음. 조선이 열려있었다지만 어디까지나 당대 기준이고 편견이나 차별이 아예 없던건 아닌듯.
... 그럴리가 ... 사농공상이 엄격하고 양반 유지하기도 다른 나라 귀족에 비해 빡씬 나라에서 ... 꽉막힌 나라가 아녀? ...
조선도 서얼차별은 있었으니 뭐...
노예보다 나은 정도지 조선은 절대 기술자를 우대한 나라가 아님
뭐 특이케이스지만 노비였나 천민도 학식만 있으면 선비들과 교류한거 보면 능력에 따른 대우정도는 있었을수도 있지 않을까? (성리학적 질서 안에서)왕이나 사대부나 노비나 다 같은 사람이다라는 사상이 사회지도층에서도 논의됬었으니
... 기생도 글 하고 사 하면 양반과 교류했지만 어차피 처지는 말하는 꽃인데 ...
서얼차별도 사실 공정함이 목적임. 과거시험이라는게 결국 학문을 보는건데, 공부는 결국 돈 많은집이 압도적으로 유리함. 돈 많은 가문이 다 해먹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가문에게 기회가 안 오기 때문에 서얼금고를 만든거.
현대랑.비슷하군
역모다!!!!
저 가마 사건을 보면 처리과정이 진짜 미스테리임. 다른 임금이면 모르겠는데 그게 세종이다 보니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일임
그래서 음모론이 나온거구나.
맞음 의문이긴 함.... 뭐 간단하게 보자면 파직되고 예순즈음이니까 자연사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 : 내 모가지가 날아가나 전하 가마 다리가 날아가나 함 해보자 (쓱싹쓱싹)
유배 받을 때 바로 죽어서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끊어졌댔나. 그렇지 않으면은 세종대왕 성격에 금방 복귀 시켰을텐데.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2404027_002 근데 보면 신하들이 80대 때려야 해요! 하는데 세종이 아니 그건 과하니까 2단계 내리자 하는 거 보면 진짜 사고였고, 세종 입장에서는 별 문제 아닌데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래 했던 거 같긴 함
근데 2단계 내려도 몇십 대 장형인데 곤장이 실제로는 진짜 혹독한 형벌이고, 당시 장영실 나이 감안하면 맞고 병 걸리고 귀양지에서 죽었을 가능성도 있음. 근데 왜 생몰년도가 애매하냐? 하는데 보통 관직에서 물러난 사람은 정철같은 특이 케이스 아니면 거의 실록에 실릴 일도 없고, 보통은 자손들이 효도 일환으로 조상들의 일대기를 써주는데, 그게 안 되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신비롭게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되니까...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0112027_003 특히 같이 처벌받은 임효돈 케이스는 세조실록에 보면 상을 받았다=귀양에서 돌아왔다는 거라, 다른 사람들 다 돌아왔을 거고, 굳이 장영실만 과거에 노비였으니 얘는 여기서 죽게 해야지! 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음.
세종이든 뭐든 어가가 부서진 사고면 조선의 통념상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일단 세종이 처벌 수위를 낮추긴 했다지만 두단계 낮춰도 장형 수십 대에 저 고령이면 풀려난 뒤에도 골병들어서 얼마 못갔을 확률이 높음. 다른 연관된 신하들도 나중에 복직한거 보면 장영실도 살아있으면 복직했을건데 복직못했다는건 귀양 기간 내에 죽었다는거거든.
사람을 삶아서 유배시키다니...
으아악 아니야
나이가 많다보니 그냥 노환으로 죽었거나 복직 안한게 아니냐는 말도 있음
세종대왕같은 왕이 계속 이어서 정치했으면 일본보다 빨리 근대화했을텐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문종이 건강관리를 개판같이 함+수양대군이 헬창이 아니라서 그만...
문종이 일찍 죽지 않고 수양이가 대군으로만 있다 죽었음 좋았을텐데
안타까운현실이여
수양이 왜 왕을해야지고... 수양이가 문과대국 만들었던가 ㅋㅋ
하다못해 소헌왕후나 현덕왕후가 살아있었다면...
이게 조선이야.... 문과만살리고 부질없는짓을... 황후도 죽었었고 그렇다면 떡락은 예정된 일이였나
일본은 근대화를 남의나라 털어먹은 돈으로 무기 사서 이룬거라 제국주의랑파시즘뽕이 없음 힘들지.. 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그런 막장역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고 봄..
하긴 그건 그러네 그런 역사 없는게 자랑스럽긴하지... 왕따 당한 사람이면 괜찮아도 시킨 사람이면 논란되듯이.... 좀 더 빨리 내부에서 개혁해서 스스로 근대화됬으면 좋긴한게 아쉽긴 한것같음
... 뭐가 자랑스러움? ... 세상안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게 아니고 살아 남는 자가 강한건데 ...
우리도 그간의 역사중에 정복의 시대가 있었고, 무력으로 남의나라와 전투를 벌이면서 민간인 피해도 있었지만 그게 무조건 좋다고는 생각 안하는데.. 지금처럼 문화로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혜택을 누리는게 좋지않음?
... 그것도 살아 남아야 자랑스럽지 ... 님이 말하는 세상에 문화로 인정을 받았다는 거 실체도 모르겠고 그걸로 무슨 혜택을 받는지도 모르겠음 ... 다만 살아 남지 못하면 다 부질 없다는 거 ...
일단 여권들고 유게공식 적성국인 중국이라도 가봐.. 좀 죽긴했어도 아직도 한국인이면 프리패스되는게 있긴함.
장영실 파직 후 행적이 묘연한 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님. 파직 후의 민간인의 행적은 또 사고 치지 않는 이상 실록에 실릴일이 없고, 그렇다면 개인 문집이나 행장을 남겼어야 하는데 장영실은 공돌이라 그런 것도 없을테고, 그게 아니면 자손이 번성해서 자손들이 행적을 정리해줘야 하는데, 장영실 자손이 끊겼으면 그것도 없고. 그래서 없는 거지 뭐. 그런 식으로 행적이 묘연한 사람은 전근대에는 많음.
승은을 입었다면... 설마... 그걸로 승은을 입은건 아니겠지?
세종대왕님 무게를 간과하고 가마를 만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