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생각해보면...
카터 측: 자금 및 물자 지원에 대한 값으로 프랑크푸르트 공습을 해줌
오버슈타인 측: 외적의 공습이라는 강력한 명분으로, 계엄령 체제 > 주도권을 제대로 쥘 수 있음
윌리엄 측: 루니샤 완성에 필요한 막대한 희생이 충족됨
대충 이런 구도로 추측이 가능해요.
카터 측은 프랑크푸르트 공습까지는 했지만, 그 뒤로 공수부대를 투입한다거나 지상병력으로 밀고 온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어요. 모스크바에 집중하느라, 프랑크푸르트에 투입할 병력도 없었겠지만요. 그러면 프랑크푸르트 공습은 왜 했는가...
재귀정리 때를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되실까 모르겠지만, 그 때에 카터는 합의서를 받고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아마, 오버슈타인이나 윌리엄 측에서 받은 서신일텐데, 지원을 해주는 대신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을까 해요. 혹은 서로의 원하는 바에 따라서 움직이자는 제안일 수 있고요.
적대적 공생. 이것 하나로 정의할 수 있겠어요.
루련 성립을 막으려면 신소련과 유럽이 분열되어 있어야 하고, 그에는 군사적 긴장감만큼 효과적인게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수백만은 죽었다고 하는 프랑크푸르트 공습이면, 분리주의파인 오버슈타인 측은 강력한 명분을 쥐고 루련 성립을 반대할 수 있고 주도권도 쥘 수 있어요.
이 적대적 공생을 위한 계획이 대관식 폭풍이었고, 여기에서 윌리엄이 맡았을 역할은 아마... 하늘에서의 공습은 카터 측이 해줄테니, 지상에서의 테러는 패러데우스 담당이었을 거예요. 그것을 위해서 붕괴오염 폭탄인 이아손의 상자를 광범위하게 설치해두었을 거고요.
문제는... 윌리엄이 이미 훈작사 쪽에게 회유를 당했네요? 아마, 지상 작전 쪽이 제대로 진행안된 이유일 수 있겠어요. 훈작사 측은, 가능한 피가 덜 흘러야, 사태를 진정시키고 루련 성립을 추진하는 데에 유리했을테니까요. 윌리엄 측도 이미 수많은 죽음이 일어났기에, 더 이상 힘쓸 필요가 없었을지도...... 다만, 후반에 희생이 더 있어야 한다고 떠들었으니 이건 확실치 않네요. 다만, 이번 이벤트에서 패러데우스가 실제로 외부에 무력행사를 한 건, 오버슈타인 암살 건 정도외에는 없으니...
여튼, 윌리엄이 훈작사에게 회유된 시점에서 이 모든 계획은 어차피 실패할 결말이었네요.
덜 흘린 피가 600만 이라는 시점에서...;